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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메시지2 평강을 주신 부활의 예수님
요한복음 20장 19-31
요절 20장 19절
부활을 축하합니다. 지난주에 두 개의 부고를 받았습니다. 한분은 갈보리채플의 졸업생인 김영훈 전도사의 부친이 소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늘 가고자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 일어나니 또 하나의 부고 메시지가 와 있었습니다. 이종사촌동생인 임재동씨가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화장실을 짓고 교회에 수돗물이 얼었을 때 고쳐주고 창고를 지으신 분이십니다. 깜짝 놀라서 전화를 해보았더니 지붕공사를 하다가 떨어졌는데 돌아가셨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죽음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또한 부활의 증거가 곳곳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에는 개나리꽃과 매화꽃이 피었습니다. 이번주는 교회 정원의 살구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길거리에는 벚꽃이 피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연도 부활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참으로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에게 주는 영향력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는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려움을 몰아내고 평강을 주십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활했듯이 우리도 부활하게 하십니다. 부활을 믿는 우리는 예수님이 구름타고 영광 중에 오실 때 새로운 몸으로 변화되어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갑니다. 부활의 축복이 모든 분들에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두려움이라는 경고등)
“19a.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반역죄로 십자가에 처형되었습니다. 예전에 반역죄는 그 반역죄에 가담한 모든 사람을 죽입니다. 친가 외가 처가 삼족을 멸합니다. 제자들은 반역자의 일당으로 지목되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빨리 예루살렘을 떠나 외국으로 망명해야 했습니다.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갈릴리고 가야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움에 마비되어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두려워 문을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마치 닭이 독수리를 보고 머리만 땅에 쳐박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이 문을 잠갔다고 유대인들이 못 열리 만무합니다. 그들은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떨리고 바람에 문만 덜컹거려도 가슴이 벌렁거렸습니다. 죽음은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귀신을 두려워합니다. 실패는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학생들은 졸업후에 취업을 하지 못할까봐 두렵습니다. 기침이 삼주동안 낫지 않으면 그 기침이 평생 따라오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이 생깁니다. 예전의 상처가 트라우마가 되어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어둠 속에서 괴한에게 당한 사람은 어둠이 오면 두렵습니다. 젊은 고등학생들의 생명을 앗아간 천안함 침몰 일주년이 지났습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들으면 사망권세가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두려움이 생기면 온 몸이 마비됩니다. 성경은 두려움은 자연적인 심리 현상이 아니라고 합니다. 두려움은 사단이 죽음을 이용하여 우리 마음에 심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하지 않으면 그 두려워하는 것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욥은 재산을 잃었습니다. 자녀를 잃었습니다. 건강을 잃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다 잃고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두려워하면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워하는 자들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지옥에 갑니다. 계시록에 보면 두려워하는 자들이 지옥행 일호 맴버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 두려워하지 말고 잠을 자듯이 평안하게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에 갑니다. 죽을 때 두려워 떠는 자들은 지옥에 갈 것입니다. 두려움은 화재 경보등과 같습니다. 우리는 두려움이 생기면 두려움을 빨리 극복해야합니다.
