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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운 큰 스님”-(조계사 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스님)불기 2570년 9월 교육법회 봉행!
삼보에 귀의 하옵고_()_
1. 법 회 개 요 |
⊛주 제: “자비로운 큰 스님”
⊛일 시: 2026년 9월 11일(금)저녁7시00분
⊛장 소: 조계사 극락전
⊛법 사: 원지 스님(조계사 종무행정지원단장)
⊛사 회: 기획부장 월도 임병웅
⊛참석자: 대경 박수정 회장 외 62명 참석
⊛집 전: 신행부 수석차장 보공 김지영
2. 법 회 식순 |
▲개회사 ▲삼귀의 ▲우리말 반야심경 ▲인사말(대경 박수정 회장)▲음성공양(부처님의 미소 / 만남)▲청법가 ▲입정 ▲법문(종무행정지
원단장 원지 스님) ▲발원문(부회장 삼보화 유경옥) ▲ 공지사항 ▲사홍서원 ▲산회가 ▲폐회사 ▲ 기념사진 촬영
◈조계사 일주문은 형형색색의 단청과 은은한 불빛이 어우러져 한층 더 장엄하고 고요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53선지수 합창단 음성공양
◑곡명 : 만남/ 지휘 :박경태교수 / 반주:삼조 정진경 /포교부장:고정숙 여실심
3. 법 회 스케치 |
“함께 선업을 쌓으며 새로운 20년을 열고,
알아차림을 통해 탐진치와 분별에서 벗어나자”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을 만납니다. 기쁜 인연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만남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총동문회 법우들을 만나는 날이면 반가움과 기쁨이 마음 가득 피어나고, 어느새 피안의 언덕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듯합니다.
그런 설렘과 반가움 속에 지난 9월 11일 금요일,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9월 법회를 봉행했습니다.
이날 법회에는 대경 박수정 회장을 비롯해 대덕심 김영숙 고문, 보현행 안영주 자문위원장과 많은 동문 불자들이 참석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함께 나누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경 박수정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무더운 여름을 지나 선선한 가을을 맞아 함께해 주신 선·후배 동문들께 감사드린다”며 “불교의 가르침처
럼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법회와 봉사·포교의 자리에서 함께 선업을 쌓아가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특히 올해는 총동문회 창립 2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인 만큼 지난 20년의 소중한 인연을 돌아보고, 모두의 마음과 동참으로 새로운
20년을 힘차게 열어가자”고 당부했습니다.
이날 법사 원지스님께서는 ‘자비로운 큰스님’을 주제로 법문을 들려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영화 「달마야 놀자」에 등장하는 큰스님의 모습을 통해 법문을 시작하셨습니다. 절에 들어온 조폭 두목에게 큰스님은 꾸짖거나
시비를 가리기보다 먼저 “밥은 먹었냐?”고 묻습니다. 얼핏 보면 동문서답처럼 들리지만, 그 한마디에는 상대를 미워하거나 분별하지 않고 있
는 그대로 바라보는 큰스님의 자비가 담겨 있음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이어 우리가 괴로워하는 근본 원인은 불교에서 말하는 탐·진·치(貪瞋癡)에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좋은 것은 가까이 두고 싶어 하는 마음이
탐(貪)이며, 싫은 것은 멀리하고 밀어내려는 마음이 진(瞋)입니다. 그리고 그 탐과 진의 밑바탕에는 ‘나’라는 존재가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생
각하는 어리석음, 즉 치(癡)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큰스님의 참된 자비는 단순히 우리의 욕심을 채워주거나 성냄을 달래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욕심과 성냄을 만들어 내는 근본적인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는 데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숭산스님의 가르침을 빌려 “개는 멍멍 짖고, 닭은 꼬끼오 운다. 배고픈 사람이 오면
밥을 주고, 목마른 사람이 오면 물을 준다”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이는 옳고 그름을 지나치게 따지고 분별하기보다는 눈앞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행하는 것이 불교의 지
혜이자 자비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조주스님의 “차 한 잔 드시게”라는 화두 역시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전에 왔던 사람이든 처음 온 사람이든 분별하지 않고 똑같이 차 한 잔을
권하는 모습에서 시비와 분별을 넘어서는 선(禪)의 정신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영화 「달마야 놀자」의 유명한 장면인 ‘밑 빠진 독에 물 채우기’ 이야기를 통해서는 생각과 논리, 고정관념에만 사로잡히지 않는 선의 지혜
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사회생활에서는 판단과 분별이 필요하지만, 마음공부에서는 지나친 분별과 고정관념이 오히려 집착을 키우고 우리 자신을 괴롭게 만들 수
있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특히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수심결』에 나오는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하지 말고, 다만 알아차림이 늦을까 두려워하라.”
는 말씀은 이날 법문의 핵심으로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수행한다고 해서 욕심이나 성냄, 잡념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마음이 일어났을 때 그 마음에 끌려가기 전
에 즉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욕심이 일어났구나.’
‘내 마음에 성냄이 일어났구나.’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그 생각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알아차림이 빠르면 번뇌가 더 크게 자라지 않지만, 생
각을 붙잡고 계속 키우면 눈덩이처럼 집착과 업이 커지게 됩니다. 결국 수행의 핵심은 생각을 억지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일어나는
그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욕망과 분노에 끌려가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마음을 바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조금 더 고요하고 평화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
니다. 원지스님께서는 이날 법문을 통해 “큰스님의 참된 자비란 우리의 욕심과 성냄을 무조건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 밑바탕에 자리한 어
리석음을 깨우쳐 주는 것이며, 그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 바로 ‘알아차림’이다.” 라는 소중한 가르침을 전해 주셨습니다.
가을의 문턱에서 함께한 9월 법회는 내 마음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일상 속에서 ‘알아차림’의 수행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되새겨 보는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법우들과 함께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누며 한 걸음 한 걸음 피안의 언덕을 향해 나아가는 귀한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글 정리 : 법연 이동엽 자문위원
4. 공 지 사 항 |
❏저녁예불 및 기도 변경안내
⊛일 시 : 2026년 09월 18일(금)오후 5시~6시30분
⊛사 유 : 국제불교 영화제 행사 진행(오후7시~9시)국제오르닝공연 및 영화상영(절해고도)
❏동문회 하반기 성지순례 동참 안내
⊛일 정 : 2026년 10월 23일(금) ~25일(일)
⊛장 소 : 제주도
⊛문 의 : 총무부장 세정화 설민경 010-3789-8621
❏2026년 불교대학총동문회 송년법회 안내
⊛일 시 : 2026년 12월 07일
⊛장 소 : 파노라마뷔페
⊛문 의 : 총무부장 세정화 설민경 010-3789-8621
❏불교대학 3000배 용맹정진 동참
⊛일 시 : 2026년 10월 31일(토)
⊛장 소 : 조계사 대웅전
⊛문 의 : 총무부장 세정화 설민경 010-3789-8621
❏ 10월 운영위원회의
⊛일 시: 2026년 10월 13일(목)요일 저녁 7시
⊛장 소 : 추후 공지 예정
⊛문 의 :총무부장 세정화 설민경 010-3789-8621
❏ 2026년 10월 교육법회
⊛일 시 : 2026년 10월 09일 (금)저녁 7시
⊛장 소 : 조계사 극락전
⊛법 사 : 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스님
⊛주 제 : 관세음보살(오세암2003)
❏2026년 동문회 임원모집
⊛자격: 2026년 졸업예정자 및 졸업 동문(신청서는 동문회 사무실에 비치)
⊛문의:총무부장 세정화 설민경 010-3789-8621
❏ 10월 만발봉사
⊛일 시 : 2026년 10월 03일 10시~14시
⊛장 소 : 만발공양간
⊛문 의 :봉사부장 반야월 강승희, 010-2292-3533
❏총동문회 합창단 모집 및 연습
⊛53선지수합창단 상시 모집합니다. (즐겁게,아름답게,행복하게)
⊛조계사불교대학 동문이면 누구나 가입하여 음성공양 할 수 있습니다.
