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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재림을 준비하는 신자의 생활
마태복음 25:31〜46 유장춘 목사(법학박사 ‧ 철학박사)
〇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셔서 믿는자의 죄를 사하여 구원을 베풀어 주시고, 죄사함 받은 성도들에게 각자 몫의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내 몫의 십자가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자가 감사하므로 기쁘게 감당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문제는 누구에게 자기 몫의 십자가, 헌신을 하기를 원하시느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1차 대상을 명확하게 알고 실천하시기를 축복합니다.
- 설교의 방향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데미안을 소개하겠습니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는 제1차 세계대전의 야만성과 동양 사상과 정신분석학자 칼 융의 영향을 받아 ‘나’를 찾는 것을 삶의 목표로 내면의 길을 지향하며 현실과 대결하는 영혼의 모습을 그리는 작품을 발표하여 1946년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하였습니다. 에밀 싱클레어가 선과악이 가진의 가정에서 공존한다는 것을 알았고, 자신이 누구와 가깝게 지내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에게 주신 각자 몫의 십자가! 다른 표현으로 헌신을 누구를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실천하시기를 축복합니다.
〇 본문말씀
- 마태복음 24장은 유명한 종말장이고, 25장에서 어떻게 재림을 준비할 것인가를 말씀하시면서 마지막 정리하는 비유로 양과 염소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들을 데리고 오셔서 영광의 보좌에 앉아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과 같이 각 사람을 구분하실 것입니다. 양은 희고, 염소는 검습니다. 주님을 중심으로 양은 영광의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실 것입니다.
중간지대는 존재하지 않고 예외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심판주, 재림주로 오셔서 마지막 날에 양과 염소를 영원히 변경될 수 없는 다른 곳으로 가도록 결정하실 것입니다. 양에게는 구원의 날이지만 염소에게는 심판과 저주의 날입니다.
- 양과 염소를 구별하는 심판의 기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양으로 구별하여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를 상속하겠다고 한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마 25: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36)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주었다.』이 말을 들은 의인들이 자신들은 주님에게 그런 대접을 한 사실이 없다고 하자『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주님 중심으로 왼편 염소로 구분된 자들에게 “이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의 졸개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이유는 지극히 적은 자들에게 하지 아니한 것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 일반적으로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우리 사회의 약한 이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고, 이러한 해석이 멋이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 논리를 확장하면 영생과 영벌이 인간의 선행으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라는 표현에서 “나의 형제”는 예수님의 제자를 가리키는 것이고, 전체적으로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연약한 형제를 섬기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마 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갈 6: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〇 예수님은 재림하십니다. 재림의 때가 언제인가를 따지지 마시고, 우리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를 열심히 남기면서, 언제 주님이 오시더라도 “아멘, 주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환영하도록 준비하면서 살아갑시다. 신랑을 기다리는 열처녀의 비유를 항상 염두해 두고, 신랑을 기다리면서도 기름을 준비하지 않는 삶을 살지 말고, 항상 기름을 준비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재림을 믿는 여러분! 문제가 있고, 죄가 있더라도 교회지도자를 사랑하시는 것은 성삼위 하나님의 뜻입니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는 일을 행한다고 하더라도 교회를 사랑해서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도 명심하시고, 예수님의 형제를 가꾸시고 돌보시기를 축복합니다.
[원고] ===============================================
재림을 준비하는 신자의 생활
마태복음 25:31〜46 유장춘 목사 (법학박사 ‧철학박사)
〇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하셔서 믿는자에게 죄를 사하여 구원을 베풀어 주시고, 죄사함 받은 성도들에게 각자 몫의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내 몫의 십자가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자가 감사하므로 기쁘게 감당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문제는 누구에게 자기 몫의 십자가, 헌신을 해야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1차 대상을 명확하게 알고 실천하시기를 축복합니다.
