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안녕 / 최미숙
세월 참 빠르다. 한 해의 시작인가 싶으면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정년퇴직한 지 벌써 3년째다. 올해 다시 학교로 들어갔다. 1주일에 열네 시간, 교실에서 적응하지 못하거나 기초학력이 떨어진 아이를 도와주는 일이다. 오전에 두세 시간이라 부담도 없고 오후에는 내 시간을 쓸 수 있어 좋다. 아울러 화, 목요일 오후에는 ‘순천 SOS 어린이 마을’ 아이 셋(1학년과 4학년 학생 둘)에게 한글, 유창성과 문해력을 가르치기로 했다.
3월 셋째 주, 갓 돋아난 새순이 싱그럽다. 아침에 학교에 들어서니 낯익은 아이들이 환한 얼굴로 반긴다. 6학년 아이들은 하이 파이브를 하며 이번에 수업할 책 제목을 묻기까지 한다. 올해는 독서 수업 안 한다고 하니 아쉬워하는 표정이다. 녀석들, 책 읽기를 그렇게 싫어하더니 그래도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었으면 하는 내 바람을 알았으면 그걸로 족하다.
올해 내가 만나는 학생은 학교와 시설에서 각각 셋씩, 여섯이다. 모두 한글을 제대로 익히지 못해 수업 시간이 괴로운 아이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겉돌다 급기야는 부진 학생으로 초등학교를 마칠 게 뻔하다. 그 후의 일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2학년 교실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아는 체하며 뛰어와 안긴다. 지난해 1주일 세 시간씩 놀이 수업을 했던 터라 정이 많이 들었던 모양이다. 첫 시간, 아이 옆에 앉아 활동을 도와주며 지켜봤다. 한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니 다른 친구에 비해 서너 박자가 느려 하나하나 설명을 해 줘야만 알아듣는다. 본인 이름을 쓰는데 필순도 엉망이다. 누군가는 봤을 텐데 아무도 고쳐 주지 않았나 보다. 이렇게 뒤처지다 보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하다. 적기에 수준에 맞는 개별화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지 못하면 결국은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이 되고 만다. 시간마다 멍하니 앉아 있을 아이를 생각하니 안쓰럽기만 하다.
누구나 당연히 한글을 알고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세상이 바뀌고 인공 지능 시대가 열린다지만 한쪽에서는 여전히 학업면이나 정서적으로 어려운 아이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몇 년 동안 이런 아이들과 만나면서 천재는 아니지만 학교 공부를 따라갈 수 있을 정도의 지능으로 평범한 일상을 산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다시 한번 실감한다.
기억을 더듬으면, 일고여덟 살에 책상이 없어 바느질하는 엄마 옆에 엎드려 한글 공부를 했다. 1968년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종합장을 주로 썼다. 종이가 귀했던 시절, 누르스름한 갱지 앞뒤로 두꺼운 검정 표지를 덮고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철끈으로 묶어서 공책 대신 썼다. 엄마는 일일이 가로세로 줄을 그어 네모 칸을 만들고는 가로에는 자음, 세로에는 모음을 써 줬다. 그러면 나는 빨간 색연필로 빈칸에 합성한 글자를 쓰면서 소리 내어 반복해서 읽었다. 그렇게 한글을 떼었다. 고등교육을 받은 부모도 방법을 몰라 자신의 아이를 가르치기 어려워하는데 초등학교만 나온 엄마는 어떻게 알았는지 생각할수록 대단하다. 엄마에게 읽고 쓰기를 제대로 배워서인지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하는 데 별 지장이 없었다.
부모님 덕분에 건강하게 태어나 직장을 다니며 애 셋을 독박 육아하면서도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 또 교육대학을 나와 42년을 교사로 잘 지내다 정년퇴직했다. 그 모든 일을 너무나 당연하다 여겼는데, 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키워 준 부모님과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도와준 사람들 덕분이라는 생각에 고마움이 새록새록 솟는다.
세 아이가 잘 자라 자기 역할 잘하고, 두 아들은 가정을 이루었다. 큰 부자는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으며 퇴직하고도 여전히 팔팔하게 일할 수 있는 건강한 몸까지, 이 정도면 복 받은 인생 아닌가.
내 나이 예순여섯, 이제 일흔을 바라보며 산다. 언제 그런 나이가 됐는지 생각하면 끔찍하지만, 이제는 죽음도 서서히 받아들일 준비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내 묘비명 하나쯤은 유언으로 남기고 싶다.
‘덕분에 복 있는 인생이었습니다. 다들 고마웠어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