➪일 시:매 월 :1, 3, 4주(토)13시00분~2시 30분까지
두 번째주(금)오후5시~6시30분
➪장소:안심당 지하 합창단실
⊛문의:포교 부장 고정숙 여실심, 010-9983-5778
❏동문회비 및 정기법회 보시 계좌 안내
➪동문회비:연회비-5만원,평생 회비-50만원
⊛하나은행111-054579-03005.예금주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임원회비:회장(3백만원),감사,부회장(50만원),부장(30만원)
수석차장(15만원),차장(10만원)
⊛하나은행, 263-910588-27607,예금주:박수정(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문의:재무부장 청정화 김애숙 010-8736-0372
❏장학기금 후원(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장학회)
➪조계사 불교대학 동문이면 누구나 월1천 원 이상의 장학기금 후원 가능
➪장학회 정회원 조건:출자금10만 원 월1천 원 이상 후원하시는 분
⊛후원계좌:신한은행100-030-532200 (조계종 조계사 불대총동문회)
⊛문의:장학회 총무 세정화 설민경 010-3789-8621
❏어르신 배식 봉사
⊛일시: 10월 16일(금),10시~14시
⊛장 소: 종로노인종합복지관
⊛문의:봉사부장 반야월 강승희 010-2292-3533
❏총동문회 행복 나눔터
➪참기름(12,000원)들기름(13,000원)볶음참깨(6,000원), 약조청1kg(50,000원)
➪각버섯(10,000원), 버섯가루(10,000원)
⊛하나은행: 263-910588-28207,예금주 박수정(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문의: TF팀 대덕행 이후남(010-2325-6719) 여해심 이성숙(010-3897-4568)
❏ 사회법회 대웅전 대청소 : 10월 7일(수) 11:00
❏ 이번 법회를 위해 이금재(운봉)님과 김지영(보공)님께서 떡과 법사비를 보시해주셨으며, 정성껏 공양 올려주셨습니다.
부처님 전에 올린 귀한 보시와 공양의 공덕이 두 분과 가정에 두루 회향되어 늘 건강과 행복이 함께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5. 인 사 말 | 회장 대경 박수정
“화합과 동참으로 새로운 20년을 열자.”
안녕하세요?
먼저 지도법사이신 종무지원단장 원지스님께서
부처님 가르침을 전달해 주시러 귀한 걸음 해 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9월입니다.
국화가 피어나고 결실을 준비하는 가을의 문턱에서, 오늘도 귀한 걸음으로 법회에 함께해 주신 선,후배동문님들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계절이 바뀌듯 우리의 마음도 늘 변하고 있습니다.
기쁜 마음, 힘든 마음, 때로는 알 수 없는 번뇌와
걱정의 마음도 생겼다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불교에서는 자각(自覺)과 마음챙김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의도와 생각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끌려가는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마음을 바라보는 수행의 자리로 돌아
올 수 있습니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한 생각 한 생각을 바르게 일으키는 것, 그것이 곧 생활 속 수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동문회가 함께하는 여러 법회와 행사, 봉사와 포교의 자리는 단순히 행사를 치르는 일이 아니라 함께 공업(共業)을 짓는 소중한 수행의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도반의 마음과 정성이 모이고, 발걸음이 모일때 우리의 작은 선행은 더 큰 원력과 공덕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특히 올해는 동문회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지난 20년의 인연을 돌아보고 새로운 20년을 준비하는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소중한 인연이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과 동참으로 이어질 때 더욱 아름다운 동문회가 될 것입니다.
9월의 맑은 가을 하늘처럼 동문 여러분의 마음에도 평안과 지혜가 가득하시기를 바라며, 앞으로 이어질 법회와 봉사, 포교의 모든 자리에도 많은 관심과
따뜻한 동참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불기2570년 9월 11일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회장 대경 박수정 합장]
6. 발 원 문 |
거룩한 삼보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합니다. _()_
대자비의 광명으로 시방삼세를 밝혀 주시는 부처님!
저희들은 나의 마음과 나의 몸, 나의 자아는 실제로는 생각과 감정과 지각 작용의 끊임없는 흐름이 만들어 내는 하나의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
하고 집착하고 괴로워하며 윤회하는 삶을 살아온 것을 참회합니다.
지혜와 자비하신 부처님!
모든 중생들은 인연으로 말미암아 탐욕을 내고, 인연으로 말미암아 해탈을 얻게 되나
니, 오늘 소중한 인연들과 선지식께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순간 순간 생각, 느낌, 지각작용이 일어날 때 자각하고 정념하여, 우리의 삶이 진리 발견의
길로 삼아 정진할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조건은 늘 변화하기 마련이고 진정한 평화는 그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기에 폭포수와 무지개 같은 생각들로 산만해지고 들뜬 마음의 시선을
낮추어 자애와 자비 수행으로 우리의 파괴되지 않는 참본성의 모든 경이로운 특성들이 서서히 드러나게 하여주소서!
그 수행 공덕을 자각있는 모든 존재들이 행복과 즐거움의 원인을 갖게 하고, 고통과 집착과 혐오에서 벗어나 참본성을 깨달아 부처님의 자리로 다가갈수 있
게 회향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부처님!
오늘 부처님법을 구하는 소중한 도반들의 가정과 주변의 인연들이 부처님의 자비공덕
으로 마음의 평화를 이루어 부처님의 지혜 광명인 참 진리에 귀의하게 하여 주소서!
이 인연공덕을 법계에 회향하오니 부처님의 지혜광명이 이 땅에 충만하게 하여지이다. _()_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_()_
불기2570년 9월11일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부회장 삼보화 유경옥 합장]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53선지수 합창단 음성공양
◑곡명 : 부처님의 미소/ 지휘 :박경태교수 / 반주:삼조 정진경 /포교부장:고정숙 여실심
7. 법 문 |
“참된 자비는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는 것이며,
그 시작은 알아차림이다.”
주 제 : "자비로운 큰 스님" 조계사 행정지원단장 원지 스님"
교재 :1쪽
1.달마야 놀자, 2001년 作
촬영지_김해 은하사. 경상남도 김해시 신어산(神魚山)에 있는 삼국시대 가락국 승려 장유가 창건한 사찰.
2. 큰스님 : 밥은 먹었나?
재규 : 네?
큰스님 : 밥은 먹었냐고?
…
큰스님 : 차 식었어.
3. 《선문염송(禪門拈頌)》 제1463칙 〈파자소암(婆子燒庵, 노파가 암자를 불태우다)〉
옛날에 한 노파가 한 암주(庵主: 암자의 주지)의 수행을 20년 동안 공양하였다. 항상 이팔청춘(16세)의 젊은 처녀를 시켜 밥을 보내고 시봉하게 했다. 하루
는 노파가 처녀에게 암주를 꽉 껴안게 하고는 “바로 이러한 때에 어떻습니까?”라고 묻게 하였다. 암주가 답하기를, “마른 나무가 차가운 바위에 기댄 듯하
니, 한겨울 세 달 동안 아무런 따뜻한 기운이 없도다.”라고 했다. 처녀가 돌아와 이 말을 노파에게 그대로 전하니, 노파가 말했다. “내가 20년 동안 겨우 저
런 속된 놈(俗漢)을 공양했던 말인가!” 그리고는 곧바로 암주를 쫓아내고 암자를 불태워 버렸다.
