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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파미르 대상들의 기록인『타타르의 대상』
옛부터 실크로드의 대상들은 말이나 노새보다 낙타를 더 선호하였던 것 같다. 사막의 기후와 추위에 대해 적응력이 강한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등에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는 효율성에 무게가 있었을 것이리라.
그러나 막상 이글을 쓰기 위해 온갖 자료를 뒤져 보아도 대상1)들에 관한 기록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전무 하다시피 하였다. 고대뿐만 아니라 중세의 기록까지도 찾을 수가 없었다. 현장법사나 혜초사문의 경우도 탈 것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기지 않았다. 간혹 있다고 해도 단편적일 기록뿐이었다. 말하자면, 차마고도의 마방(馬幫)2) 같이, 대상들은 어떻게 조직되고, 운영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 때 마침 눈에 확 띠는 기록을 인터넷 검색중에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고대나 중세가 아닌, 거의 현대에 가까운 기록이라는 아쉬움은 크지만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큰 소득이었다. 이 기록에 의하면 대상들의 조직은 “낙타몰이꾼 한 명과 낙타 세 마리 그리고 뒤따르는 말 한 마리” 가 기본적인 편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실크로드 고전 여행기 총서>에 들어갈 로고로 쓸 낙타대상들의 이미지를 그릴 수 있었다. 물론 여러 매체에서 낙타나 대상들의 이미지를 찾아본 결과, 그 숫자는 많았지만, 그것들이 모두 둔황 같은 관광지에서 관광객을 태운 사진들이고 실제 짐을 실은 카라반들의 사진은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기본적인 대상의 대열을 어떻게 배치하여 그림을 그려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 대상의 행렬
▼아프간 대상의 무리
▼ 박트리안 쌍봉낙타
1972년 롤랑과 사브리나 라는 두 사람의 사진기자는 호기심 반, 취재 반 목적으로 한 달 간 키르기스의 어느 대상들과 동행하면서 대상들의 일상을 밀착 취재를 하였다. 바로 『타타르의 대상』3)이란 책에 실린 파미르 고원 답사기인데,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낙타몰이꾼 한 명과 낙타 세 마리 그리고 뒤따르는 말 한 마리가 대상행렬의 기본적인 편성형태이다. 라만쿨의 낙타들은 이른바 박트리아의 낙타이다. 이 낙타들은 중국, 신장, 몽고, 티베트 등지 반사막 지역에서 서식하고 있다. 이 낙타들은 키가 2m가 넘고, 몸무게가 최고 500Kg이나 나가며 힘이 좋고 몸집이 크다.
이들의 발걸음은 비록 느리지만, 앞 등의 혹을 가볍게 출렁이며 정확하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발걸음을 옮긴다. 거대한 혹은 양분저장소이다. 두 개의 혹은 100Kg까지 지방질을 저장할 수 있다. 이것들은 단단해지기도 하고 다시 물렁해지기도 하는데 이것으로 낙타의 건강상태를 살펴볼 수 있다. 낙타가 기진맥진하거나 병이 들면 혹의 크기가 줄어들거나 완전히 없어진다.
낙타는 값이 대단히 비싸 여덟 마리의 야크 또는 아홉 마리의 말이나 양 45마리의 값이 나간다. 그도 그럴 것이 낙타는 280Kg이나 되는 짐을 운반하며, 젖과 고기, 그리고 모피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털의 광택과 감촉은 낙타마다 차이가 있지만, 머리부터 목을 따라 다리까지 무성하게 뒤덮인 수북한 털로 낙타는 중앙아시아고원의 혹한에도 잘 적응한다. 낙타의 털도 아름답기에 값이 비싸다.
"낙타 털은 아주 비싸기 때문에, 그것을 훔치러 오는 도둑들을 막기 위해 밤마다 낙타를 지켜야 합니다."
동행한 낙타몰이꾼은 이렇게 고충을 털어놓았다.
