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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가치를 우리가 정말로 안다면,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아야한다.
우리가 이 땅에 생명으로 태어난 자체가 기적 중의 기적이다. 단지 우리의 능력으로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수십억의 정자들 중 일등으로 난자의 입구라는 목표점에 도달한 정자만이 이 세상에 태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경쟁 중에서도 이렇게 경쟁률이 높은 경쟁은 이 세상에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냉철히 생각해보면 능력만으로는 블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이 세상에 생명체로 태어난 자체가 성취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것이다.
여러분이 경쟁 상대자인 수십억의 정자들보다도 특별히 뛰어난 능력을 가진 정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정말로 능력이 엇비슷한 경쟁자들 속에서의 승리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능력이 엇비슷한 수십억 정자들 중에 여러분이 일등으로 목표점인 난자 입구에 도착한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인 것이며 축복 중의 축복인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의 관점을 바꾸어야한다. 우리가 능력이 있어 태어났다는 자만심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를 선택했기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겸손함을 가져야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항상 우리를 선택하신 하느님께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하는 것이다.
다시 저자는 강조한다. 여러분이 지구성에 태어난 것은 여러분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이 여러분을 선택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느님이 여러분을 선택했다는 것은 아무런 생각없이 여러분을 선택한 것이 아닌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치밀한 계획 안에서 여러분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선택에는 반드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이라도 여러분의 사명을 깨달어야한다. 누구나 태어날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지구성에 태어난 것은 누구나 이 지구성에서 해야할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명은 자신의 재능 속에 숨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사명을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선천적 재능에 눈을 떠야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선천적으로 본인이 가진 재능에 눈 떠 그 재능 분야를 일심으로 갈고 닦을 때에 일이 즐겁고 큰 성공도 할 수 있는 시대가 전개된다. 재능분야에 몰두할 때 인간은 지칠 줄 모르는 영원한 정열이 생긴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의 재능분야를 인류의 공익을 위해 사용할 때 오게끔 되어있다. 더 나아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에 사용할 때 오게끔 되어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신의 재능분야를 마음껏 발휘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극소수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회에는 일에 정열이 안 생기고, 단지 먹고살기 위해 직장에서 눈치보고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정열이 안 생기니까 직장에서 느는 것은 눈치밥뿐이 없는 것이다.
직장에서 상사가 있을 때에는 일하는 척하다가 없으면 딴전 피우는 것이 일상 다반사인 것이다. 정말로 선천적 재능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상사가 보건 말건 관계가 없다. 일하는 것 자체가 즐겁기 때문인 것이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일에 빠져드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서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겠다. 여러분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여러분은 성취 가능성이 거의 0%인 목표점을 100% 성취한 그야말로 우주를 주재하는 전지전능하신 신성 그 자체인 하느님께 선택된 대단한 존재인 것이다.
여러분이 신성한 하느님께 선택되어졌다는 것은 여러분의 본래의 자리가 신성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무위로 끝내서는 안되는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이 큰 의미가 있는 「찰나」인 것이다. 순간순간이 새로움에 가득찬 늘 푸른 호기심의 세계가 바로 이 세상인 것이다.
우리는 항상 순간순간이 새로움에 가득찬 「찰나」라는 것에 하느님께 언제 어디서나 순간 순간 크게 감사해야한다.
그러면 증오, 걱정, 열등감, 분노, 질투, 공포 등 부정적 감정들은 우리의 마음에서 저절로 사라진다. 순간 순간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부정적 감정들이 마음에 들어올 틈이 없다.
즉 순간 순간의 감사는 마음에 부정적 감정들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자동적으로 방어벽을 쌓는 것이 된다.
여러분은 신성한 하느님께 선택된 신성한 존재답게 이 세상의 순간순간을 하느님의 큰 축복으로 여기고, 순간순간에 감사뿐만이 아니라 정열을 쏟는 신성한 인격을 가진 자들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순간순간이 의미가 있고 새로움에 가득차있다는 것은 순간순간이 과거가 되고 미래가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세상은 시간을 초월해 모든 것에는 다 의미가 있고 다 새로움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천시대 구약 성경에서는 반대로 가르쳤다. 구약 역사를 통해 재물과 권력 등 모든 면에서 여호와의 가장 큰 큰 축복을 받은 솔로몬 왕은 이 세상의 삶을 「허무하다」는 말과 「해 아래에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로 표현했던 것이다.
