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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侃, <慵夫傳>(용부전), <<東文選>> 권101
성간, <게으름뱅이>
원문:
慵夫 不知何許人也 凡諸謀爲一於慵 故 世呼爲慵夫 官至散官直長 家有書五千卷而慵不披 頭痬體疥 而慵不醫 在室慵坐 在途慵行 茫茫然 若木偶人也 闔室患之 謁巫而禱之 卒不能禁也
勤須子 學旣成 慨然有濟人之志 以其學來攻 慵夫 方以慵之病 踑踞散髮 瞠目而坐 勤須子曰 自古人也 莫不 以勤而生 以慵而敗 是故 聖人 皆以勤自守 文王日昗不暇 禹惜寸陰勤也 不寧猶是 風雨也 霜雪也 周乎四時 載育萬物者 天之勤也 天可學也不可違也 違天不祥
慵夫 莞爾而笑曰 我則敎子 子何敎於我 人生百年 心形俱勞 晝則營營作役 朝夕乎奔走 無不爲也 夜而假寐 啽囈而達旦 復何用哉 至人不如是也 操戈而逐之
勤須子 良久而思之曰 余知術矣於是 盛酒于器 隨之以鄭聲 伺間而進曰 今日風氣暄和 鳥鳴于山 思與子罄歡 可乎
慵夫 欣然而笑 投袂而起 履及於門 杖及於道 數十年之慵 一時頓盡 相與擧酒大噱後 遂以勤終焉
읽기:
慵夫(용부)는 不知何許人也(부지하허인야)니라. 凡諸謀爲一於慵(범제모위일어용)하니 故(고)로 世呼爲(세호위)慵夫(용부)라 하니라. 官至散官直長(관지산관직장)하고 家有書五千卷(가유서오천권)이나 而慵不披(이용불피)니라. 頭痬體疥(두역체개)라도 而慵不醫(이용불의)니라. 在室慵坐(재실용좌)하고, 在途慵行(재도용행)하니, 茫茫然(망망연) 若木偶人也(약목우인야)니라. 闔室患之(합실환지)하여 謁巫而禱之(알무이도지)라도 卒不能禁也(졸불능금야)니라.
勤須子(근수자)가 學旣成(학기성)하고 慨然有濟人之志(개연유제인지지)하고 以其學來攻(이기학내공)하니, 慵夫(용부) 方以慵之病(방이용지병)으로 踑踞散髮(기거산발)하고 瞠目而坐(당목이좌)하더라. 勤須子曰(근수자왈)하되, 自古人也(자고인야)가 莫不(막불) 以勤而生(이근이생)하고 以慵而敗(이용이패)니라. 是故(시고)로 聖人(성인)은 皆以勤自守(개이근자수)하니라. 文王日昗不暇(문왕일측불가)하고 禹惜寸陰勤也(우석촌음근야)니라. 不寧猶是(불령유시)하니 風雨也(풍우야)며 霜雪也(상설야)며, 周乎四時(주호사시)하고 載育萬物者(재육만물자)는 天之勤也(천지근야)니라. 天可學也(천가학야)요 不可違也(불가위야)니라. 違天不祥(위천불상)이니라.
慵夫(용부)는 莞爾而笑曰(완이이소왈)하고, 我則敎子(아즉교자)인데 子何敎於我(자하교어아)인가? 人生百年(인생백년)에 心形俱勞(심형구노)로다. 晝則營營作役(주즉영영작역)하고 朝夕乎奔走(조석호분주)하며 無不爲也(무불위야)라. 夜而假寐(야이가매)하고 啽囈而達旦(암예이달단)하니 復何用哉(부하용재)리오. 至人不如是也(지인불여시야)라 하고, 操戈而逐之(조과이축지)하더라.
勤須子(근수자)가 良久而思之曰(양구이사지왈)하되, 余知術矣於是(여지술의어시)하니라. 盛酒于器(성주우기)하고 隨之以鄭聲(수지이정성)하여 伺間而進曰(사간이진왈)하되, 今日風氣暄和(금일풍기훤화)하고 鳥鳴于山(조명우산)하고 思與子罄歡(사여자경환)하니 可乎(가호)인가?
