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80) 화를 부르는 장비의 술주정
한편, 남양의 원술은 만조 백관들을 자수각(紫水閣)에 불러놓고, 조조로부터 받은 밀지를 놓고 한바탕 분통을 터뜨렸다.
"헛 참! 돗자리나 짜서 팔아 먹던 놈하고, 돼지나 잡던 백정놈이 감히 나를 치러 오겠다고?"
그러자 원술의 책사 도저(陶貯)가 묻는다.
"지금 유비 삼형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이게 조조가 나에게 보내온 밀서요. 유비가 비밀리에 조정에 상주해, 내가 황제를 넘본다면서, 내 목을 베기위해 남양을 치겠다고 했다니, 헹! 유비 그 놈은 도대체 뭐요, 엉?
촌에서 굴러먹던 개뼉다귀 같은... 아니, 그런 자가 스스로 황실의 후예를 자칭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천하 평정을 운운하다니, 이거야말로 사기치는 것이 아니오?
도겸이 와병중인 틈에 그 넓디 넓은 서주 땅을 낼름 먹은 것도 모자라서 우리 남양까지 넘보다니, 이걸 내가 참아야 하는거요?"
그러자 좌중에 한 백관이,
"세상이 험하니, 소인배가 설치는겁니다."
하고 아뢰니, 또 다른 백관이 나서며 말한다.
"괘씸한 놈입니다. 당장 출병해서 제거 하십시오."
하고 뒤이어 아뢰는 것이었다. 그러자 책사 도저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아뢴다.
"주공의 말씀대로 유비가 괘씸하긴 하나, 그럼 조조는 올바른 자일까요? 밀서에 쓰여진 글이 모두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 까요? 소신 생각엔 몇 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첫째, 유비가 조정에 밀서를 보내, 주공께서 황제를 넘본다고 모함을 했다고 하는데, 이건, 불확실합니다.
둘째, 유비가 정말 조정에 밀서를 보냈다면, 조조가 왜 그 사실을 주공께 알렸으며, 그 의도가 뭘까요?
이 점을 따져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 주공과 유비, 두 사람 사이가 나빠지기를 바라는 곳은 어딜까요?"
그러자 잠자코 듣고만 있던 원술이,
"선생! 그게 무슨?...."
도저가 이어서 말한다.
"그게 바로 서줍니다. 유비같은 소인배가 드넓은 서주성과 육군(六郡)의 영토를 가져갔으니, 이는 천하의 제후들이 시샘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서주를 가장 탐내는 자는 바로 조좁니다.
지금 유비와 여포가 손을 잡고, 강력한 군사로 서주를 지키고 있으니, 조조는 감히 침공할 엄두를 못내고, 버리기도 아까우니, 어쩌겠습니까? 때문에, 주공을 선동해 유비와 싸우게하여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얻으려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일 유비한테 패하면, 아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조조가 쉽게 우리 남양을 얻을 테고, 유비한테 승리한다고 해도, 결국 조조는 서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원술이 도저의 말을 듣고 대답한다.
"선생 말이 옳소. 그럼 어찌해야 좋겠소?"
"감히 여줍건데, 주공께서는 서주를 얻고 싶으십니까?"
"당연하지! ... 어찌 그런 당연한 말을 묻소?"
그러자 도저는 팔을 들어 횡으로 그으며 단호하게 말한다.
"그럼 실행에 옮기십시오. 서주를 쉽게 취할 계략이 있습니다."
"어서 말해 보시오."
원술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러자 도저는,
"여포가 용맹하기는 하나, 근본이 되지 않은 자로써, 변덕이 심하고 탐욕스러워, 여포와 유비가 한 성(城)에 있다는 것은 물과 기름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주공께서는 황금 만 냥과 비단 천 필을 여포에게 내리시면서, 유비를 기습 공격케 하고 그때를 틈타 출병을 하신다면 승부는 불을 보듯 뻔~할 겁니다.
그렇게 서주를 취한 뒤에는, 서주 두 개군(郡)을 여포에게 상으로 주면 충분합니다. 그런 뒤에 기회를 보아 여포까지 없애버리면, 그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니겠습니까?"
도저의 말을 흡족한 얼굴로 듣던 원술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젖혔다.
"하하하하...."
