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낙비 트라우마
최원혜
내 고향 성주는 아름다운 10경*1이 있는 곳이다. 10경 중 내가 태어난 곳은 월항면 제7경 한개마을 옆 동네 대산2리 관동마을이다. 아름다운 절경이 있는 고향길 갈 때면 가끔 무서운 소낙비를 만날 때도 있다. 지금도 나는 비가 많이 올 때면 가끔 가슴 두근거리는 소낙비 트라우마가 있다.
불혹 나이 접어들었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다. 매년 음력으로 유월 초나흗날은 친정어머니의 기일이다. 그 시절“생활정보신문”에서 직장을 다닐 때이다. 성주 월항으로 가는 길은 달서구 동곡 다사 고갯길을 지나가야 한다. 남편은 사정이 생겨 못 간다기에 퇴근하고 혼자서 운전대 잡고 달리었다. 다사 고갯길 올라갈 즈음이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컴컴하며 천둥소리는 우르릉 쾅쾅” 난리 블루스다. 그때 국지성 호우 “소낙비”가 그 지역에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붓는 것이다. 그야말로 물 폭탄이다. 자동차 와이퍼로는 감당 못 할 정도의 비를 퍼붓는다. “타다닥! 타다닥!” 자동차의 천정은 곧 부서질 듯한 소리로 너무나 무서웠다. 운전대 잡고 처음으로 겪은 마구 퍼붓는 무서운 강적 소낙비를 만났다.
“소낙비”는 짧은 시간에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금방 그칠 것 같았다. 도저히 앞도 보이지 않았다. 갓길에 비상등 켜고 잠시 세워두고 비 그치기를 잠시 기다린다. 그렇게 내리던 “소나기”에 대한 유래가 있다. 갑자기 쏟아졌다가 바로 그치는 비”라고 한다. 농부가 소를 걸고 내기한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소 내기”라고 불렀다. 문헌상 중세국어에는 “쇠 나기”로, 여기서 쇠는"매우/심히"라는 뜻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현재의 ‘소나기’라는 이름으로 변형되었다.
어머니는 사남매*2를 하늘나라로 보내는 등 집안의 절손*3 우환 모두 겪어내며 살다가 그 후 오 남매 키워두고 돌아가시었다. 저승에 가셨는데도 집안의 우환은 끝나지 않아 2018년 내 막내 남동생을 데리고 가는 불상사가 또 닥치었다. 막내 남동생은 성주 월항에서 큰 남동생과 같은 동네에서 소형 포클레인*4 일하며 살았다. 베트남에서 데리고 온 올케와 혼인하여 다문화 가정 이루며 살았다. 슬하에 딸을 두었는데 그 질녀가 초등학교 육 학년 때 운명달리하였다.
그해 팔월 초하룻날 나는 간호조무사로 낮 근무 중이었다. 큰 남동생이 핸드폰으로 전화 왔다. “누나 막냇동생 쓰러져 구미 순천향병원 중환자실 있는데 위독하여 마지막으로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그날도 천둥번개와 더불어 내리치는 소낙비가 쏟아지고 있다. 급보 받은 소식에 앞이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 기일에 만났던 강적 소낙비를 또 만난 듯하였다. 너무나도 슬픔과 두려움에 심장이 멈추는 듯하였다.
맏딸인 나는 어머니의 우환은 돌아가셔도 끝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슬펐다. 그해 막냇동생은 8월 15일 중환자실 입원하여 보름 만에 예쁜 딸 두고 저세상 가버리었다. “뇌동맥 파열”로 “지주막하 출혈” 수술 후 일어나지 못하였다. 마지막으로 보내는 날 막내이어서 그런지 내 자식 보내듯 가슴 너무 아리었으며 슬펐다. 그때 소낙비처럼 흘러내리는 눈물은 감출 수 없었고, 너무도 아픈 가슴에 억장이 무너지는 듯하였다. 막냇동생 가고 없는 세월은 어느덧 팔 년이 지났지만 그리움에 울컥 올라오는 마음은 여전하다.
