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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이란 시간은 얼마나 긴가? 한 아기가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릴 만큼 성장할 시간이다. 강산이 한 세 번쯤은 바뀌었을 거다. 가느다란 묘목 한 그루가 굵은 아름드리 나무로 자랄 정도다. 독자들 중에서는 아직 30년이란 세월을 채 살지 못한 이십 대도 있을 거다. 30년이란 시간은 이토록 압도적이다.
30년이라는 시간만 해도 아득한데 그 삼십 년을 사형수들과 함께 보낸 사람이 있다. <인생 9단>의 양순자 작가다. 향년 일흔 셋의 할머니다. 30년간 전국의 교도소에서 교화위원으로 사형수들을 만났고 11명의 사형수를 형장으로 떠나 보냈다. 인생의 절반 가까이 성년의 나의 대부분을 사형수들과 함께 보낸 셈이다. 사형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존재 아닌가. 이 끄트머리 인생들과 오랜 만남을 통해 그가 깨달은 지혜를 나눈 <인생 9단>은 특별히 마케팅이랄 것도 없이 알음알음 40만부가 팔려나갔다. 누가 생사의 기로에선 사람들과 함꼐 꿋꿋하게 삼십 년을 버텨올 수 있었을까? 독자들이 그 강단과 힘을 알아본 것이다.
작가의 새 책 『어른 공부』가 출간되었다. 출간 전 그는 대장암 수술을 두 번하고 항암 치료를 9개월간 했다. 지금은 나았는지 모를 암과 함께 살고 있다. 홍대 한 작은 카페에서 만난 작가의 첫 인상은 도무지 암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 같지 않았다. 여느 지혜로운 사람이 그렇듯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맑고 총기 있는 눈이었다. 과연 많은 사람들이 인생 9단으로 인정한 그가 이야기 하는 어른 공부는 어떤 공부일까?
30년이라는 시간이 일단 압도적이다. 그것도 죽음을 목적에 앞둔 사람들을 30년 만나셨다. 게다가 호스피스 활동도 아니고 사형수 교회위원 활동이다. 어떻게 30년이나 만나셨나?
- 사실 나는 교도소에 들어가서 사형수들 만나는 일 하고는 안 어울리는 사람이지. 사실 나는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야. 내가 왜 법을 잘 지키느냐, 겁이 많으니까. 난 탈선을 못해. 사람 없는 건널목 앞에서도 길을 못 건너가요. 나라고 왜 그냥 길 안 건너고 싶겠어? 나는 항상 어디선가 나를 보는 시선이 있다고 믿어. 어느 날 잘못은 다 들통 나게 되어 있어. 나는 개신교 신자야. 개신교에서는 절대자께서 우리를 항상 지켜보신다고 하지. 나는 내 친구들처럼 권사도 아니고 아직도 집사잖아. 내 친구들 보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나 많거나 신학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래도 내가 확실히 내 친구보가 확실하게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보고 계시다는 인식인 거지. 나를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데 어떻게 나쁜 짓을 할 수 있겠어? 사실 나는 나쁜 일 하는 사람들 별로 안 좋아해.
처음부터 좋아서 하신 일은 아니셨나 보다.
- 나는 교도소에 안 가고 싶었어. 그런데 가야 될 거 같더라고. 종교적으로 표현하자면 ‘소명’ 같은 사명감이랄까? 나는 남들보다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사랑 많이 받고 컸어. 뭔가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내가 살아온 것만큼 뭔가를 주어야 할 것 같았어. 그것도 내가 내키는 대로 주고 안 주고 하는 건 아니었지. 안 그러면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싶더라고.
예전에 교도소 처음 들어 갈 때 일이야. 원로 권사님들은 꿈이 크시더라고. 교도소에서 사도 바울을 만들겠다고, 서울 구치소에 사랑을 심겠다고 하시더라고. 나는 그렇게 기도 못 했어. 그저 한 사람, 내가 한 사람 정도는 아픔을 달래주고 위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어. 삼십 년을 해보니까 한 사람을 품으려고 했던 사람은 더 많은 사람도 품을 수 있더라고.