"주공, 어떻습니까?"
도저의 반문을 받자, 원술은 연실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한다.
"좋소, 좋아! 선생의 말씀은 지극히 현명하오."
하고 만족스러운 대답을 하였다.
한편, 유비가 원술 정벌을 떠난지 불과 하루가 지난 뒤에, 서주성을 지키는 임무를 맡은 장비가 유비의 자리로 다가 가서, 얼굴 가득히 만족한 웃음을 웃으면서 그의 자리에 앉아 본다.
"헤헤헷! 아이고... 여기가 큰형님 자리구나! 하하핫, 음, 여봐라! 주부(主簿) 어딧냐?"
하고 이어서 호령을 쳤다.
그러자 시종을 보던 주부 하나가 황급히 달려오며,
"아! 예,예,예...여기 있습니다!"
하고, 유비가 부를 때와는 전혀 다른, 아첨스러운 대답을 하였다.
그러자 장비가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형님께서 내게 서주성을 맡기시고, 군령 3조를 남겨, 꼭 지키라고 하셨다. 첫째, 술마시지 말것! 둘째, 성질부리지 말것! 셋째, 때리지 말것! 지금 당장 이 군령을 족자로 만들어서 여기 이 대들보에 걸어놓아라! 내가 매일같이 보고, 되새기면서 엄수할 것이다! "
그러자 주부가 대들보를 올려다 보며,
"알겠습니다. 그런데 글짜는 얼마나 크게 쓸가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장비는 두 손을 오무려 크기를 가름해 보이며,
"글짜는 이만큼, 사발크기로 쓰도록 해라!"
"그렇게나 크게 말입니까?"
"나 참! 내가 볼꺼니까, 사발정도의 크기는 돼야지!"
"아! 네,네,네.... 사발 만큼 크게요?"
"응! 다 쓴 다음에 대들보에 걸어 놓고.. 그리고 당장 가서 통령(統領)이상의 장수들을 정자에 모두 집합하라고 해라! 훈시를 하겠다."
"네,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말이다! 이 장비가 빗은 술 오십동, 그걸 거기다 꺼내다 놔라!"
그러자 주부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장군, 방금 하신 말 잊으셨나요? 주공께서 남기신 군령 일조가 술 안 마시기 아닙니까?"
"뭐야? 말이 많다! 내가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
"아, 예,예!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장비의 지시에 몸을 떨던 주부가 쪼르르 물러갔다.
잠시후, 정자에 모여든 장수들에게는 장비의 손에 의해 대접 가득 술이 따라지기 시작하였다.
"자, 마셔라!"
한편, 남양 정벌에 나선 관우는 대군의 행진중에 유비에게,
"형님! 셋째가 사고나 안 칠지 걱정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나도 그렇네, 허나 어쩌겠나. 셋째가 제 버릇도 못 고쳐서야 앞으로 어찌 대업을 이루겠나? 그러니 지켜볼 수밖에, 길어야 이번 원정이 수 십일 정도가 아니겠나?"
"네..."
"사실 걱정은 셋째가 아니라 여포일세. 여포가 소패성으로 간 뒤, 병력 확충에 여념이 없다는구먼,"
"형님, 여포는 굶주린 호랑입니다. 위험한 자 입니다. 속히 쫓아내셔야 합니다."
"여포를 인의로 대해줬으니 배신않길 바라야지."
"배신을 한다면요?"
"여포가 배신을 한다 해도 나는 인의를 지킬 것이네."
한편 소패성에서는 진궁이 원술이 보내온 밀서를 보며, 침통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자 여포가 진궁에게,
"선생, 원술이 나에게 황금 만 냥과 비단 천 필을 보낼테니, 서주를 공격하여 유비를 내쫓으라고 하니, 이게 바로,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소 "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진궁이 밀서를 접으며,
"기회이긴 하지만, 서주성이 그렇게 호락호락 하겠소? 관우,장비, 조운 등 모두 장군이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오."
그러자 여포가 발끈하며 말한다.
"무슨 소리! 적토마와 방천화극이 있는데 뭐가 두렵습니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근거지가 될 만한 견고한 성 입니다. 언제까지나 얹혀 살 수는 없지 않소? 어느날 갑자기 유비와 원수가 되면 어쩜니까? 먼저 선수를 쳐서 손을 쓰는게 낫지!"
