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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 디자인, 언제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나
정원을 디자인하는 일은 언제, 누구로부터 시작됐을까? 이 대답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굳이 답을 찾자면 정원을 만드는 일 자체가 머리 속에서 밑그림을 그린 뒤 만들어졌을 터이니, 정원이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정원 디자인도 함께 발달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좀 더 직업적으로 전문가가 생겨난 시점은 언제였을까? 여기에도 많은 이견이 있지만 서양의 경우, 현대적 의미의 전문 직업인으로서 정원의 밑그림을 그려온 설계자의 등장은 17세기 프랑스의 클로드 몰레(Claude Mollet, 1564~1649), 그의 아들 앙드레 몰레(André Mollet, ?~1665), 루이 14세의 전속 가든 디자이너였던 앙드레 르 노트르(André Le Nôtre, 1613~1700)에게서 그 맥을 찾는다.
동양의 경우는 어떨까? 물론 동양에도 정원 디자이너가 있었음에 틀림없지만 그 대부분이 정원의 주인이거나 문인, 화가 혹은 통합적으로 건축을 담당했던 장인이나 풍수지리가에 의해 조성되어왔다. 때문에 직업인으로서 정원 디자이너를 찾는 일은 동양 정원에서는 쉽지 않고, 당시에는 있었다 할지라도 지금까지 그 이름이 이어져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정원을 디자인함에 있어 특별한 원칙이나 요령이 있을까? 정원 디자인의 순서나 매뉴얼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통 절차상 아래와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머리 속에 정원에 대한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고, 이후에는 이 그림을 시공이 가능하도록 그려내는 것이 필요하다. 때문에 이 밑그림은 개인 취향의 그림이 아니라 도면으로 그려져야 하고, 이를 위해 건축에서 통용되는 공통 코드를 대부분 그대로 사용한다.
가든 디자인은 정확한 측량을 바탕으로 도면이 그려지고, 이 도면을 다시 현장에 도입시켜 최대한 오차를 줄여 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축척이나 혹은 측량이 잘못됐을 경우 근본적인 실수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 예산의 범위: 아무리 좋은 정원을 만들고 싶어도 예산의 범위를 벗어날 수는 없다. 예산에 맞춰 소재와 재료를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 정원의 환경 이해하기: 땅의 모양, 빛의 방향, 기후, 흙의 특징, 이웃과의 관계는 내 집 정원을 이해하는 첫 번째 키워드다. 만일 정원이 통행량이 많은 도로변에 인접해 있다면 무엇보다 소음과 공해를 완화시킬 수 있는 나무 벨트의 구성이 필수적일 수 있다. 또 이웃한 건물로 인해 하루 종일 볕이 들지 않는다면 그늘에 강한 식물로만 구성하는 디자인적 해결책도 필요하다.
· 측량하기: 내 집 정원의 크기를 정확하게 자로 잰다. 철물점에서 파는 30m, 50m의 긴 줄자를 이용하거나 가격은 비싸지만 수고로움을 덜 수 있는 레이저 거리 측정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
· 축척을 이용해 땅의 모양 그리기: 정확한 밑그림 그리기를 위해 축척자를 이용해 도면 위에 땅의 모양을 그린다. 보통은 1:100이나 1:50 정도의 축척을 사용한다. 이 빈 도면은 이제 수많은 생각과 아이디어를 옮겨놓는 연습지로 정원의 구상이 끝날 때까지 늘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 공간과 동선 만들기: 입구에서 건물까지, 건물에서 정원의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것은 정원 디자인에 있어 가장 우선될 요소다. 너른 정원의 경우는 순환식으로 한바퀴를 돌고 나오도록 구성을 하기도 하지만 좁은 정원의 경우는 일자형 동선을 많이 쓴다.
· 평면도 그리기: 평면도는 1m 상공으로 몸을 띄워 직각으로 땅을 내려다봤을 때의 그림으로, 일반적으로는 옥상과 같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모습의 도면을 말한다. 정원 디자인의 기본 구성은 대부분 이 평면도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 측면도 그리기: 평면도만으로는 식물, 건물의 크기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사람들이 직접 느끼게 되는 정원의 모습은 평면도가 아니라 사람의 눈높이에서 실제로 어떻게 정원이 구성되는지를 잘 파악할 수 있는 측면도다.
· 식물 디자인 도면 그리기: 어떤 식물이 구성되는지, 그 식물의 크기와 색상은 무엇인지를 자세하게 남기는 그림으로, 정원 디자인 도면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 원근법을 활용한 그리기: 흔히 조감도라고도 한다. 정원이 완성되었을 때 입체적으로 어떻게 보이는지를 그려주는 그림으로 손그림이나 CAD를 이용한 3D 영상으로 만들어낸다.
· 시공에 필요한 구체도면 그리기: 바닥 깔기, 울타리 세우기, 연못 만들기 등 정원을 조성할 때 건축 시공에 필요한 세부 도면을 그리는 작업을 말한다.