慵夫(용부) 欣然而笑(흔연이소)하고 投袂而起(투몌이기)하고 履及於門(이급어문) 杖及於道(장급어도)하더라. 數十年之慵(수십년지용)이 一時頓盡(일시돈진)하고, 相與擧酒大噱後(상여거주대갹후)에 遂以勤終焉(수이근종언)하더라.
풀이:
“慵夫”(용부)는 “게으름뱅이”이다. “不知何許人也”(부지하허인야)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이다. “凡諸謀爲一於慵”(범제모일어용)은 “무릇 꾀하는 것이 게으름 하나이다”이다. “故”(고)는 “그러므로”이다. “世呼爲”(세호위)는 “세상에서 일컫다”이다.慵夫(용부)는 "용부는"이다 “官至散官直長”(관지산관직장)은 “벼슬이 산관(散官) 직장(直長)에 이르다”이다. “家有書五千卷”(가유서오천권)은 “집에 책 오천 권이 있다”이다. “而慵不披”(이용불피)는 “그러나 게을러 열어보지 않다”이다. “頭痬體疥”(두역체개)는 “머리가 상하고 몸에 옴이 오르다”이다. “而慵不醫”(이용불의)는 “그러나 게을러 치료하지 않다”이다. “在室慵坐”(재실용좌)는 “방안에서는 게으르게 앉다”이다. “在途慵行”(재도용행)은 “길에서는 게으르게 가다”이다. “茫茫然”(망망연)은 “멍하다”이다. “若木偶人也”(약목우인야)는 “나무 허수아비 같다”이다. “闔室患之”(합실환지)는 “온 집안이 근심하다”이다. “謁巫而禱之”(알무이도지)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하다”이다. “卒不能禁也”(종불능금야)는 “끝내 그만두게 할 수 없다”이다.
“勤須子”(근수자)는 “부지런꾼”이다. “學旣成”(학기성)은 “공부가 이루어지다”이다. “慨然有濟人之志”(개연유제인지지)는 “분연히 사람을 구제할 뜻이 있다”이다. “以其學來攻”(이기학내공)은 “공부한 것을 가지고 와서 공격하다”이다. “方以慵之病”(방이용지병)은 “바야흐로 게으름 병으로”이다. “踑踞散髮”(기거산발)은 “다리 뻗고 머리 풀다”이다. “瞠目而坐”(당목이좌)는 “눈을 휘둥그렇게 하고 앉다”이다. 勤須子曰(근수자왈)은 “부지런꾼이 이르기를”이다. “自古人也”(자고인야)는 “옛사람부터 비롯하다”이다. “莫不”(막불)은 “아님이 없다”이다. “以勤而生”(이근이생)은 “부지런하면 살다”이다. “以慵而敗”(이용이패)는 “게으르면 패한다”이다. “是故”(시고)는 “그러므로”이다. 聖人(성인) “皆以勤自守”(개이근자수)는 “모두 부지런함으로 스스로 지키다”이다. “文王日昗不暇”(문왕일측불가)는 “문왕은 낮이나 밤이나 쉬지 않다”이다. “禹惜寸陰勤也”(우석촌음근야)는 “우임금은 작은 겨를에도 부지런하다”이다. “不寧猶是”(불령유시)는 “이뿐만 아니다”이다. “風雨也”(풍우야)는 “바람이나 비나”이다. “霜雪也”(상설야)는 “서리나 눈이나”이다. “周乎四時”(주호사시)는 “사시에 두루”이다. “載育萬物者”(재육만물자)는 “만물을 받들고 키우다”이다. “天之勤也”(천지근야)는 “하늘은 부지런함이다”이다. “天可學也”(천가학야)는 “하늘을 배우는 것이 옳다”이다. “不可違也”(불가위야)는 “어길 수 없다”이다. “違天不祥”(위천불상)은 “하늘을 어기면 상서롭지 못하다”이다.
