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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지파(10) - 므낫세 지파 / 창 48:10-16
예수님의 족보에 얽힌 이야기 하나 소개합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되던 초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선비의 집안에서 아들이 전도를 받아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경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한 가지 곤란한 점이 생겼습니다. 엄격한 부친이 자기가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를 갖는 것을 허락할지, 걱정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더 이상 숨길 수가 없게 되어, 아버지 앞에서 예수님을 소개해야만 했습니다. 아버지가 묻습니다. ‘그래, 네가 믿는다는 그 사상은 누가 창안한 것이냐?’ ‘예, 예수라는 분입니다.’ 아버지가 다시 묻습니다. ‘예수가 어떤 인물인지, 어디 말 좀 해봐라.’ 아들이 신약성경을 꺼내 마태복음부터 설명하려고 뒤적뒤적거립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어디 내가 좀 보자’며 그 책을 가로채 읽습니다. ‘흠~ 낳고, 낳고, 낳고라. 예수라는 사람도 이렇게 뿌리가 깊은 걸 보니, 뼈대있는 가문 출신인가보다. 아주 상종하지 못할 상것은 아닌가보다. 너 좋을 대로 하려무나.’ 그래서 마음 편하게 예수를 믿고, 예수의 가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도,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뼈대있는 가문이 되었습니다. 눅 3:23-38에 있는 족보에 보면, 예수 믿는 성도는, 하나님의 자손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여러분은,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자녀,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믿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열두지파로 구성된 공동체입니다. 열두지파는 야곱의 열두 아들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레아가 낳은 여섯 아들 :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라헬이 낳은 두 아들 : 요셉, 베냐민, 레아의 종 실바가 낳은 두 아들 : 갓, 아셀, 라헬의 종 빌하가 낳은 두 아들 : 단, 납달리입니다. 그런데 열두 아들이 그대로 열두지파로 불리지는 않았습니다. 그 중 레위와 요셉이 열두지파에서는 빠지게 됩니다. 물론 레위 지파도 지파로 불리긴 합니다. 어쩌면 지파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지파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성막을 관장하고, 제사를 주관하며, 율법을 가르치는 일을 합니다. 다른 지파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지파처럼 땅을 기업으로 분배 받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어느 한 지역에 모여 살지 못하고,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다른 지파들을 섬겨야 했습니다. 다른 지파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 수 있도록, 율법을 가르치고 안내하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모세를 이어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이후가 없습니다. 여호수아를 이어 지도자가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사기에 보면, 레위 지파가 지도자 역할을 해야 했는데, 레위 지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여,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요셉은 조금 다른 이유로 열두 지파에서 빠지게 됩니다. 요셉이 장자로 인정을 받아, 두 몫을 받게 되면서였습니다. 본래의 장자였던 르우벤이 사생활 문제로 탈락했고, 둘째 셋째는 성격 문제로 탈락했습니다. 야곱은 고심 끝에, 어느 특정한 아들에게 장자권을 물려주지 못하고, 레아의 아들 중에서 유다에게 정치적인 장자권을 물려주고, 라헬의 아들 중에 요셉에게 경제적인 장자권을 물려주게 된 것입니다.
