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행 둘째날 2
도솔암 주차장은 말이 주차장이지
차량 석대를 주차하면 자리가 없고
다들 갖길에 붙여 주차를 해놓았다.
그너머는 낭떠러지 황천길이라 아슬아슬하다.
도솔암에서 30분을 걸어 주자장으로 와서
미황사로 출발했다.
군대 시절에 달마산으로 춘계진지공사를 왔었다. 우리 중대장이 건대 불교학생회장 출신이었는데 스님께 합장하고 몇마디하자
스님이 중대원들에게 먹을거리를 한보따리 안겨주셨었다.
단청이 없는 미황사 대웅보전, 예스러움에 푸른 이끼까지 세월의 더께를 더한 부도전, 산비탈을 따라 흘러내린듯한 너럭바위, 적어도 봉우리 세개쯤은 가득 채운 동백꽃이 나를 해남으로 이끌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기대는 항상 어긋나기 마련인 것이다. 3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흙길은 아스팔트길이 되었고
운치 가득했던 모습은 겉단장을 너무 많이 하여 가부끼 배우마냥 부자연스러웠다.
더우기 대웅보전도 해체복원하고 있었고
오늘 뭔 행사를 한다고 차량통제에다 엠프까지 설치하여 쿵작거리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환상을 깨고 잠시 동백꽃과 벗하다가
보기드문 친구가 된 칠성무당벌레 촬영을 하다 발길을 옮겼다.
그 다음 행선지는 녹우당(綠雨堂)이다.
효종의 스승이었던 고산 윤선도에게 효종이 하사한 집인데, 본래 수원에 있던 것을 해남으로 옮겨 지은 것이다.
아흔 아홉칸집이라는 소문이 있으나 그정도는 아니고 거대한 양반집임에는 틀림없다.
현재 녹우당과 윤선도박물관은 수리중이라고 하여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밖에서만 보는 것만 해도 가치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녹우당이란 이름이 500년된 은행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 때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해서 붙여진 것이라는 설과
녹우당 뒷편 비자나무숲에 바람이 불 때 나는 소리가 비오는 것 같아서 붙여진 것이라는 설, 두 가지가 기원인데 어쨋든 은행나무와 비자나무 숲 모두 압권이다.
특히 녹우당에서 비자림으로 가는 길은 한 삼백년 쯤 전 어느 봄날로 세월을 돌려 버린다.
군대시절 해남대대에서는 전역하는 병사들에게 녹우당과 우수영을 구경시켜 주었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가보지 못했었고 이제서야 겨우 한 번 살펴보게 되었다.
녹우당에서 해남읍으로 옮겨 늦은 점심을 먹었다.
소망식당에서 뚝배기 주물럭을 주문해서 먹었다. 인당 만사천원, 불맛나는 돼지 주물럭인데 만족스러웠다.
해남에서 불만족스런 밥을 먹는 건 아마 어렵지 않을까?
식사후, 시장에 들렀지만 장날이 아니여서 볼만한게 없었다.
고구마빵 파는 곳이 있어서 커피에 빵 하나씩 먹었는데, 이게 별미네.
따로 한 상자를 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남을 떠나 강진 백련사를 향해 떠났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 오솔길이 걸을만하다고 하여 갔는데 시간이 어느 덧 오후 다섯 시이다.
백련사 동백림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 숲을 지나서 다산초당까지는 편도로 15분 정도 걸린다.
날이 어둑어둑해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초당이면 초가집인데 지금은 와당 즉, 기와집이 되었다. 돌아오면서 보니 백련사 스님들이 가꾸는 차밭에 눈길이 간다.
절에서 보이는 강진만 바다도 멋스럽다.
자 이제는 아들을 보러 진주로 갈 시간이 되었다.
백련사에서 여섯시에 출발.
남해고속도로는 길이 구불구불해서 초보자가 가기에는 몹시 불편했다.
여덟시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거의 삼십분이 더 걸렸다.
아들과 한 달만에 만나 늦은 저녁을 먹었다.
얘길 들어보니 나름대로 학과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기숙사까지 아들이 부탁한 생활용품을 가져다두고 후일을 약속하고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오늘 운전은 다섯 시간 반, 걸음은 삼만 보를 걸었다.
빡세고도 알찬 투어였다.
첫댓글 올 해 소풍은 이곳으로 ~ 어떨까요? 가보고 싶네요. 고구마 빵도~ ㅎ ㅎ ㅎ
동백꽃이 핀 길~ 세월의 흔적 나이를 먹은 듯 나무
다 좋은데 일단 너무 멀어서
소풍으로 추천드리기가 적절치 않네요.
개별 여행은 강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