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님,
모닥불의 밝음과는 다른, 무언가 황금색의 부드러운 빛이,
붓다 님을 감싸고 있는데, 제 눈의 착각일까요.”
뭔가 생각에 잠긴 얼굴의 아사지가,
그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해서 이런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넷의 둘레도 번갈아 비교해 보고 있다.
“아사지,
그대 눈에도 보이는가.
이 광명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정직을 마음과 행동의 기준으로 해서 생활하고,
남에게 자애를 베풀고,
스스로에게 족함을 알며,
일체의 집착을 끊은 조화의 마음으로 있을 때에는
마음에 구름이 없기 때문에,
광명에 싸이게 된다.
그대들의 둘레에도, 광명이 주어져 있다.
잘 보아라.“
붓다가 이렇게 설명하자.
아사지는, 옆에 앉아 있는 밧데야의 얼굴을 다시 한번 이번에는 들여다보듯이,
빛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네 사람의 뒷머리에는, 둥근 황금색의 광명이 부드럽게, 빛나고 있었다.
아사지는, 머뭇머뭇하면서, 몇 번이나 자신의 눈을 비비며, 눈을 깜박거렸다.
그러는 동안, 아사지는 깨달았는지,
치밀어 오르는 감동을 누를 길이 없어,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사로몬들의 뒤, 좌우에 빛나는 황금색 후광(後光) 속에는
저 세상의 천사들이 마찬가지로 감격하여,
눈시울을 적시고 있는 모습이,
붓다의 심안에, 확실하게 비치는 것이었다.
깨달음을 열었을 때,
몇 번인가 모습을 보였던 바후라망과 비슷한 복장을 한 혈색이 좋은 천사들의,
자비에 넘치는 광경이었다.
붓다는, 문득 미가다야와는 다른,
이곳은 그대로 천국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일어났다.
주위는 어두워졌다.
숲도, 강도, 대지도, 평안한 잠에 빠졌다.
모닥불의 불길만이, 밤의 휴식을 거부하는 듯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고 있다.
“사로몬들이여,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의 법을 듣도록 하라. “
하고 붓다는 말했다. 그들을 둘러보고 말을 계속했다.
“그대들은, 천국에서,
스스로 어버이를 선택해서,
육체와 인연을 맺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태어난 환경도, 모두 자기 스스로의 의사가 결정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생활에 길들어 감에 따라서,
어버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고,
보은의 마음을 소홀히 하여 간다.
불평불만의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의 인생이다.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의 부(富), 지위(地 位), 명예라는 것은
이 세상에 한정되는 것이며,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먼저 명심하여라.
태어날 때가 발가숭이면, 죽을 때도 발가숭이다.
그런데 이 진실을 잊고 가난한 집에 태어나면, 마음까지 가난해지고,
반대로,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면,
감사의 마음을 잊고, 타락하여 간다.
어떤 사람은 저마다의 환경 속에서 욕망의 포로가 되어 족함을 잊어버리고, 괴로움을 만들어 간다.
가엾다기보다, 인간이란,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가.
사로몬들이여,
그대들은, 먼저 이러한 사실에, 눈뜨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 괴로움에서 해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의 마음을, 스스로가 묶어 버리는,
그 쇠사슬을 푸는 데는 올바른 마음의 척도를 가지고
매일의 생활을 보내는 것 이외에는 없는 것이다.
비뚤어진 생각과 행동을 버리는 것이다.
미가다야의 자연을 보아라,
산천초목의 자연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살게 되어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새들과 짐승들의 생활은,
얼핏 약육강식(弱肉强食)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 보면,
그들은, 자신을 살리면서 남을 살리고 있다.
호랑이나 하이에나는 배가 부르면, 다른 것을 습격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초식동물이 불어나면, 초목이 고갈되고 만다.
그렇다고 초식동물이 없으면, 초목은 자라기 힘든다.
그들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자연을 살리고, 스스로도 살아간다.
자연은, 서로 의지해가면서, 전체를 조화시키고 있다.
동물들의 약육 강식의 모습을 보고,
인간에게 적용하려고 하면 무리가 생긴다.
그들은, 그러한 모습을 통해서, 전체를 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서로 돕고, 또한 자연을 포함해서, 보다 높은 조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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