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에는 골품제라는 신분제도가 있었는데 그게 상당히 엄격하여 사회생활 전반을 제약하였다. 성골과 진골은 모두 김씨인데도 선덕여왕과 진덕여왕 이전의 신라왕들은 다 성골이고, 무열왕과 문무왕 이후의 왕들은 다 진골이다. 그러면 성골과 진골의 차이가 무엇일까?
성골과 진골의 차이에 관해서 하도 여러 가지 주장들이 많이 나와 어느 것이 옳은 지를 알 수 없다. 신라의 성골과 진골의 차이를 알려면 당연히 신라사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특히 김씨들의 역사를 알아야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즉 성골과 진골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4세기 이전 초기 신라사의 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신라사를 보면 법흥왕때 모든 법령이 확립되며 성골과 진골의 차이도 이때 법률에 의하여 확립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신라 왕족인 김씨들의 역사를 보면 크게 두 집단이 있다. 3, 4세기에 들어와 처음부터 신라 왕족인 집단과, 1세기에 들어와 처음에는 왕족이 아니었던 집단이다.
한 그룹은 AD 1세기, 전한과 후한 교체기에 들어온 흉노계를 중심으로 한 산동반도 일대의 이주민들이다. 이들을 중국 대륙에서 한반도로 이끌고 들어온 김알지를 선조로 하는데, 신라에 들어오기 전부터 김씨 성을 사용하였다. 이들은 본래 왕족이 아니었으나 7세기 중반에 들어 가야계와 손잡고 신라 왕권을 장악한 다음에 왕을 배출하고 왕족이 된다. 무열왕과 문무왕이 왕통의 시작이다. 무열왕 김춘추는 김용춘의 양자로 생각된다.
또 한 그룹은 3세기 중반과 4세기 중반에 신라에 들어온 그룹으로 들어와서 곧 왕권을 장악한다. 3세기 중반에 고구려-조위 전쟁시 조위에 가담하였다가 고구려에 퇴로가 차단되어 신라에 들어온 그룹인데, 정권을 잡고 왕을 배출하였으나 당대에 그친다. 그 왕이 신라 최초의 김씨왕인 미추이사금이다.
그 다음은 약 백년 후인 4세기 중반, 고구려-전연 전쟁시 전연군에게 가담하였다가 마찬가지로 고구려에게 퇴로가 막혀 신라로 들어온 그룹이 하나 더 있는데, 이들의 주축도 역시 흉노로 중앙아시아 훈족의 일파다. 그런데 이들은 세력이 커서 신라를 장악하고 대대로 왕을 배출하니 최초왕이 내물이사금이다. 경주에 있는 5, 6 세기 대형 고분들의 주인이 이들이다.
이들은 본래 중국식 성이 없고 자신들의 부족명, 즉 흉노계 선비족 모(마)부였으므로 '모'나 '마'를 성씨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내물왕의 본래 이름은 '마(성) 립간(이름),' 법흥왕의 본래 이름은 '모(성) 진(이름)'이었다. 그러다 신라에 들어온 지 약 2백년이 지난 6세기 중반 법흥왕때 법령을 중국식으로 정비하다보니 중국식 성씨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들은 신라에 있었던 여러 성씨들 중에 자신들과 계통이 가장 유사한 흉노계 성씨인 김씨를 성씨로 채택하였다. 그런데 자신들은 왕족이므로 왕족이 아닌 기존 김씨들과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왕을 배출한 자신들은 성골, 왕을 배출하지 못한 기존의 김씨들은 진골로 구분하였다고 본다.
이후 다시 약 백년이 지난 7세기 중반에 진골들이 힘을 키워 성골들을 몰아내고 신라의 왕권을 장악한 후 무열왕-문무왕으로 시작하는 진골 왕통 시대가 열린다. 진골 왕통을 연 문무왕 비문에는 이전 진골왕(신라왕이 아닌 부족왕)들의 족보가 적혀있는데 당연히 성골왕들만 있는 삼국사기 왕력에는 안 나온다.
결국 신라사의 줄거리를 이해해야 성골과 진골의 차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성골과 진골의 차이다.
[잡담]
4세기 중반에 중앙아시아에서 유목민족을 이끌고 신라에 들어온 흉노계 선비족 마(모)부 출신 내물왕의 이름이 ‘립간(루한)’인데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추정하는 것을 보았다. 그가 신라에 들어오기 전 중앙아시아에서 살며 로마나 그 부근과 교역할 때 사용하던 이름이 ‘루카스(Lucas)’가 아니었을까 한다는 것이다. 한과 칸은 혼용하였는데 당시 발음은 그 중간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러고보니 영화 스타워즈 만든 감독도 이름이 조지 루카스였다.
첫댓글 남이 나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섭섭해 할 필요가 없답니다.
어떤 사람의 가치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그 사람의 진가를 아는 사람만이
올바르게 평가해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싶습니다.
내게 소중한 것, 내게 소중한 일 내게 소중한 인연
이 모든 소중한 것들을 위하여
오늘도 소중한 날 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이들은 신라에 있었던 여러 성씨들 중에 자신들과
계통이 가장 유사한 흉노계 성씨인 김씨를 성씨로 채택하였다.
그런데 자신들은 왕족이므로 왕족이 아닌 기존 김씨들과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왕을 배출한 자신들은 성골, 왕을 배출하지 못한 기존의 김씨들은 진골로 구분하였다고 본다.
이들은 본래 중국식 성이 없고 자신들의 부족명,
즉 흉노계 선비족 모(마)부였으므로 '모'나 '마'를 성씨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내물왕의 본래 이름은 '마(성) 립간(이름),' 법흥왕의 본래 이름은 '모(성) 진(이름)'이었다.
그러다 신라에 들어온 지 약 2백년이 지난
6세기 중반 법흥왕때 법령을 중국식으로 정비하다보니 중국식 성씨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 다음은 약 백년 후인 4세기 중반, 고구려-전연 전쟁시
전연군에게 가담하였다가 마찬가지로 고구려에게
퇴로가 막혀 신라로 들어온 그룹이 하나 더 있는데,
이들의 주축도 역시 흉노로 중앙아시아 훈족의 일파다.
그런데 이들은 세력이 커서 신라를 장악하고
대대로 왕을 배출하니 최초왕이 내물이사금이다. 경주에 있는 5, 6 세기 대형 고분들의 주인이 이들이다.
우리 영분공 수은공 현석공 후손들은 중앙아시아 우즈베키탄이나
카자스탄 나라 후손 흉로족이 맞습니다
신라성골 선조후손이 맞습니다
내물왕 지증왕 원성왕 법흥왕 그외 많은 성골왕 선조님입니다
가야와함께 정권잡은 집단이 진골 김알지 후손입니다
태종무열왕 문무왕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