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그림은 일본 화가 하나부사 잇쵸(英一葉, 1652~1724)의 풍속화(우쿄에; 浮世畵; 부세화) 〈코끼리를 만지는(더듬는) 눈먼 장님승려들(중고무상지도; 衆瞽撫象之圖; 군맹무상도; 群盲撫象圖)〉이다.
한국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등재되어 예시된 “장님(소경; 봉사; 맹인) 코끼리 만지기”나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나 “장님 코끼리 말하듯”이라는 한국 속담들은 “일부분밖에 모르면서도 전체를 안다고 여기는 어리석음”이나 “무능한 자가 과분하게 큰일을 이야기함”을 비유한다고 얼추 풀린다(설명된다; 정의된다).
(적어도 죡변이 2024년 1월 16일 현재까지 아는 한에서) 이 속담들의 가장 오래된 기원은 붓다교(Buddhism; 불교; 佛敎) 경전(불경; 佛經)에 기록된 코끼리와 눈먼 장님(소경; 봉사; 맹인)들의 우화(偶話)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 우화는 서기전1세기후반에 기록된 테라바다 붓다교(Theravada Buddhism; 상좌부 불교; 上座部 佛敎) 정전(正典) 《팔리 티피타카(Pali Tipitaka; 팔리어 불경전집; Pali語 佛經全集; 팔리 삼장; 三藏)》의 제2집(제2장; 第二藏) 《숫타 피타카(Sutta Pitaka; 팔리 경장; 經藏)》의 제5부 《쿳다카 니카야(Khuddaka Nikaya; 소부; 小部)》의 제3경 《우다나(Udana; 자설경; 自說經)》의 제6품 〈자칸다-박가(Jaccandha-vagga; 생맹품; 生盲品)〉 제4설 “팃타 숫타(Tittha Sutta)”에 수록되었다.
테라바다 붓다교는 마하야나 붓다교(Mahayana Buddhism; 대승불교; 大乘佛敎)와 바즈라야나 붓다교(Vajrayana Buddhism; 금강승교; 金剛乘敎; 밀종불교; 密宗佛敎; 만트라야나 붓다교; Mantrayana Buddhism; 탄트라야나 붓다교; Tantrayana Buddhism; 탄트라 붓다교; Tantric Buddhism)와 함께 인디아(India; 인도; 印度; 천축; 天竺 ☞ 참조) 붓다교(불교)의 3대종파라고 학설된다.
《우다나(자설경)》에 수록된 “코끼리를 더듬어 만지는 눈먼 장님(소경; 봉사; 맹인)들”의 우화는 붓다교의 교주로서 추앙되는 싯다르타 고타마 붓다 샤캬무니(석가모니; Siddhartha Gotama Buddha Shakyamuni, 서기전563~482; 서기전480~400)가 인디아 북부의 우타르프라데쉬주(Uttar Pradesh州)에 있던 고대 왕국 코살라(Kosala)의 도읍(수도) 슈라바스티(Shravasti)에서 ‘자신의 의견만 진리라고 단언하는 편견과 아집에 찌든 사문바라문들의 작태’를 목격하고 창작한 것일 수도 있으며, 그 지역에 구전(口傳)되던 것을 그대로, 아니면 각색하여, 말한 것일 수도 있다.
“사문바라문”은 얼추 “금욕하고 수행하는 브라만교 성직자”를 뜻하므로 서기전5세기 인디아의 지식인이나 철학자마저 아울러 함의할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브라만교(Brahman敎; Brahmanism; 브라민교; Brahmin敎; Brahminism)”는 “불교보다 먼저 형성된 고대 힌두교(Hindu敎; Hinduism) 경전 베다(Veda)의 신앙을 중심으로 발달한 종교”로서 “우주의 본체 곧 범천(梵天)을 중심으로 희생을 중요시하며 난행고행(難行苦行)과 조행(操行) 결백을 으뜸으로 삼는다”고 풀린다(설명된다; 정의된다). 그리고 같은 사전에서는 “브라만(Brahman)”이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높은 지위인 승려 계급”이라고 풀리는데(설명되는데; 정의되는데), 이런 풀이(설명; 정의)는 다소 부정확하게 보인다.
