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탄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은 60여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임상과로는 일반외과, 정형외과, 내과, 산부인과, 소아과가 있고 진단방사선과와 해부병리과가 있다. 매주 금요일 아침에는 전체 의사들이 모이는 conference가 있다. 이번 주는 정형외과에서 발표를 하였다. 우선 인상 깊었던 것은 모든 사례를 영어로 발표를 한다는 것이었다. 막연하게 네팔하면 후진국, 못사는 나라, 그리고 의료 수준이 턱없이 떨어지는 나라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의사들이 영어로 발표를 한다는 것이 인상 깊다못해 신기하게 생각될 정도였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병원이나 과단위로 영어로 환자 사례를 발표하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 의사들의 대부분은 의학영어를 사용하지만 실제로 그 발음도 한국식 즉, 콩글리시에다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의사들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네팔식 특유의 영어 발음과 액센트를 잘 알아 들을 수는 없었지만 큰 도전이 되었다. 아마도 지금 나에게 시키면 버벅거리며 잘 못할 것 같다. 그놈의 영어 왜 그리 어려운지... 난 지독히도 한국사람인가보다. 첫 번째 사례(case)는 골육종(Osteosarcoma)환자의 case였다. 골육종은 뼈에 생기는 가장 흔한 악성 종양(암) 중의 하나이다. 왼쪽 대퇴골(femur)의 무릎쪽 끝에 병변이 있는 환자였는데 X-ray와 MRI를 검사했고 수술이 시행된 환자였다. 왼쪽 무릎 위쪽을 완전히 절단(Above knee amputation)하는 수술을 하고 퇴원을 했는데 환자는 얼마 뒤에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을 찾았고 응급실에서 시행된 흉부방사선사진(Chest X-ray)에서 다발성 전이(multiple metastasis) 소견이 보였다. 그 후 환자는 골육종으로 인한 전이로 사망한 case였다.
두 번째 case는 골수염(Osteomyelitis) 환아였다. 골수는 뼈 속에 있는 스폰지처럼 생긴 부분으로 성인이 되었을 때 피를 만들어 내는 조혈기관이다. 여러가지 원인과 경로에 의해 이 골수에 균이 들어가서 감염이 생긴 것이 골수염이다. 이 골수염은 특히 후진국병이 아닌가 생각된다. 선진국에서는 감염이 심해지기 전에 대부분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기 때문에 골수염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같다. 하지만 후진국에서는 근처에 병원도 없고 또 병원까지 가는 거리도 멀고 해서 치료 시기를 놓쳐서 감염이 골수에까지 침투하여 골수염을 일으키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아이도 치료 시기를 놓쳤던 것 같다. 대개 골수염은 6주 정도의 고농도 항생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치료되지 못하고 만성 골수염으로 가게 된다. 이 아이의 경우에 정맥으로 항생제 치료를 받고 퇴원을 하였는데 그 다음 단계로 퇴원후 경구 항생제를 복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만성 골수염이 되었고 다시 병원으로 와서 결국은 수술을 받게 된 환자였다. 수술은 X-ray사진상에 감염된 부분을 수술하여 감염이 있는 부분의 뼈를 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고름(pus)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게 된다. 그리고 pus를 배양하여 자라는 균에 대해 감수성이 있는 항생제를 다시 장기간 사용해야 된다. 특히 보건의료에 대한 계몽이 되어 있지 않는 후진국에서는 환자들이 정해진 기간대로 약을 복용하지 않는다. 원래 대부분의 증상들은 치료를 시작하고 나서 얼마 있지 않으면 호전이 된다. 그래서 환자들은 그 호전된 증상을 다 나은 것으로 생각해서 자의로 약을 중단해서 더 큰 병을 만들게 되는 것 같다. 결국 이 아이는 골수염으로 인해 수술을 하게 된 사례였다.