우리 일행은 사르하드 사막을 벗어나 바칸강 유역으로 접어들었다. 이 강은 폭이 500m인데, 곧 바로 협곡이 되면서 폭이 좁아졌다. 우리 일행은 말을 타고 꽁꽁 언 강 위를 건너갔다. 키르기스인은 얼음판 위에서도 통과하기 적합한 길을 직감적으로 정확하게 가려냈다. 그리고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재나 모래 같은 것을 간간이 뿌렸다. 사람, 낙타, 말의 순서로 일렬을 지어 얼음판 위를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길잡이] 압둘바킬은 여러 차례 바닥에 엎드려 얼음의 상태를 조심스레 살폈다. 그리고는 조금씩 잔걸음을 걸어 얼음 위로 성깃하게 균열이 간 곳을 살펴보았다. 균열 틈으로 하얀 거품을 머금고 쏟아져 흐르는 물이 역력하게 보였다. 때로는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나면서 잔금이 여러 개 생겼다. 강 주위에는 깎아지른 절벽이 수직으로 높다랗게 솟아 있어서, 해가 중천에 떠야만 겨우 햇빛을 받을 수 있었다.
정오가 지나면서 비좁아진 강을 포기하고 고개를 넘기로 했다. 아이바스는 낙타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빙판길 위에 모래를 뿌렸다. 고개가 매우 가팔랐기 때문에 짐승들은 거칠게 콧김을 내뿜었고, 사람들은 열심히 채찍질을 가다듬기 위해 50m마다 행렬을 멈추었다. 그런데 갑자기 맨 뒤에 있던 낙타가 절벽 가장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순간 낙타는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으로 온 힘을 다해 몇 미터 다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한편 사람들도 자신들의 신상에 닥친 위험을 직감하고서는 낙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짐을 풀어 주었다.
어스름한 황혼이 깔리자 산들은 엄청나게 커지는 듯했고, 엄습해 오는 추위에 모두 몸을 웅크렸다. 누군가가 말했다.
"산이 너무 높아서 새조차 넘기 힘들겠군."
사람도 짐승도 모두 가파른 산허리에 꼭 달라붙었다. 마침내 정상에 다다랐다. 순간, '구름의 아들'이라 불리는 땅을 향해 굽이굽이 펼쳐진 검고 위풍당당한 산의 윤곽이 창백한 납빛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히 드러났다. 잠깐 숨을 돌리기 위해 걸음을 멈춘 나는 일순간 현기증을 느꼈다. 너무나 고요했다. 그것은 일종의 완전한 침묵 같았다.
일행은 쥐가 들끓는 동굴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계곡에는 동굴이 많았다. 그리고 동굴의 바깥에는 혹시 들를지 모르는 나그네를 위해 나뭇단이나 나뭇가지 묶음들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파미르고원을 왕래하는 여행객끼리 서로를 배려해 주는 무언의 표시였다. 그곳에서 불은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다. 성냥이 등장하기 전, 대상들에게 가장 귀중했던 물건은 말 한 마리 값에 해당하는 ‘차크마크’라고 부르는 부싯돌이었다.
오후에 일행은 말 한 마리가 간신히 지나다닐 정도로 좁고, 바라만 보아도 현기증이 나는 바위 절벽이 즐비하게 늘어선 고갯길로 들어섰다. 나는 두려웠다. 하지만 여정을 마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야 했던 만큼 두려움은 곧 뇌리에서 사라졌다.
원작과 출판사는 확인을 못했지만, 번역도 깔끔하게 잘 된 것 같고 읽기도 편하고 멋진 구절도 보인다. 특히, “'구름의 아들'이라 불리는 땅을 향해 굽이굽이 펼쳐진 검고 위풍당당한 산의 윤곽이 창백한 납빛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히 드러났다. 잠깐 숨을 돌리기 위해 걸음을 멈춘 나는 일순간 현기증을 느꼈다. 너무나 고요했다. 그것은 일종의 완전한 침묵 같았다.” 라는 구절은 인상적으로 가슴에 들어온다.
위에서 ‘박트리아 낙타’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은 이른바 쌍봉낙타(two-humped camel, 雙峯駱駝)를 말한다. 이름 그대로 혹이 두 개 달린 낙타인데, 혹이 하나 달린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의 단봉낙타보다 강인하다고 한다. 옛날부터 중앙아시아, 몽골의 고비 사막, 중국 타림분지 등지의 초원에서 서식하였는데, 지금은 대부분 인간에 의해 가축이나 먹이용으로 사육되고 있다고 한다.4) 생김새는 사지는 굵고 짧으며 털이 무성하고 뻣뻣하고 발바닥이 단단하여 바위나 자갈이 많은 구릉지에 적합하다고 한다.