1. 므낫세 지파의 기원
창 29:31절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하나님은 같은 야곱의 아내였지만, 레아가 라헬에 비해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레아의 태를 열어주셨습니다. 그로부터 레아가 네 아들을 낳았습니다. 라헬이 종 빌하를 통해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레아의 종 실바를 통해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레아가 또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다른 세 여자는 아들을 잘 낳기만 한데, 어찌된 영문인지 라헬의 태는 굳게 닫힌 무덤문처럼 닫혀 있습니다. 물론 빌하를 통해 두 아들을 품에 안아 보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뭔가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라헬이 어떻게 했습니까? 창 30:22절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라헬이 하나님께 소원을 아뢰었습니다. 이전과 달라진 라헬의 모습입니다. 예전에 라헬은 남편에게 말도 안 되는 투정을 부렸습니다. 창 30:1절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그리고 화를 내는 남편에게, 자기 종에게 들어가서라도 자기 아들을 낳아달라고 했습니다. 30:3절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이랬던 라헬입니다. 그런 라헬이 하나님께 소원을 아뢰었고, 하나님은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깜박 잊고 있다가 라헬이 소원을 아뢰니까,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라헬을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야곱이 레아보다 라헬을 편애하는 것을 보시고, 레아의 태부터 열어주셨고, 라헬의 태는 잠시 닫아두셨던 것입니다. 그걸 알 리 없는 라헬은 자기 머리를 써봤지만, 그래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얻었지만, 참 만족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소원을 아뢰었습니다. 라헬이 소원을 아뢰자 말자, 하나님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태를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실 좋은 것을, 미리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기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렇게도 아들이 생기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태를 열어주시자, 라헬은 거짓말처럼 아들을 낳았습니다.
30:23-24절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라헬은 자신이 아이를 낳지 못한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낳고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라헬이 얼마나 감격스러웠고, 한편으론 얼마나 후련했을까요? 그러면서 자기에게 아들을 더해주기를 소원했습니다. 요셉이란 이름의 뜻이 더함입니다. 그의 소원대로 하나님은 요셉에게 동생을 더해 주십니다. 야곱이 요셉을 얼마나 예뻐했을지를, 안 봐도 뻔합니다. 37:3-4절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요셉을 보는, 형들의 마음은 불편하기만 했습니다. 거기다 요셉이 얼마나 고자질을 잘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결국 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형들이 자기들을 보러온 요셉을,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애굽의 권력자인 보디발의 집에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성실했던 요셉은 보디발의 눈에 들게 되고, 가정 총무로 발탁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행실이 나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게 되고, 그걸 뿌리쳐서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요셉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간수에게 은혜를 입어 권력자 죄수를 섬기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만난 권력자들이, 바로의 떡과 술을 담당하는 관원장들이었습니다. 하루는 그들의 꿈을 해몽해주었는데, 해몽대로 떡 굽는 관원장은 죽게 되고,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하게 되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하게 되어 떠나면서, 내 너를 잊지 않으리라 했지만, 요셉의 기대와는 달리 복직 후 요셉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로가 꿈을 꾸게 되고, 해몽할 사람이 없자, 술 맡은 관원장이 그때서야 요셉을 떠올리게 되고, 그의 소개로 바로 앞에 서게 됩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몽한 후, 나이 서른에 전격적으로 애굽의 총리로 발탁됩니다.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게 된 것은 덤으로 주어졌습니다. 창 41:50-52절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이 나되, 곧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서 낳은지라.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요셉이 아스낫과의 사이에서 낳은 첫 아들이 므낫세이고, 둘째 아들이 에브라임입니다. 요셉은 므낫세를 낳고, 하나님을 떠올렸습니다. 지금까지 자기를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떠올린 것입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겪었던 고난의 기억도, 아버지 집에서의 기억도, 이제는 잊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는 하나님 앞에서의 고백입니다. 요셉은 에브라임을 낳고,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합니다. 그가 말하는 “내가 수고한 땅”이란, 가나안에서 노예로 팔려온 애굽 땅을 가리킵니다.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종살이로 수고한 땅에서, 자신을 번성하게 하셨다는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입니다. 요셉의 장인이 온 제사장 보디베라입니다. “온”은 ‘태양의 성’이란 뜻을 가진 애굽 제2의 도시입니다. “보디베라”는 ‘태양신 라에게 바쳐진 자’라는 뜻입니다. 요셉의 아내 “아스낫”은 ‘나이드 신의 총애를 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 견고한 진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신앙에 전혀 흔들림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요셉의 신앙은 환경에 지배 당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2. 므낫세에 대한 야곱의 축복
야곱은 죽기 전 열두 아들을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보면 그 전에 요셉의 두 아들을 먼저 축복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48:1절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요셉은 야곱이 병들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때 야곱의 병은 노환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랬기에 아버지가 병들었다는 말을 듣고, 자기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야곱은 다른 어떤 손자들보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특별히 사랑했을 것입니다. 어떤 다른 이유보다, 그들이 라헬이 낳은 요셉의 아들들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자기 두 아들을 야곱에게 데려간 목적이, 단순히 할아버지가 죽기 전에, 손자들 얼굴 한 번 보여주기 위해서였을까요? 물론 그 이유도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할아버지의 축복을 받게 하고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야곱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요셉을 다시 만나, 노년의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총리를 아들로 둔 부친으로서의, 극진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마치 꿈꾸는 거 같았을 것입니다. 뭐하나 부족한 거 없는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야곱도 흐르는 세월 앞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결국 노환으로 눕게 되었습니다.