이 세상을 허무주의로 보고, 이 세상에서 생명력이 살아 움직이는 새로움을 발견하지 못하면 아무리 이 세상에서 권력과 부를 가졌더라도 인간은 불행하게 된다. 우리는 이 세상에 행복해지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에서 행복을 느끼려면 항상 새로움이 마음을 장식해야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복을 바라시고 계시기 때문에 매순간을 우리의 주위의 모든 것을 새로움으로 가득차게 하시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새로움으로 기득차게 하시는 것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신다는 사실과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 곁에서 살아 활동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하모경 저자가 하모경 말씀을 계속 새로운 말씀으로 채우려는 노력을 하는 것도 생명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을 새롭게 거듭나게 하려면 말씀 자체도 매일 새롭게 거듭나야한다는 우주적 진실을 저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모경이 선천시대의 생명말씀인 성경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성경은 일점 일획도 가감할 수 없는 완전 무오의 영원한 빛의 말씀이라는 입장이고 하모경은 생명말씀 자체가 매일 새로워지지 않으면 세월이 지남에 따라 생명말씀의 빛이 어두워진다는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모경 저자는 항상 시대에 맞는 하느님의 새로운 계시를 하모경 생명 말씀 속에 채우려고 노력한다는 입장이다.
여러분이 비록 좋지 못한 환경에 살더라도 열악한 환경 내에서는 열악한 환경 안에서만 맛볼 수 있는 큰 행복이 숨겨져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열악한 환경 내에서 맛 볼 수 있는 큰 행복은 여러분이 영원히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의 환경이 영원히 좋은 환경으로 바뀌어 열악한 환경 안의 큰 행복을 여러분은 앞으로 영원히 맛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열악한 환경이 여러분에게 주어졌을 때 기간한정의 하느님의 큰 은혜라고 여러분은 생각하고 더욱더 크게 감사해야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인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외적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최악의 환경하에서라도 마음 속에서 호흡하듯이 늘 감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행이 있을 수가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행복과 불행을 생산하는 것은 오직 우리의 마음이다.
저자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불행의 원인은 마음 속에서 자기멋대로 그려낸 열등감이다. 열등감이 커지면 반드시 피해망상으로 발전한다. 열등감과 피해망상은 눈을 뭉치면 점점 커지는 것처럼 시간과 함께 점점 커진다.
열등감은 불안과 초조를 일상생활에 부른다. 피해망상은 두려움과 공포를 일상생활에 부른다. 열등감, 불안 초조, 피해망상, 두려움, 공포 등의 부정적 감정이 마음에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에 외부로 폭발해 행동으로 나타난다.
「얌전했던 사람이 갑자기 돌변해 거칠어진다. 술만 마시면 아내에게 폭행한다. 술만 마시면 꼭 동료들과 큰 싸움을 한다」등등의 부정적 행동들의 근본적 원인이 바로 마음 속에 내재해있는 열등감과 피해망상인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 행위도 긍정적으로 이해한다면, 마음에 쌓인 열등감과 피해망상 등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밖으로 배출 안되고 마음 안에 쌓이고 쌓여 임계점에 이르면, 건강에도 치명타이기 때문에 밖으로 마음에 쌓이고 쌓인 나쁜 감정의 독소를 배출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악습관의 생활이 반복되다보면 불행이 점점 커지게 될 뿐이다. 스스로 자각하고 인생을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용기를 가져야한다.
우리 주변에서 보면 종교생활을 통해 이러한 부정적 악습관의 생활로부터 탈출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종교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에 선천 종교들에 부정적 면이 많아 저자가 선천 종교들에 대해 부정적 시각도 가지고는 있지만, 긍정적인 기능도 있기 때문에 종교의 긍정적 역할을 높히 평가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좀더 깊게 생각해보면 불행의 단서가 되는 열등감과 피해망상의 원인은 바로 자신의 결점에 있다. 그러나 생각의 관점만 바꾸면 결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브랜드이며 큰 장점이다.
우리는 자신의 결점에 감사하고, 결점을 살릴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예를들어 우리 사회에서는 학력이 중시되지만, 고등학교 졸업의 학력이 서울대 법대 학력보다 많은 서민들에게 친근함으로 다가와 서민적 대통령으로서는 더 적격일 수가 있다.
얼굴이 못생긴 사람이 오히려 잘생긴 미남형보다도 코미디계에서 크게 인기를 얻을 수도 있다. 한 때 못생긴 인형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경우도 있었다.
결점을 감추려는 것보다 장점화나 브랜드화 시킬 당당함을 우리는 가지고 있어야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이 사회에는 결점을 물고 늘어지는 못된 성격을 가진 사람들도 있기는 있다.
그러나 자신의 결점을 물고 늘어지며 자신을 공격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까지도 자신의 영혼을 성장시키기 위해, 다가온 하느님처럼 생각해야한다. 그리고 감사해야한다.
생각의 관점만 바꾸어 좀더 높은 차원에서 이 세상을 본다면 이 세상에는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는 없다. 전부 자신의 영혼을 성장시키기 위한 존재뿐이 없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은 망상일 뿐이다.
