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 하늘언어교회설교
본문: 창세기 13장 16절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설교: ‘하늘꿈’ 조영찬 전도사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어린이는 꿈을 먹고 자라는 꿈나무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본문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수없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나옵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아직 자식이 한 명도 없을 때 주신 약속입니다. 심지어 두 부부가 노년기가 되어서 자식을 낳을 수 없다고 여겨지는 나이에 이런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식을 가질 소망이 끈긴 노부부에게 티끌같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럴 경우 많은 사람들이 비웃고 황당한 농담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군말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가슴에 품고 산다면 이것을 하나님이 주신 꿈 즉 하늘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늘꿈은 세상사람이 보기에는 너무 높아서 그 꿈이 실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고 심지어는 전혀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믿음에 대해서는 꿈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반면에 세상꿈이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흔히 품는 꿈을 말합니다. 세상꿈은 한마디로 돈 많이 벌어서 출세하고 잘 먹고 잘사는 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돈 많이 벌게 해주겠다,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겠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세속적이어서 굳이 인생의 목표로 삼을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세상꿈을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아브라함 평생에 부족 전체가 넉넉히 먹고 살 만큼 풍요로운 물질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세상적인 것은 굳이 목표로 삼지 않아도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주시는 물과 공기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꿈이 없고 오직 세상꿈만 있는 사람은 사실은 꿈이 없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는 아무리 많이 쌓아도 한때뿐이고 죽은 뒤에는 그 많은 재물을 한 줌도 무덤으로 가져갈 수 없습니다. 그렇게 허망하게 끝나기 위해 꿈을 꾼다는 것은 바람을 잡으려는 사람처럼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꿈은 오직 하늘꿈뿐입니다. 세상은 하늘꿈을 품은 이들에 의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진보해 왔습니다. 모세는 자기 민족이 이집트라는 세상에 안주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늘꿈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믿고 그들을 이끌고 가나안땅을 향해 떠났습니다. 다윗은 세상꿈에 사로잡힌 사울에게 쫓겨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하늘꿈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바울은 세상꿈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하늘꿈의 결정체인 복음을 온 세상에 전했습니다.
어거스틴, 토마스아퀴나스, 마르틴루터킹목사 등 하늘꿈으로 충만한 사람들로 인해 온 세상에 수많은 빛나는 업적들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늘꿈은 이토록 위대하고 장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꿈을 이루는 여정도 단시일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인내하고 믿음으로 기다리는 삶을 통해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꿈을 품기 시작한 그 당시에는 그 꿈이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질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아브라함 본인도 하늘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도하지 못한 채 죽어 갔습니다.
하늘꿈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 너무나 험난하고 차원이 높아서 아브라함은 많은 실수들을 남발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지 수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없자 조급해진 부부는 여종인 하갈을 통해 자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이스마엘은 아랍인의 조상이 되어서 지금까지 유대인들과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이 어느정도 자라고 나서야 비로소 본부인 사라를 통해 약속의 아들인 이삭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약속의 자식을 주셨으니 더 이상 자식 욕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은 뒤로 새 아내를 얻어서 여섯명의 아들을 더 낳았습니다. 약속의 자식이 아닌 그들은 계속 유대인들 주변을 얼씬거리면서 전쟁과 약탈을 자행하는 민족들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실수를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끝까지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실현해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약속은 이스마엘을 통한 아랍족속이나 이삭과 야곱을 통한 유대인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통해 육체의 자손이 아닌 영적 자손을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무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세상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하늘꿈을 품은 주님의 어린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어린이와 어른이 따로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한 살 아기와 백살 노인이 똑같이 철부지로 보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완전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은 영원히 미성년자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어린이들입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영롱한 꿈으로 가슴을 가득 채우고 살아야 합니다. 즉 하늘꿈을 품고 항상 가장 높은 이상을 향해 살아가야 합니다.