48:2절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말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아버지가 몸져누웠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이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 누워 꼼짝도 못했던 야곱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왔다는 말을 듣고는,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았습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싶습니다. 그가 죽을 힘을 내서였을지도 모릅니다. 더 나아가 족장으로서의 책임감에서 나오는 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잘 보면, 야곱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았다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 그랬다고 했습니다.
48:3-4절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은 쇠약한 몸을 이끌고, 요셉을 축복했습니다. 야곱은 먼저 자신에게 나타나 복을 주신 하나님, 자신에게 자손과 땅을 약속해주신 하나님을 말했습니다. 자손과 땅은. 구약에 나오는 축복의 핵심입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동일한 축복이었습니다. 축복을 받을 당시 야곱은 에서의 칼날을 피하여, 외삼촌에게 도망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는 도망자요, 홀몸이요, 빈털터리입니다.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게 될 거라는 것도, 땅을 차지하게 될 거라는 것도, 현실이 아닌 약속으로 주어졌습니다. 현실과는 거리가 먼 축복이었습니다. 야곱이 살 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자녀손은 꽤 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 한 명을 낳았고, 이삭이 에서와 야곱 두 명을 낳아 손이 귀했는데, 야곱은 열 두 아들에 손주들까지 하면 70명이나 됩니다. 그래도 많은 백성까지는 아닙니다. 그럼 땅은 어떤가요? 가나안에서 살 때도, 애굽에서 살 때도, 자기 땅 한 평 갖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믿었고, 그 언약을 요셉에게 믿음으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언약을 주신 분이, 다름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48:5-6절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이들 후의 네 소생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 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으리라.’
야곱이 요셉을 축복한 내용입니다. 요셉이 장자로서 두 몫을 받게 된 내용이 나옵니다. 본래는 야곱의 유산을 요셉도,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요셉의 몫으로,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받게 됩니다. 요셉의 몫을 반으로 나눠서 받는 게 아닙니다. 요셉의 형들이 자기 이름으로 한 몫씩 받는 것처럼, 므낫세 이름으로 한 몫 받고, 에브라임 이름으로 한 몫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48:8-9절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르되, 이들은 누구냐?요셉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뢰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요셉은 두 아들을 아버지에게로 이끌었습니다.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야곱은 나이로 인해 눈이 어두웠습니다. 한참이나 요셉의 아들들을 보지 못했다가, 이제야 발견하고는 그들을 축복했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을 다시 만나, 그의 두 아들을 축복하는 야곱도 감격스럽고,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아버지를 다시 만나, 두 아들을 축복받게 하는 요셉도 감격스러웠습니다. 두 사람 다 눈시울이 붉어졌을 것입니다.