그렇다면 내 손으로 직접 정원을 디자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너무 막막하다면 정원 전체를 한꺼번에 구상하려고 하지 말고, 세부 영역으로 정원을 구별한 뒤 각각의 디자인을 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때 부분적으로 고려해야 할 정원의 세부 영역은 일반적으로 입구, 바닥, 울타리, 경계, 앉는 공간, 구조물의 구성 등으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1 자갈로 조성된 동선. 2 나무껍질(바크, bark)로 만든 동선. 3 블록을 깔아 동선을 만들었다. 4 돌로 조성된 동선. 5 자연스러운 흙길. 동선은 폭과 크기, 형태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재료로 포장을 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 필요하다. 6 집중호우에 대비한 배수로의 확보도 정원에서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
정원 내 동선은 디자인에 있어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우선 동선의 형태를 일자형으로 만들지, 한 바퀴를 돌아나올 수 있는 순환형으로 만들지부터 생각해보자. 이 동선이 결정되면 동선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나 꽃밭 등의 영역을 디자인하도록 한다.
동선 디자인에 있어 중요한 것은 재료의 선택이다. 쉽게 말해 바닥 포장재를 결정하는 것으로, 우선 동선의 형태부터 잡은 뒤 여기에 맞는 재료를 선택해보자. 일반적으로 바닥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묻혀진 디자인 요소처럼 보이지만, 바닥의 디자인과 재료의 품질에 따라 정원의 격이 매우 달라진다는 것을 잊지 말자.
정원의 입구는 일반적으로 대문, 담장, 동선으로 표현된다. 특히 대문은 사람으로 치면 첫인상과 같기 때문에 정원 전체를 대변하는 얼굴 역할을 하게 됨을 잊지 말자. 때문에 디자인에 있어서도 전체적인 정원 느낌을 대변할 수 있는 재료와 형태를 택하고, 더불어 대문과 연결되는 담장이나 울타리의 처리 방식도 매우 중요하다.
1 철제로 만든 대문. 2 생울타리를 이용한 입구. 3 나무 문. 4 대나무 문. 5 유럽형 시골풍의 대문. 6 함양에 위치한 일두 정여창 고택의 한국형 아치 정원 입구. |
담장은 정원을 둘러싸거나 나누는 영역으로, 아무리 작은 정원이라 할지라도 이웃집과의 경계, 도로와의 경계 등에 의해 의외로 비중이 크다. 게다가 울타리나 담장 역시 바닥과 마찬가지로 자칫 눈에 띄지 않는 구성 요소로 생각하기 쉽지만 식물을 받쳐주는 배경이 되기 때문에 이 처리가 미숙하게 되면 정원의 품격이 확연히 떨어진다.
생울타리나 혹은 목재 등의 자연스러운 소재를 택할 것인지, 콘크리트, 벽돌, 블록 등 견고한 재료를 선택할 것인지, 또 형태 면에서 전통성을 따를 것인지 혹은 모던한 스타일을 선택할 것인지 등 다양한 고려가 필요하다. 일부 마을에서는 울타리 높이의 제한을 두는 경우도 있으니 이 부분 또한 쌓기 전 반드시 검토가 필요하다.
정원은 어쩔 수 없이 서로 다른 재료가 부딪치는 장소다. 문제는 이런 다양한 재료들이 만나는 그 경계의 처리가 정확하면서도 아름다워야 한다. 보통은 목재나 철, 벽돌 등을 이용해 경계를 말끔하게 정해주는 것이 좋고, 이때 물 빠짐을 고려해 특별히 배수로를 확보해주는 것도 꼭 필요하다.
1 자갈과 흙의 영역을 구별하기 위해 경계석을 설치한 모습. 2 데크와 식물을 심을 공간을 나무로 구별한 모습. 3 최근에는 쇠를 이용해 화단을 구획하는 경우도 많다. 4 일본의 전통 정원은 특히 깔끔한 경계의 처리가 특징이다. 5 서로 다른 물성이 부딪치는 상황에서는 그 가장자리가 깔끔하고 세련되게 연출되도록 마감 정리를 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
완전하게 고르고 평평한 땅을 소유한 경우가 아니라면 모든 땅에는 자연스러운 경사가 있기 마련이다. 이 경사는 때로는 정원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지만, 이를 잘 이용하면 정원을 좀 더 깊고 풍성하게 연출할 수 있는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경사의 격차가 있는 곳은 일반적으로 계단을 만들거나 자연스러운 경사로를 만드는데 이때도 다양한 재료와 형태를 골라 디자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침목이나 화강석을 이용해 계단을 만드는 경우가 흔한데 이 외에도 다양한 소재를 선택해볼 수 있다.
1 구근화단 가운데로 계단이 위치해 있어 안정감을 준다. 2 계단은 보통 안전을 위해 높이 150mm, 폭 최소 300mm 이상을 확보해주어야 한다. 3 한국형 정원에서의 돌 계단. 4 익숙한 돌 계단이 정겨운 모습이다. 5 계단의 재료는 사진에서처럼 다양하게 사용이 가능하지만 무너질 위험이 없도록 주의해야 하고, 특히 콘크리트 기초가 필요한 부분은 정확한 시공 매뉴얼에 따라 세부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
정원은 숲이 아닌 이상 식물만으로 구성되지는 않는다. 사람이 머물거나 이용할 수 있는 구조물이 필수적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정자가 대표적이고, 서양에서는 파빌리온, 퍼고라 등의 인공적 구조물이 매우 다양하게 이용된다.
