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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 과학
(The Science of Booze)
몇몇 고고학자와 인류학자들은 맥주를 만들게 된 것이 인류가 정착해 농사를 짓게 한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양조는 사회나 경제 측면에서 혁명적인 사건이었고, 호모 사피엔스를 문명화된 인류로 만들었으며, 양조는 지구에서 인간 삶의 절정으로써 이는 하나의 기적이었다.
기적은 두 번에 걸쳐 일어났다.
첫 번째는 효모에 의한 발효(醱酵)라는 기적으로, 2억 년의 진화가 필요했다. 효모가 당을 이산화탄소와 에탄올(에틸알코올)로 바꾸는 과정인 발효는 굉장히 복잡한 나노기술이다. 발효와 에탄올은 인류가 등장하기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알코올은 우리와 지구를 공유하는 미생물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끝없는 전쟁에 동원되는 화학무기로, 우리 뇌에 미치는 기분 좋은 효과는 일종의 부작용일 뿐이다.
두 번째 기적은 대략 2000년 전의 증류를 발명한 일이다. 발효주를 만들고 증류하는 모든 단계에는 심오한 과학이 있고, 많은 과학자가 이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는 “문명은 증류와 함께 시작했다”고 말했지만 이에 더하여 ‘모든 술과 함께’를 붙이고 싶다. 술은 잔속의 문명이다.
전 세계적으로 술은 발효식품 중에서 가장 많이 만드는 기호음료다. 포도 등 과일류, 각종 곡류, 감자류, 동물의 젖 등의 당분이나 녹말이 효모 등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면 에틸알코올이 생기는데 이것이 바로 술이다.
술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 나무의 움푹한 곳에 포도송이가 떨어져 쌓여 있다가 포도껍질에 묻어 있는 효모에 의해 자연발효 되면서 포도주가 만들어진다. 실제로 원숭이 중에는 이런 식으로 술을 만들어 먹는 종이 있다. 술은 인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왔으며, 이미 신석기시대인 기원전 6천 년경에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 메소포타미아인 들이 포도주를 담근 기록이 있다.
1. 발효
1) 술은 미생물의 폐기물 쓰레기
미생물은 왜 알코올을 만들까? 미생물이 인간을 위해 알코올을 만드는 것일까? 절대 아니다. 미생물도 먹고살기 위해, 즉 에너지를 얻기 위해 일련의 분해(발효)과정을 거치는데, 그 결과 생기는 부산물이 알코올이다. 발효 미생물 입장에서 보면 알코올은 폐기물 쓰레기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미생물은 폐기물 쓰레기인 알코올이 쌓여 그 농도가 높아지면서 죽게 된다.
2) 호흡과 발효
지구의 생물체는 어떤 방식이든 에너지를 만들어야 스스로 살 수 있다. 인간을 위시하여 각종 동식물을 뿐만 아니라 호기성대장균 같은 세균에 이르기까지 에너지를 얻기 위하여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호흡’이라는 방법이다. 여기서 말하는 호흡은 우리가 숨을 쉬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써, 이 호흡을 통하여 생명체는 포도당을 천천히 연소시키면서 ATP를 만들어 저장하며, 필요시 ATP에서 에너지를 꺼내어 사용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산소다. 즉 호흡을 통해 포도당으로부터 ATP가 만들어지고 찌꺼기로 이산화탄소(탄산가스)와 물이 남는다. 이것이 우리가 숨을 쉬어 공기 중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 이유다.
그러면 만약 산소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과 식물은 에너지를 얻지 못하고 죽게 된다. 그런데 대장균이나 효모와 같은 통성혐기성균(通性嫌氣性菌)은 호흡을 멈추고 재빨리 발효를 시작해서 계속 살 수 있다.
발효는 포도당을 연소하지만, 호흡을 할 때처럼 완전히 이산화탄소로 산화시키지 못한다. 이때 포도당이 불완전하게 타면서 찌꺼기로 알코올, 젖산, 초산 등의 다양한 물질들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나 발효에 의한 에너지 생산은 호흡할 때 얻는 양의 2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미생물 중에는 발효를 전혀 못하는 편성호기성균(偏性好氣性菌)도 많으며, 반대로 산소가 있으면 절대 살지 못하는 편성혐기성균(偏性嫌氣性菌)도 있다.
여하튼 술, 김치, 식초, 된장, 요구르트, 치즈 등은 모두 특정의 미생물이 살기 위해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것으로, 인간은 미생물의 발효산물을 식생활에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3) 효모와 당화(糖化)
(1) 효모
벤저민 프랭클린은 비가 포도 위에 내리면 포도가 와인으로 바뀐다는 사실이 “신이 우리 인간을 사랑하고 우리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증명”이라고 말했다. 그 당시에는 천연효모가 포도송이에 있다는 사실이나 그 작용으로 와인이 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그 과정은 하나의 기적이었을 것이다.