48:15-16절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 뭐라고 축복했습니까? 먼저 야곱 자신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섬기고, 아버지가 섬기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출생부터 지금까지 자기를 기르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름으로 칭하여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더 나아가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길 기도했습니다. 축복의 내용보다 축복의 장면이 멋있어 보입니다. 가끔 자녀나 손자들을 대제사장의 축복기도문으로 축복하기 바랍니다. 민 6:24-26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야곱처럼 자녀와 손자에게 축복할 수 있는 분은 참 복된 성도입니다. 축복기도가 끝나고, 손자가 서툰 발음으로 “아멘” 하면, 아마 마음 속에 큰 기쁨이 생길 것이고,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3. 므낫세 지파에 대한 모세의 축복
신 33:13-17절 ‘요셉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원하건대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에 저장한 물과, 태양이 결실하게 하는 선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선물과, 옛 산의 좋은 산물과, 영원한 작은 언덕의 선물과, 땅의 선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 가시떨기나무 가운데에 계시던 이의 은혜로 말미암아,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의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 그는 첫 수송아지 같이 위엄이 있으니,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 이것으로 민족들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리니, 곧 에브라임의 자손은 만만이요, 므낫세의 자손은 천천이리로다.‘
모세도 죽기 전 열두지파를 축복했습니다. 모세는 요셉을 축복하면서, 끝에 가서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를 구분했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축복한 내용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창 49:22-26절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내용이 흡사합니다. 마치 모세가 야곱이 요셉에게 했던 축복기도문을 읽어보고, 그 기억을 더듬어서 한 거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야곱의 축복기도가, 모세에게 그대로 계승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과 모세 간의 시간차가 400년이 넘는데도 말입니다.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할 때, 그의 오른손을 차자인 에브라임에게 얹고, 왼손을 장자인 므낫세에게 얹었습니다. 48:18-19절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므낫세보다 동생인 에브라임이 더 크게 될 거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축복도 그랬습니다. 신 33:17하반절 ‘이것으로 민족들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리니, 곧 에브라임의 자손은 만만이요, 므낫세의 자손은 천천이리로다.’ 실제로 훗날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었을 때, 에브라임은 북왕국의 리더 지파가 됩니다. 하지만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는 갈등이 없었습니다. 에서와 야곱의 관계와는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사사기에 보면,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에브라임 지파는 트러블 메이커였습니다. 그런 에브라임 지파가, 므낫세 지파가 형지파라고 특별히 잘했을 거 같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갈등이 없었다는 것은, 므낫세 지파가 에브라임 지파를 시기하지 않아서였습니다. 앞에 서 있는 에브라임 지파를, 형인 므낫세 지파가 뒤에서 묵묵히 받쳐주었습니다. 그래서 므낫세 지파가 큰 지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시기는 멸망을 불러오고, 존중은 상생을 가져온다는 걸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4. 므낫세 지파의 지리적 위치
수 17:1-11절 ‘므낫세 지파를 위하여 제비 뽑은 것은 이러하니라. 므낫세는 요셉의 장자였고, 므낫세의 장자 마길은 길르앗의 아버지라. 그는 용사였기 때문에 길르앗과 바산을 받았으므로, 므낫세의 남은 자손을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는데, 그들은 곧 아비에셀의 자손과 헬렉의 자손과, 아스리엘의 자손과 세겜의 자손과, 헤벨의 자손과 스미다의 자손이니, 그들의 가족대로 요셉의 아들 므낫세의 남자 자손들이며, 헤벨의 아들 길르앗의 손자, 마길의 증손 므낫세의 현손,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뿐이요.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그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지도자들 앞에 나아와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사, 우리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라 하셨다 하매,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그들에게 그들의 아버지 형제들 중에서 기업을 주므로, 요단 동쪽 길르앗과 바산 외에, 므낫세에게 열 분깃이 돌아갔으니, 므낫세의 여자 자손들이, 그의 남자 자손들 중에서 기업을 받은 까닭이었으며, 길르앗 땅은 므낫세의 남은 자손들에게 속하였더라. 므낫세의 경계는 아셀에서부터 세겜 앞 믹므닷까지이며, 그 오른쪽으로 가서 엔답부아 주민의 경계에 이르나니, 답부아 땅은 므낫세에게 속하였으되, 므낫세 경계에 있는 답부아는 에브라임 자손에게 속하였으며, 또 그 경계가 가나 시내로 내려가서 그 시내 남쪽에 이르나니, 므낫세의 성읍 중에 이 성읍들은 에브라임에게 속하였으며, 므낫세의 경계는 그 시내 북쪽이요, 그 끝은 바다이며, 남쪽으로는 에브라임에 속하였고, 북쪽으로는 므낫세에 속하였고, 바다가 그 경계가 되었으며, 그들의 땅의 북쪽은 아셀에 이르고, 동쪽은 잇사갈에 이르렀으며, 잇사갈과 아셀에도 므낫세의 소유가 있으니, 곧 벧 스안과 그 마을들과, 이블르암과 그 마을들과, 돌의 주민과 그 마을들이요, 또 엔돌 주민과 그 마을들과, 다아낙 주민과 그 마을들과, 므깃도 주민과 그 마을들 세 언덕 지역이라.’