4. 《조주진제선사어록(趙州眞際禪師語錄)》, 중국 당나라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
조주 선사가 어떤 승려에게 물었다. “여기에 와 본 적이 있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와 본 적이 있습니다.” 화상이 “차 한 잔 드시게”고 말했다. 또 다른 승
려가 찾아왔다. 조주 선사는 “여기에 와 본 적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 승려는 “와 본 적이 없습니다”고 대답했다. 그때 조주 선사는 “차 한 잔 드시게”고
말했다. 이것을 옆에서 지켜본 원주가 물었다. “온 적이 있는 사람이나 온 적이 없는 사람에게 모두 차 한 잔을 마시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조주 선
사는 “원주, 자네도 차 한 잔 드시게”라고 말했다.
1 -
교재 : 2쪽
5. 묵언수행. 공안 중 묵언.
6. 청명 : 마음이 물이요, 몸 또한 마음과 다르지 않으니 깨진 독에 들어간 소인의 몸과 마음은 깨끗한 물과 다르지 않습니다.
큰스님 : 난 물을 채우라고 했지, 사람을 채우라고 하지 않았느니라. 그건 답이 아니야.
(재규가 독을 연못 안에 던져 독에 물이 가득차게 되었다.)
큰스님 : 독에 물이 철철 넘쳐 흐르는구나.
…
이 화두는 영화를 위해 창작된 화두. 사구(死句)가 아니라 활구(活句)를 들어라. 전강큰스님, 송산큰스님.
7. 《수심결(修心訣)》, 고려 보조국사 지눌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 말고 / 다만 알아차림이 더딜까 두려워 하라 / 생각이 일어나면 곧 알아차려라 / 알아차리면 없느니라.”
不怕念起 唯恐覺遲, 念起卽覺 覺之卽無
[불파염기 유공각지, 염기즉각 각지즉무]
8. 《마조어록(江西馬祖道一禪師語錄)》
도는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도록 하라. 무엇이 오염인가? 다만 번뇌로 조작해 취하고자 하는 분별심이 모두 오염이다. 만약
곧 도를 알고자 한다면 평상심이 바로 도임을 알라. 평상심이란 어떤 것인가? 조작, 시·비, 취사(取捨)가 없으며, 단멸·상주가 없다. 또한 범부라고 할 것도
없고, 성인이라 할 것도 없는 것을 말한다. … 다만 행주좌와와 형편에 따라 움직이고 사물에 접하는 모든 것이 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도라고 하는 것은 법
계를 말하는 것이다. 갠지스강가 모래의 묘용(妙用)도 이 법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2 -
교재 : 3쪽
9. Made in China ???
10. 큰스님 : 부처님 귀가 떨어졌으면 다시 붙이면 될 거 아니냐? 너희들 눈에는 그게 부처님 귀로 보이냐? 그게 아니라면 법당의 불상이 부처님으로 보이
든? 그것도 아니라면 너희들은 지금까지 나무토막을 섬겼어? 너희들 마음속에 부처가 들어있거늘, 불상에 귀 하나 떨어졌다고 호들갑이야?
8. 재규 : 스님, 저희를 이렇게 감싸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큰스님 : 네가 내 문제를 풀었으니까 더 있으라고 한 건데 누가 누굴 감싸줬다고 그래.
재규 : 그래도 착하게 살라든지 뭐 남들 괴롭히지 말라든지 아무튼 원하는 게 있으시니까 이렇게 감싸주시는 거 아닙니까?
큰스님 : 그게 그렇게 궁금하냐? 그럼 너 밑 빠진 독에 물을 퍼부을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채웠어?
재규 : 그건 그냥 항아리를 물속에다 던졌습니다.
큰스님 : 나도 밑 빠진 너희들을 그냥 내 마음속에 던졌을 뿐이야.
9. 선무도, 경주 골굴사.
10. 〈스님들의 하루〉
새벽 3시 도량석, 정진
오전 6시 아침공양
오전 7시 정진·입선
오전 10시 사시마지
오전 11시 사시공양
오후 5시 저녁공양
오후 7시 정진·입선
오후 10시 취침
〈신도들의 하루〉
새벽 3시 주변정리·발우준비
오전 6시 아침밥
오전 7시 각 전각 청소
오전 8시 각 전각의 정리
오전 11시 점심밥
오전 12시 마당청소
오후 1시 전각청소
오후 3시 밭 하기
오후 5시 저녁밥
오후 6시 쌀 다듬기
오후 7시 정리
오후 10시 잠 자기
3 -
교재 : 4쪽
11.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12. (건달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고, 다음날 아침밥을 큰스님이 직접 하고 있다.)
큰스님 : 청명아. 좋은 말이야. 자기 수행만 열심히 한다고 성불하는 게 아니다.
13. 호국불교, 스님들의 참전. 상구보리 하화중생.
14. 큰스님의 좌탈입망(坐脫立亡). 월담큰스님 이야기.
15. 안수정등(岸樹井藤), “어떻게 하면 살아 나가겠는가?”
만공스님 : “꿈이니라”
보월스님 : “언제 누가 우물에 들어갔나?”
고봉스님 : “아야, 아야!”
혜봉스님 : “부처가 또 부처될까?” 본래 부처가 어떻게 부처가 또 돼?
용성스님 : “삼밭에 누워있는 호박이니라”
(호박꽃이 울타리를 밖으로 나가서 삼밭에 호박이 열어서 누워있는 모습)
전강스님 : “달다”
[법 문 ]
안녕하세요.
총동문회 여러분 반갑습니다. 무더운 여름을 무사히 보내시고 다시 만나게 돼서 너무나 반갑고요. 오늘은 「달마야 놀자」에 있는 내용을 가지고 한번 얘기
를 같이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달마야 놀자」는 지금까지 한국 영화 중에 불교 영화로는 가장 흥행한 영화입니다. 이게 조폭 영화라고 해야 될지, 불교 영화라고 해야 될지, 아무튼 그래
도 부처님이 나오시고 큰스님이 나오시니까 불교 영화라고 해야 되겠죠. 그래서 대부분 이제 뭐 이렇게 코믹한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달마야 놀자」는 2001년도 작품이고요. 그 절은 김해의 은하사라는 절입니다.
김해 은하사는 경상남도 김해시 신어산에 있는 장유화상이 창건한 사찰입니다. 장유화상은 허황후하고 같이 이렇게 인도에서 넘어왔다고 하고, 김해의 장
유라고 지역이 있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지금 장유에 살고 계시는데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제 기억들을 보신 분들은 기억이 나실 거고, 안 보신 분들이라도 제가 상황을 설명드릴게요. 조폭이 죄를 저지르고 도망을 왔는데 숨을 데가 없어
서 절을 접수하려고 들어왔습니다. 산 깊은 절에 들어왔습니다. 그 절에는 젊은 스님 다섯 명이 있고, 큰스님이 한 분 계십니다.
처음에는 젊은 스님들과 대치하다가 큰스님이 들어와서 “얘기하자.”고 해서 조폭 두목과 큰스님, 이렇게 두 분만 딱 마주하게 된 상황입니다.
