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회고록
‘겨울 나그네’의 불꽃같은 삶 /박 혜 숙
회고록을 읽는 내내 슈베르트의 선율이 흐른다. 겨울 나그네는 쓸쓸한 눈으로 긴 인생여정을 돌아본다. 문학인, 한의사, 시의원, 방송인으로 살아온 삶의 폭이 이다지 거칠고 화려할 수가 있을까. 불꽃처럼 타오르는 열정과 노력으로 어떤 난관이 닥쳐도 순수한 열정과 올곧은 진심으로 이루어낸 발자취를 보며, 존경의 마음 가득 담고 책을 덮었다.
교수님의 제자로 13년째 문학 공부를 하며, 인연에 대해 생각한다. 경남 아파트에 젊은 시절 이웃으로 살았던 것 같다.
나는 첫 월급을 타서 산 음반이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였다. 24개의 노래로, 죽기 일 년 전, 가난과 고독으로 인한, 음울한 정조가 가득하여 감성을 자극하는 연가곡이다.
그 중 ‘보리수’와 ‘우편마차’가 특히 좋아서 수없이 들었다. 교수님은 ‘홍수’ 이야기를 몇 번씩 하시더니, 책의 제목이 되어 있는 것도 놀랍다.
그는 명문 집안에서 나서 아버지의 넓은 품에서 사랑을 받으며 산 어린 시절의 감촉을 잊지 못한다. 서울 문안에서 살던 그가 6.25 전쟁이 나고, 아버지는 이북으로 끌려가면서 총살당하시고, 적이 쳐들어온다고 급히 도망치다가 그가 넘어졌다. 아이를 보호하려고 몸으로 덮고 쓰러져 도망치는 군중의 발길에 늑골을 다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등은 문학의 토대가 되었다.
아버지는 철물에 관계된 사업을 수습하고, 어머니는 집안을 지켜야 해서 시골 면장 집에 안전하게 보낸다는 것이 온갖 고생을 하게 되었다. 2년이 지난 후 외사촌에게서 어머니가 의정부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가 아버지 친구에게 재혼한 것을 알고, 배신감에 집을 나와 아쉬움과 그리움 속에 산다.
그의 삶은 인과관계로 이어져 가장 절망하여 힘들 때면, 누군가 구원의 손길을 뻗어 구사일생 살아나기를 반복한다. 어릴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으며 두뇌가 명석하고, 인물이 출중해 카돌릭 의대를 붙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좌절할 때였다.
동국대국문과를 백일장 장원을 하여 장학생으로 들어간다. 그 빚을 갚으려고 소월백일장 경암백일장 등을 계속 열고 계신 것 같다. 그리고 여학생 부 장원을 한 여대생이 애인이 되어, 휑하게 비어 있던 가슴에 비로소 따뜻한 사랑이 찾아오고 학생회장이 되어 양주동, 서정주, 조연현, 김동리, 유치진, 유치환 같은 교수님들의 사랑을 받으며 문학 활동을 했다.
동국대 학생회장으로 4.19 의거에 중심이 되어 대학생들의 데모를 지휘했다. 그 때 학생회장이었던 의병장 친구들은 그가 군복무를 마치고 나오니 장군으로 장관으로 높이 올라갔다. 자괴감이 들어 학생들을 가르치며, 글에 천착해야 되겠다고 이천 영정여고에 들어갔으나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아 교사 생활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오산고등학교로 가서 가르치는데, 영민함과 전력투구하는 그는 무언가 아쉬웠다.
결국 세브란스 병원 의사이셨던 외할아버지를 이어 의사가 되고, 가문을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S 회장의 도움으로 공부를 다시 시작하여 안정적인 교사를 그만두고, 경희대학교 한의대에 들어가 한의사가 되었다.
이제 한의사와 문필가 생활을 하며 방송도 많이 하고, 백혈병으로 사경을 헤맬 때, 만약 이 병을 낫게 해주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마음 속 약속을 했다. 결국 달동네 무료봉사를 해서 훈장을 받았고 사회봉사 부문 대통령상도 받았다. 조연현, 한국, 노산, 후광 등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가 무료봉사하던 주민들의 추대로 서울시 시의원이 되어 문화교육위원회, 보건사회위원회의 상임위원장이 되어 많은 활동을 하다 이웅평 대위의 귀순 행사를 준비하다 과로로 쓰러져 백혈병이란 사형선고를 받았다. 대가성 기도와 직접 처방한 한약으로 다스려 완치되었다. 항생제 과다 투여로 일시적으로 백혈구 수치가 떨어진 것으로도 보였다.
그 후, 바누아투 공화국 명예 총영사도 되었다. 그의 다채로운 경력을 다 열거할 수 없지만,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구원하는 사람이 잇달아 찾아와 그의 인생은 인과응보에 의해 삶이 열리고, 또 열리고 하며 열정적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증평에 ‘소월·경암문학예술관을 짓고 운영하는 과정을 제자로서 지켜보면서, 저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하려고 저러시나 걱정되고 놀라웠는데, 그 꿈도 결국 이루셨다. 이제 건강관리 잘 하셔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삶을 살아오며 축적된 지혜를 제자들에게 전수하며 편안하게 여행하며, 여생을 재미있게 사시면 좋겠다.
나그네처럼 인연에 의해 이 세상에 왔고, 하고자하는 높은 뜻을 이루어 『태양인 이제마』, 『동의보감』’ 『문학으로 모든 질병을 치료한다』 등 한의사이며 문필가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을 남겼다. 『아무 일도 없었던 어느 봄날』은 단막극 최초로 방송대상을 받기도 했으며 60여권의 저서를 남기는 보람된 삶을 살고 계셔서 더욱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
교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사랑은 유별나시어 부족한 나도 ‘소월 문학상’을 받았고, ‘경암 문학상’을 받았다. 증평 문학관에 가면 핸드 프린팅이 되어 있다. 세월은 야속하게 흐른다. 나그네처럼 왔다가 큰 족적을 남기고 계신 교수님께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은데 모쪼록 건강하시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