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들었다
소정 하선옥
며칠새 봄이 들었다. 앙상한 가지에 서글픔만 묻힌 채 있든 나목들에게 제일 먼저 봄이 들었고, 누렇게 또 있든 들판에도 알듯 모를 듯하게 초록으로 변하는 모습이 벌써 봄이 들었다. 십몇년전 사다 심어놓은 홍매화도 볼통거리며 입술을 내밀더니 꽃잎을 활짝 열어 봄을 알리고 있네. 며칠전만 해도 아이고 왜 이래 춥니? 를 연발했었는데....
약 이주정도 병원에 가있는 동안 집에 있는 화초들은 많이 삐져 있더라. 그중에 제일 이쁨을 받든 동백은 입술을 삐죽 꺼리며 입술 끝을 오므린 채 삐진 마음을 풀려고 하지 않다가 미안한 마음에 물을 듬뿍듬뿍 주었더니 이제야 마음을 풀고 꽃술을 터뜨려주네. 하필이면 쟤가 이쁨을 자랑할 시기에 병원에 가고 없는 집사가 얼마나 미웠을까? 그래도 어김없이 꽃대를 불쑥 내밀고 있는 군자란은 기특하기도 하다.
세월은 어김없이 오고 감을 밀고 당기고 하고 있는데 사람은 생각만 그 자리일 뿐 자기가 늙어가고 삭아가는걸 때론 잊고 살기도 한다. 마음이라도 청춘인걸 감사해야 하나?
아마도 며칠 후면 우리 목욕탕에도 봄향기가 그득하리라. 부지런한 사람들이 퍼다 나르는 봄.
냉이, 달래, 머위 부터해서 덤불 속 따뜻함에 이끌려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붙들려온 쑥. 쪽파와 속은 풋마늘을 곱게 다듬어 단을 만들고 얼었다 녹았다 를 반복해서 단맛이 들어있는 시금치와 겨울초. 생각만 해도 봄을 먹을 생각에 군침이 돈다.
맞다. 우리도 그렇게 봄이 들고 있었음을.
냉이를 총총 썰어 넣고 양파와 땡고추를 다져 넣고 냉이장을 만들 놓고 톳을 듬뿍 넣고 톳밥을 지어서 쓱쓱 비벼 놓고 풋마늘을 살짝 데쳐 잔멸치 한 움큼 집어넣고 들기름에 깨소금에 진간장, 고추장 한 숟갈 넣고 조물조물 무쳐놓으면 달아났든 입 맛이 얼씨구나 하겠지? 나도 그렇게 봄에 들어보련다.
사람 사는 게 별거 없더라. 그냥 탁 내려놓고 적당히 비워 놓고 흥얼거리며 사는 게 제일인데 그 적당히가 어디까지인지 가늠이 쉽지 않네. 설사 내 사는 세상이 바람 든 무처럼 속은 비어서 퍼석거리고 속은 썩다가 썩다가 텅텅 비어져 버린 마른 대나무 같은 삶일지라도 그래도 살아 있기에 또 다른 새봄을 맞으려 하네.
마음이 떨릴 때 여행을 떠나자. 다리가 떨릴 때 떠나지 말고.
십몇년전 다낭의 하이얏트 호텔에서 부들부들 떨어가며 서로를 의지해 레스토랑을 내려가는 노부부를 보면서 다짐을 했었는데... 4월 2일 여행을 떠나기로 예약해 놓고 발이 부러지고 무릎 연골수술을 해놓고 보니 내가 다리가 떨리네. 여행도 도로아미타불이라 해약을 하고 보니 인생 화무 십일홍이라 무심하다.
봄이 들면서 또 들가시나처럼 싱숭생숭 벌렁벌렁 해지네. 그냥 마음은 산으로 들로 헤맨다. 적당히가 과연 어디까지 인지 그 적당히를 아는 분 나 좀 가르쳐 주세요. 나도 봄에 들었나 보다.
2025년 3월 9일
첫댓글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보내세요
적당히는 어머니가 반찬할 때 한 움큼씩 집어 넣는 만큼이지요.
손맛이 나는 정도의 량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