첫째, 브라만(Brahman)은 “(석가모니 붓다가 아닌, 예컨대, 퉁퉁) 붓다, 부풀다, 팽창하다, 확장하다, 성장하다, 확대하다”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브라마(브라흐마; brahma)에서 파생한 산스크리트어로서 얼추 “우주창조원리”를 뜻한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여태껏 “브라만”이 브라만교의 성직자나 그런 성직자 계급을 가리키는 인칭이나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둘째, 브라만교 성직자를 가리키는 인칭이나 호칭은 브라만을 추구하는 브라마나(brahmana; 브라민; brahmin)인데 파라문(婆羅門)이라고 한역(漢譯)되면서 “바라문”이라고도 발음되고 표기되었다.
셋째, 그렇다면 적어도 한국에서 여태껏 통용된 “브라만”이나 “브라만계급”이라는 인칭나 호칭은 “브라마나(브라민)”와 “브라마나(브라민)계급”이라고 발음‧표기되는 편이 쬐금 더 정확할 것이다.
넷째, 사문(沙門)은 난행고행하는 금욕적 수행자나 구도자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슈라마나(shramana)”와 팔리어 “사마나(samana)”의 한역어(漢譯語)이다.
하여튼, 요컨대, 서기전5세기에 슈라바스티에서 저마다 오직 자신의 팃티(titti; 철학적 견해; 의견; 관점)만 진리라고 고집하는 편견과 아집에 찌든 사문바라문(沙門婆羅門; 슈라마나 브라마나; 사마나 브라민)들의 가소로운 언쟁을 목격한 붓다(석가모니)가 설파한 “코끼리를 만지는 장님들”의 우화에서는 장님 9명이 저마다 코끼리 1마리의 9부위 중에 딱 하나씩만 더듬어 만지고 나름대로 상상하거나 억측한 코끼리의 전모를 속단한다.
그들은 모두 생맹(生盲; 선천성 맹인)들이다.
그들 중에 코끼리의 머리만 만진 장님은 항아리, 귀(耳)만 만진 장님은 파촛잎(芭蕉葉), 상아(象牙)만 만진 장님은 말뚝, 코(鼻)만 만진 장님은 가래(삽), 몸통만 만진 장님은 곡식창고, 다리만 만진 장님은 기둥, 발만 만진 장님은 절구, 꼬리만 만진 장님은 절굿공이, 꼬리털만 만진 장님은 빗자루가 바로 코끼리라고 착각하여 속단하고 맹신하며 고집한다.
서기전5세기 인디아에서 창작되었거나 더 오래전부터 구전되기 시작했을 이 우화는 서기전1세기후반에 기록된 이후 붓다교와 함께 아시아 각지로 전파되었고 19세기초엽에는 서양에도 전파되었다.
브리튼 잉글랜드의 옥스퍼드 대학교(Oxford University) 베일리얼 칼리지(Balliol College) 고전학 장학생 출신이자 웨일스의 카디프 대학교(Cardiff University)에서 라튬어(라티움어; Latium語; 이른바 라틴어; Latin)를 강의한 새뮤얼 셜리(Samuel Shirley)의 2002년판 영역본(英譯本) 《스피노자 전집(Spinoza's Complete Works)》에 수록된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Indiana University) 철학과 교수 마이클 모건(Michael L. Morgan)의 〈서문(Introduction)〉에도 이 우화를 연상시키는 다음과 같은 견해가 기록되었다.
“우리는 편견들과 맹목성을 오직 어느 정도만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각자의 한정된 부분들밖에 알 수 없으면서도 그런 부분들을 각자의 전체로 착각하여 행동한다.”
아래왼쪽그림은 일본 화가 오하라 돈슈(大原呑舟, 1792~1858)의 〈코끼리를 더듬어 짐작하려는 장님들(군맹평상; 群盲評象; Blind Men Appraising an Elephant)〉이고, 아래오른쪽그림은 미국 출판사 디. 씨. 히스 앤 컴퍼니(D. C. Heath and Company)의 1907년판 《히스 읽기 교재: 초등학교 학년별(The Heath readers by grades)》(p. 69)에 수록된 “E. P.”라고 서명한 화가의 1907년작 〈장님들과 코끼리(The Blind Men and the Elephant)〉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