효모는 진핵생물(세포핵이 있는 생물) 가운데 처음으로 1996년 게놈이 해독됐다. 불에 의한 연소가 인류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화학반응이라면, 효모는 화학에서 두 번째 자리를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철학자이자 과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달콤한 액체가 시간이 지나면 술이 되기도 하는 현상에 호기심을 느꼈고, 여기에는 모든 생명체가 어떤 목적을 지향하게 하는 생명력이 관여한다고 추측했다. 포도 주스는 효모가 포도의 과당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과정에서 와인이 되고, 알코올 농도가 높아지면서 효모는 사멸한다. 이어서 초산균이 알코올로부터 에너지를 얻고, 그 부산물로 초산(식초)을 생성하지만 초산균은 그 초산에 의해 죽게 된다.
1516년 독일의 맥주 관련 법령이자 세계 최초의 식품안전법인 청정법률을 봐도 맥주의 원료를 보리와 물, 호프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때는 아무도 효모의 존재를 몰랐었다. 효모를 뜻하는 프랑스어와 독일어의 어원은 ‘들어 올리다’라는 뜻인데 빵을 부풀리기 때문이다. 영어 yeast는 네덜란드어 gist에서 왔는데 이 말은 끓는다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왔다. gist는 뭔가를 끓여 졸일 때 쓰는 말이다.
1837년 독일의 생리학자 테오도어 슈반이 효모가 당을 먹고 에탄올을 배출하며, 생존에 질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또 효모의 학명을 ‘당 곰팡이’라는 뜻의 라틴어 ‘사카로미세스’와 맥주라는 뜻의 ‘세레비제’를 붙여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아(Saccharomyces cerevisiae)로 작명하였다.
1882년 가을 덴마크의 미생물학자 에밀 크리스찬 한센이 병리학자 로버트 코흐의 실험실을 방문한다. 한센은 칼스버그 맥주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고전적인 라거맥주를 만드는 이 회사는 맥주에서 쓴맛과 잡냄새가 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한센은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코흐를 찾은 것이다. 한센은 코흐의 기법으로 마침내 네 가지 독특한 효모 균주를 배양할 수 있었다. 한센은 그 가운데 하나가 문제임을 밝히고, 또 다른 하나의 균주는 가장 좋은 맛을 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뒤 회사는 가장 좋은 맛을 내는 균주만 쓰면서, 1908년 크리스찬 한센은 그 효모를 사카로미세스 칼스버겐시스(Saccharomyces carlsbergensis)라는 학명을 붙였다.
(2) 당화
효모는 당(糖)을 먹는다. 하지만 자연에는 여러 형태의 당이 있으나 효모는 이 모두를 이용하지는 못한다. 곡물의 당은 대부분 고분자 형태로 되어있다. 고분자는 단순 당을 쌓아 올린 당 분자 건축물에 비유할 수 있다. 녹말(전분)과 셀룰로오스가 이런 고분자의 좋은 예다. 효모는 이러한 고분자 건축물은 해체하는 능력, 즉 관련 효소를 만들지 못한다.
밀이나 보리 같은 곡물로 만드는 맥주와 쌀로 만드는 막걸리나 사케는 효모가 이러한 고분자 탄수화물을 바로 이용하지 못하므로 먼저 이들 탄수화물을 맥아나 누룩곰팡이가 가지고 있는 효소에 의해 분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의 막걸리나 일본 술 사케를 빚을 때 효모 말고도 누룩과 코지가 있어야 한다. 누룩과 코지는 학명이 아스페르길루스 오리제(Aspergillus oryzae)라는 황국균(누룩곰팡이) 덩어리이다. 이 누룩곰팡이가 가지고 있는 효소에 의해 고분자 탄수화물인 녹말(전분)은 분해되어 단순 당으로 바꾸어진다.
효모가 이용 가능한 당은 구조가 가장 단순한 단당류(포도당, 과당, 가락토스)와 이당류인 맥아당(포도당 두 분자), 젖당(포도당과 가락토스), 설탕(포도당과 과당) 등이다. 포도와 당밀, 말 젖과 낙타 젖, 대추야자와 단풍나무 수액 등은 효모가 비교적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당이 풍부하다. 아메리카 대륙의 사막에 자라는 용설란은 포도당과 과당, 설탕이 가득한 즙과 함께 주된 탄수화물은 이눌린이라는 섬유다. 잎 껍질을 벗겨내고 피냐(pina)라고 부르는 남아있는 부분을 가열하면 이눌린은 과당으로 쉽게 분해되어 효모에게 완벽한 음식이 된다. 이걸 발효해 증류한 술이 ‘테킬라(taquila)’다. 테킬라도 코냑이나 버번처럼 원산지명칭표기에 따른 이름이다.
