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2~3일은 대구 본가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냅니다. 어머니께서도 적적하지 않으시니 좋고, 아내도 삼식이 남편으로부터 며칠 자유로워 좋고,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닌가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고등/대학교 자취 때부터 밥을 해 드셨으니 주방을 책임지신 세월이 70년이 넘었습니다만, 이젠 기력도 딸리시고 밥 하는 것도 귀찮아하십니다. 그래서 요즘 본가에 가면 사 먹는 횟수가 해 먹는 끼니보다 많습니다. 어머니와 일주일에 한두 번 찾는 아침 밥집, 전주식콩나물해장국집(달서구 상화로 293, 상인동 1332-131)은 단골이 된지 수년이 지났습니다. 콩나물, 황태가 주재료이니 식재료로도 좋고, 값도 싼 편이고, 맛이 강하지 않아 특히 좋습니다. 새벽 6시에 문 여는 것도 장점 중 하나입니다. 지난 10월, 주인아주머니께서 고민을 털어 놓으십디다. 황태 가격이 상당히 올랐는데 가격을 올리자니 단골에게 미안하고, 현 가격 유지하자니 부담스럽다고, 그래서 밤잠을 설치신다고... 그래서 올리시라 했습니다. 이 가격에 이 맛, 이 찬품 내는 곳 없다고. 10월 하순에 갔더니 11월 1일부터 올린다고 사전 고시하시더군요. 11월 초부터 네 번 정도 갔는데, 그 때마다 가격 올렸다고, 양해 바란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가격표를 보면 정말, 황태 들어간 음식 값만 올리고 다른 음식은 가격을 그대로 받습니다. 감동받았습니다. ‘재료비 올랐으니’ 하며 하나 올리면 다른 것도 따라 올리는 게 일반적인데, 그냥, 원재료비 많이 오른 황태 조리식품만 올리셔서요. 거기다가, 갈 때마다 가격 올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십니다. 올려도 다른 집보다 가격 양호하고, 맛 충분하고, 정 넘치는 이 곳, 앞으로도 쭈-욱 이용할 겁니다. 저는 붙박이고, 동생, 누나, 형님 오실 때마다 한 끼는 여기서 해결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당연히 그러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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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특히 원재료비가 워낙 올라, 식당가면 한 끼 식사 해결하기가 부담스러울 때가 자주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앞에 얘기한 유형의 식당이 있기에 한편으론, 단가를 크게 올리는 음식점이 기피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원재료비가 많이 올라 식비 인상이 인정되지만, 개인적으론, 한 끼 식사에 9천원 넘어가면 솔직히 부담스럽습니다. 특히, 원재료비가 얼마인지 가늠이 되는 음식의 예상을 뛰어넘는 단가 인상은 말입니다. 그래서 만 원으로 오른 냉면, 끊은 지 몇 개월 되었습니다. 5천 원 하는 소줏집, 끊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제 단골집은 4천원을 유지하고 있고, 일부는 4,500원으로 올렸지만 이 정도는 양해 대상입니다.
자연은 이런 흥정 대상이 아닙니다. 그냥, 세인의 평가와 상관없이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낼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연에 대해서는 한없이 후합니다. 아니, 자연이 제게 후하다는 표현이 적확한 표현이지요. 다만, 자연을 찾는, 이용하는 인간의 무절제함, 이기심을 저어할 뿐입니다. 자연을 찾는 이의 기본 심성을 믿기에, 함께 하는 이들에게도 편안한 마음을 가지며 함께 즐깁니다만, 눈살 찌푸리게 하는 이들이 가끔씩 있습니다(밀양 월연정 경우처럼 말입니다). 국밥집 주인처럼 자신의 삶에 정성을 다하는 분들의 모습은 언제 어디서건 아름답습니다. 저도 그리 노력할 것입니다.
가을의 끝자락을 한껏 쥐고서 며칠 행복했습니다. 특히, 연로하신 어머니와, 형제자매가 함께 했기에 말입니다.
밀양에서 가을의 끝자락을 움켜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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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월연정, 금시당, 위양지에서 가는 가을의 끄트머리를 잡았다.('22년 11월 17일)
오늘은 밀양으로 나들이를 떠났다. 어제 팔공산, 월광수변공원 산책에 두 끼의 식사로 7시간 반이나 밖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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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날, 팔공산 단풍의 끝자락을 밟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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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끝자락, 팔공산 단풍은 불타고 있었다.('22년 11월 16일)
본가 앞. 가을의 끝자락에 와 있다. 누나와 형님이 배턴 터치. 누나는 분당 올라가고 새로 합류한 형님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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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사는 구미 땅, 동락서원에서 은행나무 노거수의 단풍도 즐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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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락서원 앞 노거수, 은행나무가 가는 가을을 잡고 있다.('22년 1월 15일)
사무실 들어가는 길, 동락서원 쪽에서 은행나무가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맞아, 동락서원 앞에 400살 먹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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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맞은 편, 낙동강체육공원에서 늦가을을 채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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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체육공원 푸른 하늘, 흰 구름 아래 플라타너스도, 핑크뮬리도, 국화도 늦가을을 붙들고 있었다.('22년 11월 19일)
토요일 새벽, 아내는 갑자기 친구 행사 진행 도와줘야 한다며 멀리 신안 퍼플섬으로 갔다. 버스로 편도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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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을 다하는 삶의 모습(모셔온 글)=======================
늙고 있다는 것이 기쁨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뒤를 돌아보면서 덧없음의 눈물만 흘리거나
남을 원망하면서 삶에 대한 허무감에 젖지 않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성스러운 존재와,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일구면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기쁜 일이다.
정직하게 나의 삶을 돌아보면
부끄럼 없이는
떠올리지 못하는 일들이 많고
후회스러운 일들도 많다.
그런 과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기쁘게 살아 있고
나의 미래가 설레임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늘 완벽하게
기쁘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해탈하지 않는 한
완벽하게 기쁠 수 없는 존재임을 안다.
그러나 인생의 큰 흐름이
기쁨과 설레임으로 이루어저 있다면
얼마간의 슬픔이나
우울 따위는 그 흐름 속에
쉽게 녹아 없어진다는 것도 자주 느낀다.
내가 어쩌다
이런 행운과 함께 늙고 있는지
감사할 따름이다.
더 늙어서도 더욱 깊은 기쁨과
설렘의 골짜기에
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늙었지만 젊고 나이가 많지만
싱싱한 영혼으로 현재를 살고
미래를 깨우는 일에
정성을 바치면서
삶을 끝없이 열어가는 모습이 그립다.
---김영수 시인의 '고독이 사랑에 닿을 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