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잡아함경>을 좋아한다.
- <잡아함경>은 <쌍윳타 니까야>와 거의 비슷하다고 하니.. <쌍니>를 좋아한다는 것이네..
아니! <잡아함경>을 좋아한다.
- 왜 <쌍니>는 아니지?
두 경의 수집정리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 무엇이 다른데?
전자는 마음을 바라보고 있는데 후자는 존재를 보고 있다.
내가 하고픈 일 가운데 <잡아함경>을 재가자 입장에서 정리해 보는 거였는데.. 그러지 못했다.
재가자 입장에서 300 쪽 책 한 권으로 묶었으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잡아함경>이 수집정리 될 때 재가자는 응공을 드리는 자의 역할일 뿐이었다.
그러기에 삶의 주체인 재가자 입장에서..
이 생에서 열심히 선행을 하고 다음 생을 인간이나 천상인 극락이나 천국이라 불리는 곳에 가려는 자를 위한 수집정리 된 <잡아함경>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그런 경이라면 베다라 불리는 힌두교의 경이나 기독교의 <성경>이 있지 아니 한가?.
그것은 신 중심 종교로 인간 중심인 불교와 시작이 다르다. 재가자 중심이라 해도 궁극적으로는 무아를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재가자 <잡아함경> 시작은 <잡. 785. 8정도경>이 되어야 하리라.
<잡. 785경>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떤 것이 정견(正見)인가? 정견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상 사람과 세속의 정견으로 번뇌[漏]가 있고 취함[取]이 있으면서 좋은 세계로 향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성인과 출세간(出世間)의 정견으로 번뇌가 없고 취함이 없어, 바로 괴로움을 없애 괴로움의 끝으로 향하는 것이다.
즉 일반 세상에 살고 있으니 괴로움이 없을 수 없지만 선행을 열심히 해 좋은 세계인 천상에 가려한다. 그런 가운데에도
괴로움 멸을 여기에서 이루려는 구경 목표를 향하고 있는 수행자들 있으니 그들을 잊지 않으며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요새 학교에서는 도덕이나 윤리를 가르치지 않으니 심각한 문제인데.. 절에서는 재가자의 자녀에게 선행 실천을 온전히 가르쳐야만 하리라.
그렇다고 어린이에게 삶은 고해라고 가르친다면 너무 과하지 않은가?^^.
그들에게 삶은 희망으로 사랑을 가르치고 이웃과 함께 행복을 꿈꾸도록 인도해야지..
결국 제2의 탄생이라 불리는 반항세대인 청소년 기가 되면 삶의 본질인 무지와 고에 대해 곧 불교의 핵심에 대한 본격적인 가르침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선행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중요성과 지식은 일반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배우고 있으므로..
절에서 그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해 문자적 가르침을 부가할 이유는 별로 없다. 결국
절에서는 불교의 핵심 목표인 누구나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깨침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가 가르침의 중심이 된다.
그렇지만 <금강경>에 나오는 "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 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 非相 卽見如來" 을
재가자에게 가르칠 경우에는 모든 존재하는 상이 허망하다고 보는 자는 출가 수행하는 자임을 분명히 밝혀주어
존재를 중히 보며 안고 살아가는 재가자가 살 생활에서는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님을 알도록 해야만 한다.
임제스님의 유명한 가르침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에서
'어디든 있는 곳에서 주인이 되라는 수처작주' 는 재가자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
무아를 향하고 있는 출가 수행자가 취해야 할 자세는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절에 가면 신도인 재가자가 주인이 되어야 하고, 주지 스님은 주인이 아님이 되어야 하는데..
현재 절은 어떤가?.
단 주인은 함부로 막 행동한다는 게 아니다. 가장 아끼고 보살피고 잘 관리 운영하는 게 참 주인이 아닌가..
누가 <잡아함경>을 주인인 재가자 눈으로 수집정리에 나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