그러면 여기는 절이니까 들어오면 안 된다든지, 절에서 행패를 부리면 안 된다든지, 뭐 이런 얘기를 하실 텐데 다짜고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밥은 먹었
냐?”예요.
보통 동네 꼬마들이 놀다가 우리 집에 오면 “얘, 꼬마야. 밥은 먹었니?” 이런 거 아니겠어요?
조폭 두목은 지금 자기가 이 절을 접수하러 왔는데, 그런데 “밥은 먹었니?”
여러분, 여기서 뭘 못 느끼셨어요? 아무튼 이렇게 또 얘기를 하다가 대화가 딱 막히는데, 그때 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차 식었어.”
이것도 대화의 흐름상 맞지 않는 내용입니다.
왜 큰스님은 이런 말씀을 하실까요? 동문서답 같죠.
여러분, 오늘 법회의 제목이 “자비로운 큰스님”입니다.
여러분, 큰스님의 자비로운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자비로운 모습, 어떤 모습이에요?
그냥 다 받아주면 자비로운 모습입니까? 다 받아주면 돼요.
대부분 받아주는 모습이긴 하시죠. 분별이 없으시니까. 그런데 제가 이제 핵심 주제를 먼저 한 번 말씀드리고 해보겠습니다.
우리는 뭐 때문에 힘듭니까? 뭐 때문에 힘든가요?
“욕심내고 성내고, 이거 때문에 힘들지 않으신가요?”
탐진치. 제가 예전에 한 번 설명드린 적이 있는데, 탐진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설명드리겠습니다.
탐은 어때요? 여러분, 삼다수가 조금 더 비싸죠? 요즘 삼다수 맛이 조금 떨어진 것 같긴 한데, 아무튼 삼다수가 더 비싸단 말이에요.
그래서 여기에 뭐 이런 기타 등등의 물이 있으면 어때요?
삼다수를 예를 들어서 제가 삼다수를 제일 좋아한다고 하면, 삼다수를 먹고 싶을 거 아니에요. 삼다수는 가까이 두고 싶어 하고, 그다음에 좀 싼 물은 좀 멀
리 두고 싶어 하고. 그렇죠?
탐진치. 불교에서 말하는 탐진치. 우리 중생은 탐진치에 오염되어 있어서 중생이죠.
열반이 뭡니까? 열반. 번뇌가 없는 거, 세 글자로 말하면 열반은 탐진치가 완전히 소멸해버린 것, 그게 열반입니다. 탐진치가 있으면 중생이고, 탐진치가 완
전히 소멸해버리면 부처, 깨달은 이, 아라한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탐은 욕심이라고 하는데, 제가 예전에 고등학교 때 엄마한테 마이클 잭슨 CD가 나왔는데 “이거 사주면 공부 열심히 할게요.”라고 한 적이 있거든요.
아무튼 그런 식으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막 가지려고 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런 강한 마음뿐만 아니고 어때요? 좋은 사람을 보면 가까이 가고 싶죠. 좋은
법회, 우리 여기 총동문회처럼 좋은 법회가 있으면 가고 싶죠. 그냥 좋은 게 있으면 은근히 옆에 두고 싶죠.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 당기는 마음. 이게 탐입
니다.
진은 성냄이라고 얘기하지만 막 성내는 것만이 아니고, 개똥을 가까이 두고 싶어요, 멀리 두고 싶어요? 멀리 두고 싶죠. 그게 진심이에요.
싫어하는 것은 멀리 두고 싶은 마음. 좋아하는 것은 가까이 두고 싶어 하는 마음. 당기는 마음과 밀어내는 마음이에요.
뭐든지 간에 내가 내 인식 기관으로 접촉을 했는데, “와, 좋아 보여요.” 그러면 가까이 가고 싶잖아요. 가까이 두고 싶고. 이런 마음은 탐심이고, “아, 이건
나 별로인데.” 이러면 멀리 두고 싶어 하는 마음은 진심이다.
우리는 어때요? 욕심내고 성내는 것, 이게 극심해지면 우리한테 고통을 주죠.
그래서 중생들은 욕심내고 성내고 하는 이 마음 때문에 괴롭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 때문에 큰스님을 찾아와요. “큰스님, 제가 어떤 것은 성내는 마음일 거고 어떤 것은 욕심내는 마음일 거예요. 저 사람 꼴 보기 싫어 죽겠는데
또 봤어요. 열 받아 죽겠는데, 스님 이거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아니면 “스님, 제가 이거 너무너무 갖고 싶은데, 이게 너무너무 됐으면 좋겠는데 안 돼요. 어떻게 하면 좋아요?”
그렇죠? 그런데 큰스님은 그거를 들어주려고 하실까요?
물론 방편으로 들어주기도 하십니다. 막 배고파 죽겠는 사람이 찾아왔어요.
목말라 죽겠다는 사람이 찾아왔어요. 그런데 그 사람한테 “저기, 배고프고 목마른 것은 세속적인 일이니 그거 잠깐 내려놓고 나와 같이 삼법인, 사성제, 팔
정도, 12연기 공부 좀 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이 뭐라고 하겠어요?
“스님이나 하세요. 배고파 죽겠는데 지금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뭐 이러면서, 그렇죠?
중생들이 보는 것과 큰스님이 보는 포인트가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무슨 얘기냐, 여러분. 탐심이나 진심, 당긴다, 밀어낸다 할 때 뭔가 기준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좌우로 정렬할 때도 좌우로 정렬해야 기준이 딱 생겨야 이 기
준을 중심으로 좌와 우가 생기잖아요.
그렇죠? 당긴다, 또 기준이 필요하고 민다, 또 기준이 필요하지 않아요?
어떤 기준이 필요할까요? “나”라고 하는, 나를 중심으로 당기는 거잖아요.
나를 중심으로 밀어내는 거잖아요. 나라고 하는 기준이 필요하다고요.
그런데 중생들은 내가 ‘나’라고 하는 것이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착각하면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해요. 인간은 누구나 죽죠. 그렇죠? 100년 후에, 50년 후
에 살아 계실 분, 자신 있게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그렇죠?
그런데 말할 때, 얘기할 때 보면 평생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니까요. 그게 우리의 착각이에요. 내가 있을 거라는, 영원히 존재
하는 내가 있을 거라는 착각. 그게 어리석음이에요.
그게 치예요. 탐진치. 이 탐진치 때문에 우리는 중생인 거예요.
그런데 큰스님이 보셨을 때, 이 찾아온 젊은이가 욕심내고 성내고 탐심이나 진심 때문에 힘들다고 왔지만, 큰스님이 봤을 때는 어때요?
그게 뭐 때문이에요? 뭐가 있기 때문이에요? 기준이 있기 때문에, ‘나’라고 하는 기준이 있기 때문에, 어리석음이 있기 때문에 이것 때문에 당김도 있고 밀어
냄도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큰스님이 동문서답을 하는 게 아니고, 이 어리석음, 그 자리를 푹 찔러주는 거예요.
“너 한번 돌아봐. 너 지금 영원히 살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큰스님의 자비는 그 어리석음을 없애주는 게 큰스님의 자비이죠.
안 그렇습니까? 그렇죠. 그 어리석은 것만 없애면 지금 이거 하나 때문에 힘들어요.
그리고 이거 하나 해결해 준다고 해봐요. 배고프다고 찾아왔어요. 밥을 줬어요. 그럼 또 뭐 때문에 찾아오겠어요?
“물도 주세요.”
그럴 거 아니에요. 물도 줘요. 그럼 또 뭐 때문에 찾아오겠어요?