낙타가 사막에서 생존하기 위해 진화를 거듭한 결과 낙타는 물을 절약하는 ‘노하우’를 개발하여 일찌감치 조물주에게서 특허권을 따 냈나보다. 열거해보자면, 고농도의 소변을 배출하여 몸 안의 물의 배출량을 줄이고, 일교차에 따른 체온조절을 함으로써 땀을 거의 흘리지 않고, 물을 먹지 못해 혈액의 농도가 진해지면 주위 조직으로부터 삼투압현상으로 물을 흡수해서 혈액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콧물도 콧구멍 밑의 홈을 통하여 다시 입으로 흡수하여 한 방울의 물도 허비하지 않고, 동물적 본능으로 모래 속의 물기를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하고 일단 물을 마실 기회가 주어지면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양의 물5)을 마셔가며 바로 체내 조직에 수분을 보충하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물론 천하의 낙타라도 물만 마시고는 살 수 없다. 초식동물인 낙타로서는 풀을 먹어야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풀이 없는 사막에서 그나마 먹기 좋은 부드러운 풀은 양떼나 말이 뜯어 먹어버리고 쐐기풀 같이 먹을 수 없는 것들만 남겨둔다. 그래도 낙타는 ‘노 푸로불럼’ ‘메이 꽌시[沒有關係]이다. 바로 이 점이 그 오랜 세월 낙타가 사막의 주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능력인데, 그 이유는 낙타의 혓바닥이 매우 두꺼워 어떤 가시풀이라도 뜯어 먹을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뭐, 이런 생태학적 설명 말고도 낙타를 빼어 놓고 사막을, 실크로드를 그려볼 수 없을 정도로 낙타는 실크로드의 이미지에서 화룡점정(畵龍點睛)에 해당된다. 사막은 일반인들의 인식같이 바람결에 옮겨 다니는 모래무더기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돌무더기나 잡초가 듬성한 황무지 같은 곳이 더 많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우리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사막의 일반적인 정경은 불타는 사막의 노을을 배경으로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가로지르며 느릿느릿 걸어가는 카라반들의 행렬이 무엇보다 먼저 떠오르게 된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횡단하는 카라반들은 역광으로 드리운 그림자만으로도 참으로 인상적인 황금비율의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준다.
낙타에 대해서는 여러 명의 저명작가들이 한 마디 씩 늘어놓았다. 먼저 니체(F.W.Nietzsche,1844~1900)6)를 비롯하여, 아직도 극과 극의 평가를 같이 받고 있는, 인도의 풍운아 오쇼 라즈니쉬(Osho Rajneesh)7)도 낙타에 대하여『사자가 된 낙타의 반역』8)에서 한 마디 읊고 있다.
각설하고, 그러나 필자의 견해는 니체나 라즈니쉬의 비유나 상징처럼, 낙타는 무거운 짐만 질줄 아는 몽매한 짐승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낙타를 여러 번 타 본 경험이 있다. 물론 유명한 관광지에서 손님을 태우는 전문 낙타이기는 했지만, 그 때마다 목이 길고 너그럽지만 슬픈 눈빛을 가진 생김새에 무척 매료되어 그들에게 무언가 정신적인 교류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 여러 가지 매체에서 실크로드나 몽골초원에 떠도는 낙타에 관한 전설들을 접할 때면 문득 그리움이 도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낙타의 노래>라는 다큐9)를 보게 되었다. ‘보도자료’로도 대단히 관심 있는 내용일 것 같아서 본방사수하면서 시청하였다. 천년 넘게 고비사막이라는 극한의 환경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생사를 같이 해 온 낙타와 유목민의 삶을 밀착 촬영했다는 다큐인데, 막막한 고비사막의 풍광도 인상적이었지만, 특히 어린 낙타새끼에게 젖을 주지 않는 어미 낙타에게 마두금(馬頭琴)10) 연주를 들려주자 눈물을 흘리며 젖을 물리는 이야기를 영상화 한 것이었다.
