며칠 후면 10살이 되는 손녀가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우리 부부가 사 준 1/2 사이즈 바이올린의 울림이 생각보다 풍성하다. 벌써 지역 어린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한 지 2년이 지났다. 손녀가 바이올린을 전공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인지 살짝 음 이탈이 나도 거슬리지 않는다.
악기마다 음색이 독특하다.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면 환상에 빠져들 듯 아른해지고, 첼로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가라앉으며 고독 속에 잠긴다. 그럼에도 내게 음색이 가장 아름다운 악기를 고르라면 단연코 피아노이다. 최초로 매혹당했고 자발적으로 배우기를 원했던 악기여서이리라.
초등학교 4학년 여름, 동네 어귀에 피아노 개인 교습소가 생겼다. 나는 방과 후면 늘 그 집 앞을 서성이며 피아노 소리에 귀 기울였다. 피아노를 배우러 드나드는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몇 날 며칠 엄마를 조른 끝에 생일 선물로 어린이 바이엘 상권과 한 달 치 레슨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피아노에 대한 열정은, 엄마가 패물을 팔아 피아노를 장만하던 중학교 1학년 때까지 계속되었다. 남의 집에 가서 피아노를 빌려 연습할 때는 내 피아노만 있으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으나, 막상 피아노를 소유하게 되니 시들해지고 말았다. 피아노는 고등학교 입시에 집중해야 하는 중학교 3학년 여름이 오면서 그만두게 되었다. 피아노에 뛰어난 재능이 없기도 했으나 그것에 내 장래를 걸 만한 열정도 식어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잔잔한 피아노곡을 즐겨 듣지만, 라이브로 감상하는 연주회나 콩쿠르에서는 격정적인 연주곡을 선호한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 나이로 우승한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한동안 빠져 지낸 적이 있다. 모차르트를 닮은 클래식한 풍모를 지닌 그가 마지막 결승에서 피날레를 장식할 때의 장면은 몇 번이고 돌려보고 또 돌려봐도 여전히 가슴 벅차다.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눈물을 훔치며 멍하니 피아노에 기대어 자신을 진정시키는 모습까지도 연주의 연장선 같았다. 청중들은 콩쿠르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기립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피아노 선율, 한음 한음은 내가 평생 피아노에 혼신을 다한다 해도 흉내 낼 수 없는 천상의 소리였다.
자신의 역량에 대한 한계를 인정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피아니스트의 길을 가지 않은 것은 다시 생각해봐도 잘한 일 같다. 내가 아무리 밤잠을 줄여가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더라도 임윤찬처럼 연주할 수는 없었을 터이니 말이다. 예술이란, 훈련에 의한 기교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걸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알고 있다. 열정이 식기도 했지만, 노력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진작에 깨우쳤으니, 피아노를 그만둔 일은 현명한 선택이었음이 분명하다.
비교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오래전 우리집에서 기르던 진돗개 '칸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칸트는 훈련하지 않았는데 대소변을 스스로 가렸고 모든 면에서 놀라운 면모를 보여준 개였다. 혈통서까지 첨부되어 우리 가족 곁에 온 칸트는 모계 쪽인지 부계 쪽인지가 진돗개 챔피언을 지낸 뼈대 있는 가문의 후손이었다. 먹이를 먹을 때도 절대 체통 없이 굴지 않고 우리가 먹으라고 지시를 내릴 때만 먹었으며, 펜스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음에도 지정해 준 영역에만 머물렀다.
난 그런 칸트를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 마치 내가 흠모하던 천재를 만난 것처럼. 그러나 불행히도 칸트는 진돗개의 야생성 탓에 집 밖으로 나가면 목줄을 끊고 몇 시간이고 돌아다니는 바람에 우리 가족을 긴장시켰다. 게다가 심한 털갈이로 호흡기에 문제가 있는 남편과 한 집안에서 생활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어쩔 수 없이 넓은 마당이 있는 집으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2년 후 들려온 소식. 칸트가 결국 그 집 주변 대로를 가로질러 달리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칸트를 기억할 때마다 유전자와 타고난 능력을 생각하게 된다. 인간의 능력 또한 타고난 것이란 확신을, 칸트를 통해 느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것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칠 때 자주 깨달았다. 수학적 능력이 보통인 아이들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도 머리를 최대로 써야 하는 경시대회 문제를 해결할 능력까지 생기진 않는다는 것을. 내가 평생을 노력해도 베토벤의 '운명'을 작곡할 능력이 생기겠는가. 내가 밤낮없이 피아노를 치더라도 임윤찬처럼 연주할 수 없지 않은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을 운운한 에디슨의 명언은 보통 사람들에게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기를 촉구하는 격려의 말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천재들의 삶을 다룬 영화를 좋아한다. 굿 윌 헌팅, 뷰티풀 마인드, 아마데우스, 이미테이션 게임 등등.. 그리고 역사 속 천재들을 흠모한다. 그건 아마도 내가 부단히 노력해도 범접할 수 없는 그들의 타고난 능력과 독특한 사고에 경이로움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손녀의 바이올린 연주가 끝난 뒤 우리 부부는 힘찬 박수와 함께 '천재'라고 소리치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그런 우리를 바라보면서 손녀가 어깨를 으쓱한다. 그 동작이 천재라는 소리에 동의한다는 뜻인지 습관적인 몸짓인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