사형수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 생각해봐. 누가 법을 어기고 싶겠어. 들어가서 보니까 그들이 정말로 불행한 삶을 살았더라고.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왜 잘못 살 수 밖에 없었는가 대한 생각 밖에는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었어. 그런 사람들한테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어 뭘 이야기 하겠어. 내가 암투병을 했잖아. 대장암 수술을 두 번을 하고 항암치료 9개월 했어. 투병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 그저 잘 죽어야겠다는 생각뿐 이었지. 잘 죽는 게 뭐겠어? 이생의 인생을 잘 정리하는 거잖아? 정리를 한다는 게 뭐야. 회개하고 내가 지은 죄를 잘 정리하고 가는 거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생각보다 지은 죄가 많더라고.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험담을 하던 친한 친구가 있었어. 정식으로 찾아가서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했지.
내가 사형수를 보며 항상 생각한 게 그거야. 그들은 이미 인생의 종착역에 와 버렸잖아. 이제 잘 죽는 수 밖에 없는 거야. 사형수들은 수의도 못 입혀 보낼 수 없어. 연고자가 없으면 사형 집행 후에 그냥 가매장을 해. 아니면 나 같은 교화 위원들이 맡아서 장례를 치뤄 주지. 수의 한 벌 못 입고 가는 사람들에게 뭘 해줘야 할까 고민을 했어. 그들이 인생을 잘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어. 자신의 범죄로 희생된 사람한테 용서를 구하는 것 당연한 것이고. 그들이 자신의 인생 자체를 잘 정리하고 갈 수 있었으면 싶었어. 확실히 제대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보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정리하면 그래도 그 사람들 마음이 좀 가벼워지겠더라고.
연고가 없거나 가족들에게 버림 받은 사형수들 묘자리도 마련해 주셨더라.
- 30년 전에는 화장의 개념이 별로 없었어. 사형수라고 그냥 아무 데나 묻어주는 게 싫더라고. 금촌에 가면 기독교 묘지가 있어. 거기에 제대로 묻어 줬지. 성경책을 사다 주더라도 난 항상 가죽표지로 된 금박지 성경을 사다 줬어. 내가 쓰는 것은 아무 거나 써도 돼. 그들이 사형수나 죄수라고 해도 그들 업수이 여기면 안 되지. 좋은 것을 사다 줘야 해. 그래야 또 그들이 성경책도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 거 아니야?
내가 묻어준 사형수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어. 알고 봤더니 기독교 묘지 쪽에서 사형수 무덤을 다 자투리 땅에 썼더라고. 내가 나중에 묻어주고 나서 보니까 그렇더라고. 참 미안한 거 있지? 살면서 불행했고 불쌍한 인생인데 눕는 곳이라도 네모 반듯하게 좋은 땅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사실 2년, 3년을 사형수 옥바라지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 그런 부분을 생각하면 기독교 묘지라는 곳에서, 기독교인들이란 사람들이 그 정도도 신경을 못 써주는가 싶어서 좀 아쉬운 감이 있지. 사실 이런 일을 겪으면 종교인들에 대한 회의 같은 게 들기도 해.
인생에는 정리와 결산이 필요해
아까 인생 정리에 대한 이야기 하시다 회개를 말씀 하셨다.
나는 지금도 매일, 자주 회개를 해. 사람이란 존재는 찾으면 항상 회개할 거리가 나오는 존재잖아. 회개를 하고 사는 인생과 그렇지 않은 인생을 많이 달라. 요즘 나는 우리 둘째 손녀 딸이 미워서 보기 싫어졌어.(웃음) 그 아이가 명색이 미대생인데도 자기 방 정리를 안 해. 자연스럽게 하고 산다잖아. 그 방에서는 무엇이 어질러졌는지 알 수가 없어. 내 상담실 가면 종이 한 장이 떨어져도 바로 알 수 있어. 정리가 잘 되어 있으니까. 회개라는 것도 비슷하지. 회개를 늘 한 사람은 금방 새로 회개하고 정리해야 할 거리가 보이게 돼 있어. 회개를 안 하고 사는 사람들 도무지 뭘 회개해야 할지 뭘 정리해야 할지 모르는 거지. 사람의 인생에는 정리가 필요하고 결산이 필요한 법이야.