“莞爾而笑曰”(완이이소왈)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다”이다. “我則敎子”(아즉교자)는 “내가 그대를 가르치다”이다. “子何敎於我”(자하교어아)는 “그대가 어찌 나를 가르치는가?”이다. “人生百年”(인생백년)은 “사람이 사는 백 년 동안”이다. “心形俱勞”(심형구노)는 “마음과 몸이 모두 수고하다”이다. “晝則營營作役”(주즉영영작역)은 “낮에 골몰하게 일하다”이다. “朝夕乎奔走”(조석호분주)는 “아침저녁 분주하다”이다. “無不爲也”(무불위야)는 “하지 않는 것이 없다”이다. “夜而假寐”(야이가매)는 “밤에는 자는 둥 마는 둥 하다”이다. “啽囈而達旦”(암예이달단)은 “잠꼬대를 하다가 새벽이 되다”이다. “復何用哉”(부하용재)는 “다시 무엇에 쓰리오?”이다. “至人不如是也”(지인불여시야)는 “지인(至人)은 이렇게 하지 않다”이다. “操戈而逐之”(조과이축지)는 “창을 휘둘러 쫓아내다”이다.
“勤須子”(근수자)는 “부지런꾼”이다. “良久而思之曰”(양구이사지왈)은 “오랫동안 생각하고 말하다”이다. “余知術矣於是”(여지술의어시)는 “나는 이에 대처하는 술법을 안다”이다. “盛酒于器”(성주우기)는 “그릇에 술을 넉넉히 담다”이다. “隨之以鄭聲”(수지이정성)은 “음란한 소리가 뒤따르게 하다”이다. “伺間而進曰”(사간이진왈)은 “기회를 보아 나아가 말하다”이다. “今日風氣暄和”(금일풍기훤화)는 “오늘 날이 따뜻하고 바람이 잔잔하다”이다. “鳥鳴于山”(조명우산)은 “새들이 산에서 울다”이다. “思與子罄歡”(사여자경환)은 “내가 그대와 함께 즐길 생각이다”이다. “可乎”(가호)는 “가한가?”이다.
慵夫(용부)(는 “게으름뱅이가” “欣然而笑”(흔연이소)는 “즐겁게 웃다”이다. “投袂而起”(투몌이기)는 “소매를 던지고 일어나다”이다. “履及於門”(이급어문)은 “신발이 문에 닿다”이다. “杖及於道”(장급어도)는 “지팡이가 길에 닿다”이다. “數十年之慵”(수십년지용)은 “수십 년의 게으름”이다. “一時頓盡”(일시돈진)은 “한꺼번에 모두 없어지다”이다. “相與擧酒大噱後”(상여거주대갹후)는 “함께 술을 마시고 크게 웃은 다음”이다. “遂以勤終焉”(수이근종언)은 “마침내 끝까지 부지런하다”이다.
번역:
게으름뱅이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무릇 꾀하는 것이 게으름 하나이므로, 세상에서 일컫기를 게으름뱅이라고 하는데, 벼슬이 산관(散官) 직장(直長)에 이르렀다. 집에 책 오천 권이 있으나, 열어보지 않았다. 머리가 상하고 몸에 옴이 올라도, 게을러 치료하지 않았다. 방안에서는 게으르게 앉고, 길에서는 게으르게 갔다. 멍하니 있는 것이 나무 허수아비 같았다. 온 집안이 근심해 무당을 불러 굿을 했어도, 게으름뱅이 노릇을 끝내 그만두게 할 수 없었다.
부지런꾼은 공부가 이루어지자, 분연히 사람을 구제할 뜻이 있었다. 공부한 것을 가지고 와서 공격하니, 바야흐로 게으름 병이 든 녀석은 다리 뻗고 머리 풀고 눈을 휘둥그렇게 하고 앉아 있었다. 부지런꾼이 말했다. “옛사람부터 비롯해, 부지런하면 살고, 게으르면 실패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성인은 모두 부지런함으로 스스로를 지킨다. 문왕(文王)은 낮이나 밤이나 쉬지 않았으며, 우(禹)임금은 작은 겨를에도 부지런했다. 이뿐만 아니다. 바람이나 비나, 서리나 눈이나 사시에 두루 만물을 받들고 키운다. 하늘은 부지런함이니, 하늘을 배우는 것이 옳으며 어길 수 없다. 하늘을 어기면 상서롭지 못하다.”
게으름뱅이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그대를 가르쳐야지, 그대가 어찌 나를 가르치는가? 사람이 사는 백 년 동안, 마음과 몸이 모두 수고한다. 낮에 골몰하게 일하고, 아침저녁 분주하면서 하지 않는 것이 없다. 밤에는 자는 둥 마는 둥 하며, 잠꼬대를 하다가 새벽이 되니, 다시 무엇에 쓰리오? 지인(至人)은 이렇게 하지 않는다.” 창을 휘둘러 쫓아냈다.
