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명 | 지명유래 |
| 금마리 | 금마리는 원주군 우변면 지역으로 윗기마동이라고 부르고 용석리(龍石里)는 아랫기마동이라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삼국 시대부터 이곳에는 '금마곡소(金馬谷所)'라는 천민 집단구역이 있다. 수공업과 광업에 종사했는데 그 위치는 『金馬谷所 在酒泉縣南十五里, 금마곡소는 주천현 남쪽 15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905년(고종 42) 원주에서 영월군 양변면에 편입되었고 마을 앞으로는 제천으로 연결되는 지방 도로가 확장되었으며 현재 4개리 162가구 608명의 주민이 주막거리, 사기막, 장승백이, 가오개, 결운, 산외실, 바둑골 등지의 자연 부락에서 생활하고 있다. 주민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쌀, 콩, 팥과 같은 식량 작물과 참깨, 들개, 담배, 고추, 약초 등의 특용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
| 도천리 | 본래 영월군 우변면(右邊面)에 딸린 지역으로 태기산과 치악산에서 내려오는 섬안이 강이 마을을 돌아서 흐르므로 '도는내→되내→도천'으로 부르다가 후에 건너 마을인 도원리(桃源里)와같은 의미로 '도천리(桃川里)'라 하였다. 도원리는 섬안이강 안쪽에 있으므로 '안도내'라 칭하고, 도천리는 바깥쪽에 있으므로 '바깥도내'라 불렀다. 도천리는 마을의 진산인 비산(694.3m)을 경계로 원주 신림면 송계리와 접하고 강을 사이에 두고 수주면과 이어지는, 행정 2개리 111가구에 377명의 주민들이 벼농사와 콩, 옥수수, 담배, 느타리버섯을 재배하면서 만촌, 벌말, 버들치 등지의 자연 부락에서 생활하고 있다. |
| 신일리 | 한때는 원주군 우변면(右邊面) 지역이었으나 영월군으로 편입되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흥리(新興里), 일오곡리(日午谷里), 공순원(公順院)을 병합할 때 신흥과 일오곡의 이름을 따서 '신일리(新日里)'라 하여 양변면(주천)에 편입시켰다. 신일리에는 보안도(保安道) 소속의 신흥역(新興驛)이 있었던 역골이 있었으며, 그 이웃에는 공순원(公順院)이라는 원집이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천현 서쪽 15리에 도내부곡(刀乃部曲)인 천민 집단구역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행정 4개리에 259가구 997명(1992년 기준)의 주민들이 자연부락인 금산, 비석거리, 역골(신흥동), 마평, 황골, 나래실, 공순원, 중간뜸, 나랭이 마을에서 담배, 고추, 들깨, 채소, 약초 등을 재배하여 생활하고 있다. |
| 용석리 | 원주군 우변면(右邊面)에 속했던 곳으로1905년(고종 24)에 영월군으로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용수곡(龍水谷), 석교리(石橋里), 대촌(大村), 한전리(閑田里), 상신평(上新坪), 외신평(外新坪), 내신평(內新坪), 사슬치 등을 병합할 때 '용수(龍水)'와 석교(石橋)'의 이름을 따서 '용석리'라 부르게 되었다. 본 마을인 대촌을 중심으로 5개 행정리에 269가구 1,041(1992년 기준)의 주민들이 고추, 담배, 참깨, 들깨, 약초 등 특용 장물과 논농사에 종사하고 있다. 용석리는 일명 하기마동이라 불렀고, 금마리는 상기마동이라 칭했는데, 송학산(松鶴山, 819m)을 사이에 두고 제천 송학면 자곡리(紫谷里)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달오산에서 채광한 원석을 나르기 위한 아세아시멘트의 컨베이어(conveyer)가 설치되어 있다. |
| 주천리 | 고려때 주천현(酒泉縣)이 있었던 곳으로 원주목에 소속되었다가 1905년(고종 42)에 영월군으로 편입되었다. '주천'이라는 지명은 술이 샘솟는다는 주천석(酒泉石)에서 시작되었으며 지금도 망산 밑에는 주천이라는 샘터가 잘 보존되어 있다. 주천강을 사이에 두고 청허루(淸虛樓)와 빙허루(憑虛樓)가 마주보고 서 있는데, 조선 순조때의 대학자로 평창 봉평출신인 봉서(蓬西) 신범(辛汎)은 「越行」이라는 영월기행문에서 『청허루』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주천이 생긴 역사는 옛날 어느때인가 가리키는 옛터는 좌측 물가인데 빛바랜 누각은 햇빛 받은 채 고요히 서 있고 궂은 비바람은 어제현판을 두드리네 그 후 좌변면과 우변면을 통합하여 양변면이라 칭하면서 송하리와 오목리를 병합하였다. 이곳에는 주천면사무소, 주천농고, 지서, 우체국 등 관공서가 많이 있으며, 7개 행정리에 728가구 2,527명(1992년 기준)의 주민들이 농업과 상업에 종사하고 있다. |
| 판운리 | 원주군 좌변면(左邊面)에 딸린 지역이었으나 1905년(고종 42)에 영월군에 귀속되었다. 좌변면이란 주천강을 중심으로 원주쪽에서 좌측을 좌변면, 우측을 우변면이라 하였다. 이곳 지명의 유래는 구름과 안개가 넓게 끼이는 곳이므로 '널운' 또는 '너룬'이라 했으나 일제 시대인 1914년에 유목정, 삼거리, 밤뒤, 새벌, 둔전동, 가마동, 장충리 등의 행정구역을 병합하면서 '판운리'라 부르게 되었다. 판운리는 4개 행정리에 188가구 672명(1992년 기준)의 주민들이 콩, 옥수수 등의 밭농사와 특용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