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7월 한창 무더위가 심한 때, 갑자기 회사의 호출이 있었다. 내 전문분야인 Reefer(냉동운반선)과는 다른 일반 화물선(Cargo vessel), 그것도 다목적선으로 총톤수(Gross Tonnage)가 거의 두 배인 30,000톤이나 되는 「Eastern Splender」호로 급히 가야겠다고 했다.
부산에 입항 예정이니 우선 세면도구와 옷가지만 들고 나가랬다. 현재 승선 중인 공◯영 선장이 갑작스런 허리부상으로 입원하게 되어 미국의 Los Angeles에 입항 중에 교대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선주(船主)는 Hong Kong(香港)의 Fortuna Navigation사(社)랬다.
전혀 다른 분야이기에 부담이 될 것이나 “당신이면 충분히 해 낼 것”이라는 회사 임직원들의 판단이라니 거절할 수가 없이 나 혼자서 나선 길이었다.
묘하게도 이때는 내 일생에 가장 몸이 쇠약해진 상태였다고 기억된다. 원인을 알 수 없이 계속된 하루에 딱 한 번씩의 설사 증세 때문이었다. 부산인제대학 백병원에서는 그것은 설사가 아니라고 약만 한 뭉치 주었다. 아마도 체중이 58kg 정도였었지? 얼굴은 그야말로 반쪽이었다. 병명이 무엇인지? 지금도 모른다. 다만 호전되기 시작했으니 더 이상 신경은 쓰지 않았다.
칠레 입항 중 원경의 'Eastern Splender'호
부랴부랴 서둘렀다. 로스엔젤스의 LAX공항(로스엔젤리스)에 도착했으나 대리인이 나오지 않아 2시간 넘게 기다리다 부득이 임의로 인근 Holyday 호텔에 투숙한 후 전화로 겨우 대리인 가브리엘 씨와 연결되었다. 입항하여 바로 급유(給油)만 하고 일본으로 출항해야 하니 급하게 되었단다.
좌우지간 번갯불에 콩 볶듯 해도 출항은 했다. 업무 자체가 낯선데다 직원들도 처음 얼굴들인데 예정된 일정들이 변경되므로 선내 분위기도 뒤숭숭하여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가뜩이나 성찮은 몸에 무리를 했던가 얼굴에까지 부스럼이 생긴 데다 코와 귀 속까지 붓는다.
인간의 삶이란 것이 원래부터가 그런 것이다. 인간뿐만이 아니고 자연도 그렇고 모든 생명체는 그러게 되어 있다. 늘 평탄하기만 할 수는 없다. 느닷없이 짓밟히고 꺾이고 뒤집혔다가도 가까스로 일어설 수도 있지만 영영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듯이 배는 제 갈길을 찾아 갔다. 일본 요코하마(横浜)에 입항, 병원엘 가보니 얼굴과 기타 등등이 알레르기 증세라고 했다. 그동안 홍콩의 선주와 교신 결과, 처음 예정과는 달라진 게 많다. 입항 예정지인 부산이 취소된 것뿐만 아니고 입거(入渠 : Docking)하여 정기검사를 받을 곳도 부산에서 일본 시모노세키(下關)의 MHI(미쓰비시중공업) 조선소로 바뀐다고 했다.
“빌어묵을…… .” 전 선원이 학수고대하고 있는데…… . 입에서 저절로 쌍욕이 나왔다. 나 뿐만이 아니고 모두가 그랬다. 역시 믿을 수 없는 것이 선박의 일정이다. 한 자리에 말뚝 박힌 것이 아니고 늘 물 위에 떠 있으니….
시골 우체부, 곳곳에 편지 한 장씩 배달하듯 남미(南美)에서 적재한 일차 광물(鑛物)들을 일본 구석구석 제철소(製鐵所)가 있는 곳에 몇 덩어리 떨어뜨려 주는 모양이었다. 8월 20일에는 일본열도 서쪽의 도야마(富山)에서 마지막 덩어리를 내리고 시모노세키(下關)로 내려오는 도중 노도한토(能島半島)를 지나면서부터 강풍과 태풍이 할퀴고 남긴 굵은 너울(うねり)에 시달렸다. 큰 선박이라 역시 움직임도 굵고 심했다.
그야말로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목적지, MHI 조선소에 접안했다. Hong Kong에서 온 선주 측 Mr. Tse(쎄)란 영감님과 젊은 Mr. Tung(퉁), 두 중국인을 만났다. 아마도 소유주는 아닌 듯 하며, 직원인 듯 싶기도 하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가 없었다. 홍콩이 영령(英領)인 시절이었다. 선거작업(Docking)에 대한 공사 내용을 일일이 점검하고 확정했다. 만기(滿期)된 선원들 교대도 했다. 무엇보다 집에서 보낸 일용품들이 마치 식구들을 만난 듯 했다.
