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워라, 강진을 거쳐 장흥에 이르는 길(성전 - 장흥 28km)
4월 20일, 민박촌의 따뜻한 온돌방에서 단잠을 자고 일어나니 몸이 가뿐하다. 방에 텔레비젼과 인터넷이 없어서(전날 행사기록은 마을회관을 이용)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어 아침까지 숙면을 취하였다. 간간이 닭이 울고 소가 '음메'하는 소리가 농촌의 정감을 더해준다. 밤새도록 비는 계속하여 내리고. 예보로는 오늘 오전까지 비가 내릴 것이라고 한다.
아침 7시, 세대의 승합차에 나누어 타고 면소재지의 식당으로 향하였다. 이윤배 마을위원장이 식당까지 따라와 전송인사를 한다. 전날 저녁식사를 한 진선미 식당의 아침 메뉴는 돼지국밥이다. 오전 8시에 성전면사무소를 출발하여 강진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모두들 비옷과 우산으로 무장을 하고. 조금 전에 반짝 얼굴을 내민 월출산의 아름다운 자태가 빗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40여분 걸어가니 빗발이 약해진다. 그곳에 500년된 팽나무 거목이 우뚝 서 있다. 그 옆의 정자에서 비옷을 벗고 우산을 받쳐든 채 열심히 걷는 발걸음들이 가볍다.
10시 조금 못되어 어느새 강진읍의 초입에 도착하였다. 휴식을 취하는 녹색쉼터에 다산 정약용선생상이 세워져 있다. 이를 계기로 강진에 대하여 몇 가지 설명을 해주었다. 청자도요지, 다산초당, 영랑생가, 병영성과 하멜기념관 등. 특히 정약용의 강진 유배생활과 목민심서에 대하여 언급하니 처음 듣는 내용인 듯 흥미롭게 경청한다. 강진읍내에 들어서니 점심 식사장소가 영랑생가에서 가깝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영랑 생가로 안내하니 잘 가꾸어진 생가의 이모저모를 살피며 신기한 표정이다. 한국전통가옥의 구조와 넓은 정원, 오래된 백일홍나무, 활짝 핀 동백꽃, 자목련, 영산호, 바람에 흔들거리는 대나무 숲 등이 운치가 있고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전문을 새긴 돌비가 서정시인이며 저항 문학가 영랑의 체취를 풍겨준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한 달이상 지나야 할 터.
11시에 식당에 도착하여 이른 점심을 들었다. 메뉴는 감자탕, 여러 차례 감자탕을 먹으며 정작 감자가 적다고 말하니 젊은 직원이 감자탕의 감자는 돼지뼈 부위를 일컫는 말이라고 대답한다. 사실인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 매일 뽑아주는 커피를 빠지지않고 받아들던 박효자씨가 나를 대신하여 서비스를 한다. 덕분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니 한결 여유가 있다.
12시에 식당을 나서 오후 걷기를 시작하였다. 비는 멎었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 약간 쌀쌀한 느낌이다. 강진읍내를 벗어나니 좌우로 긴 산맥이 뻗어있고 그 사이에 들판이 계속 이어진다. 4km쯤 걸어 강진군 동면에 들어서니 '아름다운 거리'라고 큰 돌판에 새긴 글씨따라 아름다운 꽃길이 이어진다. 한 시간 걸어 군동면사무소에서 휴식하는 방문객들이 보도록 진열한 신문을 살피며 주요기사를 훑어보았다. 강진에서 장흥에 이르는 15km가 산과 들, 거리가 아름다운 경관으로 연결된다. 장흥군계에 들어서니 높은 수직 암벽이 절경을 이루고 길을 따라 흐르는 하천이 아름답다. 장흥읍내를 관통하는 탐진강의 잘 가꾸어진 경관은 더 현란하고. 작년에 영남길을 걸었던 강정춘 씨는 남도길이 더 정감이 간다고 말한다
오후 3시 40분경에 목적지인 장흥군청에 도착하였다. 광장에 군청 직원들이 다수 나와서 일행을 반긴다. 군수가 서울 출장중이어서 대신 영접하는 안규자 문화관광과장이 환영 인사말을 한다. '장흥은 서울 광화문에서 정남쪽에 위치한 군이며 산과 바다, 호수가 아름다운 지방이다. 이곳에 찾아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편안히 쉬고 가시라' 장흥신문의 김선욱 편집인은 일행들을 취재하느라 분주하다. 조촐한 기념품도 곁들여 전해주는 군 당국의 배려가 고맙다. 기념품의 내용은 볼펜, 수건, 표고버섯 음료다. 표고버섯음료를 보니 장흥이 표고버섯의 명산지인 것이 떠오르고 기념품에 '슬로시티 장흥'이라 새긴 문구를 보니 전남에 슬로시티가 여러 곳 있는 것도 생각난다. 완도의 청산도, 신안의 증도, 담양의 창평, 장흥의 장평 등이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이다.
저녁 메뉴는 불고기백반, 아침의 돼지국밥, 점심의 감자탕, 오후 간식의 찐빵과 만두 등 고칼로리 식단이 이어지니 열심히 걸어도 체중이 줄지 않는다. 게다가 맥주와 소주, 때로는 막걸리도 곁들이고. 이에 더하여 여성 회원들은 저녁에 파티를 하며 다과를 또 들 터. 선상규 회장은 걷기 15일 전후하여 육체의 고장이 나타나고 20일을 전후하여 정신적 해이로 긴장이 풀어진다며 각별히 주의를 당부한다. 아픈 이들은 대부분 나아서 잘 걷는다. 당부를 들었으니 정신줄도 잘 챙기리라. 잘 먹고 잘 걸으며 잘 노는 일행들이여, 내일도 힘차게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