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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부음과 방언 통변) 불이 몸을 통과 하는 듯한 기름부음을 체험하고 방언으로 기도할때에 자주 불이 임하는듯한 기름부음을 만나곤합니다. 특히 입술과 손이 뜨겁고 찌릿거림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기름부음을 경험하고 방언으로 종일 기도를 하기 시직 하면서부터 방언을 통역 할수 있게 하셨습니다. 치유가 필요한 주님의 사람들을 만나서 기도로 돕게 하실때는 손에 불이 임하는듯 불이 임하기도 하고 뜨겁게 몸이 후끈거림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럴때에 온몸이 불이 임하는듯 더워집니다.. 짧은 시간을 기도로 도와 드려도 강하게 임하실때는 몸이 후끈거림이 있어 땀이 흘립니다. 피부가 따끔거리는 증상이 나타나기도합니다. 질병이 떠나가기도하고 마음의 소리를 듣기도합니다. 마음과 다르게 영의 소리를 듣기도합니다. 기도를 받는 사람에게도 기름부음이 나타나 몸이 후끈거리고 더워짐을 경험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몸에 나타나는 증상 인것을 ... 기름부음이 처음에 부으신후에 이십일 후에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부터 하루 종일 방언으로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방언으로 기도하는것은 순간순간 기도를 드립니다. 종일 기도하게 시작하면서 방언을 통역하게 하셨습니다. 방언으로 충분히 기도를 하면 미리 될일을 보이시기도 하고 또는 어떤 사실을 알게 하시어 기도를 하게하십니다. 여러달 또는 한달후의 일들을 알리시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을 중보 할때에 환상을 통하여 효과적으로 기도하도록 도우시기도 합니다. 급박한 상황에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말씀을 주시기도 하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기도하고 성령님의 음성으로도 듣게 하실때도 있습니다. 찬송으로 계시 하시기도 하십니다. 기도 제목이 있어서 작정하고 기도를 하다 보면 환상으로 정확하게 알리시기도 합니다. 성령님의 말할수 없는 지혜와 계시와 다양한 치유와 회복의 기름부음을 경험합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지혜와 지식의 말씀 이라는 선물을 주었다고 그래서 보게 되고 듣게 되고 알게 하시는거라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그후에 많은 사람들을 보내시고 위로하게 하시고 방언을 통역하게 하시어 지식의 말씀으로 사람을 돕도록 도우십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경험한후에 부터 지체들과 기도를 함께 하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다보니 보면 방언으로 기도를 하시되 영을 분별하도록 돕게하십니다. 어떤 사건 사랑들에게 배후가 사단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알리시어 대적기도를 통하여 영적 전쟁을 하게 하실때도 있습니다. 방언을 통역하게 되면서 부터 늘 기도하지만, 조용히 기도하는편입니다. 바울 사도는 방언 기도는 영의 비밀이라 하였지요. 성령께서 우리영에 기도할말을 넣어주시어 기도하게 하시는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아는 사실을 기도하게 하시는것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할때 주님의 마음을 알리실때가 있습니다. 방언 기도를 소리를 지르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방언 기도는 끈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기도 할때에 방언에만 마음을 쓰고 소리를 지르거나 박수를 친다면 오히려 성령의 음성을 놓칠수 있습니다. 저는 기도 생활 가운데 꼭 명심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고백 하기를 신령한 은사들을 사모하되 덕을 세우며 질서 있게 품위있게 하라고 권유를 했듯이 조용히 은은하게 드립니다. 어떤 면으로 너무 시끄럽게 방언을 하는데만 집중하면 오히려 성령님의 내적인 음성을 놓칠수도 있습니다. 오랜 시간 기도로 나아가면은 성령님의 소리는 섬세하고 조용히 들려 주십니다. 각양 성품에 따라 다르게 기도 하는것을 저도 인정합니다. 제 경우에는 조용히 방언으로 기도를 해도 주님은 그 기도를 놀랍게 들으십니다.. 버스를 탈때도 기차를 탈때도 방언 기도는 계속 드립니다. 다른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아주 작게합니다. 아침에 일어 나면 기도를 시작하면서 일어 납니다. 그리고 자기전까지 늘 하고 다니기도 합니다. 더구나 어떤 일에 주님의 뜻을 알기를 원할때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바를 지속적으로 방언을 하면서 다닙니다. 그리고 안에 계신 성령님께 집중합니다.. 그레서 더욱 조용히 방언으로 기도를 할때가 많이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알기를 원할때 더욱 그리합니다. 