므낫세 지파는 가장 큰 영토를 차지했습니다. 요단강을 중앙에 두고, 므낫세 동부지파와 므낫세 서부지파로 나누어졌습니다. 서부 므낫세의 도단은 미디안 상인에게 요셉이 팔려나간 곳입니다. 동부 므낫세의 길르앗에서 향료를 산 후, 요단 강을 건너 도단을 통과하여 해변 길로 내려가려던 중에 요셉을 사게 됩니다. 요셉이 팔려나간 두 장소가, 공교롭게도 므낫세 땅에 있습니다. 요셉의 자손인 므낫세 지파 땅에서, 이 두 곳은 늘 회자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요셉이 팔려간 곳이라며, 비운의 장소로 기억했을 것입니다. 므낫세 동부지파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은 헬몬 산을 소유했고, 므낫세 서부지파는 요단 강을 점유함으로서 다른 지파로부터 부러움을 받았을 것입니다.
므낫세 지파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는 므깃도입니다. 므깃도는 최고의 곡창지대인 므깃도 평원이 있습니다. 그래선지 역사 상 가장 많은 전쟁을 치렀던 도시 중 하나입니다. 므깃도는 여호수아가 정복하지 못한 도시지만, 후에 다윗이 정복하여 솔로몬이 요새를 세웠습니다. 당시 므깃도는 마병장에 약 400마리의 말과 병거 150대를 수용할 규모를 갖춘 최고의 군사도시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므깃도는 유다의 요시아 왕이 애굽의 바로느고를 맞아 싸우다가 전사한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아마겟돈이란 지명이 나옵니다. 종말에 그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곳이 므깃도 언덕인데, ‘할 므깃도’라는 히브리어 음역이 ‘아마겟돈’으로 변한 거라고 합니다. 다음은 가이사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가이사랴는 신약에만 나오는 로마식 도시입니다. 주전 22-10년까지 세워졌기 때문에, 구약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위치상 므낫세 지파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가이사랴는 신약에서 예루살렘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그곳에 로마 총독이 살았습니다. 헤롯 궁도 가이사랴에 있었습니다. 로마식 원형극장은 지금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또한 가이사랴는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고넬료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가이사랴는 헤롯에 의해, 12년에 걸쳐 완공된 가장 아름다운 도시였지만, 추후 예루살렘 멸망과 함께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5, 므낫세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
출 28:15-21절 ‘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방법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정교하게 짜서 만들되, 길이와 너비가 한 뼘씩 두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 테에 물릴지니,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보석마다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
므낫세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므낫세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은, 셋째 줄 두 번째 위치한 백마노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아가테(agate)입니다. 백마노는 강철보다 강한 보석이라고 합니다. 이 보석은 녹이 슬지 않기에, 오래 둘수록 더 좋은 보석이라고 합니다. 차 중에 보이차도 관리만 잘하면, 오래될수록 값어치가 올라갑니다. 포도로 담근 술인 와인도 그런 것으로 압니다. 므낫세 지파가 그랬습니다. 므낫세는 에브라임에 비해, 시작은 미약했으나 갈수록 좋아지는 지파였습니다. 처음엔 주목 받지 못했으나, 후엔 사사 기드온 같은 용사가 배출되는 지파였습니다. 기드온이 처음에 얼마나 소심했습니까? 하지만 끝내는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건져내는 용사가 되었습니다. 기드온처럼 시간이 갈수록 좋아지고 나아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진국입니다. 그런 사람을 가까이 해야 복이 됩니다. 또한 백마노는 채석된 상태로는 쓸 수 없다고 합니다. 결이 강할 뿐만 아니라, 거칠기 때문입니다. 백마노는 갈고 다듬을수록 아름다운 빛을 낸다고 합니다. 물론 갈고 다듬는 시간은 오래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백마노는 인고의 보석인 셈입니다. 