- 설교의 방향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데미안을 소개하겠습니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는 제1차 세계대전의 야만성과 동양 사상과 정신분석학자 칼 융의 영향을 받아 ‘나’를 찾는 것을 삶의 목표로 내면의 길을 지향하며 현실과 대결하는 영혼의 모습을 그리는 작품을 발표하여 1946년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하였습니다.
- 에밀 싱클레어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비교적 여유 있는 안정되고 평온한 환경에서 태어났습니다. 평온한 환경은 어머니와 아버지, 사랑과 엄격, 모범과 교훈, 따사로운 광채, 명확함과 깨끗함, 온화하고도 다정스러운 대화, 말끔하게 닦은 손, 깨끗한 옷, 그리고 바른 예절이 깃들어 있었고, 성서의 말씀과 예지가 있었다. 그러나 집안에 다른 세계가 있었다. 하녀들과 직공들, 유령의 이야기와 추문있는 곳은 냄새도 다르고, 말투도 다르고, 약속도 요구도 달랐다. 기이한 일은 이 두 세계로 인접해 있고, 공존한다는 것이다.
- 싱클레어는 유복한 가정의 자제들이 다닐 수 있는 라틴어학교에 다니면서 프란츠 크로머라는 일진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우두머리 격인 프란츠 크로머에게 자신이 과수원에서 사과를 훔쳤다고 허풍을 떨었고 크로머는 그것을 악용해 사실을 알리겠다며 싱클레어를 협박해 돈을 뜯어 내기 시작한다. 싱클레어는 처음에는 부모님의 돈을 훔쳐서 돈을 주지만 마침내 누나를 데리고 오라는 지경까지 이르자, 밝은 세계를 떠나 어둠에 대한 동경과 타락에 후회하고 괴로워 할 때 데미안을 만나게 된다.
- 데미안은 싱클레어보다 나이가 몇 살 더 많은 상급생이지만 또래와는 달리 어른스러웠다.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크로머에게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 뒤, "그놈의 크로머도 이제는 너를 괴롭히지 않지?"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그 애와 싸움을 하고 실컷 때려주기라도 한 거야?" "아냐, 그저 너하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 녀석하고 이야기했을 뿐이야. 너를 내버려 두는 게 녀석에게도 이익이 될 거라는 점을 분명히 말해주었을 뿐이야."
= 싱클레어는 다른 학교에 가기 위해 난생 처음 집을 떠나게 되었다. 성장해서 소년다운 귀염성은 사라지고, 타락해서 술집 단골 손님이 되었다. 다시 한 번 완전히 어두운 세계, 악마에 속한 세상에서 근사한 녀석이라고 인정받았다. 나는 나 자신을 엉망으로 만들어서 퇴학당할 날이 멀지 않았지만 ”에라, 될 대로 돼라”고 자포자기 하고 있었다.
- 봄이 시작될 무렵 가시 울타리가 푸릇푸릇해지기 시작할 때 우연히 한 소녀에 관심이 생겼고, 그 여자에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붙였다. 베아트리체와 단 한 마디의 말도 나눈 적이 없지만 그 여자는 그 당시 나에게 대단히 깊은 영향을 끼쳤다. 날이 갈수록 나는 술집 순례와 밤의 싸움 행각에서 멀어져 갔다. 다시 독서를 즐기고 이상을 갖고 정상으로 돌아왔다.
- 베아트리체의 숭배는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어제까지도 조숙한 냉소꾼이었던 내가 지금은 성자가 되려는 목적을 품은 사원의 하인이었다. 나는 몸에 젖어버린 그놈의 못된 생활을 청산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모든 것 속에 청순함과 고귀함과 품위를 깃들이게 하려고 노력했으며, 먹을 때나 마실 때나 이야기할 때나 옷을 입을 때에도 이런 점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새로운 신념에 대한 표현을 찾으려고 시도한 그림을 그리기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 여자를 내 뜻대로 그리고 보니 그것은 데미안의 얼굴이었다. 그러다가 점차 베아트리체나 데미안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하여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 싱클레어는 지구 위로 날아오르려는 새 그림을 그려 데미안에게 보낸 뒤 데미안의 답장인 듯한 쪽지를 받게 된다. 기존의 세계를 파괴하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해 날아오르는 새에 대한 이야기와 아브락사스라는 신의 이름이 쪽지에 적혀 있었다. 아브락사스를 찾아 헤매던 싱클레어는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에게서 빛과 어두움 선과 악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품은 아브락사스에 대해 듣었다.