“내 새끼들도 있는데요.”
그러면서 찾아올 거 아니에요. 그렇죠? 중생의 그런 고통의 해결은 끝이 없어요.
하지만 근본 원인, 어리석음, ‘나’라고 하는 이것을 해결해 주면 어때요? 앞으로 쭉 괴롭지 않겠죠. 그게 큰스님의 자비예요.
그런 측면에서 우리 ‘달마야 놀자’에 나오시는 큰스님의 말씀을 한번 잘 보겠습니다.
이게 막 씩씩대고 있어요. 막 밖에서 한바탕하고 왔어요.
젊은 스님들하고 막 옥신각신하다가 이제 큰스님을 불러가지고 와서 씩씩거리면서 앉아 있는데, “그래, 밥은 먹었냐?”
3번 한번 보시겠습니다.
3번은 『선문염송』 1463번째 화두라는 얘기예요.
‘파자소암’이라는 화두가 있습니다. 파자는 노파를 얘기하는 거예요.
노파가 암자를 불태웠다, 이런 뜻입니다. 한번 읽어볼게요.
“옛날에 한 노파가 한 암주의 수행을 20년 동안 공양했다.
그런데 이 노파가 절을 지어서 스님을 초청해서 공양하고 시봉했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항상 이분 스님한테 공양물을 하루에 한 번씩 올려드리는데, 꼭 젊은 아가씨를 보냈어요. 20년이 지났어요.
오늘도 젊은 아가씨에게 공양을 가져다줄 것을 부탁하면서 오늘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처녀에게 ‘그 스님을 꼭 껴안고, 바로 이러한 때는 어떻습니까? 스님.’ 하고 물어보게 시켰어요.”
그래서 이 처녀가 스님을 쓱 안으면서, 아니 산중에 둘밖에 없어요.
이 산중에 둘밖에 없어요. 스님을 꼭 안으면서 “스님, 어떠십니까?” 그랬어요.
그랬더니 스님이 뭐라고 그랬어요?
“마른 나무가 차가운 바위에 기댄 듯하니, 한겨울 세 달 동안 아무런 따뜻한 기운이 없도다.”
제가 좀 과장했습니다.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이런 말이잖아요.
그렇죠? 그 말을 듣고 이 노파가 “내가 20년 동안 이런 속물을 공양했단 말인가?” 하고 스님을 내쫓고 암자를 불태워 버렸습니다.
자, 화두는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스님이라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제 개인적인 견해지만 저라고 하면 ”밥은 먹었니“ 라고 대답할 얘기할 것 같아요.
숭산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불교는 매우 간단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닭은 꼬끼오 하고 울고, 개는 멍멍 하고 짖는다. 배고픈 사람이 오면 밥을 주고, 목마른 사람이 오면 물을 준다.
그것뿐이다. 이것이 불교다. 이것이 불교의 전부다.”
다시 말씀드려 볼까요? 개는 멍멍 짖고, 닭은 꼬끼오 웁니다.
배고픈 사람이 오면 밥을 주고, 목마른 사람이 오면 물을 줍니다.
이것이 불교입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꼬끼오, 멍멍. 이 소리에 시비 분별이 있습니까? 옳다, 그르다가 있어요? 없지요.
불교를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고 합니까?
불교의 지혜는 “개는 멍멍, 닭은 꼬끼오. 이게 불교의 지혜입니다.”
아, 이게 불교대학을 마치고 총동문회에서 활동하고 계시면, 이게 뭔가 눈빛이 이렇게 끄덕끄덕하는 뭔가 좀 있으면 좋겠는데.
지혜와 자비의 종교. 자비의 측면은 배고픈 사람이 오면 밥을 주고, 목마른 사람이 오면 물을 준다. 지혜와 자비의 종교. 여기서는 무엇이 필
요할까요?
저도 뭐 생각 끝에 찾아낸 답이지만, “밥은 먹었니?”라고 우리 처자에게 이야기를 할 것 같습니다. 그다음에 4번 볼까요? 4번, 『조주어록』이라는 책입니
다. 조주스님 아세요? 당나라 때 선이 엄청나게 융성했다고 할까요? 이제 선의 황금시기 때, 그때 스님이신데요. 조주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여
기에 와본 적이 있는가?”
큰스님이 “여기 조계사에 온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한 스님이 “예, 와본 적이 있습니다.” 그랬어요. 그랬더니 “차 한 잔 드시죠. 차 한 잔 드시게.”
또 어떤 스님이 찾아왔습니다.
또 큰스님이 묻습니다. “여기 조계사에 와본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이 스님은 “아니요, 처음 왔습니다.” 그랬어요.
“그래요? 차 한 잔 드세요.”
그걸 보고 있던 원주스님이 옆에서 보고 있다가 “큰스님, 왔다는 사람한테도 차 한 잔 먹고 가라고 그러고…” 안 왔다고 하는 사람한테도 “차 한 잔 드시
게.”라고 그러고, 이건 무슨 뜻입니까? 그랬더니 큰스님이 원지스님에게도 “스님도 차 한 잔 드시게.” 이건 무슨 뜻입니까?
탐진치 중에 중생은 탐이나 욕심이나 성냄에 자꾸 속아요.
욕심이나 성냄에 자꾸 속아요. 눈앞의 뭐에 자꾸 속아요?
그렇죠. 그런데 큰스님은 뭐를 없애주고 싶다고요? 어리석음을 없애주고 싶다고요.
어리석음을 아시겠어요? 그래서 큰스님 말씀이 누가 와도 “차 한 잔 드시게.” 어렵습니까?
그런데 어려울 수 있는데요. 너무 매력적이지 않아요? 너무 매력적이에요.
그래서 아무튼 우리가 불교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이렇게 매력적이고, 이렇게 알 듯 말 듯한 이러한 가르침이 뭐랄까요. 아무튼 저는 참 좋습니다.
다시 한 번 얘기할게요. 중생은 욕심내고 성내는 것,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상에 속아요.
그것이 영원한 것처럼, 내가 영원히 존재하는 것처럼 하지만 큰스님의 지혜의 눈에는, 어리석음 때문에, 어리석을 치(癡), 어리석은 ‘나’, 내가 영원히 존재
한다고 하는 그 착각, 그런 것들 때문에 내가 영원히 존재하면 대상도 영원히 존재하는 거예요.
우리는 이제 사유를 하면 알죠. “이건 영원하지 않아.”
그런데 딱 보면 그냥 탁, “이건 영원하다.”고 착각을 하는 거예요.
어떤 현상이 딱 벌어졌어요. 누가 나를 괴롭혀요.
“이게 영원히, 이 괴롭힘에서 변하지 못할 거야.”라고 착각하고, 뭔가 좋은 일이 딱 생겼어요.
“영원히 이 일이, 영원히 이 행복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것도 다 착각이에요. 그렇죠? 세상이 그런데 그렇습니까?
아니죠.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고, 안 좋은 일도 있고,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고. 그렇죠?
여기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시비, 옳다 그르다를 따지지 않고, 오직 개는 멍멍, 닭은 꼬끼오.
옳다 그르다를 따지지 않고, 배고픈 사람이 오면 밥을 주고, 목마른 사람이 오면 물을 준다.
큰스님의 자비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는 자비다.
우리의 욕심, 우리의 성냄을 달래주는 게 큰스님의 자비가 아니고, 우리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는 게 큰스님의 자비다.
이제 6번 넘어가겠습니다.