요즘 사람들 보면 삶 속에서 결산이니 정리니 안 하고 산다.
- 종교를 가지고 안 가지고를 떠나서 회개는 필요해. 잠 자리에 들기 전에 거창하게 무릎 꿇고 예수님, 부처님 찾지 말고 잠시 하루 일과의 필름을 되돌려 보는 거야. ‘내가 상처를 준 사람은 없는가’, ‘내가 말을 잘못 한 일은 없는가’ 체크 해보는 거지. 남이 나한테 뭘 했는지 생각하지 말고 내가 뭘 했는지 살펴보는 거야. 그렇게 하루, 한 달, 일 년을 정리하다 보면 인생이 정리하면서 살게 돼. 인생 정리는 꼭 필요해. 정리를 안 하고 살면 결국 나중에 중요한 걸 잊어버리게 돼. 휴지하고 중요한 서류가 같이 있으면 실수로 중요한 서류가 버려질 수 있잖아?
정리하고 결산하고 살면 중요한 걸 남길 수 있어. 자꾸 쓸 데 없는 걸 내 속에 넣어 놓으면 머리가 아파지잖아. 관계에서의 문제, 해묵은 감정, 쓸 데 없는 정보, 이런 것을 머리가 잔뜩 집어 넣어 놓으니 머리가 개운하겠어? 내가 차를 19년 타고 폐차를 했는데 차 번호를 몰라. 차 번호 확인이 필요하면 수첩에 적어 놓으면 되잖아.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그 사람 말 중에 꼭 기억해야 할 말은 꼭 기억을 해놔. 채무 관계도 그래. 내가 돈을 빌려준 사람이 있다면 빌려간 사람이 기억을 해야 하잖아. 나는 그냥 잊어버려. 나는 내가 갚아야 할 사람만 기억을 해두지. 이렇게 정리를 하고 사니까 머리가 좀 헐렁헐렁해지는 거야. 그런 면에서 다른 어른들보다 좀 더 기분 좋고 개운하게 사는 거 같아.
나는 이런 어른이고 싶다
인터뷰 준비하면서 찾아봤는데 <인생 9단>이 은근하게 많은 사랑을 받았더라. 이 책은 <인생 9단>과 어떤 차이가 있나?
- 이 책은 <인생 9단>보다 좀 더 깊이 들어갔지. 영적이라고 할까? 이 책을 써야 할 이유가 있었어. 우리 시대에 생각보다 어른이 없어. 왜 안철수 교수한테 열광하겠어? 젊은이들이 참 어른들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 어른을 찾다가 안교수를 발견한 거지. 젊은이들한테 비춰진 어른들의 모습이 뭐야? 부정 부패 저질러서 오랏줄에 묶여 들어가고 했던 말 안 했다고 발뺌하고 그런 모습들이잖아. 예전에 내가 자랄 때는 어른이 많았어. 부모가 어른 역할을 못해도 동네 이장이나 서당 훈장님이 어른 역할을 해줬지.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코치해주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고 그랬어.
왜 얼마 전에 지하철에서 한 청년이 할아버지를 때린 일이 회자 됐잖아? 아마 모르긴 해도 분명 꼰대 같은 말을 했을 거야. 요즘 젊은이들이 불만과 분노에 가득 차 있잖아. 아마 그런 말을 들었다면 나라도 때리고 싶었을 거야. 어른은 뭔가 존재로 젊은 사람들을 압도할 수 있어야 해. 왜 사람을 함부로 대하려 하거나 폭력을 쓰려고 할 때 있어. 왜 사람한테 ‘이 사람은 어른이구나’ 하고 느껴질 때가 있잖아. 그런 때 멈칫하는 경우가 있지. 아마 어른으로 느껴질 정도의 사람이라면 말도 지혜롭게 했을 거야.
