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화요일: 변론의 날
26.03.31화(火)마 21:23-26:13, 막 11:20-14:9, 눅 20:1-21:38, 요 12:20-50
▣오늘의 고백
“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이날은 예수님께서 종교지도자들과 치열하게 논쟁하신 날입니다. 겉으로는 ‘질문’이지만, 사실은 권위에 대한 싸움입니다.
▣사람들은 권세를 묻지만, 사실은 순종을 피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이 묻습니다.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 예수님은 이 질문이 진리를 알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순종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나온 질문이라는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되묻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이 말씀의 핵심은 알고 있는 진리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진리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 가지의 비유
두 아들의 비유(말이 아니라 행동이 중요함), 악한 농부(맡겨진 것을 자기 것처럼 사용), 혼인 잔치(초청받고도 거절), 이 비유는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을 거절하는 삶을 말합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예수님의 답은 단순한 정치적인 지혜가 아니라 “너 자신은 누구의 것이냐”에 대한 답입니다. 동전에는 가이사의 형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이사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우리는 누구의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존재입니다.
▣부활 논쟁 :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두개인은 부활을 부정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다. 신앙은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지금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과부의 두 렙돈을 하나님은 전부로 보십니다.
부자는 헌금함에 많이 넣었지만, 과부는 전부를 넣었습니다. 하나님은 양이 아니라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일부가 아니라 전부입니다. 예수님이 과부의 연보를 칭찬하신 것은 신앙의 핵심이 외형적인 화려함이나 양(量)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고 진실한 내면적인 질(質)에 있음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탄식
예수님의 마음은 분노가 아니라 눈물입니다. “내가 너희를 모으려 했으나 너희가 원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탄식하십니다. 자기 땅에 오셨지만, 영접하지 않는 백성들을 향한 탄식은 예루살렘이 황폐케 되리라는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깨닫지 못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바라보고 탄식하는 예수님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핵심은 하나입니다. 누가 내 삶의 주인인가? 나는 하나님을 인정하는가? 아니면 종교지도자처럼 통제하려고 하는가?
▣자기 점검
1. 나는 이미 알고 있는 말씀에 순종하는가? 아니면 더 알고 싶어 하면서 순종을 미루고 있는가?
2. 내 신앙은 말인가, 행동인가? 나는 “예”라고 말만 하는 아들인가?
3. 내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진짜 하나님께 드린 영역이 얼마나 되는가?
4. 나는 하나님께 일부를 드리는가, 전부를 드리는가?
5. 예수님의 탄식이 혹시 나를 향한 것은 아닌가?
And...
고난 주간 묵상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던 그때의 종교지도자나 유대인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은 아닌지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나는 잘 믿고 있는 줄 알았는데, 주님의 눈에 보이는 나의 모습은 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판단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잊고 있었습니다.
저들은 저들의 유익을 위해 주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았습니다. 지금, 나는 내 유익을 위해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이 옳다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며 나 자신을 변호하는지, 주님 어리석음을 용서해주세요.
고난 주간에 죄를 회개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죄 없으신 주님만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 사람을 위해 죽으시고, 나 또한 그 사람과 다를 바 없는데 주인의 위치에 앉아 옳고 그름을 판단하였습니다. 주님, 나의 죄를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세리와 같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 살려주심에 감사할 뿐인데 주님, 부디 바리새인이나 유대인과 같은 마음을 갖지 않게 하시고, 세리와 같이 나 자신을 보며 날마다 절망하게 하소서. 그래서 주님의 존재를 더 필요로 하게 하소서.
나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날마다 죽겠습니다. 이미 죽은 나는 지금, 이 상황에서 또 죽겠습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을 박는 것입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금, 이 상황에서 또 죽겠습니다. 오! 주님, 내가 죽고 날마다 주님이 살게 하소서. 날마다 주님만 살아나도록 내가 죽게 하소서.
고난 주간 주님의 십자가 묵상이 내 자아가 죽는 훈련으로 이어지길 기도합니다.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 모두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통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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