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뫼로의 초대 / 김석수
별뫼는 성산(星山)의 우리말이다. 전라남도교육청 교육연수원 뒷산 이름이다. 나는 추석 전에 한경호 원장의 초대를 받았다. 연수원에서 초대 국제교육부장으로 3년 6개월, 원장으로 2년을 근무했다. 40여 년 교직 생활에서 가장 오래 근무해서 그곳에 가면 고향에 가는 것처럼 포근하다. 오전 11시까지 나와 달라고 했지만, 별뫼길을 걷고 싶어 조금 일찍 서둘러 집에서 나왔다. 고서에서 광주댐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서니 도로 공사로 길이 어수선하다. 댐 아래까지 4차선으로 확장한다고 한다. 올해 비가 많이 와서 댐에 물이 넘실거린다. 예전에 없던 데크 길에 낚시꾼도 눈에 띈다.
식영정과 가사문학관을 지나 소쇄원 입구를 거쳐 예지관으로 갔다. 관사 앞에 차를 주차하고 산책하면서 옛날을 회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지관은 2018년 여수 국제교육원으로 국제교육부가 이전되기 전에는 외국어교육연수관이었다. 그곳에서 외국어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밤낮으로 운영했다. 영어교사 합숙 연수인 제이엘피(JLP)와 전라남도 학생 영어 캠프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운영하려고 밤늦게까지 근무했다. 그 이전에는 무등야영장 자리다. 원래 저수지가 있던 곳이라 여름이면 습기가 많았다. 그 뒤로 연수생이 산책할 수 있도록 산자락을 따라 길을 만들었다. 나는 그 길을 산책하고 싶었다.
주차장에 차가 많아서 빈 곳을 찾지 못하고 돌아 나와서 체육관 쪽으로 갔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름드리 소나무가 반겨준다. 주차하고 소쇄원 쪽 산등성이로 올라갔다. 추석 벌초가 깔끔하게 된 묘 옆을 지나가니 하루살이와 거미가 달려와 인사한다. 나는 아침과 저녁 그리고 점심시간이면 이 길을 늘 걸으면서 성산의 기(氣)를 받았다. 산 정상에서 산줄기가 이곳까지 뻗어있다. 삽상한 바람이 불어오니 기분이 상쾌하다. 야자수 멍석을 군데군데 깔아서 걷기가 편하다. 혼자 사색하기 좋은 길이다. 모임 시간이 다가와 중간에 내려왔다. 차로 사도각 앞으로 가니 차계옥 총무부장과 직원들이 마중 나와 있다. 한 원장도 밖에까지 나와서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원장실로 들어가니 원형 탁자가 있던 곳에 사각형 책상이 있다. 정리정돈이 잘 된 느낌이다. 조금 있으니 내 후임자인 14대 나영숙 원장이 와서 정답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 뒤로 10대 한계수, 15대 윤기정, 9대 송병천 원장이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내 전임자인 12대 김종구 원장이 왔다. 서로 오랜만이라 모두 반가워했다. 차를 마시고 서로 안부 인사한 뒤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총무부장의 사회로 간담회를 시작했다. 한경호 원장은 조병화의 <의자>를 인용하면서 역대 원장의 노고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어 송병천 원장이 “자기가 근무한 학교나 기관에 한번쯤 가보고 싶지만 퇴직하면 쉽지 않다. 이렇게 초대해 주어서 고맙다. 우리 교육연수원이 지향하는 전남 교직원의 미래 교육 역량이 더욱 강화되기를 바란다.”라고 대표로 인사했다. 이어서 연수원이 걸어온 길을 역대 원장의 사진과 함께 영상으로 봤다. 내가 정년퇴직하면서 낸 수필집 ≪은어잡이 추억≫의 표지가 화면애 나와서 깜짝 놀랐다. 시청이 끝나고 기념 촬영을 했다.
임채석 총무과장이 연수원 리모델링과 주차장 및 식당 증축 등 연수환경 개선 사업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연수원의 숙원 사업인 주차 문제를 해결하려고 충의각 아래에 주차장과 식당을 증축한다고 했다. 그의 설명을 듣고 연수원 발전 방향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연수원보다 충의교육원이 먼저 생겼다. 5·18 이후 신군부가 정권을 잡으면서 학생 정신교육하려고 충의각을 지었다. 그 뒤로 교사 교육하려고 사도각을 짓고 교육연수원을 세웠다. 나중에 충의교육원과 무등야영장을 없애고 교육연수원이 그 건물을 사용하도록 했다.
점심을 먹고 사도각, 충의각, 연수관, 예지관, 보람의 집 등 원내 시설을 돌아보며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았다. 가장 크게 변화한 곳이 보람의 집 도서관과 사도각 2층이다. 보람의 집을 고쳐서 1층은 도서관, 2층은 북카페와 사무실로 만들었다. 천정을 높게 하고 휴게 공간을 넓게 해서 좋았다. 예전에 그곳에 들어가면 비좁고 답답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도각 2층 사무실이 연수 기획부와 운영부로 나누어져 있던 것을 벽을 허물고 하나로 만들었다. 두 부서가 한사무실에 있으니 서로 소통이 잘 될 것 같다.
직원 사무실을 둘러보고 100강당 쪽으로 갔다. ‘신규 교장 학교경영 역량 강화 직무연수’가 진행되고 있다. 모두가 열심히 강의를 듣고 있다. 학교경영과 회계, 노사관계, 학교재산과 물품 관리, 학교시설 관리에 중점을 두고 교육과정을 편성했다. 미래학교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길러 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뒷문에서 내다보니 낯이 익은 얼굴도 있다. 까마득한 후배라고 여겼던 사람이 교장이 된 것을 보고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마지막에 원장실에서 ‘교직원 연수 콘텐츠 구축과 공유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연수기획부장과 운영부장의 방을 둘러본 다음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교육 제일 문(연수원 정문)’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저런 상념에 잠겼다. 세월이 갈수록 세상은 어지럽고 학교 현장이 어려워지고 있다. 전남의 교직원 누구나 힘들고 지칠 때마다 별뫼로 초대되어 기운(氣運)을 얻고 스트레스로 시달리는 영혼을 치유했으면 한다. 모든 교직원에게 연수원이 학교 현장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해결 방안을 찾는 고향이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성찰과 성장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첫댓글 아~ 이제 조각이 맞춰지네요. 전)전라남도교육청 교육연수원장, 충의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별뫼, 이름이 참 예쁘네요. 좋은 곳에서의 추억이 있다니 부러울 따름입니다.
고압습니다.
원장님, 중간 모임에 오시면 영어 잘하는 법 좀 배우고 싶습니다. 글도 잘 읽었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즐거운 걸음을 하셨네요.
고맙습니다.
연수원 동선이 쫙 그려집니다. 저도 연수 중에 새로 고친 도서관이 예뻐서 차 마시면서 책을 읽었어요. 글 속에 반듯함과 묵직함이 보입니다.
고맙습니다.
한경호 원장님이 전남교육통 책임자였던 시절에 통화한 적이 있습니다.
전임 원장을 예우하는 좋은 자리였네요.
방학이면 연수원에서 10일 연수를 받으면서 점심을 급하게 먹고 연수원 뒷길을 산책했었습니다.
겨울에 눈이 내리거나, 쌓인 연수원의 설경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이곳에 근무하는 연구사들은 특별한 덕을 쌓았을 거라며
부러워했었지요.
별뫼의 추억이 저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