여포의 말을 듣고, 진궁이 담담한 어조로 대꾸한다.
"좋소! 그럼 이럽시다. 이번 일은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니, 일단 원술에게 승낙한다고 하고, 황금과 비단을 받아들이시고, 서주성 공격은 조금 더 두고 봅시다."
"좋소."
한편, 서주성에서는 장비가 주최하는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장비가 부하 장수들에게 말한다.
"자~ 오늘은 한 잔씩들 마셔라! 우리 형님이 술을 금하라고 하신 것은 무슨 실수가 있을까 염려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술을 전혀 안 먹을 수도 없는 일이니, 오늘 하루만 취하도록 마시고 내일부터는 다시 금주(禁酒)하도록 하자. 그리고 활시위도 당기고만 있으면 활이 꺾이는 법이다. 오늘은 활시위를 풀어 줄 테니, 맘껏 마시고 내일부턴 성을 또 굳게 지키자!"
장비는 손수 술 항아리를 들고 다니며 휘하 장수들에게 술을 한 사발씩 가득히 따라 주며 한바퀴 돌고 있었다.
이윽고 집극랑(執戟郞 : 요즘 말로 중대장)조표(曺豹)앞에 왔다.
그러나 조표는 장비가 따라주려는 술을 받지 않았다. 그러면서,
"장군님! 저는 술을 전혀 못 합니다. 한 잔만 먹어도 저는 속이 뒤집어 집니다. 그러니 제게는 술을 주지 마십시오!"
하고 사정하였다.
그러자 이미 술이 가득 취한 장비가 손가락질을 하며,
"이런 망할 놈을 봤나? 술은 만병 통치약이야, 뭐? 술을 마시면 속이 뒤집어 진다구? 야, 이놈아! 이게 보통 술이냐? 이 술로 말할 것 같으면 장비술 아니냐? 그러니 군말 말고 한잔 마시란 말이다!"
조표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술대접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조금 마셔보더니 대뜸,
"장군님, 정말 못 마시겠습니다. 마시면 죽을 것 같습니다...!"
하고 고개를 털며, 애원하듯이 말했다.
그러자 장비가 조표에게 다시 손가락질을 하며,
"내 명을 거역하겠다는 것이냐,?엉? 벌주 열 잔을 마실래, 아니면 곤장 백 대를 맞을래, 응? 너 마음대로 골라봐!"
장비는 조표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그러자 조표는 오만상을 찡그리면서 장비에게 굽신거리며,
"장군, 용서하십시오. 제발 제 사촌매형의 얼굴을 봐서라도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사정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장비는 새롭다는 듯이 물었다.
"사촌 매형? 네 사촌 매형이 누군데그래?"
"제 사촌매형은 상 장군(上將軍) 여폽니다. 주공과 형제처럼 친하지 않습니까?"
조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비의 돌주먹이 그의 얼굴로 날아갔다.
"아이쿠! 장군! 장군....!"
"여포를 어찌 큰형님과 형제라 하느냐? 내놈이 감히 내 군령을 거역하는 것도 모라라서, 여포를 들먹이며 공갈을 쳐?"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조표가,
"아닙니다, 장군! 공갈이라뇨?"
조표는 장비의 위세에 쩔쩔매며 대답했다. 그러자 장비는,
"좋아! 오늘 내가, 네놈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마. 그리고 넌, 여포대신 맞는 줄 알아라!"
장비는 술상을 쓸어 내리고 피투성이가 된 조표를 냉큼 들어서 상위에 엎어놓았다.
그런 후에 긴 막대를 두 동강을 내어 한 손에 하나씩 들고, 다디미 방망이로 빨래를 두두리듯 조표를 마구 때렸다.
"살려주세요! 살려 주세요 ~...!"
조표는 온갖 사정을 해댔지만, 술에 잔뜩 취한 장비는,
"사내 대장부가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한단 말이냐! 차라리 더 때리라고 그래라! 안 그러면 여포, 네놈을 죽여 버리겠다!"
술취한 장비의 눈에는 조표가 이미 <여포>로 보였다.
그리하여 조표는 장비의 몽둥이 찜질로 초주검이 되고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