(평안을 주신 부활의 예수님)
“19b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부활의 주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가운데 서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새로운 몸으로 변화되셨습니다. 부활은 소생이 아니라 변화입니다. 예수님은 썩지 않는 몸, 강한 몸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시공을 초월한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문을 잠갔는데 문도 열지 않고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 몸은 우리가 부활할 몸의 샘플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부활의 몸으로 부활하실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요한복음 20장에서 세 번에 걸쳐서 평강을 주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부활의 주님은 평안을 주십니다. 두려움은 사단이 주는 것이므로 우리가 두려움을 물리치려면 죽음보다 더 강한 힘이 필요합니다. 죽음은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박정희대통령과 같이 권세가 있는 분도 이병철과 같이 돈이 많은 분도 최진실과 같이 예쁜 분도 다 죽게하였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망보다 더 강한 힘이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영접하면 두려움이 물러갑니다.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하였습니다. 세례요한도 예수님을 보라고 외쳤습니다. 우리가 생명의 주인이신 부활의 주님을 볼 때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또한 두려움은 사랑을 믿지 못할 때 찾아옵니다. 우리는 사랑의 주님을 믿어야합니다. 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믿어야합니다. 나를 위해서 자신의 외아들을 죽기까지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믿어야합니다. 그러면 사랑이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세상에 보내신 부활의 주님)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 번째로 평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처럼 예수님도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부활의 주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두려워하는 제자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평강의 주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에 순종하여 이 땅에 왔습니다. 예수님은 순종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영접하고 두렴없이 평안을 얻기를 원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다시 세상에 보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평강의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주님을 영접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십니다. 캠퍼스에 보내십니다. 우리는 부활의 복음 평안의 복음을 세상에 전해야합니다. 세상에는 두려움으로 잠못자는 사람이 많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이 수면제라고 합니다. 우리는 수면제를 찾는 사람들에게 부활의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은 부작용이 없는 수면제입니다. 뿐만아니라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은 천년왕국이 끝나고 다시 부활합니다. 이들도 부활하여 영원히 고통하는 지옥 불에 들어가야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옥불에 들어가지 않도록 영생할 수 있는 부활의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평안을 주시는 성령님)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근본적으로 성령을 받아야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절제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그리고 평강을 주십니다. 성령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 사람들이 주는 평안과 다릅니다. 세상에도 평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일시적인 평화입니다. 가변적이고 조건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한 평화를 주십니다. 속에서 우러나는 평화를 주십니다. 세상에는 두려워할 것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사람은 그 상황에서도 평화롭습니다. 예수님은 폭풍이 몰아쳐도 배안에서 평화롭게 잠을 주무셨습니다. 스데판은 돌에 맞아죽어도 평화를 잃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분명히 상황을 보면 두려워해야합니다. 그러나 나의 내면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잔잔한 평안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천국을 누리고 천국에 가는 자들입니다.
(의심하는 도마)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예수님이 찾아오셨을 때 도마는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도마는 그 때 화장실을 갔는지 아니면 유대인을 정탐하러 나갔는지 모릅니다. 도마가 돌아오자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우리가 주를 보았다고 증거하였습니다. 열명의 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그들의 증거를 믿지 못하였습니다. 부활을 증거하는 열명의 눈보다 자신의 눈을 더 신뢰하였습니다. 또한 도마는 자신이 없을 때 찾아오신 예수님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 자신이 올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나 왜 자신에게는 나타나 주시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자신에게 나타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의 병이 찾아왔습니다.
(도마 한 사람을 위해서)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여드레가 지나서 제자들이 도마를 포함하여 집안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고도 세상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성령을 받지 못하여서 문들을 닫고 숨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번에도 문을 열지 않고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 서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번에도 제자들에게 평강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만져보고 손을 내밀어 예수님의 옆구리에 넣어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부활하면 우리의 상처가 다 없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전의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예전에 못박히고 창에 찔린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을 만져보았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을 보고 믿었다고 나옵니다. 도마는 자신을 찾아주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고백합니다.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이 우리의 눈을 뜨게 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도 그들에게 떡을 주시자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고기잡으러 간 제자들도 예수님이 주시는 조반을 먹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도마의 고백처럼 하나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십니다. 그리고 다시 영광스러운 몸으로 오십니다. 천사장과 함께 나팔을 불며 오십니다. 그때 우리는 홀연히 새로운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먼저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살아 있는 자들은 변화되어 하늘에 올라갈 것입니다. 그곳에서 칠년 동안 혼인 잔치하고 내려와 천년왕국을 이룹니다. 그 후에 예수님을 믿지 않은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에 들어갈 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부활을 믿어야합니다. 부활의 복음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야합니다.
(성경에 기초한 믿음)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도마도 예수님에게 서운하였지만 예수님도 도마에게 서운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네가 나를 본고로 믿느냐 물으셨습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더 복되도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보는 것은 불완전합니다. 작아도 보지 못하고 커도 보지 못합니다. 착시도 있습니다. 우리는 태양이 도는 것으로 착각했는데 알고보니 지구가 도는 것이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사도 바울처럼 보기를 원하지만 사도 바울은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에 계신 에수님을 보고 눈이 멀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보고 싶으십니까? 보지 않고 믿는다면 우리가 보지 않는 것은 어떻게 다 믿을 수 있습니까? 요한저자는 성경 말씀을 기록한 목적이 믿음을 갖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보지 못하지만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부활의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영원합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 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휴거하여 올라갈 것입니다. 때가 가까웠습니다.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면 끝이 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이 오셔도 기쁨으로 맞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야합니다. 아멘 주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합니다.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믿고 모두 천국에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