어머니는 마흔 넘어 막내를 낳았다. 나와는 열 살 이상 나이 차이가 있다. 내가 혼인하여 한창 힘들었다. 그 시절 명절 명목*5으로 친정 나들이 가고 하였다. 그때 막냇동생은 초등학교 나이이다. “누나 용돈 좀 줘!” 하던 음성이 아직도 내 귀에 쟁쟁하다. 형편 어렵다는 핑계로 막냇동생에게 넉넉히 주지 못하였다. 저세상 가고 없는 막냇동생에게 못내 짠하기도 하거니와 지난날이 회억 되어 후회막급이다.
세월이 흘러 막냇동생 딸인 질녀가 어느덧 올해 대학 입학하였다. 지금은 막냇동생이 용돈 달라던 그때보다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기었다. 막냇동생에게 못 해주었던 마음을 질녀에게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소액의 용돈은 가끔 주고 있다.
며칠 전 어머니의 기일을 맞이하였다. 성당 연미사 참례하고, 운전하여 성주 월항에 다녀왔다. 일기예보에 비가 많이 온다고 하여 내심 걱정되었다. 그래도 여동생이 따라간다며 같이 가자고 한다. 그때 시동 거는 순간 소낙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여동생과 합류하여 간다며 평리동 아파트로 오라고 하였다. 여동생 차로 성주 가던 길에 내리 퍼붓던 소낙비가 차츰 소강하였다.*6 성주 월항면 도착하였을 때이다. 또다시 장대비 같은 소낙비를 퍼부었다. 다행히 제사 모시고 대구로 오던 길은 소강하였다. 대구에 도착하였다. 또다시 소낙비 퍼부었다.
수성구로 오던 길목 두류(칠호광장)네거리 지나던 길이다. 그 시간 억수 같은 소나기를 퍼부었다. 그날은 하늘에서 퍼붓고, 차량 지날 때마다 도로에 고인 물로 옆 차선 차량이 동시에 퍼부었다. 물 폭탄 맞았던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도 무서워 심장이 내려앉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멈출 수 없음을 직감하였다. 도로 한중간이어서 멈추면 곧 사고라도 날 것 같아 무진장 겁이 났다. 수성구 도착할 때까지 퍼부었던 소나기는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의 기일 때마다 내리는 소낙비는 트라우마를 발생시킨다.
이튿날 아침에 큰아들이 전화 왔다. “어머니 수성구 어린이세상 복개도로 부근에 비 많이 왔다는 소식 있던데 비 피해 없느냐고” 하는 안부이다. 신경 써주던 큰아들이 너무도 듬직하였으며 고마웠다. 우리 집은 괜찮다며 큰아들에게 안심시키었다. 나는 비 오는 날 운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소나기 올 때 운전하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고 우려성을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중에 코헬렛이 말하기를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하였다. 소낙비 오듯 왔다가 가버리는 우리네 인생살이 생각하면 슬프고 슬프다. 그러나 나는 이번 생을 마감하고 가는 그날까지 수필가의 맥을 놓지 않으며 알차게 살아야겠다. 그런 마음에 오늘도 소낙비 트라우마 가지고 부지런히 아린 손가락으로 무던히 이 계절에 자판기 두드리고 있다.
(20260722.)(202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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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주 10경 : 제1경 성주 가야산, 제2경 독용산성 성주호 둘레길, 제3경 회연서원과 무흘구곡, 제4경 만귀정과 포천계곡, 제5경 성밖숲, 제6경 세종대왕자태실, 제7경 한개마을, 제8경 성주역 사 테마공원, 제9경 성산동 고분군, 제10경 성주 참외 하우스 들녘.
*2. “네 남매”와 “사 남매” : 일반 표기 혹은 부르기로 “N 남매”로 사용한다.
*cf. 전국 유일하게 “범어네거리”라고 한다. “범어 사거리”라 하지 않는다. 특이하다.
*cf. 반월당교차로, 두류네거리(7호광장), 계산오거리, 신남네거리(청라언덕역), 반고개네거리,
감삼네거리
*3. 절손(絶孫) : 대를 이을 후손이 끊어짐.
*우환(憂患) : ①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나 아픈 사람이 생겨서 나는 걱정이나 근심.
② 몸의 온갖 병.
*4. 포클레인(Poclain) : 유압을 이용하여 기계 삽으로 땅을 파내는 장비.
*5. 명목(名目) : 표면에 내세우는 형식상의 구실이나 근거.
*6. 소강하다(小康--) : 혼란스럽거나 소란스럽던 것이 그치고 다소 잠잠해진 상태에 있다.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