이 사람들이 막 서로 “나가라, 못 나간다.” 뭐 내기하자고 해서 고스톱도 치고, 족구도 하고, 삼천배도 하고 하다가 마지막에 보다 못한 큰스님이 화두를 주
죠. “내가 낸 문제를 풀면 지낼 수 있게 해주마.”라고 했어요.
그래서 나의 제자들 다섯 명한테도, 스님들한테도 똑같이 내고, 이쪽에 있는 건달들한테도 똑같이 문제를 내는데 뭡니까?
밑 빠진 독. 밑이 깨졌어요.
밑 빠진 독을 두 개 주고 “이 독에 물을 가득 채우는 사람이 이긴다.”라고 했어요.
물을 부으면 독에서 계속 빠져요. 독에서 빠지는 속도보다 빨리 물을 채울 수는 없어요.
물을 길어 와야 돼. 우리는 그때 나의 제자 스님들 중에 제일 나이가 많은, 이제 큰아들 격인 스님이 그 독 안에 이렇게 딱 섭니다.
그 독 안에 이렇게 딱 서요. 독 안에 딱 서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독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는 거예요.
“마음은 물이오. 물 또한 마음과 다르지 않으니, 깨진 독에 들어가는 소인의 몸과 마음은 깨끗한 물과 다르지 않습니다. 큰스님! 내가 물이니 나로 이 독을
가득 채웠다.” 이거죠.
그랬더니 큰스님이 뭐라고 그래요?
“난 물을 채우라고 했지, 사람을 채우라고 하지 않았느니라.”
그건 답이 아니야.
이러고 있을 동안에 건달들은 어떻게 하고 있었어요?
고무신에다가 물을 받아 계속 들이붓고 있었어요.
그런다고 그게 물이 채워지겠어요?
그런데 큰스님 입장에서는 얘네들 한번 키워보고 싶지 않겠어요?
이것들 참 열심히, 어리석지만 열심히 고무신에다가 물 담아 갖고 오고 있는데. 그렇죠?
큰스님이 그거를 보고서는 “이제 됐어. 그만해.” 하셨는데, 건달 두목이 뭔가 깨달음이 왔어요. 그 절에 연못이 있었거든요.
“야, 독 들어. 연못에 집어넣어. 빠뜨려. 눌러.”
그래서 독을 꽉 눌렀어요. 연못에다가. 그러니까 밑 빠진 독에 물이 콸콸콸 넘치잖아요.
그러면서 큰스님이 “와, 밑 빠진 독에 물이 넘치는구나.” 그러면서 머무를 수 있게 허락해 줍니다. 이거는 이 영화를 위해서 창작된 화두라고 합니다.
청명승은 왜 틀렸을까요? 사유, 분별, 옳다, 그르다.
그런데 우리가 잘 살려면 사유를 잘해야 돼요. 승진을 하려면 사유를 잘해야죠.
일을 잘하려면 이게 잘 굴러가야 돼요. 뭐는 해도 되고, 뭐는 안 해도 되고, 빨리빨리.
그런데 그게 그런 식으로만 활용이 되면 참 좋지만, 그러한 것들이 나의 집착을 키우는 장작불 같은, 휘발유 같은 그러한 힘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제 예를 들어서 제가 우리 회장님한테 눈을 찡긋했어요. 그런데 회장님이 밤에 주무시다가 “저 스님이 왜 저럴까?” 하다가 “저 스님이 설마 나
를 사랑하는 게 아닐까?” 죄송합니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해서 “저 스님은 여자나 꼬시는 스님이다.”라고 뭐예요? 확정을, 답을 딱 내려버려요.
그러면 이게 어때요?
우리는 돈을 잘 벌기 위해서는,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그런 능력들이 필요하지만, 내 마음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는, 내 맑은 마음을 유지시키는 데
있어서는, 그래서 그런 마음을 통해서 부처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불필요해요.
이 공부에서는.
그런데 우리는 기가 막히게 시비 분별을 잘 따져요.
이러실 수도 있을 거예요.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것에 잘 속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중생이고요.
아무튼 그런데 사구가 아니라 활구를 들어야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전강 큰스님이나 숭산 큰스님 법문을 좋아해요.
이제 대부분 스님들이 옛날 중국 당나라 때, 송나라 때 고사를 인용해서 법문을 하시거든요.
그런데 전강스님이나 숭산스님은 그냥 생활 속에 이런 것들을 가지고 의심을 던지세요.
여기에 나오는 이 큰스님처럼.
그래서 제가 이제 전강스님과 숭산스님을 좋아하는데, 참선 수행하시는 분들은 전강 큰스님, 숭산 큰스님 법문을 유튜브라든지 책이라든지 한 번씩 찾아보
시기를 권해드리겠습니다.
자, 7번 한번 볼까요?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수심결』. 이거 대단한 제목인데요.
마음 닦는 결, 마음 닦는 비결입니다.
수심결, 마음 닦는 비결. 대단하지 않아요?
저는 이 『수심결』에서 딱 한 문장 고르라면 이 문장을 고릅니다.
마음 닦는 비결 중에서 개인적으로 한 문장을 고르려면 이거 고르는데요.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 말고, 다만 알아차림이 더딜까 두려워하라.”
두 번째 ‘알아차림’이라고 하는 것이 밑에는 ‘각’이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깨달을 각’ 자는 부처의 깨달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몰랐는데 여기 시계가 있네. 여기 시계가 있는지 이제 깨달았어요.” 할 때 이런 깨달음이에요. “물을 주셨네요. 물 주시는지 몰랐어요. 저 방금 깨달았어
요.” 이런 깨달음이에요.
그래서 ‘알아차림’이라고 제가 번역했습니다.
생각나면 두려운 것들 뭐예요? 저는요.
제가 예를 들어서 누구한테 빚이 한 1천만 원 있는데 제가 여기서 이렇게 법문을 막 하고 있는데, 저기서 빚쟁이가 딱 들어와 “야, 이 땡중 놈아. 내 돈부터
갚아라.” 그러면 제가 엄청 부끄럽겠죠.
만약에 이런 게 있으면, 이 사람이 내가 조계사에 있는 걸 영원히 몰랐으면 좋겠죠.
그런 마음 있잖아요. 그렇죠? 뭐 과거의 트라우마, 과거의 실수, 과거의 상처, 이런 것들이 생각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갑자기 옛날에 사귀었던 여자가 생
각난다거나, 뭐 그럴 수 있잖아요. 그렇죠? 그런 생각들, 두려움. 그런 게 일어날까 두려워하지 말고, 그거는 자연스러운 거예요. 여러분, 내가 예를 들어서
스님이 여자 생각하면 나쁜 겁니까?
아니, 막 하고 있으면 안 되는 거지.
나도 뭐 어떤 진짜 강남에 엄청 큰 부잣집 보살님을 만나서 “나도 절이나 지어야지.” 이러고 있으면, 그러면 별로인 생각이지만 불쑥 떠오를 수 있잖아요.
제가 이제 은사스님의 포교당을 맡아서 주지로 해보니까 이놈의 돈이 원수더라고요.
그런 거죠. 그러면 이제 스님 머릿속에 돈 생각이 계속 맴돌고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돈 생각이 들쑥날쑥 날 수 있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이게 잘못된 거예요? 나쁜 거예요? 중생이니까 당연한 거죠. 그렇죠?
중생이니까 당연한 것을 가지고 여러분들, “나는 더럽다.”라든지, “나는 잘못됐어.”라든지, “너는 잘못됐어.”라든지, 이런 게 아니에요.