아, 일단 꼰대스러운 잔소리는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듣기가 싫다.
- 우리 손주 녀석이 요즘 PC방에 빠져 있어. 어느 날 우리 집에 와서 날 좀 도와줘서 용돈을 좀 줬지. 용돈을 주면서 “요즘 너의 그 PC방 사업은 잘 되가니”하고 물으면서 줬지. 나라고 PC방 가는 거 격려해주고 싶겠어. 속이 좀 상해도 그냥 말에 씨를 담아서 좋게 해주는 거지. 손주 녀석이 자기 한 일에 비해 너무 용돈이 많다고 하더라고. “너희 아빠가 아무리 잘나가도 그렇게 돈은 못 받을 거야. 우리 손주가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야”라고 이야기 해줬지. 일단 어른들은 젊은 사람들한테 격려가 되는 사람이어야 해.
진짜 본받고 싶은 어른이 없는 어른 부재의 시대에서 살아가는 거 같다.
- 그래, 그렇다고 ‘어른이 없어, 어른이 없어’ 이러고 다는 것도 좀 우습잖아. 나는 나라도 좀 제대로 된 어른이 되자고 생각해. 이 책은 ‘여러분들 꼭 이런 어른이 되세요’하고 말하는 책이 아니야. 그냥 ‘이렇게 사는 어른도 있구나’ 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지. 나처럼 사는 어른도 있다고 생각해보면 젊은 사람들한테 약간의 희망이라도 될 수 있지 않겠어? 내 사무실이 20평이야. 거길 밝히려면 빛이 꼭 20평씩이나 필요한 게 아니잖아. 조그만 불빛만 있으면 돼. 나는 그런 작은 불빛이 되고 싶어.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그런 건 내 몫이 아닌 거 같아. 이 책은 그런 나의 고백이지, 나는 이런 노인이고 이런 노인이 되고 싶다는.
책에 보니 자녀 교육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자녀들에게 하는 말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와 닿더라.
- 요즘 대부분 가정에서 물을 정수해 먹잖아. 아이들이 바로 물을 마시듯 부모의 말을 마시고 자라. 물은 정수해서 먹이면서 말은 그렇게 안 해. ‘니가 어디서 뭘 하고 살겠냐’, ‘이 쓸모 없는 녀석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기왕이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나도 ‘앞으로 인격자가 될 녀석이 이러면 되겠냐’하면 좋잖아. 부모의 언어가 자녀들의 양식이라니까. 특히 어린 자녀들이 부모의 말을 기억 못한다고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돼. 무의식 중에 다 남는 다니까.
자녀뿐이 아니라 남편이 아내한테도 하는 말도 그렇지. 원래 여자는 감성적이잖아. 남편이 말로 그 감성의 한 귀퉁이만 건드려 주면 돼. 회사 일에 짜증이 잔뜩 나서 집에 들어가는 아내까지 인상을 쓰고 있다고 생각해봐. 들어가면서 ‘왜 인상을 박박 쓰고 있어’이러지 말고 ‘당신 그 예쁜 얼굴에 인상을 쓰니까 보기가 좀 안 좋다’ 이렇게 이야기 해봐. 일단 예쁘다는 좋은 말을 들었잖아. 감정이 안 상한다고. 좋은 말 하는데 돈 들어가는 거 아니잖아. 기왕이면 똑 같은 말이라도 좋고 아름답게 하자고.
내가 암투병 중에 성경의 잠언 말씀을 좀 읽었어. 잠언 말씀에 말을 삼가고 조심하란 말씀이 참 많아. 나쁜 말은 고스란히 자기한테 돌아오게 되어 있어. 아무리 상대편이 잘못을 하고 그것 때문에 안 좋은 말을 했다고 쳐봐. 결국 남는 건 내가 한 안 좋은 말이지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더라고. 언어는 정말 아름다워야 해.
