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은 정말 뜨거웠다.
2002년 6월.
월드컵!
월드컵의 열기가 용광로처럼 아직도 뜨끈뜨끈하던 7월에 친구들을 두고 쫑파는 미국으로 떠났다.
목이 쉰채로 떠났는데 가서 보니 미국 사는 한국 사람들도 목이 많이 쉬어 있었다.
2009년, 2013년(어머니상) 한국을 방문하여 텀블러들과 짧게 재회했다.
2019년 5월 텀블러들의 미주 여행시 뉴욕에서 만났다.
2024년 쫑파 한국 방문하여 4번째 조우.
나도 20년간 친구들과 만남은 4번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텀블러 카페와 카톡이란 존재가 있어 갈증을 풀 수 있었다.
그러나 아내와 아내의 친구들은 달랐다.
아내는 친구들과 얼마동안은 연락이 되었다.
그 후 한국 전화번호 체계가 바뀌고 우리가 뉴욕으로 이사를 가면서 우리 전화도 비뀌면서 친구들과 연락이 끊겼다.
내가 친구의 소중함을 잘 알기에 아내에게도 친구를 꼭 찾아서 이번 한국 방문시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한국 방문전에 연락처를 인터넷이나 전화로 이리저리 수소문 해 봤지만 찾지 못했다.
한국을 가서도 지방을 다니며 계속 친구찾기를 시도 했으나 실패다.
시간은 흘러 한달을 넘긴 5월5일이다.
순천만 습지 국가정원에 가기 위해 순천에 왔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며칠간 엄청난 비가 올 것으로 예보가 되었다.
순천만 습지는 포기하고 아내의 고향으로 가서 비를 피하기로 했다.
비를 피하면서 마지막 시도라는 생각으로 친구찾기에 나섰다.
친구들이 전부 수도권에 살지만 고향에 가서 연결 고리를 찾자.
친구들 연결고리를 그림으로 그렸다
친구 A 와 친했던 B의 삼촌이 대우전자 대리점을 했었단다.
그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대우는 사라지고 그자리에 LG대리점이 있다.
거기 가서 사정 얘기를 하니 이 자리에 있던 가게는 다른 곳으로 이사가서 지금은 삼성 대리점이란다.
삼성으로 갔다.
삼성에 있는 중년여성이 말하길 여기 운영하시던 분들은 십 수년 전에 그만 뒀다.
그런데 자기 이모가 그집과 혹시 연락이 될 수도 있으니 연락처를 남겨두고 가란다.
연락처는 남겼지만 막막하다.
또 다른 친구 C의 부모님이 가게를 했었다는 고등학교 앞으로 갔다.
학교 앞 가게는 없어지고 새길이 생겼다.
동네에 사람도 거의 안보인다.
대문 열려있는 집에 들어가 사람을 불러도 응답이 없다.
시간이 한참 지났다
저쪽에서 50대 쯤의 남자가 걸어 온다.
얘기를 하니 <나는 잘 모르겠고 오래 전 일이니 우리 어머니가 아실지 모르겠다며 따라 오라>고 한다.
그 남자 집에 가니 노모가 말씀 하신다.
'학교 앞 가게 하던 분들(C의 부모님)은 돌아 가시고 그 집 큰딸(C)의 동생의 친구 엄마가 저 쪽 동네에 산다.(복잡하다)
'나와 함께 가보자'고 하신다.
그래도 아직 시골 인심은 살아 있구나 싶다.
몇다리를 건너 남의 얘기인데 기꺼이 앞장 서 주시니 고맙다.
.
그 집에 가서 얘기 하니 자기 딸에게 전화를 건다.
딸은 부산서 공무원을 하고 있단다.
이 딸이 C의 동생과 친구사이란다.
딸이 전화를 받고 상황 설명을 듣더니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친구 전화번호를 알려 주느냐'면서 거절한다.
하 험한 세상이니 일리가 있다.
그럼 우리 이름과 전화 번호를 먼저 줄테니 그 쪽에서 확인해 보고 연락을 달라고 했다.
하루가 지났다.
비는 거세어지고 바람도 심하다.
삼성 대리점으로가서 연락이 없냐고 물으니 자기 이모님이 연세가 많으셔서 전화를 잘 안받으신단다.(여기는 포기 모드...)
또다른 친구생각이 났단다.
옆동네 면소재지에 있는 D라는 친구의 옛집으로 가보기로 했다.
좁은 골목길에 관리 안된 옛날식 스레트 집들이 촘촘하다.
오랫 동안 관리가 안되어 쓰러져가는 담장과 빛이 바래가는 지붕.
담장 안을 들여다보니 집안에도 잡초가 무성하다.
젊은이들은 떠나고 노인분들만 사는 동네라서 쇠락해 가는 모습이 안쓰럽다.
D친구의 옛집을 찾아 가니 대문은 열려 있는데 인기척이 없다.
불러도 역시 대답이 없다.
근처를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그 집에 할머니(D의 어머니) 계실텐데 귀가 어두우셔서 못 들으실거란다.
옆집 할머니가 통역(손짓발짓 통역) 겸 같이 가주셨다.
딸의 전화번호 아시냐니까 모르신단다.
귀가 어두워서 딸과 통화는 못하고 가끔 올 때 만 만나신단다.
연락은 포기하고 용돈만 드리고 나왔다.
일정상 일단 그 곳을 떠났다.
며칠 후 전주 한옥 마을을 방문중일 때 전화가 왔다.
그토록 찾던 친구 C의 동생이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친구 전화번호를 알려 주느냐'면서 거절했던 C의 동생의 공무원 친구가 C의 동생에게 전화를 해 이런 사람 아냐고 물었단다.
요즘 하도 보이스 피싱 같은 게 많아서 연락을 안할까 하다가 혹시나 해서 전화 한번 해 봤단다.
C의 동생은 언니의 친구인 아내를 예전에 잘 따랐었다고 한다.
이 동생이 말하길 언니인 C도 친구를 그동안 애타게 찿고 있었단다.
드디어 C의 동생을 통해 친구 C와 연락이 되었다.
C와 연락이 되니 나머지 친구들은 굴비 엮듯 연락처가 딸려 나왔다.
이후 5월 25일 광명역에서 아내의 동창들이 만났다.
거의 22년만이다.
친구 C는 우리 결혼식 때 축가를 불러줬던 친구이다.
후기 :
이후로 그녀들의 수다방이 카톡에 개설 되었다고 한다.
수다방이 불 날 것 같아 소화기도 비치 했다는 소문인데...
우리는 잘 알잖어?
여자들 수다가 남자들과는 다르다는거.
소화기로 될까?
간이 소방서라도 하나 유치해야 ...
첫댓글 큰일 하셨어요. 한편에 드라마 같이 가슴따뜻한 멋진 글 입니다
여행에 추가된 추억 찾기
어릴적 친구를 찾는다는 것은 추억을 찾는 것이다.
그것도 여행에 갑자기 추가되어 어렵게 찾았는데 어찌 조용할 수 있나??
옛 추억의 길인데...
올해 민속촌 텀블러 만남도 49년째이네.
굳이 의미를 두자면 희년 전야제 일세.
종교에서 말하는 희년 50년
의미가 크네
자네 식당에서 50년 다시 가보자고... 그랬었지.
우리도 추억의 길 이야기하며 다시 가보세.
난 종교는 없지만
내년엔 휴식년으로 모두 마음의 평화가 가득하고 다음 희년까지 가기를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