하늘꿈을 품고 살아도 아브라함처럼 온갖 실수와 죄와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하늘꿈을 품은 사람은 세상꿈을 품은 사람과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실수와 문제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향한 소망과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여러가지 연약함이 많습니다. 나이가 어려서 연약한 어린이도 있고 장애로 인해 연약한 이들도 있습니다. 몸의 아픔으로 연약한 사람도 있고 노쇠함으로 인해 몸과 정신이 고달픈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연약함 속에서도 끝까지 하늘꿈을 품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을 통해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살아서 그러한 변화를 보지 못하더라도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한결같은 걸음으로 우리에게 주신 하늘꿈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공동체소식
1. 이번 주 설교는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에 은혜샘교회에서 했던 설교입니다. 설교 내용과 같이 우리는 꿈의 백성들이고 꿈의 공동체입니다.
하늘꿈은 현실을 넘어서는 꿈이기에 실현성이나 연령에 제한받지 않고 누구나 가슴 깊이 품어야 하는 꿈입니다. 꿈이 없으면 모든 의욕이 사라지고 깊은 절망의 그늘이 엄습하게 됩니다. 현실적인 꿈은 잠시 동안 풍요를 누리려는 것이지만 하늘꿈은 영생을 소망하며 품는 꿈이기에 현실성 여부와 생과 사를 초월할 수 있는 원대한 기운을 우리 안에 충만히 불어 넣어주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하늘꿈으로 충만해지도록 꿈의 여정에 기도와 성원으로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2. 실로암과 함께한 손벗 자조모임
지난 5월 3일에 실로암시청각장애인학습지원센터 직원 3명이 방문해주셨습니다. 제가 그동안 구상한 질적이고 새로운 자조모임을 선보이기 위해 제가 요청해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인원은 삼관인 1명에 통역지원이 가능한 직원 2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모이는 것보다 소통하기에 최적의 인원이 모이는 것이 언어와 체험의 깊이를 더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모임에서 소개한 것은 다양하지만 대표적인 두 가지가 지담과 탁담입니다. 이것은 아래에 조금 자세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조율형 자조모임을 통해 삼관인의 문화와 언어를 체험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개인적으로 또는 소통하기에 최적의 인원을 구성하여 예약을 하시고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3. 예배 개편 안내
6월부터 예배의 형식과 절차를 일부 조정하고자 합니다. 니케아신경 대신 수정된 사도신경과 수정된 주기도문 등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또한 우리 공동체 성격에 맞도록 수정된 기도문을 점진적으로 도입하고자 합니다.
기도문을 통한 기도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장점은 일괄성 있게 공식적 용어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점은 아무 생각 없이 형식적으로 암송해버리기 쉬운 문제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구교와 신교에서 기도문이 양극화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구교에서는 기도문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해서 형식화의 문제가 있고 신교에서는 기도문을 없애버려서 장점까지 거부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과하지 않은 한도 내에서 점진적으로 기도문들을 사용하고자 합니다.
4. 오늘 예배후 읽을 말씀은 요한계시록 19장~22장입니다.
새로운 소통법 지담과 탁담
1. 지담이란
지담은 지화를 촉지하기 용이하도록 축약한 소통법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자음으로만 구성되어 있는데 지담도 소통의 효율을 위해 자음으로 축약어를 만들어서 전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감사는 ㄱㅅ, 사랑은 ㅅ ㄹ, 소망은 ㅅㅁ 이런식으로 손가락을 통해 표현하는 것입니다.
2. 탁담
탁담이란 탁자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삼관인들이 탁자에 손을 대고 탁자를 다양한 방법으로 쳐서 의사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상대의 말에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몸짓을 탁자를 한두번 쳐서 나타내는 식입니다. 웃음은 빠르게 여러번 쳐서 나타내면 됩니다.
탁담에 점자를 결합할 수도 있습니다. 아 즉 126을 탁담으로 전달하고자 한다면 탁자를 1번, 2번, 6번 이렇게 순차적으로 치면 됩니다. 이런 방식은 단어를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소모될 수 있지만 동시에 여러 사람에게 한꺼번에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