- 어느 날 싱클레어는 길에서 데미안을 다시 만나게 되고 그의 어머니 에바 부을 만나서 나이를 초월해서 원숙한 사랑을 느낀다. 전쟁이 일어나 싱클레어와 데미안 모두 전쟁에 참전하여 싱클레어는 부상을 당해 야전 병원으로 옮겨지는데 옆자리에 데미안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언젠가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다면 너 자신의 내면의 세계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한다. 다음 날 눈을 떠보니 옆자리에 데미안은 없고 싱클레어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다가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데미안과 완전히 닮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유명한 인간의 양면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선과 악의 요소가 누구에게나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과 가깝게 지내느냐, 어떤 사상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사람은 달라진다는 것을 명작으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에게 주신 각자 몫의 십자가! 다른 표현으로 헌신을 누구를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실천하시기를 축복합니다.
〇 본문말씀
- 마태복음 24장은 유명한 종말장이고, 25장에서 어떻게 재림을 준비할 것인가를 말씀하시면서 마지막 정리하는 비유로 양과 염소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들을 데리고 오셔서 영광의 보좌에 앉아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과 같이 각 사람을 구분하실 것입니다. 양은 희고, 염소는 검습니다. 주님을 중심으로 양은 영광의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실 것입니다.
중간지대는 존재하지 않고 예외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심판주로 재림주로 오셔서 마지막 날에 양과 염소를 영원히 다른 곳으로 가도록 결정하실 것입니다. 양에게는 구원의 날이지만 염소에게는 심판과 저주의 날입니다.
- 양과 염소를 구별하는 심판의 기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양으로 구별하여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를 상속하겠다고 한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마 25: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36)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주었다.』이 말을 들은 의인 들이 자신들은 주님에게 그러 대접을 한 사실이 없다고 하자『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주님 중심으로 왼편 염소로 구분된 자들에게 “이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의 졸개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이유는『마 25:42)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으며, 또 병들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황한 저들이 주님에게 그렇게 대접한 사실이 없다고 항변하자 『마 25: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일반적으로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우리 사회의 약한 이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고, 이러한 해석이 멋이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 논리를 확장하면 영생과 영벌이 인간의 선행이 됩니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라는 표현에서 “나의 형제”는 예수님의 제자를 가리키는 것이고, 전체적으로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연약한 형제를 섬기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마 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갈 6: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 배경을 말씀드리면 마태복음이 A.D.50-70경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네로 황제의 기독교 핍박이 있을 때입니다. 기독교에 대해서 핍박이 있어서 지극히 적은자가 되어 있는 그 때 예수님의 형제 즉 제자와 교회공동체를 1차적으로 도우라는 말씀입니다. 언론에 보도되는 일부 교회의 사건으로 모든 교회와 목회자를 폄하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현재 한국교회와 목회자는 어느 때 보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도 인정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문제가 있고, 죄가 있더라도 교회지도자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는 일을 행한다고 하더라도 교회를 사랑해서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〇 종말에 외쳐야 할 구호
- 고대 로마에서 나라를 살린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을 수많은 인파들이 열광적으로 환영할 때, 개선장군의 마차에 태운 한 사람은 개선장군의 귀에다 대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고 계속 외쳤다고 합니다.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 존재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메멘토 모리와 짝을 이루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가치있게 살라), ‘아모르 파티’ (Amor fati) (사랑 + 운명) 라는 명언 문장이 있습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는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아모르 파티를 묵상하고 외치면서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로 열심히 남기면서 어느 순간 주님이 오시더라도 영접할 수 있기 위해서 교회공동체를 섬기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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