인고의 세월만큼, 백마노는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므낫세는 무슨 뜻입니까? ‘잊어버린다’는 뜻입니다. 본문에서 요셉이 받은 은혜를, 저는 므낫세의 은혜라고 이름 지어 보았습니다. 이 므낫세의 은혜는, 단순히 아들을 얻은 은혜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므낫세의 은혜는 잊어버리는 은혜입니다. 무얼 잊어버리느냐? 그것이 41:51절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두가지를 잊었다고 했습니다. ‘나의 모든 고난’은 종으로 팔려와서 겪은 어려움, 보디발의 아내에게 당했던 일들, 죄없이 감옥에서 죄수로 지냈던 고통, 제 살 길에만 관심이 있고 요셉을 잊어버린 술맡은 관원장에 대한 원망, 이런 것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아버지의 온 집 일’은 어릴적부터 엄마 없이, 눈칫밥 먹고 자란 성장기에 받았던 상처, 배다른 형제들이 늘 자기를 왕따시켰던 아픈 기억들, 자기를 죽이려고 하다가 종으로 팔아넘긴 형들에 대한 배신감과 미움 등 입니다. 여러분, 요셉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얼마나 한이 많이 맺혔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이 요셉에게 과거의 아픈 기억을 극복하도록 해주신, 므낫세의 은혜를 보게됩니다. 그런데 언제 요셉이 과거를 잊게 되었습니까? 가정을 갖고 가정생활 하면서, 아스낫과 결혼하고 난 후 최소한 1년이 지나서야, 요셉은 본문에서 므낫세의 은혜를 고백합니다. 다시 말해서 요셉은 가정을 이루고, 아들을 낳기 전까지는, 마음 아픈 기억들을 잊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한평생 외롭고 억울한 일만 당해왔던 요셉이, 사랑스런 아내와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살면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사랑하며 살면서, 미움과 증오가 눈 녹듯 사라지고, 이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야를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요셉에게 가정을 통해 므낫세의 은혜, 과거를 잊는 은혜를 주셨던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가정을 통해서,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시길 원하십니다. 여기 진정한 치료자가 계십니다. 사람들은 몰라주어도 예수님은 우리 마음을 아십니다. 우리 아픔을 아십니다. 우리 연약함을 다 경험하신 주님께서는, 능히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요셉의 상처를 치료하시고, 므낫세의 은혜를 주신 주님께서는, 우리가 아파하는 것을 너무 안타까와하며,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상처를 치유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서, 하나님의 값없는 용서를 받았는데, 아직도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과거지향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내 속의 아픔과 상처를 모두 치유받고, 주안에서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잊고, 미래지향적으로 살아가는, 므낫세의 은혜를 받는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 기 도 >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는 우리가 아파하는 것을 너무 안타까워하며,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상처를 치유하기를 원하십니다. 나자신도 모르는 어릴적부터 축적된 노여움과 열등감, 차별대우, 버림받음, 배신감, 분노에 의한 상처가 사람마다 다 있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문제를 덮어두지만, 속에는 상처에 고름이 생기고 악취가 납니다. 내 속에도 이런 억압된 인격이 있음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하나님께 겸손히 엎드려 내 문제를 치유해 달라고 기도하게 하옵소서. 그럴 때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손으로, 우리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시고, 진정한 평안과 자유를 우리에게 주실 줄 믿습니다. 내 속에 있는 아픔과 상처를 모두 치유받고, 주안에서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잊고, 미래지향적으로 살아가는 므낫세의 은혜를 받게 하옵소서. 요셉처럼 이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므낫세의 은혜를 받아 상처를 치유받고, 사람을 용서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