조선소에서 5일간 많은 작업들을 했다. 당초 예상보다 많은 수리(修理)도 마쳤다. 앞으로 1년간은 큰 탈 없이 잘 움직일 것이다. 일본 TV에선 한국이 물난리로 전국이 야단이라고 연일 뜬다. 우리는 아직 자연 재난에 약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선진국이 멀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유비(有備)’가 빠져있다는 느낌이었다.
거의 마무리가 돼가는 판에 취사부 조리장(調理掌)이 올라와 애로사항이 있다고 했다. 조리실을 비롯한 취사부 관련 창고 등에 서식하는 바퀴벌레들을 좀 소탕(?)해 달라고 했다. 직접 현장을 확인했다.
“어어! 이럴 수가!” 마치 벌레의 사육장 같았다. 소름이 쫙 끼친다. 대뜸 일갈했다. “뭐 하는 사람이야? 왜 이걸 여태 얘기도 않고 그냥뒀냐?”고. 당장 Mr. Tse를 불러 확인시켰다. 그 영감도 놀란다. 실은 나도 그간 몇 차례 선내 곳곳에서 바퀴벌레를 보고 잡은 적이 있긴 했다.
시간적으로 처리가 어려우니 선장 재량으로 최선의 방법을 강구하고 보고만 해 달라고 했다. Sign(싸인)도 받았다. 그들 말로는 바퀴벌레를 zhāngláng(蟑螂 쫭랑)이라 했다. 텔렉스를 할 때 ‘ZLOP(zhāngláng Operation)’이란 문구를 사용하기로 했다. 소위 ‘바퀴벌레 작전’의 약자였다.
고약한 바퀴벌레(빌려온 사진)
현지 일본인 대리점과 상의했더니 약국(藥局)을 소개했다. 약사(藥師)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특별히 주의사항을 일러준다. 자칫하면 사람이 다칠 수도 있을 만큼 강한 청산가리 성분의 훈증용(熏蒸用)으로 ‘아스렛트(アースレット)’란 이름의 약을 소개하며 거듭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혹시라도 필요할 응급처지약을 포함, 2회분의 약값을 3회분 산 것처럼 올려 영수증을 받고 그 돈으로 음료수와 간식도 장만했다. 극약이라 선장실에 특별 보관했다.
함께 해준 선주측 Mr. Tse 영감님이 수고는 했다만, 보기보다 짜다. 그렇게 함께 다니며 통역까지 했는데 밥 한끼 같이 하잔 소리 없이 갔다. 그러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영어도 늘었다는 것으로 위로를 삼았다. 뒷 얘기지만 그가 이때 나를 잘 본 모양이었다.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항해 중 며칠간 해상(海狀)이 조용한 날을 잡아 ‘ZLOP’를 실시하기로 했다. 설명서를 여러 번 읽었다. D-day 전날, 간부 선원을 모아 전담 부서를 구성했다. 물론 작전 최고책임자는 내 자신이다. 각 부서장에겐 핸드토키를 한 대씩 쥐어 주고 수시로 통화가 가능하게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선원의 안전이었다. 먼저 약의 성분을 알리고 가장 명심해야 할 사항은 밀폐임을 강조했다. 물이 닿는 순간 독가스가 발생, 구석구석까지 침투하게 되어 있으니 철저한 밀폐가 사고 예방의 첫 번째 조건이다. 방법은 용기에 물을 약간 부어 방 한가운데 놓아 두고 신호에 따라 일제히 약통을 물속에 넣은 다음 신속하게 나와 테잎으로 문을 밖에서 밀폐하고 바람을 맞서도록 지정된 장소로 대피해서 2-3시간 기다리는 것이다. 자칫하면 사람이 바퀴벌레한테 잡혀 태평양 한가운데서 수장(水葬)을 당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점심을 마친 후 소탕작전에 돌입했다. 미리 선교와 기관실 이외의 통풍구는 모두 막았다. 전 선원이 각자 침실과 맡은 구역에 대기 중 “뚜~뚜~” 투약 신호를 울리고 30초가 못 됐는데 한 명 빠짐없이 임무를 완수하고 피난장소에 모였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일상 작업시에도 위험할수록 지시에 잘 따른다. 얘길 하지도 않았는데 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은 선원도 있었다. 자기 보호 본능 때문이다. 당직자를 제외하고 모든 작업을 중지하고 모여 담배와 음료수 한 모금과 웃음을 나눴다.