책에 보면 생면부지의 우체국 직원이 급한 사정을 이야기하며 보험을 들어달라고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자리서 보험을 들어주시더라. 개인적으로 형이 보험 영업을 했었다. 원채 내가 남들한테 아쉬운 소리하는 것도 듣는 것도 싫어하는 타입니다. 형도 동생한테 아쉬운 소리하긴 싫었겠지만 나도 흔쾌히 받아주지 못했다.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좀 찔리더라.
- 그건 기자 양반이 아직 어려서 그래.(웃음) 내 똑똑한 남동생 하나가 보험회사 임원으로 갔어. 어느 날 동생이 집에 왔는데 보험 회사에 들어갔다는 거야. 보험에 보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더라고. 동생한테 ‘너, 보험회사 다니는 동안 우리 집에 오지 마라’ 이랬다니까. 그때 걔가 나한테 얼마나 상처를 받았겠냐고. 내가 책에도 썼지만 나라고 홍천 터미널의 이등병처럼 헤맨 적이 없었겠어? 나는 얼마나 헤맸겠어. 더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지. 홍천 터미널이 이등병이 인제 역의 당당한 병장이 되려면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잖아. 내가 책을 낸 건 독자들은 나처럼 헤매지 말라고 이야기 해주는 거지. 기자 이야기 듣다 보니 남동생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남동생한테도 용서를 구하고 싶네.(웃음)
옷가지를 버리실 때도 항상 세탁을 하고 드라이클리닝을 해서 버리신다고 했다.
- 항상 옷을 정리할 때 그렇게 하곤 해. 나한테는 사이즈나 디자인이 안 맞아서 쓸모가 없어져서 버리는 물건이지만 누구한텐가 갈 때는 꼭 필요한 물건이 될 수 있잖아. 항상 버릴 때 ‘세탁을 한 옷이다, 드라이 맡긴 물건이니 그냥 가져가서 입으면 된다’고 메모를 남겨 놓지. 그러고 수거함 앞에 두면 한 시간이면 옷이 없어지더라고. 옷을 구겨서 버리면 꼭 나를 그렇게 버리는 것 같더라고. 기왕이면 가져가는 사람도 기분 좋게 가져가면 좋잖아. 헌 옷을 통해 인격 대 인격이 만나는 거고.
예전에 교도소 선교회에서 바자회를 한다고 헌 옷을 모은 적이 있어. 글쎄, 헌 옷도 이런 헌 옷이 없더라고. 나는 거의 새 옷을 들고 갔지. 나하고 친한 교수 하나가 내가 내놓은 옷을 사서 입고 강의를 했다고 자랑을 하더라고. ‘너는 내 옷 입고 가서 강의해 놓고 네가 내놓은 옷은 단추도 다 떨어지고 이게 옷이냐’ 그랬지. 나는 신앙이 있는 사람이니까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된다고. 과연 어떤 것이 옳은 건지 말이야. 하나님께서 보신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못하지.
진짜 어른답게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 구실하며 사는 게 어려운 거 같다.
- 40살 전까지는 좀 몸부림을 좀 쳐볼 필요가 있어. 그냥 논스톱으로 성공 가도만 달리면 위험해. 내가 강원랜드에서 중독자들 대상으로 강의를 한 일이 있어. 도박 중독자들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너무 빨리 돈을 벌었다는 거야. 돈을 너무 빨리 버니까 어디다가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던 거지. 그래서 강원랜드에서 돈을 버리고 심지어 도박 중독에 이른 거지. 돈을 빨리 벌면 좋을 거 같지? 전혀 아니올시다야. 젊은 나이의 돈을 너무 많이 벌면 돈에 파묻혀 버리는 거야. 젊을 때는 가난도 해보고 고생도 해보고 이런 저런 경험을 해보는 거야. 몸을 좀 굴려봐야 해. 그런 경험을 해봐야 마흔이 넘어서 사람들이나 유혹 앞에서 고개를 흔드는 기지를 키울 수 있는 거야.