부지런꾼이 오랫동안 생각하고 말했다. “나는 이에 대처하는 술법을 안다.” 그릇에 술을 넉넉히 담고, 음란한 소리가 뒤따르게 했다. 기회를 보아 나아가 말했다. ”오늘 날이 따뜻하고 바람이 잔잔하다. 새들이 산에서 운다. 내가 그대와 함께 즐길 생각이다. 가한가?” 게으름뱅이는 즐겁게 웃었다. 소매를 던지고 일어나, 신발이 문에 닿고, 지팡이가 길에 닿았다. 수십 년의 게으름이 한꺼번에 모두 없어졌다. 함께 술을 마시고 크게 웃은 다음, 마침내 끝까지 부지런했다.
논의:
산관(散官) 직장(直長)은 명예직 종7품이다. 집에 책이 있다는 것과 함께, 게으름뱅이라는 위인이 사대부임을 말해준다. 게으름이 무엇인가 말하려고 게으름이 생존과 직결되지 않는 경우를 들었다고 생각된다.
용모와 성격이 별나 웃음거리였던 성간이 자화상을 그린 것이 아닌가 하고 읽기 시작하게 하는 글이다. 게으름뱅이의 작태를 소개하다가, 게으름은 고쳐야 한다면,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데 이르렀다. 그 방법이 예상을 벗어났다. 글을 다 읽고 되돌아보면 뜻하는 바가 단순하지 않다.
게으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게으름은 생리인가, 습성인가, 소신인가? 몸을 활발하게 움직일 수 없는 생리적 조건을 타고나면 게으르지 않을 수 없다. 게으르게 지내는 것이 습성이 되면 부지런해지기 어렵다. 한정된 생애를 지나치게 수고하면서 보내는 것이 마땅하지 않아 게으름을 예찬하고 실행하는 것을 소신으로 삼을 수 있다. 게으름이 지극한 경지에 이른 슬기로운 처세라고 자부할 수 있다.
부지런꾼은 게으름뱅이가 게으르지 못하게 막는다. 해야 할 공부를 한 것이 있어 사람을 구제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독선이다. 옛사람들을 들먹이고, 문왕(文王)이나 우(禹)임금은 어떻게 했다고 말하고, 천지만물 본받으라고 하는 것은 짜증이 나게 하는 훈계이다.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면서, 게으를 수 있는 자유를 유린한다.
게으름뱅이와 부지런꾼이 밀고 당기는 것을 보고 독자는 두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다. 어느 쪽이 옳은가? 부지런꾼이 옳다고 여기는 것은 고정관념이다. 게으름뱅이 쪽에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 결말에서는 고정관념에 입각한 훈계는 무력하다는 것을 게으름뱅이 덕분에 깨닫고, 부지런꾼이 생각을 바꾸었다. 구속에서 벗어나 삶을 즐기고자 하는 욕구가 분출되도록 내버려두었다.
게으름뱅이가 하는 짓을 소개하는 글을 쓴다고 하고서, 게으름뱅이를 나무라는 부지런꾼의 작태를 문제로 삼았다.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을 치는 수법을 사용해, 표면적 주제와는 다른 이면적 주제를 말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옛사람의 전례를 맹렬하게 추종하기만 하면 부지런 때문에 망한다. 게으름이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필수의 전환 과정이다. 게으름의 위력 덕분에 완고하고 미련한 사고의 장벽이 철거되면, 삶을 누리는 것이 기쁨이고 보람인 줄 알게 된다.
성현의 말씀을 배우고 따르는 공부를 열심히 하라. 도의를 준수하고 욕망을 눌러야 한다. 정해진 법도와 순서에 따라 살아야 한다. 모든 일을 부지런히 하라. 겹겹으로 다져놓은 이런 규범에 정면으로 항거를 할 수는 없어서 삐딱하게 시비를 걸었다. 가장 약한 고리인 부지런을 걸고 넘어져 게으름을 피우면서 자기 나름대로 살아가고자 했다. 비난받아 마땅한 짓을 일삼는 폐륜아가 되어 법도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자유와 행복에 이르는 길을 찾고자 한다는 것을 눈치채지 않게 주장했다.
*<오색몽혼(五色夢魂)>
*<동생일처(同生一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