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이민 1기 49. 셋째 날
병원에서 사흘째 되는 날이다.
회진 들어온 의사가 여전히 싱글거리며 묻는다. 밤부터 지금까지 설사를 몇 번 했느냐고?
나는 그 때까지 영어로 설사라는 단어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아주 쉽게 알아듣고 대답한다. 그의 말 속에 waterly 또는 solid 라는 단어가 들리니까 waterly는 설사일 거라고 미루어 대답하면 그게 다 통한다.
설사 때문에 밤 새 서너 번은 화장실을 들락거렸는데 시치미를 떼고 No more waterly라고 대답해 버린다.
"Ah!"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내가 곧장 밀어부친다. " So I`d like to go home"
"I will chek" 그의 대답은 너무 간단해서 Yes 인지 NO 인지 알 수 없다.
얼마 후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일주일 후에 내가 다시 병원에 들러 검사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퇴원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흔쾌히 약속하고 몇 가지 약을 타 가지고 집으로 왔다. 설사 몇 번 더 하는 것 쯤이야 큰 일 날 것도 없다.
내 집! 늘 살던 곳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앞 집 Anna Latican 교수가 나를 보더니 손을 흔들며 이제 괜찮으냐고 묻는다. 내가 아픈 걸 어떻게 알았을까?
비비가 흰죽을 아주 잘 쑤어가지고 내 앞에 내민다. 앞 집 교수가 그렇게 하라고 일러 주더란다. 참 별 일도 다 있다.
저녁 때 집 앞에 서 있던 남편이 누구와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린다.
"여보, 앞집 교수 Anna의 남편이 당신을 진료하던 의사였어."
아, 그제사 감이 잡힌다. 그는 외국인인 우리를 너무 잘 아는데 우리는 그저 교수 남편인 것만 알 뿐, 집에서 본 그와 병원에서 본 그를 전혀 몰랐던 거다. 그래서 그렇게 자기를 아느냐고 묻고 어디 사느냐고 물었나보다. 끝까지 몰라 본 우리가 얼마나 아둔한지..
그 일 이후 우리는 그 집과 각별히 친해진 계기다 되었다.
훗날 그들은 우리를 집에 초대해 주었고 우리는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그 집에 줄 선물을 특별히 염두에 두게 되었다.
왼쪽 조금 보이는 집은 우리 집이고 맞은 편 집이 Anna교수의 집
첫댓글 ..............................
인연이란 그리 먼곳에 있지 안으니라!
김선석
소식이나
간단한 전문 의학용어 하나로
사람이 완전히 바보가 되는 세상이구 먼여.
입장은 마찬가지 인 한국에 온 외국인들 입니다.
간간한 두통,치통, 복통, 설사, 변비.………
뭐 이딴거 불통으로 외국인들이 고통 받는 한국이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