충분히 오랜시간 방언으로 기도를 드리고 조용히 집중하면 세미하게 들려 오는 음성을 듣습니다. 깊숙히 안으로부터 올라 오는 생수같이 터져서 올라 오듯한 은혜가 있습니다. 방언기도를 하시는 분이라면 통역의 은사를 사모하십시요. 그리고 오랜 시간 먼저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고 비교적 오랜 시간 방언으로 기도를 드리십시요. 그런후에 마음을 고요히 하고 안에 계신 성령님께 집중 하는것이 중요합니다. 오랜시간 말씀을 들으며 기도로 나아고 있으면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도하고 빛이 내려지기도 하는것을 영으로 봅니다. 너무 큰 소리로 흥분하여 기도를 한다면 정작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음성을 놓칠수가 있습니다. 저는 특히 어떤 사람을 위하여 중보할때는 상대방의 이미지를 생각하고 기도를 합니다. 그럴때 주님은 환상을 통해 그분의 뜻을 알리실때가 있습니다. 평소에 조용히 방언으로 기도를 오랜 시간 합니다. 어떤 사람을 위하여 중보를 하면 내 안에 가득 채워 진듯한 무거움이 영으로 느껴집니다. 마치 바람이 내안에 가득찬 느낌이라고 할까요. 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사람이 마음에 떠오르거나 환상을 통해 무언가 알리실때는 꾸준히 그분만을 위하여 기도를 보냅니다. 한사람을 위하여 밤을 새우며 기도할때도 있습니다. 그분을 위험에서 건지시기도 하고 침상에서 힘든 일들이 있었는데 기도하게 하시고 그 위험에서 건지시었것들 수도 없이 경험했습니다. 내영에 주님이 성령으로 부담을 주시는거랍니다. 그리고 충분히 방언으로 중보하며 진심으로 중보를 합니다. 묵직한 성령의 바람같은 느낌이 다 빠져 나갈때까지 간절한 심령으로 방언으로 기도를 합니다. 어느 순간 성령의 바람 같은 것이 다빠져 나가고 가벼운 느낌이 올때까지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방언으로 기도 하기를 그치고 그리고 마음을 아주 조용히 주님안으로 들어갑니다.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조용히 내부로 들어 갑니다. 내 안의 영을 들여다 보기를 원하는것입니다.. 성령님이 내게 말씀하시는것을 듣기 위함입니다.. 성령님이 내안에 계시고 그분이 나를 잘알고 계시기에 그분께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 이 문제에 대해 제게 주님의 뜻을 전달해 주십시요.. 하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앉힙니다. 급한 일은 급하게 알리십니다. 대부분 환상을 통해 알리시기도합니다. 일상에서도 바언이 통역이 되면 많은 부분을 주님의 인도를 받기가 쉬워집니다. 기도 가운데 들려진 주님의 음성은 꼭 이루어 지는역우가 많았습니다. 일본의 해일이 일어 나서 핵이 폭발하는것도 미리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핵으로 인하여 재앙이라는 음성도 듣게 하셨습니다. 실제로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것을 많이 경험을 했습니다. 내안에 있는 기름부음은 방언으로 기도할 때 더 활발하게 나타나시고 역사하는 것을 분명히 경험하고 살아갑니다. 방언은 우리의 영에서 나오는것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생각은 모두 이해가 안될수도 있습니다. 방언은 우리 내부의 가장 깊은 곳, 영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부분 먼저 말씀을 먼저 묵상하고 방언 으로 기도를 충분히 한후에 조용히 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아들이 집을 구하려 할때에 지나치게 싸서 기도를 해보라고 아들이 부탁을 하는데 한참을 방언으로 기도를 하는데 응성을 들었습니다. 범으로 금지되어 있다 알고 보니 경매에 넘어가는 집이었습니다. 방언으로 기도 할때 그 때가 내 영이 활발해지고, 깊이 하나님과 접촉하는 때입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실때는 나의 마음이 고요해지고 차분할때 뜻을 알리십니다.. 그러므로 방언으로 기도하더라도 너무 요란하게 크게 소리를 지를 펼요는 없을거라 생각이 듭니다. 요한일서 2장 20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거룩한 제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것을 아느니라 요한 1서 2장 27에도 말씀합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부음이 너희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친히 너희를 가르치며 참되고 거짖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안에 거하라..... 로마서에도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슴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내가 방언으로 기도하는 동안, 내부 깊숙한 곳 영으로 부터 성령님은 마음에 주님의 뜻을 전달하십니다. 말씀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어 그 말씀으로 성령님게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시는것입니다. 