▼ 낙타의 눈물 포스터
▼ 낙타등에 마린호루를 얹어두고 낙타의 눈물을 유도하는 장면
▼ 몽골의 고 민속화- ‘모린 후르’ 마두금의 모양
그런데 이 다큐는 2003년 몽골과 독일 합작13)으로 몽골의 여류감독이 만든 영화인 <낙타의 눈물 (The Story of the Weeping Camel)>14)를 패러디한 것이 분명하여 좀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 작품은 낙타의 모정을 테마로 하여 광활한 고비사막을 배경으로 촬영한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내용으로 이미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된바 있었다. 다큐 스타일로 찍었으면서도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이 진한 감동을 우리들에게 안겨주었는데, 이는 아마도 ‘어미와 자식 간의 사랑’ 이란 만고에 변치 않을 주제를 잘 살린 연출의 덕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요즘도 몽골인들은 가족이 죽으면 풍장을 하는데, 이 때 그곳에다 새끼 낙타를 같이 죽여서 묻는다고 한다. 그래서 후에 거처를 옮겨 살다가, 언젠가 가족의 묘를 찾고자 할 때 그 어미낙타를 근처까지 데리고 오면 그 어미 낙타가 그곳을 기억했다가 그곳을 지날 때 슬피 울기 때문에 그 장소를 찾는다고 한다.
아! 낙타! 어느 노시인의 마지막 유언 같은 짧은 시구 절이 먼저 떠오른다.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신경림의 시 '낙타'- 전반부>
마치 내가 남기고 싶은 유언 같아 가슴이 멍해온다. 그런데 후반부의 다음 구절을 마저 읽고는 뭐랄까 표현하기 어려운 아련함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사바세계의 삶이 어찌 탄탄대로만 계속되겠냐마는, 그래도 혹 인생의 여울목에서 사막 같은 험난한 곳을 만나더라도, 전생부터 이런 원력을 품고 태어난 눈이 선하고 너그러운 낙타 한 마리를 벗해 살아갈 수 있다면 외롭지 않을 텐데…
1) 대상(隊商)은 낙타 등에 짐을 싣고 떼지어 다니면서 특산물을 팔고 사는 상인의 집단을 뜻하며, 캐러밴 또는 카라반(페르시아어: کاروان)(영어: caravan)이라 부른다. 대상은 동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실크로드를 통하여 비단이나 보석 같은 귀중품이나 특산품을 운반했다. 위험하고 힘든 일이긴 하나 이익이 많은 장사여서 나중에 유럽의 향로무역과 비교되기도 했다. 지역의 지배 계층에게 신기하고 인기 있는 물품을 전해 주었으므로, 그들은 대상들이 머물 숙소를 지어[카라반세라이] 동물들을 휴식 할 수 있게 하고 물품을 보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하지만 중세에 이르기 까지 대상이 운반할 수 있는 물품의 수량은 한정되어 있어서 500 마리의 낙타가 운반 할 수 있는 상품이 배 한척에 비해 절반 밖에 되지 못했기에 점차로 그 기능을 무역선에 빼앗기게 되었다.
2) 마방은 ‘사람을 돕는 말의 무리’라는 뜻으로, 지역적 특성을 지닌 운송조직이자 상업 집단으로 ‘방(帮)’이란 글자는 패거리나 동업자를 뜻하며 ‘방(幫)’으로도 통해 쓰기도 한다. 마방들은 대개 가족단위의 혈연이나 마을단위 지연 등으로 구성되기도 하며 큰 도시에서는 전문운송회사에 붙박이로 고용되어 있기도 한다.
마방조직은 일종의 마부들 무리의 팀장 또는 조장인 마과두(馬鍋頭:마궈터우)와 마부(馬夫)인 간마인(赶馬人:깐마런)으로 구성되는데, 이 마부는 흔히 마각자(馬脚子:마자오즈)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대개 마부 한 사람이 거느리는 노새의 수는 10필 좌우인데, 이 단위를 ‘한 줌(把:바)’이라고 부른다. 마방행렬이 몇 ‘바’ 이냐에 따라서 마방의 전체 규모가 결정된다. 중간 규모의 마방이 대개 3-4바 정도라니 큰 규모의 마방무리의 행렬은 장관을 이룰 것이다. 차마고도의 주역들인 이 노새 또는 말이 하루 걸 수 있는 거리가 대개 60km이기에 그 거리만큼 마다 역마참(驛馬站)이 설치되고 물물교환 시장도 생겨났다.
3) 실크로드;사막을 넘은 모험자들 장 피에르 드레주 이은국옮김 시공사
4) 한편 인간에 의해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의 낙타들도 있는데, 통계에 의하면 그 개체수가 1천 마리 정도로 국제보호단체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고 한다.
5) 실험에 의하면 10분 만에 100리터의 물을 마실 수 있다고 한다.