3) 증류
(1) 증류의 원리와 기원
효모가 당류를 분해하여 에너지를 얻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이 바로 술이지만, 이 효모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이 만든 알코올 함량이 약15%를 넘으면 죽어버린다. 따라서 모든 양조주는 알코올 함량이 15% 이상이 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위스키나 소주처럼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을 만들려면 발효한 양조주를 열을 가해 증류시켜 알코올 함량을 높여야 한다.
증류주는 비등점이 78℃인 알코올이 비등점이 100℃인 물보다 빨리 증발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즉 발효된 술을 80~90℃로 가열하면 알코올이 먼저 기화되어 증발하는데 이를 식히면 원래의 양조주보다 알코올 함량이 높은 액체를 얻을 수 있으며, 이를 재증류하면 알코올 도수가 더욱 높은 증류주가 된다.
증류기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보자.
기원전 300년경 중국에 증류기처럼 생긴 장치가 있었다고 하지만, 역사학자 H. T. 후앙의 역작인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서 진짜 증류주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기원후 980년 무렵 소동파의 시에 나온다고 적었다. “술에 불이 붙으면 푸른 천 조각으로 덮어 껐다.” 후앙은 술에 불이 붙으려면 알코올 함량이 높아야 하는데 발효만으로는 15%를 살짝 넘을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증류주여야만 한다고 적절하게 지적하였다.
기원전 322년 사망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기상학》에서 선원들이 바닷물을 밀봉한 용기 안에서 끓여 뚜껑에 응결된 물을 모아 마셨다고 썼다. 이건 초보적인 증류법으로 볼 수 있겠다.
고대인도 문헌에는 알코올을 코끼리 코 형상에 빗댄 표현이 많고, 후대의 인도 증류기를 보면 커다란 단지가 코끼리 머리에 해당하고 아래쪽으로 향한 주둥이가 코처럼 생긴 모양이었다.
(2) 구리 증류기
그러면 대부분 증류기의 재질은 왜 구리(銅)일까?
구리는 표면의 원자 결정이 다른 금속에 비해 매끄럽게 배열돼 있어서, 야금학적으로 말하면 서로 잘 미끄러지는 금속이다. 또 구리는 열전도성이 크고, 작업하기 쉬운데다가 값도 싸다.
구리 증류기는 증류액의 향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특성도 지니고 있다. 효모는 대사과정에서 유황화합물을 많이 만드는데 대부분은 효모 세포 안에 머물고 있다. 양조장에서는 발효가 끝나면 효모 사체를 제거하지만, 그래도 발효액에 소량의 효모가 남아 있는 경우에는 효모 세포가 깨질 때 유황화합물이 유출된다. 이렇게 나온 황화수소는 썩은 달걀 냄새가 나고 상한 채소 맛이 난다.
그런데 구리는 수소보다 더 강하게 유황과 결합하는 성질이 있다. 구리 증류기 안에서 황화수소는 결합이 끊어지면서 유리되어 나오는 유황은 구리에 달라붙어 녹의 일종인 녹청을 형성한다. 또 육안으로는 구리 증류기 표면이 매끄럽게 보이지만 현미경으로 확대해보면 요철로 되어 있다. 이 요철 표면에 에스테르를 비롯한 향기 분자들이 결합해 새로운 화합물이 형성됨으로써 술의 맛은 더 좋아지게 된다.
쌀에는 유황 함량이 낮기 때문에 청주를 증류해 소주 같은 증류주를 만들 때는 스테인리스 증류기를 사용해도 되지만, 위스키 같은 술은 위와 같은 이유로 반드시 구리 증류기를 써야한다. 그러나 구리 증류기는 구리가 황화구리로 바뀌면 검게 되면서 떨어져 나가는 문제가 있다. 보통 13mm 두께인 벽이 점점 얇아져, 스코틀랜드에서 구리 증류기의 수명은 겨우 25년 내외에 불과하다.
첫댓글 술 이야기 들으니 술을 '술~ 술' 넘길 수가 없겠다.
술에 얽힌 오묘한(?) 사실 한 조각이라도 생각하며 마셔야 겠다.
그러다보면 술맛이 달아날까 걱정도 되지만.
만촌의 술 이야기 읽으며 술잔을 기울여야 겠습니다.
막걸리는 식이섬유와 유산균이 풍부한 알코올 영양제지요.
특히나 공덕막걸리는 말입니다.
그리하야ㅡ
우보.만촌등 10명 가까운 꾼들이
술맛나는 장마철에 오날 망원시장
자락에서 공덕 막걸리로 공덕?을
쌓자는거지요 ㅡ
어제 선금주고 막걸리를 입도선매?
해 보관시켜 두었으니.
자~이제 마시기만 하세나.얼쑤!
인류문명사의 효모 아야기에
칼스버그 맥주가 겻드려 나오네요.
양자역학 형성에 공로가 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