이 우주에는 사실은 부정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긍정적인 것이다. 역설적이지 모르지만 우리가 좀더 높은 차원에서 생각해 보면 부정적인 것은 긍정적인 것을 가르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악한 사람이라고 불리었을지라도 저 세상에 가면, 보살, 여래, 부처, 그리스도 등인 경우가 있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하여 잠시동안 이 세상에서 악한 역할을 했을 뿐이다.
드라마에서 악한 배역을 맡았다고, 그 사람이 악한 것이 아니다. 단지, 연기에 충실했을 뿐이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 어떤 사람을 행위를 보고 미워하거나, 심판해서는 안된다. 어느 누구에게라도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으로 대하여야한다.
심판의 권한은 하느님뿐이 없는 것이다. 인간이 심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생각 차원은 우리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인간의 눈에는 악인처럼 비추어진 경우에도 보살, 여래, 부처, 그리스도 등인 경우가 있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로 풀어서 설명하겠다. 드라마에는 작자도 있고 감독도 있다. 드라마에서 악인의 역할을 맡은 사람이 리얼하게 악한 역을 잘 소화해서 연기하면, 일반사람들은 그 사람이 원래 악인이 아닌데에도 나쁜 사람처럼 생각한다.
물론 지금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저자가 어렸을 때에는 드라마에서 악한 배역을 맡은 사람들은 일상생활 중에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나쁜 사람으로 손가락질을 하곤 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순진해서 드라마를 현실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작자나 감독의 입장에서는 세상 사람들과 평가하는 방법이 다르다. 리얼하게 악한 역을 연기할 수록 입이 마를 정도로 연기를 잘한다고 칭찬하는 것이다.
여기서 작자나 감독의 입장이 바로 하느님의 입장인 것이다. 악한 역을 리얼하게 잘 연기한 배우에 대한 평가가 일반 시청자들과 감독(혹은 작자)과의 사이에 반대로 나오는 것처럼 이 세상의 악한 자들의 평가도 세상적 평가와 하느님의 평가가 다를 수가 있는 것이다.
우주적 진실로 볼 때, 이 세상의 악한 자들도 원래 순수덩어리로 하느님에 의해 선택되어 태어난 신성한 존재이다. 이 세상의 악한 자들도 본성은 신성한 빛이다.
그들을 정죄하기 보다는 그들을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으로 품고 그들의 본래의 자리인 신성한 빛의 자리로 우리가 인도해야한다.
악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도 따듯한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이다. 따듯
한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 앞에서는 악인도 없고, 죄인도 없다. 모두 빛이다.
따듯한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으로 만물을 대하여야하는 이유는 이 세상사의 모든 것이 조화와 어울림 속에 순조롭게 나가게하는 원동력은 따듯한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뿐이 없기 때문이다.
지구도 인류도 결국은 따듯한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이 구하는 것이다. 종말론적 종교의 교리도 따듯한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 앞에서는 다 녹아 없어진다.
따듯한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만이 지구성 인류의 영원한 평화와 영원한 안전, 그리고 영원한 행복과 영원한 번영 등을 약속한다.
푸른하늘 12.07.14. 20:47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뉘시고...♪♬ 하는 어머니 은혜를 읊조릴것도 없이 국악가수 김영임의 회심곡에도 나오지만
금지옥엽 키우는 순수한 마음 사람하는 마음 다치지않고 아프지않게 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녀를 키워놓습니다 거의
하나님이시죠 띄엄뛰엄 난 살래 난 안 죽을래 해도 애들을 세명이나 아파트 13층에서 내던지고 자기도 몸을 던져서 실제로 하나님을 일찍 만나러 가신분도 있지만 대체로 우리 어머니들은 출생부터 자녀교육부터 상서로운 정신과 숭고한 마음으로
키워갑니다
그러니 어머님이 하나님과 진배 없지요 하나님 다음에 어머니가 가장 위대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고로
모성애적 사랑으로 가정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 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고 각자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는 지혜를 어머니들이 자녀들에게
심어주고 교육자들도 나라에서도그리해야한다 생각합니다
오늘도 생명수님 말씀에 뇌가 형통하는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생명수님
악한 이들이 모든 만물에게 악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특정 사람, 사물, 장소에 악을 행하였다면 그건 분명 그곳의 영혼 성장과 본인의 영혼성장을 위하여 필요했다고 봅니다.
저 또한 알게 모르게 만물에게 생각으로,말과 행동으로 악을 행한것이 많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악한 행위를 통하여 나의 영혼이 성장한다면 당연히 미워하거나, 심판해서도 안되고 어느 누구에게라도
모성적 사랑으로 대해야 겠지만 그 과정이 참으로 쉽지가 않을듯 합니다.^^
특정 사람, 사물,..'), 'spam_popup', 'width=450, height=300, resizable=yes, scrollbars=no').focus();return false;">신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준비해두신 사랑이 참으로 무궁무진합니다.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도 많이 좋습니다.
삶의 지혜가 가득한 말씀을 주신 생명수님께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