환상이 뜰수도 있고 음성이 들릴수도 있고 찬송으로 들려 주시기도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전해야 하는 멧세지를 들려주시기도 합니다. 기도를 하고 잇을대 걱정하지 말라고 해라 해서 그렇게 전하였는데 사모님이셨는데 펑펑 웁니다. 그날 그분은 억울한 일로 마음이 많이 아팠고 사면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그소릴 들은후 다시 전호를 받았습니다. 사면을 안해도 된다고 ..주님이 우리 문제를 더 잘알고 계십니다. 그런일도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나 통역이 열린다고 해도 메세지를 전달 하실때는 신중하게 생각합니다. 환상속에서 주님의 뜻을 알리실때 글자가 지나가기도합니다. 예언 조심 이라는 단어를 보았고 개인적으로 예언은 하지 않습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찬송의 한소절이 뜨기도합니다. 늘 방언으로 기도하며 말씀앞에 시간을 드리면서 통역을 구하면 주님은 뜻을 알게 하실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내 안에서 떠오르곤 합니다. 어떤 사람을 중보 할때에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 이신지 보게 하실때도 있습니다. 영을 분별하게 하시기도 합니다.. 얼마전에 어떤 교회에서 우리 교회와 연합하자는 제의가 들어 왔습니다. 인간적인 조건이 너무 좋았고 모든 부분에 연합하면 우리 교회에 유익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하나님의 계시가 응답이 있어야 했습니다.. 간절히 주님이 이 부분을 확실히 알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작정하고 3일을 방언으로만 기도를 하면서 주님이 보여주시던지 말씀으로 주시던지 알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응답을 주셨는데 밥솥에 밥을 했는데 정확하게 절반이 힌 쌀밥이고 반은 검은 콩이 들어 있는 밥이었습니다. 너무도 선명하게 갈라져 있습니다.. 환상도 주셨지만 주님이 영으로도 ( 방언 통변)으로도 알게 하셨습니다.. 연합하는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 부부만이 할수 있는 사역의 길로 인도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더이상 그 문제가 가지고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여러가지로 힘들어 할때 간절히 중보를 했는데 내입에서 근심걱정 물러가고 새날이오네 하는 선포가 나갑니다. 네 어깨에서 짐이 떠나고 성령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러시더니 문제가 해결을 받았습니다. 방언은 조용히 기도를 해도 정확하게 주님이 아시고 응답을 하십니다. 이와 같이 방언을 통역 하게 되면 예언이 되기도 하는것입니다. 영적인 것들을 자연계의 방법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주님의 마음을 알기를 원하면 안에 계신 성령님이 어떤 식으로든 알게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부분 환상을 통해 말씀으로 여러번 확증해주십니다. 사도 바울도 고전 14장 18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모든 사람 보다 방언을 더 말함으로 감사한다고 고백합니다. 얼마나 방언으로 기도를 많이 했길래 이런 고백을 할수 있을까요.. 방언은 영의 비밀입니다. 주님과의 깊은 비밀을 대화하는것입니다. 깊이 방언기도에 들어가면 혼자 방언을 하고 있는 동안, 내가 말한 것을 통변할 수 있습니다. 그 통변을 통해서 인도를 받기도 합니다. 내가 하는 방언을 다 통변되는 것은 아닙니다.. 방언을 할때 플러그가 콘센트에 꼿는걸 보기때문에 방언을 할때 핸트폰 충전기나 전기와 연결이 되거나 핸드폰애 불이 오는것이 보이기 때분에 종일 기도를 합니다. 종일 방언으로 기도를 하지만 통역은 다 통역 되는게 아닙니다. 아주 적은 부분을 통역하게 되는것입니다. 환상을 보기도 하지만 그러나 분명한 말씀을 주실때까지 방언으로 기도를 계속 합니다.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고전 14:15) 바울도 방언으로 먼저 기도를 하고 마음으로 기도한것을 알수 있습니다. 주의 뜻을 알기를 원하다면 오래 방언으로 기도를 하십시요. 그리고 평소에 말씀을 많이 암송하십시요.. 성령님이 생각 하지도 못한 말씀을 주시어 통역을 알게 하실때가 잇습니다. 그렇게 선명하게 성령님이 말슴 하시는 말씀은 삶속에서 이루십니다.. 얼마전에 조금 어려운 일이 있어서 그 문제를 주님이 해결 하시도록 방언으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찬송이 들려 지기도 하고 말씀이 확 떠오르기도합니다. 너희는 가많이 있어 주가 하나님됨 알지어다라는 찬송입니다.. 방언으로 기도 제목을 생각하고 기도 하면서 받은 찬송 이기에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받은 찬송을 조용히 올려 드리며 믿고 있으면 주님은 그 찬송가 가사대로 현실에서 이루십니다. 말씀도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찬송을 주실때는 신속하게 이루십니다. 그것이 물질 이라면 넉넉하게 채워 주십니다. 