세 번째는 오른 손바닥에 찢어진 상처(laceration)로 응급실로 내원한 환자의 case였다. 특히 손은 신체 부분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이다. 생체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부분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작은 손안에는 엄청난 해부학적인 구조물들이 거미줄처럼 배치되어 있다. 손에 있는 신경을 손상당하면 감각과 운동에 장애가 생기고 건(tendon)이 끊어지게 되면 손가락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게 된다. 이것은 여담이지만 외과 의사들에게는 손이 생명이나 다름없다. 예전에 박신양과 김남주가 주연한... '내 마음을 뺏어봐.(맞나?)' 제목은 잘 생각이 안나는데... 그 드라마를 보면 외과 레지던트로 근무하던 박신양이 김남주의 사고 소식을 듣고 앰뷸런스를 운전해 가다가 사고가 나서 손을 크게 다치게 되어 다시 외과 의사로 일하지 못하고 전공을 바꾸어 정신과 전문의가 되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손은 참 중요한 신체 부분중의 하나이다. 손을 비롯한 신체의 모든 부분을 보면 하나님의 걸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해부학을 할 때 심장을 해부하면서 심장 안의 판막과 그 판막을 지지하는 마치 실처럼 가는 구조물을 보면서 감탄을 금하지 못해던 일이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 신체 가운데 가장 예쁜 부분은 아마도 여성의 자궁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모양과 색깔도 예쁘지만 주먹보다도 작은 자궁이 임신을 했을 때는 모든 배를 가득 채울 만큼 커지는 놀라운 신비도 하나님 아니고서야 아무도 생각해 내지 못하리라.... 다시 손으로 돌아가서 이렇게 손을 다친 환자들은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 손의 감각을 검사해서 어느 신경이 손상을 당했는지 그리고 손과 손가락을 움직여서 어느 건(tendon)이 잘렸는지를 알아낸 다음에 수술을 시작해야 된다. 그런데 이 환자는 너무 급히 수술실로 보내져서 이미 마취가 되어 버려서 손상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평가를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수술을 마친 다음 몇 주가 지나서 다시 손상의 정도를 파악한 다음 2차 수술을 실시했다. 분명한 외과의사의 실수였다. 한국이나 다른 선진국 같았으면 환자나 보호자에 의해 난리가 났을지도 모르지만 힌두교를 믿는 네팔에서는 그런 일은 큰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아마 운명에 맡기는 듯했다. 2차 수술을 받은 환자는 손의 기능을 거의 회복해서 퇴원을 하였다고 한다.
오늘은 외과 외래가 있는 날이었다. 외과 외래도 한국에 비해서는 체계가 없어 보이고 초라해 보였다. 3명의 외과 의사가 칸이 질러진 외래에서 동시에 환자들을 진료했다. 나는 양승봉선교사님 옆에 앉아서 진료를 지켜보았다. 양선교사님은 환자들과 현지어로 어려움 없이 의사소통을 하는 것 같았다. 여러 선교지를 경험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특히 한국 선교사님들 가운데는 영어만 하고 현지어를 할 줄 모르는 분들이 제법있다. 내 생각은 선교사라면 현지어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의료선교사로 나가 있으면서 현지어를 배우지 못하면 환자와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날마다 통역을 해 주는 사람을 데리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리고 통역을 통해 환자들의 증상을 이해하는 것이랑 현지어를 직접 배워서 환자들의 호소를 이해하는 것은 질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영어는 좀 못하더라도 현지어는 잘 해야 된다. 네팔에서는 특히 담낭에 돌이 있는 환자들이 많다고 한다. 이곳 음식들이 기름진 음식들이라 콜레스테롤 돌(cholesterol stone)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수술실에서도 거의 매일 담낭절제술이 행해진다. 그리고 또 많은 어린아이와 나이든 남자 환자들은 서혜부 탈장(Inguinal hernia)으로 인해 병원을 찾는 것 같다. 또 다리에 정맥류를 앓고 있는 환자들도 몇명 있었다. 그리고 포경(Phimosis)으로 인해서 포경수술을 받고 드레싱을 위해 외래를 찾은 환자도 두 명 있었다. 오전 10시 30분에 시작해서 12시 30분쯤에 마치고 점심을 먹고 다시 1시 30분에 시작해서 3시쯤 되면 외래는 마친다. 한국에서는 하루에 외래에서 9시에 시작해서 5시에 마치고 의사 한 명이 100명에서 200명 가까이 진료를 하는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이곳 파탄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 대부분은 개인병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3시에 퇴근해서는 자기 병원으로 가서 다시 환자를 본다. 그런데 그것이 법률상으로 불법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파탄병원에 근무하는 네팔 의사들은 파탄병원의 환자들보다는 자기 개인 병원의 환자들에게만 신경을 쓰는 듯 해 보인다. 파탄병원은 네팔 현지인 의사들과 직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는데 자신의 개인병원에서 얻는 수익이 훨씬 많은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인 것 같다. 이곳 네팔에 와서 50년 이상 된 선교병원에서 나는 여러가지를 많이 배우고 생각하는 좋은 기회를 갖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