언젠가 중동전쟁 중에 이란의 호르무스 해협을 통과하기 전 불의의 피격(被擊)을 예상하여 구명용(救命用) 보트를 수면 위 3~4미터까지 내리는 퇴선훈련을 한 적이 있었다. 평상시엔 반 시간도 더 소요되던 훈련 시간이 불과 몇 분만에 전원이 안전장구를 착용하고 보트에 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웃은 적이 있다.
3시간 후에 방독면을 쓴 두 사람이 들어가 막았던 통풍구를 벗기고 환기부터 실시.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다. “어어어!!”, “아이구!!” 모두가 놀랐다. 어디에 그렇게 많은 벌레가 숨어 있었던 것일까? 엄청 많은 바퀴벌레가 바닥에 등을 깔고 죽어 있었다. 어떤 놈은 아직도 살려달라는 듯 다리를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독하기는 독했던가 보다. 환기 이후에도 한참 동안 머리가 띵하게 아팠다. 연기 타입이라 구석구석 침투한 모양이다. 대 성공이었다. 한 번 더 투여할 여분을 마련했으니 기회를 보기로 했다. ‘Success! ZLOP’라고 텔렉스를 띄웠다. ‘ZLOP’란 문자를 보고 통신장도 무슨 뜻인지? 혹시 스펠링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물었다.
바퀴벌레는 지구상 극지방과 해발 2,000m 이상인 곳을 뺀 세계 전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각종 질병을 옮기는 해충으로 여긴다고 나와 있다. 가장 오래된 화석은 2억 9500만년~3억 5400만년 전인 석탄기 때 만들어진 것이라니 끈질기고 강한 매개체임은 분명하다.
사진을 본사에 보내버려 남아 있지 않아 유감이었지만, 봤으면 누구나 놀랐을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버티고 지내온 것을 보면, 예부터 자린고비로 또한 다소 지저분하기로 알려진 홍콩 선주에게, 큰소리 하지 못한 ‘빈자소인(貧者小人)’의 처지에 있었던 우리의 상황을 여지없이 보여준 현장이기도 했다.
이 보다 11년 전인 1973년 4월이던가. 2등항해사 시절에 동남아 보르네오섬에서 적재한 거대한 통나무 목재를 일본 항에서 내리기 전, 일본 농림성(農林省)에서 육상의 삼림(森林)를 보호하기 위해 외국에서 수입되는 목재에 동반되어 들어오는 해충(害蟲) 예방을 위해 목재검역을 받은 적이 있었다.
통나무 원목을 적재한 운반선(빌려온 사진)
선박을 외항 멀찌감치 정박시키고, 작업요원 5명이 승선, 방독면을 쓴 채 전 선창(船艙)을 밀봉하고 CH3BR(메칠 푸로마이드)라는 극(劇)가스를 투입한 다음 후에 혹시나 밖으로 누설되는 곳이 없는지를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세심하게 확인 ‧ 순찰하였다.
물론 본선 선원도 안전을 위한 당직자 5명을 제외한 전 선원은 하룻밤 숙박비 6,000엥을 지불하여 육상으로 내보냈다. 모든 경비는 농림성 몫이라 했다.
목재소독 한 번에 비용이 당시 가격으로 7-80만엥, 정박일수의 비용까지 합하면 100여만엥이 넘었다. 그러나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던 그만큼 자국 산림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인 수단에는 놀랐다. 본선 책임자로 내가 남았다. 시간 맞춰 날라다 주는 도시락으로 끼니를 떼웠다.
완전히 소독을 마친 후에 다시 안전검사(Safety Inspection)까지 한다. 일본인들의 철저한 정신을 여기서도 보았다.
상륙했던 전 선원이 모두 귀선했다. 예상했던 대로 눈이 벌겋게 충혈된 자, 아직도 엊저녁의 술기가 남아 고래고래 고함치는 넘도 있다. 서글픈 현상이다.
푸근한 봄날! 봄비가 내리는 오후, 현재 내가 어디쯤 존재하고 있는가를 선뜻 알지 못한다. 한참 생각하고 해도(海圖)를 머리속에 그려보면 일본 큐우슈우(九州) 서쪽의 자그마한 항구에 있음을 안다. 부산과의 거리, 내 가정과 가족이 있는 그곳과의 거리가 그리 먼 곳도 아니다. 느린 배로 가도 하루면 닿고도 남는다. 그런데도 가슴 깊숙이 안타까움만 쌓인 채 존재의 위치마져 잊고 있으니 도대체가 어떻게 된 것인가?
‘자국(自國)에 수입되는 죽은 목재도 이런데 하물며 사람이 사는 곳에 그 위험한 ‘바퀴벌레’가 공존한데서야….‘ 참으로 한심스런 감회에 잠긴 날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