그렇죠? 그 생각을 불리지만 않으면 돼요. 그 생각을 확대시키지만 않으면 돼요.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어요? 그거는 당연한 거예요.
당연한 건 그냥 알아차리고 넘겨버리고, 그 생각에 사로잡히지만 않으면 돼요.
제가 만약에 갑자기 뭐 어떤 첫사랑이 생각이 났어요. 갑자기 그러면 이제 제가 이제 잘못 생각하면 어때요? 왜 내가 스님이 된 지 20년이 지났는데 첫사랑
이 생각났을까?
아 이 사람이 나의 운명의 여인이 아니었을까? 안 되겠다.
난 이 사람을 찾아봐야 되겠다. 이렇게 잘못 결론 내버리면 제 인생은 쫄다 망하는 거죠.
그러니까요 이렇게 시비 분별하지 말아라 이거거든요.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아라. 다만 알아차려라. 다만 이런 생각이 중생 심이 올라왔다고 아까 우리 법회장님께서 알아차림 하셨잖아요.
알아차리기만 해라 이거예요. 내 마음속에 욕심이 일어났구나 내 마음 속에 성냄이 일어났구나 라고 보조 국사 지눌 스님 말씀 한번 다시 볼까요?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하지 말고 다만 알아차림이 늦을까 두려워 해라.”
알아차림이 빠르면 거기서 빨리 벗어날 수 있어요.
알아차림이 느리면 한참 생각을 하다가 돈 생각 이성 생각 뭐 성공에 대한 생각 뭐 오만 가지 뭐 이런 잡생각을 하다가 그래도 알아차리기 하잖아요. 그렇죠
근데 그게 늦은 거죠.
그게 늦으면 내가 이미 막 오만가지 잡 생각하면서 이미 업이 이쪽으로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네 바퀴 굴렀잖아요.
눈덩미를 굴리면 어떻게 점점 커져요 안 커져요 커지죠. 내 업이 그만큼 두터워지는 거예요.
생각이 일어나면 곧 알아차려라. 알아차리면 없느니라.
제가 이걸 보고 무릎을 팍 쳤다니까요. 지눌 스님 너무 멋있어요.
아니 왜냐하면 제가 뭐랄까 이제 정진하면서 실제로 이렇거든요.
알아차림이 빠지잖아요. 그럼 그 생각에서 딱 사라져요 없어져요.
그 생각 그런 어떤 관념 고정관념 우리는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 이런 것들 때문에 괴로운데 그런 것들이 탁 올라오는 순간 알아차리면 탁 없어져요.
근데 이건 경험 안 해본 사람은 모르는 거라서 그리고 마음이 고요하거든요.
그 정도가 알아차려지려면은 마음이 굉장히 고요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고요함 속에서 알아차림이, 생각이 꿈틀할 때 딱 알아차리면 그게 딱 없어지는데, 아무튼 저는 이제 경험적으로 그런 것들을 한두 번 경험해
봤잖아요.
스님들은 대부분 그런 경험을 하셨을 텐데, 이것은 열심히 안 해보면, 열심히 수행을 안 해보면 이런 게, 마음이 이렇게 움직인다는 것을 모르는 거죠.
그래서 깨달음. 제가 제일 열받는 말이 있어요.
제가 제일 열받는 말이 하나 있는데, 동기가 저한테 스님 됐다고 책을 한 권 선물해줬어요.
“세수하다가 코 만지기보다 쉬운 불교.”
책 제목이 이래요.
세수하다가 코 만지기보다 쉬운 불교. 아니, 세수하다가 코 안 만지는 사람 있어요?
그런데 깨닫기가 그것보다 쉽다는 거예요.
그런데 나는 왜 아직도 중생인가? 그렇게 쉬운데.
깨달은 스님 입장에서는, 깨달은 분 입장에서는 그렇게 쉬운 거구나.
아직 깨닫지 못한 우리 중생은 경험을 안 해봤기 때문에, 여러분 여기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르시죠?
진짜 맛있는 거 들어 있거든요. 저한테만 준다고 아무튼 경험해보지 못하면, 그래서 이것은 참 어쩔 수가 없어요.
아무리 좋다고 말해도 딱 그거랑 똑같아요.
경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거. 아무튼 알아차리면 없습니다.
여러분, 알아차리면 탐도 없고 진도 없습니다.
알아차리면 욕망도 없고 성냄도 없습니다.
그러면 계속 고요하겠죠. 내가 성내고 나면 후회돼요, 안 돼요? 대부분 후회되죠.
그런 거 안 해도 된다니까요. 알아차림 하면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 안 하셔도 돼요.
고요한 마음, 평온한 마음. 그래서 행복이 쫙 깔려 있는 마음, 그런 마음으로 살 수 있어요.
얼마나 좋아요? 욕망에 끌려서 분노에 부들부들 떨면서 그렇게 사는 것보다 고요하고 평화롭게 사는 게 얼마나 좋아요. 큰스님들은 이렇게 살고 있단 말이
에요.
『마조어록』도 한번 보겠습니다.
『마조어록』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도는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것도 열받는 말이죠.
“아니, 스님. 제가 그러면 지금까지 수행하고 사는 건 뭡니까?”
그런데 이거는 수행했다, 안 했다, 수행에 집착하는 마음.
그 『반야심경』에 나오는 “무색성향미촉법, 무안이비설신의,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얻을 것도 없고, 열반도 없고
불교의 진리, 고집멸도 사성제도 없다고 할 때 그거랑 똑같은 말이에요.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거는 다만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도록 해라.
위에 있는 말하고 거의 같죠. 다만 알아차려라. 다만 오염시키지만 말아라.
오염이 뭐예요? 중생은 뭐에 오염되어 있어서 중생이에요?
탐진치에 오염되어 있어서 중생이란 말이에요.
탐진치만 다시 일으키지 말아라. 앞에 있던 탐진치, 어떻게 없애려고 합니까? 아니, 놔두시고요. 그냥 지금의 탐진치만 일어나지 않게 하세요. 어떻게?
알아차리거나, 알아차리고 바로 거기다가, 그 자리에다가 화두를 딱 갖다 대거나, 바로 알아차리고 바로 그 자리에 염불을 딱 갖다 대거나, 알아차리고 고요
해지거나.
다만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도록 하라.
무엇이 오염인가? 다만 번뇌로 조작해, 스님의 눈짓을 딱 보고 “아, 저 스님이 지금 여자를 꼬시고 있구나.”라고 조작.
조작이라는 시비 분별을 해서 “이게 맞고 저게 틀리다.”
내가 만든 거예요.
그리고 집착하는 거예요. “저 스님은 이래. 저 사람은 이래. 너는 이래. 나는 이래.” 그것 때문에 막 부딪히지 않아요? 그렇죠?
물론 회를 운영함에 있어서 회칙이라는 것도 있고 원칙 같은 게 있습니다마는, 아무튼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 공부하는 데는 불필요하다는 얘기예요.
이런 것들이, 분별심이 모두 오염이다. 만약 도를 알고자 한다면 평상심이 바로 도임을 알아라. 평상심은 무엇이냐? 조작, 시비, 옳고 그름, 취사, 버리고 취
하고 버리고, 이런 것이 없다.
없으면 숭산스님이 말씀하신 “개는 멍멍, 닭은 꼬끼오.”
여기에 시비가 붙을 게 있어요, 없어요? 없죠. 조작할 게 없죠.
그거예요.