6) 그는『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 자신의 사상적 편력이 거친 인간 정신의 세 단계를 다음과 같이 비유하여 낙타를 비유하였다,
7) 그는 인도에서 출생하였으며 21살에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어 1970년대 한 때는 크리슈나무르티, 마하리쉬, 마훼쉬와 함께 세계의 스승, 혹은 성자로 불리며 인도뿐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깊은 영적인 가르침을 주었다. 그의 육신이 잠들어 있는 묘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오쇼, 태어난 적도 없고 죽은 적도 없다. 다만 1931년 12월 11일부터 1990년 1월 19일까지 이 세상을 방문하다.>
8) 필자 또한 한 때 라즈니쉬에게 열광했던 적이 있었기에, 그의 특유한 시각이 돋보이는 인상적인 대목을 한 두 구절 소개하고자 한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짜라투스트라는 세상에 태어났을 때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우주적인 농담이다. 이 존재 전체를 감싸 안고 있는 헛소리에 그는 웃음을 터뜨린 것이다. 그렇다. 그대의 노트에 ‘우주적인 농담’ 이라고 쓰고 밑줄을 그어라. 태어나면서부터 배꼽을 잡고 웃음을 터뜨린 짜라투스트라! 그리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의 생애가 하나의 웃음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잊었다. 고통 속에서 삶을 산 사람은 오래 기억되지만, 삶이 하나의 환희가 되고 넘치는 웃음이었던 사람은 금방 잊힌다.” 『짜라투스트라 1-춤추는 신,사자가 된 낙타의 반역』오쇼 라즈니쉬, 손민규역, 시간과공간사,1998
9) <KBS파노라마>의 <몽골고원에 가다 2부
10) 몽골의 민속 현악기로 우리나라의 해금과 중국의 얼후[二胡] 같은 2현의 찰현악기로 몸통 위쪽 끝에 말 머리 장식이 있어 마두금이라고 한다. 몽골어로는 ‘모린 후르(Morin Khuur)'라고 하는데 ‘모린’은 말(馬)을, ‘후르’는 음악을 뜻한다. 어떤 이는 마두금 소리는 글자 그대로 초원에 부는 바람 소리와 야생마가 우는 것처럼 들린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초원의 바이올린’ 또는 ‘초원의 첼로’라고 하는데, 유네스코도 이를 인정하여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지정한 바 있다. 바람을 닮은 초원의 악기라는 말이다.
11) 몽고 감독 뱜브슈렝 다바아(Byambassuren Davaa)와 그녀가 뮌헨대 졸업 작품으로 당시 동료였던 이태리인 Luigi Falorni와 함께 만든 영화이다.
12) 몽골의 남부, 고비(Gobi)11)사막의 외딴 곳에서 양과 염소와 낙타들을 기르면서 살아가는 한 유목민 가족의 삶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침 낙타 한 마리가 새끼를 출산하는데. 그런데, 출산과정이 너무 힘들었던 탓인지, 어미 낙타는 새끼에게 젖을 물리지도 않고 무조건 멀리 하려고만 한다. 새끼를 살려야 하는 유목민 가족은 최후의 방법으로 ‘후스(Hoos)요법’을 쓰기로 결정한다. 이는 몽골의 전통악기인 마두금 연주자를 불러다가 어미에게 들려주어 모성애를 자극하여 새끼에게 젖을 물리게 한다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말한다.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악단들이 초빙되어 온 다음, 먼저 마두금을 ‘하닥’이란 파란 수건에 묶어서 매정한 어미 낙타 봉에 걸어둔다. 그러자 조금 지나자 낙타의 심장박동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악기에서 웅~ 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는데, 그러면 그 마두금을 낙타에서 내려 악사에게 건네준다. 그렇게 연주를 시작하면 며느리가 낙타를 쓰다듬으면서 마두금 연주를 반주로 하여 애처로운 곡조로 계면조(界面調)12)의 노래를 부른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과 낙타들이 모여 들어 그 연주를 경청하는데, 그렇게 의식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사람들이 새끼를 어미 곁으로 데려온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어미 낙타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고이며 이윽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13) 고비란 말 자체가 사막이란 뜻이다.
14) 계면조는 한국 음악에 쓰이는, 이른바 한을 대변하는 슬픈 곡조의 하나로 서양음악의 단조와 비슷하나 비교적 향토적인 특색이 강한 조로 정악과 판소리 그리고 남도민요 등에 널리 쓰이는데 부르는 사람과 악곡에 따라 느낌이 사뭇 다른 특징이 두드러진다.
첫댓글 마음으로 가슴으로 읽는 글
낙타타고 가는 저승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