성령님은 자신의 생각을 쓰기를 두려워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기를 원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알게 하십니다.. 많은 부분 방언을 통역 하게 하실때에 이미 묵상 해두었던 말씀을 마음에 떠올려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 실때가 많습니다.. 그 말씀은 레마로 오는것입니다. 통변으로 받는 말씀은 삶속에서 즉시 이루시는것을 경험합니다.. 찬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든다면 대전에 사모모임을 인도하러 갈때 일입니다. 사모님들께 말씀을 전하고 성령님을 전하러 가는것이 두려워서 기도를 계속 할때에 잡아 주리라 할렐루야 주의 강한 손으로 잡아 주리라 할렐루야 도우리라 주이 강한 송으로 라는 찬송을 밤이 새도록 주심으로 믿고 가게 하신다 든지 그모임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를 보내고 있을때 찬송으로 알리십니다. 나의 주의 깃발든 군사 저 성벽을 향해 전진하라 나 주님의 뒤따르면 누가 당한 손가 주님의 군대 이런식으로 가사로 성령님의 인도를 받기도합니다. 나를 일꾼 삼으신주 크신 능력 주시어 언제든지 주뜻대로 사용하여 주소서.. 오늘 감당항 사역에 대한 확증을 하시는것입니다.. 또 찬송을 주십니다. 나의 은총을 입은 이여 너를 아노라 너의 이름을 내가 아노라 나의 사랑을 아는 이여 함께 가노라 내가 친히 함께 가노라 내가 너로 편케하며 나의 모든 선함으로 너의 앞을 지나며 나의 이름으로 너를 지키리라 나의 은총을 입은 이여 나의 사랑을 아는 이여 내가 너를 축복하노라..... 가서 감당할 사역에 대한 두려움이 약간 있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제마음을 아시고 함게 하시겠다고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찬송을 주심으로 말씀하시는것입니다. 그리고 환상을 주십니다. 가야할 교회에 바닥에 불을 붙이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강물이 흘러 가는데 금붕어들이 힘차게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것이 보입니다. 큰통에 물을 담아 들고 제가 가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오시는 분들이 컴을 들고와서 눌믈 받아 마시는 장면도 보여주십니다. 또는 ㅁ\오신분들이 샘물을 손으로 퍼서 마시는 장면도 봅니다. 그날 성령의 기름부음이 함께 해주시고 부어 주시겠다는것을 알리시는것입니다. 그리고 힘있게 역사하시겠다는 싸인입니다. 그리고 그날 사모님들에게 성령님께서 은사와 기름부음과 치유가 강하게 임하셨습니다.. 불로 임하실때는 후끈거림이 심하여 땀을 흘리시는 사모님들도 계셨습니다. 그런 경우에 회복과 치유가 임하시는것을 체험합니다. 주님의영이 계시고 충만하게 임하시는곳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주님의 영이 부어지는곳에는 영광이 임하십니다. 방언으로 기도하시는 분들이라면 통역도 사모허시고 구하십시요. 통역이 열리면 주님의 마음을 알리실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 16:13) 다른 사람들의 방언을 통역할때는 한국 말로 들려 질때도 있고 그는 방언으로 기도를 하는데 나에게는 한국말로 들려옵니다. 아버지 은혜 받고 싶어요. 내 영이 메말라가요.. 예를 든다면 이런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 방언 통역도 부분적으로 통역이 되는것입니다.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14:3). 방언하는 자가 통역하기를 위해 기도할 이유는 교회에 덕을 세우기 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14:5).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14:26). 방언이 길다고 해서 반드시 통역도 길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방언이 짧게 나왔다고 해서 통역도 반드시 짧은 것은 아닙니다. 방언의 어구나 음절 그리고 단어의 뜻을 해석해서 통역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방언의 표현이 길든 짧든 그것에 관계없이, 통역은 자기나 또는 남이 방언하는 동안 성령의 깊은 감동하심으로 다른 사람의 방언을 통역하게 하실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분적임을 체험합니다.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14:28).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은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예배 때나 기도회 가운데 말할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교회당에서는 절대 방언하지 말라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교회당에서도 자기와 하나님께 말하기 위해 방언은 필요합니다. 나드향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