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없는 기쁜 날 / 김석수
아침에 일어나면 스마트폰에서 미세먼지를 알려주는 앱을 본다. 시간대별 예보를 보고 산책을 나갈지 말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좋음’이 나타나면 ‘신선한 공기 많이 마시세요.’란 문구와 함께 파란 바탕에 환하게 웃는 이모티콘이 뜬다. ‘최악’인 경우 ‘절대 나가지 마세요.’가 나오고 방독면이 나온다. 미세먼지가 ‘보통’ 이상이면 산에 간다. 어떤 날은 ‘나쁨’이 나와도 마스크를 쓰고 간다. 오늘은 미세먼지 ‘좋음’이 나와서 아내에게 무등산에 가자고 했다. 삭막한 도시의 메케한 냄새에서 벗어나 신선한 봄 내음이 가득한 자연을 만끽하고 싶었는지 아내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시루떡을 냉장고에서 꺼내서 전기렌지에 넣어 따끈하게 한다. 미지근한 물을 보온병에 담는다. 과일을 찾다가 배를 꺼낸다. 베낭에 가져갈 물건을 담고 등산화를 싣고 나오려는 순간 배를 깎아서 먹을 생각을 하니 칼이 필요했다. 현관에서 다시 돌아가 서랍에서 접히는 칼을 찾아 들고 나오면서 지팡이도 챙겨왔다. 먼저 행장을 챙겨서 현관에 기다리며 나에게 늦는다고 했다. 예전에 함께 외출하면 내가 항상 먼저 나와서 기다렸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가 행동이 느려진다. 젊어서와 달리 이제는 함께 어디 나가려면 내가 이것 저것 챙겨서 그렇기도 하다.
차를 몰고 풍암제로 갔다. 그곳은 비교적 사람들이 많지 않고 계곡이 있으며 경사가 완만해서 걷기에 좋기 때문이다. 산비탈에 개나리가 노란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놓은 듯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길 양쪽 가장자리에 서 있는 벚나무도 하얀 눈송이처럼 꽃이 활짝 피어 있다. 이른 아침이라 주차하기 좋았다. 차에서 나와 저수지 위를 보니 물오리들이 물 위를 걷는 것처럼 날아가고 있어서 신기했다. 예전에 수달이 물위를 머리만 내고 가는 것을 본 적도 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 안으로 들어서니 갓 피어난 진달래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바람이 얼굴을 살금살금 만져주고 따사로운 햇살이 등을 밀어주는 것 같았다. 푯말에 의병길, 제철 유적지라 적혀 있다. 의병길은 알겠는데 제철 유적지는 잘 모르겠다. 의병들이 철로 무기를 만들었던 장소가 제철 유적지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처음에는 제철 나물이 나오는 장소로 생각했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경향이 있다더니 꼭 그와 같았던 내 생각이 쑥스러웠다.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는 겨우내 움츠렸던 야생 동물이 기지개를 펴는 듯이 꿍꽝거리며 돌을 부수며 쏟아져 나왔다. 산을 올라 갈수록 따스한 햇살 아래 물 색깔이 연푸른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오리나무는 가지 끝에 어린 새끼 강아지 꼬리처럼 파란 잎이 돋아나고 있다. 바람에 스치는 대나무 밭을 지나니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가 봄의 교향곡처럼 들려왔다.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이 나만의 기쁨이다.
한 시간쯤 걸으니 등에 약간 땀이 나오는 것 같아서 계곡으로 내려가 쉬기로 했다. 계곡 물이 명경지수처럼 맑고 깨끗했다. 물에 손을 씻으면서 내 마음도 모든 욕심을 버리고 이처럼 맑아지기를 바랬다. 바위에 걸터앉아 가져온 시루떡과 물병을 꺼냈다. 아내는 떡을 먹고 물을 먹을 마시면서 레몬 냄새가 난다고 했다. 이전에 보온병에 레몬차를 넣어서 냄새가 배었던 같다. 농담으로 당신을 위해 레몬을 물에 넣어왔다고 했더니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산장을 지나 원효분소에 가지 않고 꼬막재로 갔다. 해발 700여 미터로 경사가 급한 것이 아니지만 길이 돌만 있고 올라가는 길이라서 아내는 힘들어 했다. 앞에 여자 혼자 산행을 하고 있다가 우리가 따라가니 힘들다며 먼저 가라며 길을 비켜 주었다. 산장에서 꼬막재까지 40여분 걸렸다. 산등성이가 꼬막처럼 생겨서 나온 이름이다. 꼬막재부터 신선대까지는 내려가는 평탄한 길이다. 흙길이고 바닥에 폐타이어 조각을 깔아 놓은 곳도 있고 경사진 곳은 계단을 설치해 두어서 휠씬 수월했다.
산행을 시작한 지 두 시간이 지나자 맑은 하늘에 검은 구름이 잔뜩 몰려왔다. 아내는 비가 올 것 같다며 우산도 없으니 그만 내려가자고 했다. 조그만 가면 신선대가 나온다며 아내를 달랬다. 삼십 여분 걸어서 신선대에 도착하니 해가 나왔다. 신선대에서 보니 멀리 주암댐과 나주가 보이고 갈대밭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아내는 오기를 잘했다고 하며 가져온 배를 깎아 먹자고 했다. 안내판 앞 넓은 바위에 앉아 배를 깍아서 입에 넣으니 달콤했다. 규봉암으로 가지 않고 다시 꼬막재로 돌아오니 길을 비켜 주었던 그 여자를 만났다. 우리에게 벌써 갔다 오냐며 규봉암으로 해서 장불재로 갈란다고 했다. 내가 그 길을 돌길이라 조심해서 가라로 했더니 고맙다고 했다.
돌아올 때는 내려오는 길이라 아내는 한결 쉽다고 했다. 처음 산행 시작해서 주차장까지 돌아오는데 다섯 시간 걸렸다. 점심때가 한참 지났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아내는 내게 요리를 해달라고 했다. 내가는 하는 김치찌개가 맛있단다. 정말로 맛있는지 모르지만 칭찬해 주니 안 할 수도 없다. 수제 두부를 사기위해 인근 식당에 들렸다. 아내는 두부가 너무 작고 비싸다고 했다. 식재료를 사려고 농협 로컬푸드에 갔더니 경품행사로 주차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맛있는 요리를 위해 차를 돌고 돌아 주차하고 돼지목살과 양념을 사가지고 왔다.
남악에 근무하면서 요리학원 가서 집밥 요리 중 김치찌개를 한 적이 있다. 김치찌개는 김치, 두부 혹은 돼지고기, 파만 있으면 근사한 요리를 할 수 있다. 관건은 적절하게 식재료를 배합하고 김치 냄새가 물씬 나도록 푹 삶는 것이다. 그리고 식재료를 넣은 순서와 불을 잘 조절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강불로 끊인 후 약불로 하고 파는 맨 나중에 넣는다. 몸을 씻고 아내와 함께 김치찌개를 먹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늘 고마웠다는 아내의 말에 미세먼지만 없으면 또 가자고 했다. 미세먼지 없는 날은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기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