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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 동안 구름버스 타기 / 박승우
나는 가끔 구름버스를 타지요
뭉거뭉게 구름버스를 타고
<마음대로>를 달려보지요
<마음대로>는 넓고
<마음대로>에는 갈 곳이 많은데
끼이익, 수학학원에 도착했네요
구름버스는 떠나고
<마음대로>도 사라지고
나는 사각버스에서 내려
<계획대로>로 들어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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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털 파카 / 김성민
오리털 하나 삐죽 나와 있다
겨울이 정말 춥긴 추운가,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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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 추위 / 김성민
1
춥다, 형
이왕 나온 거 어쩔 수 없잖아?
그냥 필까, 형?
그래 피자, 펴
2
벚꽃 형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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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이 들으면 / 백민주
쉿!
조용히 해.
저 하늘에
초승달
한쪽 귀를 쏙 내놓고
엿듣고 있지?
저 귀로 듣고 나서
보름만 지나면
동그란 입으로
온 세상에 소문을 낼 거야
초승달이 들으면
온 세상이 다 듣는 거야
안전제일 / 박승우
파리가 주무시는
할아버지 얼굴에 앉았다
파리채를 내리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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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카드 / 추필숙
ㅡ편의점이네
ㅡ버스 탔네
ㅡ피시방이네
내가
용돈 쓸 때마다
엄마 핸드폰에 문자 뜬다
엄마가 나를 체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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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더 좋아 / 권영욱
사람의 역사를 오래오래 거슬러가면
분명히 아빠들도 젖을 물렸을 게다
숨 멎을 정도로 사랑스런 아기
엄마들과 서로 젖 물리기 싸움이 있었을 테고
나자마자 맡은 엄마 젖 맛에
아기한테서 조금씩 떠밀리다가
종일 사냥에 지쳐
곤히 잠드는 날이 많아지면서
차츰 아빠들의 젖은 말라
아기와 멀어지고
그러다 그러다가 젖꼭지만 남은 아빠들은
원래부터 그런 줄로 알고 지내다가도
가끔, '아빠 엄마 중 누가 더 좋아?' 하며
아주 진지하게 아기한테 물어보는 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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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 권영욱
왼쪽으로만 감는다는
칡(갈)
오른쪽으로만 감는다는
'갈등' 이라는데
'절대 친구와 갈등을 빚지 마라'는 말
왼쪽 왼쪽으로
오른쪽 오른쪽으로
둘이서
제대로 꼬이면
정말
단단한 밧줄이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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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임승차 / 임정아
지난번에
배 삯 안 내고
신분증 확인 안 하고
통영에서 한산도까지 가더니
오늘은 지하철을 슬쩍 타네
비둘기야!
너도 양심 좀 있어라
"미안해
나는 것도 하루 이틀이라
대구역까지만 갈게"
할머니 보따리 / 홍희숙
우리 집에 오실 때,
할머니는
커다란 보따리
양손에 들고 오신다.
고사리, 시래기, 무말랭이......
작은 책가방 하나도
무겁다고 한 내가 부끄럽다
하루 주무시고
돌아가실 땐
보따리가 보자기로 변했다
빈 보자기 손바닥만 하게 접어
가방에 쏙 넣어 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