확실하게 해줄 이야기는 솔직하게 해주는 편이 좋고 어른스러운 일이야
사형수, 도박 중독자, 수감된 죄수, 소위 보통 범주에 드는 사람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 사람들하고는 어떻게 소통하시나?
- 사기꾼 앞에서는 사기꾼이 되어야 하고 중독자들 앞에서는 중독자가 되어야 해.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야 소통이 되잖아. 주로 교화위원들이 종교인이다 보니까 가서 뭔가 이렇게 살면 안 된다, 하지 마라 하지 마라 이런 이야기 하거든. 그러면 일단 대화가 안 되잖아. 나는 조폭하다 온 친구하고 상담을 하면 이렇게 이야기 해. ‘아 니가 잘나가는 거기 조직 출신이지. 그러면 선생님 좀 힘든 일 있을 때 내가 널 부르면 해결이 되겠다, 나 좀 도와줘’ 이러는 거야. 그러면 그 친구들이 나하고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어서, 자기 편이다 싶어서 이야기를 하게 돼. 그렇게 하면서 그 친구들하고 교감했어.
소통의 달인이시다.(웃음)
- 예전에 전과 5범을 운전을 가르쳐서 사회로 돌려보낸 적이 있어. 마지막 시험 날이었는데 내가 시험비를 정말 어렵게 마련해줬어. 돈을 들려 보내면서 ‘소매치기 안 당하게 조심해라’하고는 버스에 태웠지. 생각해보니까 마침 그 녀석이 소매치기 전과 5범인 거야.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다시 내리라고 했지. ‘내가 이번에 시험비 정말 어렵게 마련한 가슴 아픈 돈이다. 니가 여태 소매치기한 돈이 다 그렇다. 누군가의 가슴 아픈 돈이다’라고 이야기 해줬어. 그래야 뭔가 가슴에 남는 게 있을 거 아니야.
말씀 나누다 보니 쓴 소리도 꽤 하신다. 책도 보면 은근히 쓴 소리들이 좀 들어 있다. 요즘 위로가 대세 아닌가. 너무 밍밍하고 달짝지근한 이야기만 듣게 된다. 이 책은 마치 청량고추를 숨겨 놓은 된장찌개 같아 개운한 맛이 있다.
- 책에 간을 좀 해 놓았지.(웃음) 예전에 수감자들 대상으로 해서 강의를 한 적이 있어. 한 수감자가 어렸을 때 어머니한테 버림 받았다고 슬퍼하더라고. 내가 그랬어, ‘너도 너의 엄마를 버려, 엄마가 너를 버렸는데 왜 너만 힘들어 하고 있어? 너도 엄마를 버려’. 이러니까 가슴이 시원한 거야. 뭔가 이야기를 할 때는 확실하게 이야기 하는 게 좋아. 젊은 세대들은 솔직하잖아? 어른들이라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음흉스러운지 몰라. 아주 이중적이고 뒤에서는 할 말 안 할 말 다 하고 말이야. 분명히 젊은 사람들에게 해 줄 필요가 있는 이야기들이 있거든. 확실하게 해줄 이야기는 솔직하게 해주는 편이 좋고 어른스러운 일이야.
예전에 안산에 있는 공부 잘하는 학교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어. 내가 사기꾼도 많이 만났잖아. 사기꾼들이 다 머리 좋고 공부도 잘 한 사람들이야. 일단 사건을 정확하게 봐야 판단을 정확하게 할 수 있어. 사건을 정확하게 보려면 생각이 바로 잡혀 있어야 하거든. 어떤 상황에서든 바르게 생각해야 해. 공부를 아무리 잘하면 뭐해? 서울대 나오면 뭐하고 하버드를 나오면 뭐해. 생각이 바로 안 잡혀 있으면 고등 사기꾼 밖에 더 되겠어? 학생들한테 생각을 바로 하지 못하면 1등은 1등인데 1등 사기꾼이 된다는 이야기를 했었지. 공부 잘 하기 전에 생각이 바로 서야 그게 효과가 있다고 말이야. 불교에서는 8정도를 지키면 고해를 벗어날 수 있다고 이야기 해. 여덟 가지 바른 도리를 지키면 고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아름다운 진리야. 물론 8정도에 바르게 생각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어. 이해타산을 따지고 관계 따지는 거 하기 전에 바르게 보는 게 중요해.