그래서 단멸, 상주가 없다. 다만 또한 범부라 할 것도 없고 성인이라 할 것도 없는 것을 말한다. 다만 행주좌와와 형편에 따라 움직이고, 배고픈 사람이 오면
밥을 주고 목마른 사람이 오면 물을 주는 것
사물을 접하는, 이렇게 늘 사물을 접하면서 대상을 접하면서 계속 알아차리고, 거기다가 화두를 갖다 대고, 거기다가 염불을 갖다 대고, 이렇게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도인 것이다.
우리 회장님께서도 아까 인사 말씀에 생활 속의 수행을 말씀하셨잖아요.
생활 속의 알아차림을 계속해 나가는 것, 그게 이거예요.
그러므로 도라는 것은 법계를 말하는 것이다. 항하의 모래와 같은 묘용, 금강경에 나오죠. 이것도 이 법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사실 선이라고 하는 것은 두 장 남았지만 안 해도 됩니다.
앞에 했던 제 말들을 잘 이해하셨으면 이 뒤에 것들은 안 해도 되는데, 그래도 큰스님이 너무 멋있어서.
그러면 제가 이제 찬찬히 설명드리는 것 말고, 프린트를 나눠드렸으니까 혹시 또 프린트를 보고도 모르실까 봐 제가 싹 읽어드리겠습니다.
10번은 그냥 읽어보시고,
3페이지 8번. 이 대사 때문에 『달마야 놀자』가 아주 명장면입니다.
이제 건달 두목하고 스님하고 사찰 내를 걸으면서, 건달들이 자꾸 자기를 봐주는 것 같은 거예요. 큰스님이 그래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큰스님, 저희를 이렇게 감싸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큰스님이 “아니, 네가 내 문제를 풀었으니까 더 있으라고 한 건데, 누가 누굴 감싸줬다고 그래?” 그러니까 건달 두목이 “아니, 그래도 착하게 살라든지 남을
괴롭히지 말라든지, 아무튼 뭐 원하시는 게 있으니까 이렇게 감싸주시고 잘해주시는 거 아닙니까?”
그랬더니 큰스님이 “그게 그렇게 궁금해? 아니, 너는 내가 낸 문제를,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을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채웠어?”
그랬더니 건달 두목이 “그건 그냥 진짜 뭔가 이렇게 바짝 하면서 한 거잖아요. 그건 그냥 항아리를 물속에 던졌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큰스님께서 “나도 밑 빠진 너희들을 그냥 내 마음속에 던졌을 뿐이야.”
이런 명대사가 딱 나왔습니다.
숭산스님 가르침은 “오직 모를 뿐.” 이게 숭산스님의 대표적인 가르침인데, 반대로 “오직 모를 뿐”은 지혜의 측면이고, “오직 할 뿐”은 자비의 측면인데요.
“오직 할 뿐”입니다. 그저 그뿐. 너희들을 내 마음속에 집어던졌을 뿐.
여기에 시비가 붙어 있습니까? 안 붙어 있죠. 그래서 ‘할 뿐’입니다.
선무도. 경주 골굴사에 가시면 선무도 하는 스님들이 엄청 많습니다.
10번은 그냥 넘어가시고요.
11번, 여기 이제 비구니 스님 한 분 나오시는데 절하는 장면. 여기는 경주 남산에 탑곡 마애불상군이라는 곳입니다.
가보시면 참 예쁩니다.
12번. 큰스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이 이 말씀이에요.
좌탈입망하시거든요.
그전에 이제 배신한 건달들을 처리하려고 건달들이 절을 찾아왔어요.
그래서 막 잔치를 벌여요.
그랬는데 그 건달들이, 그렇게 이제 수십 명의 건달들이 와서 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그 사람들 아침밥을 밤에 큰스님이 직접 공양간에서 하고 있는 걸 보고
이제 다른 스님이 “아우 스님, 저희가 하겠습니다.” 하니까 “아니야, 아침밥은 내가 할 거야.”
돌아가시기 직전이라서 마지막으로 중생들을 위한 공양을 차려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청명아, 원지야.” 스님으로 부르겠습니다.
“원지야, 중은 말이야. 자기 수행만 열심히 한다고 성불하는 게 아니다.”
여기 포교사도 계시고, 각 팀장도 계시고, 여러 분이 있으실 텐데 자기 일만 열심히 한다고 성불하는 게 아니다.
잘 한번 새겨보시고요.
13번은 제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 이거는 다음에 또 티베트 스님 얘기하니까 그거 할 때 좀 이렇게 ‘티베트 스님들의 참전’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아무튼 다음에 얘기하고요. 14번은 넘어가고요.
15번은 한국 불교가 얼마나 멋있냐면, 안수정등 아시죠?
안수정등은 뭐냐면, 넝쿨에 사람이 매달려 있어요.
이제 밑에는 독사들이, 뱀들이 우글거리고, 위에는 코끼리가 나를 잡아 죽이려고 하는데 검은쥐, 흰쥐가 이 넝쿨을 갉아먹고 있죠.
언제 떨어져 죽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입안에 꿀이 떨어지고 있어요.
오욕락이라고 하는 꿀 다섯 방울이 똑똑, 똑똑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거 받아먹느라고 해벌레하고 있어요. 그게 우리 중생의 모습인데, 화두는 이겁니다.
이거를 가지고 1900몇 년도일까요? 60년대일까요? 70년대일까요? 아무튼 『불교신문』에, 여러분이 보고 계신 『불교신문』 광고란에 이렇게 화두를 던
집니다.
어떤 스님이 안수정등, 여기서 “어떻게 하면 살아나가겠는가?” 이게 광고면에 딱 나온 거예요. 그냥 이 말만 딱.
그러니까 이제 스님들이 엽서로 이 『불교신문』에 보내는 겁니다.
답을. 여러분, 뭐라고 해야 되겠어요? 어떻게 해야 살아나가겠습니까?
쥐를 잡을까요?
독사들한테 약을 뿌릴까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만공 큰스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꿈이니라.”
보월 큰스님은 “언제 누가 우물에 들어갔냐?”
지금 우물에 매달려 있거든요.
그 우물에 누가 언제 들어갔냐. 들어간 것도 없고, 안 들어간 것도 없는 거예요.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고봉스님은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아야, 아야!”
해봉스님은 “부처가 또 부처가 될까?”
용성 큰스님은 “삼밭에 누워 있는 호박이니라.”
호박꽃이 울타리 밖으로 나가서 삼밭에 호박이 열려 누워 있는 모습이랍니다.
아무튼 어쨌거나 호박이 널려 있는 모습인 것 같아요.
전강스님은 이 꿀이 떨어지고 있잖아요.
“달다.”
여러분, 제가 숙제를 내겠습니다. 어느 스님이 맞습니까?
이렇게, 그러니까 중생들은 눈앞에 보이는 것에 속는다니까요.
이렇게 다 속았죠.
여러분, 불교 공부 재미있지 않습니까?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은 홍보부에서 촬영한 것을 사용했습니다.
"누이는 왜 기도하지 않고 그렇게 저렇게 지내십니다.?"
"내 동생이 스님인데 잘 알아서 나를 기도해 주지 않겠습니까?"
공양시간이 되어도 누이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누이가 " 왜 공양을 주지 않습니까?"
나옹선사가 " 제가 먹은 것이 누이가 먹은 것과 다르지 않습니까?" --( 나옹선사)
불기 2570년 9월13일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자문위원 법연 이동엽 합장]

첫댓글 이번 달마야 놀자를 통해 옳고 그름의 시비분별심을 내려놓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삶을 실천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