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3월 13일(목) 예레미야 39:1-18(2nd 39:11-18) 찬송 260장
18절) 「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가 노략물 같이 네 목숨을 얻을 것이니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더라」
하나님께서는 에벳멜렉의 구원이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믿다’는 보통의 뜻과는 다른 좀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원어상 이 ‘믿다’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신뢰하다’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이 뜻과 함께 ‘희망하다’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에벳멜렉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은
그가 하나님을 통해 희망을 바라보았다는 것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이는 달리 말해 에벳멜렉이 사람에게 희망을 걸지 않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즉 그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소망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예레미야를 죽이려 드는 당시 유다의 고관들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예레미야의 구명운동을 펼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만일 에벳멜렉이 유다의 권력자들을 의지하거나
그들을 통해서 자신의 앞길에 대한 희망을 모색하고자 했다면
그는 절대 예레미야의 구명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레미야를 구해주었다가는
자신의 사회적 위치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앞길을 맡겼으며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소망을 발견한 자였기에
세상 권력자들 앞에서 조금도 위축되거나 굴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러한 에벳멜렉의 모습를 통해 받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의 권력자들에게 희망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께 희망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세상에서, 혹은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구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망을 스스로 포기하는 자라 할 수 있다.
하나님보다 세상 사람들, 세상 권력, 또는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물질과 탐심 등을 더 사모하고 의지하며 그것에 소망을 둔다면
그의 마음에 하나님을 둘 수 있는 자리는 결단코 없다.
이런 삶을 사는 자는 코에 그 숨을 두고 사는 인생의 덧없음을 알지 못하고
평생을 자기보다 좀 더 가진 자들, 좀 더 높은 자들을 의식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의지하며 소망하는 이들, 의식하는 이들은
제아무리 높고 영화롭다 해도 결국 파멸을 면치 못할 썩어질 인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에게 소망을 두는 이들의 결국이 어떠하겠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삶의 소망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또 누구에게 두고 있는지를 살피며 점검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39:6-7)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 없는 인생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세상 것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온전하신 분이신지,
신실하시며 진실하신 분이신지를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할 때 우리의 삶은 결코 허무한 것으로 끝마쳐지지 않고
가치있는 것, 의미있는 것, 복되고 영원한 것으로 굳건히 세움을 입을 것이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시118: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