인생의 암초를 빗겨가려면 암초를 먼저 인정해야 해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을 보면 첫 문장이 ‘인생은 고해’라고 시작한다. 이 책 읽으면서도 스캇 펙의 문장이 생각났다. ‘인생 쉬운 거 아니다, 쉽게 살려고 하지 말아라’ 이렇게 이야기 하는 듯 하다.
- 그랬구나. 내 사무실에 가면 책상 위에 책이 세 권 있어.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 시리즈야.(웃음) 내가 일생의 멘토로 삼는 분이지. 물론 한번도 직접 만난 일은 없고 책으로만 만났지. 나하고 코드가 좀 맞는 데가 있는 거 같아. 난 그 책 세 권을 아주 사랑해.(웃음) 삶은 어려운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시작이야.
스캇 펙 박사도 내가 그분을 멘토로 삼는 것처럼 오랜 기간 스승으로 삼는 분이 있었데. 박사도 그 사람을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다네. 어른이 라는 것이 뭐가 좋으냐. 직접 만나고 안 만나고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야. 불빛이 있다면 어디선가 불빛을 볼 수 있잖아. 진짜 어른은 바로 그런 빛 같은 존재야. 내가 베트남을 참 좋아해. 호아저씨라고 불리는 호치민 있잖아. 호아저씨가 바로 베트남의 어른이야. 베트남 전쟁 당시에 호치민이 죽었어. 리더가 죽으면 사실 전쟁은 지게 되어 있잖아. 호치민이 죽으니까 베트남에서 수천, 수만의 호치민이 일어났어. 호치민이 유물로 타이어로 만든 슬리퍼 딱 남겼어. 그게 바로 참 어른의 힘이야. 많은 어른이 있으면 좋겠지. 그래도 ‘그 어른 만큼은’ 하는 어른이 꼭 있었음 좋겠어.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 드린다.
- 세상 살기 참 힘들어. 그래도 태어난 이상 살 수 밖에 없잖아. 인류 모두는 지금 목적지가 있는 항해를 시작했어. 배를 띄웠으니까 일단 목적지까지는 가야 하는 거야. 거기서 장애물은 꼭 만나게 되어 있어. ‘나한테 장애물이 오지 않게 해주세요’ 이럴 수는 없는 거지. 그저 그 장애물을 잘 피해갈 지혜를 터득하고 구할 수 있는 거지. 괴로움은 우리 모두를 둘러쌓고 있어. 파도가 오면 그 파도를 타야만 해. 파도를 부정하지 말고 파도를 안고 타라는 말이야. 파도를 탈 때 혼자 타려고 하지 말아.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을 찾아봐. 그 사람한테 가서, 혹은 책을 읽으면서 지혜를 구해보라고. 암초에 걸리지 않으려면 암초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먼저 암초를 인정해야 돼. 어려움이 닥치면 그걸 받아 들이되 혼자서 맞이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괴로움을 까발려, 드러내.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어’자 하나만 더 해줘도 생기가 돌 때가 있잖아. 영원할 거 같은 암초가 영원하지는 않아. 우린 그저 빗겨가면 돼. 괴로운 것은 지나가게 되어 있어. 자, 이제 암초를 끌어 안고 파도를 한번 타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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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인생은 고해란 말 백분 공감하며....인생의 멘토가 필요하단 생각 끊임없었는데 ...스캇 팩의 책을 한번 읽어보고 싶은 감동이 쓰나미로 몰려왔습니다...책으로 멘토를 삼았다니 제겐 좋은 정보가 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
책은 우리 인생에, 선생이 되어준다네요.
어느 분이신지 잘 모르겠네요. 좋은 시간들이 많아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