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이와 덜렁이/ 이영숙
우리 부부는 잉꼬로 소문이 나 있다. 남들이 보기에만 그렇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얼굴을 쳐다만 봐도 트집 잡을 일이 없나 보는 사이다
오늘 아침 일이다. 집을 나서기 전에 남편은 작업을 시작한다. 가스불은?
전기는 꺼졌는지? 하고 묻는다. 아내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속으로 이렇게 좋은 아파트가 불날 리가 없지 않은가! 응대를 하지 않으면 매사에 정확한 남편은 다시 들어가 확인하고 나온다. 출발할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광순이가 운전석에 앉으면 차를 뺄 때까지 남편은 주차장에서 기다린다. 이유는 안전하게 차를 빼는 것을 봐주기 위함이다. 광순이는 운전경력 삼십 년차를 물로 보는지 투덜거린다. 그 소리가 차 문 밖으로 튀어 나갈 듯하다.
남편은 좌석에 앉으면 노랫가락이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온다. 좌우 거울은 맞추었는가? 일절이다. 아파트정문을 나서기도 전에 105동에서 직진하는 차가 있으니 고개를 내밀어 본 후 진입하라고 거듭 주의를 준다. 광순이는 손가락 두 개를 접는다.
대우아파트 앞에는 주차해 둔 차들이 많아 교행할 수 없으니 잠시 섰다가 출발하라, 횡단보도 앞에는 바싹 다가서지 않아야 한다, 노란불은 멈추라는 세계만방의 약속이다. 오절이 시작될 때 광순이는 간 크게도 쫑알거린다. “다 알고 있다고요.” 광순이는 이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잘 안다는 사람이 남은 평생에 한 번도 내지 않는 대형 사고를 여러 번 내었냐며 본격적인 노래 타령이 숨 가쁘게 고개를 넘어간다.
몇 년 전 사고 이야기다. 매사 덜렁거리든 광순이가 경사진 곳에 주차하였다. 차바퀴는 술술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 바퀴에 광순이의 발이 끼어 심한 외상을 입고 입원하였다. 그 사고로 광순이는 수술을 여러 번 하고 남편을 고생시켰다. 남편이 그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닳고 닳아 늘어진 테이프인데도 스피커가 성능이 좋은지 쾅쾅 소리가 울러퍼진다. 십이 절까지 이어지는 노래를 듣지 않기 위해서는 붉은 신호등을 뚫어지게 보면서 귀도 닫고 입도 다물고 다른 생각을 해야 한다.
광순이는 친정엄마가 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떠올렸다. 광순이를 데리고 시장에 가면 늘 탈이 났다. 광순이는 호기심이 많았다. 주위를 살펴보느라 천방지축이었다. 문자에 대해 관심이 많아 간판에 적혀있는 글을 읽느라고 몰입하여 옆에 위험한 물건이 있는지도 살피지 않았다. 시장까지 가는데 열두 번은 넘어져 무릎은 성할 날이 없었다.
어느 날은 도랑에 빠져 생쥐처럼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심지어 똥통에 빠져 악취때문에 동생들도 한방을 쓰려고 하지 않기도 했다. 친정엄마는 그런 광순에게 덜렁이라고 야단치며 주의를 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광순이의 한눈팔기는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했다. 운전면허를 따고 연수를 받을 때였다. 연수기간이 삼일 일정이었는데 연수 선생이 오전 연수를 끝내더니 그만해도 되겠다. 충분하다며 연수를 중단했다. 이유인즉 여성이 처음 운전을 하게 되면 불안하여 의자에 달라붙어 앉아 움츠리며 눈동자도 잘 움직이지 않는데 광순이는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면 “나무가 예쁩니다. 저 멀리 꽃이 피었네요.”하고 자연스럽게 운전하는 태도를 보고 ‘더 이상 연수할 필요가 없다, 운전 조심 하세요’하고 갔다.
딸이 많은 집의 맏딸인 광순이는 무조건 남을 위해 양보하고 참아야 한다고 배웠다. 생일날 받은 선물인 목걸이도 동생이 원하는 눈빛만 보여도 목에 걸어 주어야 마음이 편했다. 늘 베푸는 것이 익숙한 광순이의 삶이었다.
그렇게 성장했던 광순이는 남편하고는 다른 삶을 꾸려보고 싶었다. 남들처럼 연약한 신부가 되어 어리광을 피우며 신랑의 어깨에 기대려고 했다. 큰 오산이었다. 그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남편은 오 남매의 막내아들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낭패였다. 결혼을 무룰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독립적이고 무슨 일이든 자기 손으로 하고 거침없이 살던 광순이는 꼼꼼하고 분명하게 간섭하는 남편이 싫지 않았다. 세심하게 보살핌을 받는 것처럼 느꼈다. 남편이 자기와 다른 점이 좋았다. 순간 판단의 착오 때문에 결혼생활은 광순이의 기대에 많이 못 미쳤다.
어느 날 친정엄마가 삼박사일일정으로 광순이네를 방문했다가 하루 만에 돌아가셨다. 사위가 설거지를 하는 것을 보고 당신이 불편하여 못 있다고 하시며 보따리를 싸셨다. 숟가락 목 부분에 흔적이 잘 지워지지 않았다고 솔로 문지르는 것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졌다. 그릇을 뽀도독 씻는 것을 보고 그릇이 피가 철철 흐르는 것 같았다고 하셨다. 물론 사위가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불편하셨을 것이다. 의사표현도 분명하게 하고 맡은 바 일에 한 치의 오차가 없으며 자부심이 강하고 냉철한 사위와 함께 사는 딸이 참 고생을 많이 하는구나하며 걱정을 많이 하셨다
광순이가 정확하고 빈틈없기로 호가 난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기적이었다.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남편과 평생을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코뼈가 터지도록 싸워보자’라며 광순이는 전의를 세웠다. 남편은 맞서서 싸우기에 적당한 스파링 상대였다. 둘 중 하나는 눈두덩이 퍼렇게 변하거나 입술에 피멍이 들기도 하였다. 게임이 끝난 후 광순이는 남편에게 대문에 내다 걸라고 승리의 깃발을 전했다. 광순이는 백기를 들고, 참을 인자를 백번 쓰는 서예가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만사에 트집쟁이인 남편과 태평스러운 아내는 삐거덕거리고 덜컹거리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탈 없이 굴러간다. 육순을 훌쩍 넘긴 광순이는 ‘이런 들 어떠하리 저런 들 어떠하리’ 읊조리며 백세까지 한 치도 바뀌지 않을 남편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첫댓글 글과 어울린 그림이 좋아요. 하니는 매사에 정확하고 완벽주의에 강직하지만 수용력이 약한 태양인 체질이고 릴리는 경쾌하고 비위가 좋으며 아이디어가 넘치지만 지구력이 약하고 비판이나 야단 맞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소양인 체질로 보여요. 부부는 반대되면서도 서로 기대어 사는
對待관계라고 하지만, 부부는 인간사회질서(인륜)의 시작이고 만복의 근원이라고 한 역경의 말씀이나 군자의 도는 부부의 성실한 삶에서 시작한다고 한 중용의 말씀이 생각나요.
하니 릴리 두 분 어제 수고하셨습니다.
역사기행에서 보여주시는 것처럼 잉꼬부부로 살아가시기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