서양에서는 정원과 예술의 만남이 늘 공존해왔기 때문에 정원에서 만나는 조각물 또한 매우 친근한 소재다. 우리의 경우는 조각물보다는 너른 바위나 독특한 형태의 돌을 선호했다. 또 최근에는 사라지고 있는 우물이나 부뚜막을 한국 정원의 새로운 구조물로 제시하는 디자인도 많아지고 있다.
화분이나 식물을 담을 수 있는 용기를 이용한 정원은 베란다나 실내 정원으로만 국한될 필요는 없다. 일반 정원 속에서도 특별한 용기를 이용해 정원의 느낌을 매우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다. 특히 용기의 재질이나 색상에 따라 정원에 포인트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화룡정점의 느낌으로 정원에 어울리는 용기를 선택해보는 것도 좋다.
1 강렬한 색감의 화분은 그 자체로 정원의 포인트가 된다. 2 양 옆으로 배치한 화분이 바닥의 색과 보색 대비를 이룬다. 3 통일감 있는 화분 디자인. 4 정원 사이에 문득 등장하는 화분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5 정원 한 구석에서 볼 수 있는 화분 디자인. |
정원은 인간이 만들어낸 공간이지만, 동시에 자연스러움이 가득한 휴식의 터전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정원 안에 사람들이 앉아 즐길 수 있는 공간은 필수적이다. 이때 앉는 의자의 형태, 혹은 탁자의 모양이나 재료, 더불어 공간 안의 바닥 재질이나 구조물에 대한 연출도 매우 중요한 디자인의 요소다.
1 정원 속의 앉을 수 있는 장소는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동시에 줄 수 있어야 한다. 2 일반적으로는 벤치나 테이블 세트 등을 이용한 공간 연출이 많다. 3 돌을 이용해 앉을 수 있도록 만든 공간. 4 편안해보이는 벤치. 5 최근에는 모던하면서도 실험성이 짙은 다양한 재질과 소재의 의자가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
식물의 구성과 배치는 정원 디자인의 핵심 요소다. 식물 디자인의 노하우는 작가마다 그 깊이와 방식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는 작은 숲 속을 연출하는 숲 속 정원 스타일, 무릎 아래로 초화가 낮게 깔리는 초원풍 정원, 사계절 화려한 꽃을 감상할 수 있는 꽃 화단 정원, 그 외에도 식물을 자생지별로 묶어 심는 가뭄에 강한 식물 정원, 습지 정원, 연못 정원 등의 구별이 가능하다.
가든 디자이너는 이런 큰 틀 속에서 좀 더 다양하고 독특한 색감, 형태, 질감의 식물 디자인에 도전하게 된다. 그러나 식물은 살아 있는 생명체이므로 단순히 ‘디자인’만을 생각한 디자인은 실패를 부른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식물에 대한 철저한 공부가 우선되어야 한다.
1 초록의 색감만으로 모던하게 연출된 식물 디자인 2 식물의 높이와 볼륨을 가지고 계산하여 연출한 식물 디자인 3 파스텔톤 보라빛의 카마시아(camassia)만으로 구성된 초원풍의 식물 디자인 4 물을 좋아하는 식물로 구성한 워터 가든 5 화려한 색감의 꽃을 중심으로 구성된 식물 디자인 |
가든 디자인의 영역은 건축과 인테리어 분야와 다루는 재료에 있어 유사점이 매우 많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바로 살아 있는 생명체 ‘식물’에 대한 부분이다. 모든 생명체는 각자의 의지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 식물 역시도 비록 움직일 수는 없지만 생명체로서 자신의 삶을 살기 때문에 정원사가 아무리 애써도 식물 스스로 주어진 환경을 이겨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식물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공부가 필요하고, 또 바로 이 점이 정원이라는 세계로 사람들을 빠져들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좋은 정원 디자인의 답은 늘 나로부터 시작된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정원은 어떤 모습일까를 떠올려보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애를 쓰다보면 결국 내가 꿈꾸던 정원이 완성된다. 그간 연재되어온 많은 정원디자이너들은 그들만의 방법으로 그들이 꿈꾸어온 정원 디자인의 세계를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정원은 어떻게 꿈꿔야 할까? 이미 만들어진 선행 사례에서 많은 힌트와 영감을 얻었다면 이제 조금씩 마음을 열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어떤 정원을 꿈꾸고 있는가? 가슴에 설레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그 상상으로부터 정원의 꿈이 시작된다.
[정원의 발견] 도서 출간
네이버캐스트에 연재중인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와 함께하는 정원 이야기’가 [정원의 발견]이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저자가 직접 보고 느끼고 터득한 정원의 모든 것을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