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마지막 주 일요일이었다. 나는 동창회와 예식장 걸음은 마음만 전하고 혼자 길을 나섰다. 평소 잘 가지 않는 곳으로 나섰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동읍으로 넘나드는 버스를 탔다. 나는 얼마 가지 않아 용강고개에서 내렸다. 고갯길은 도로를 확장하느라 어수선했고 오가는 자동차들로 혼잡했다. 하늘로부터 용이 내려왔다는 땅이름이었다. 근처에는 용과 관련된 지명이 여럿 있다.
내가 창원을 벗어나 교외로 나갈 때 여러 차례 넘나든 용강고개다. 예전에는 검문소가가 있던 곳이다. 지금은 도로공사로 검문소는 폐쇄 중이다. 그럼에도 시내버스 자동 안내방송에는 용강고개라 하지 않고 용강검문소라고 했다. 내가 차에 내려 용강고개에서 땅을 밟아보기는 처음이었다. 고개 북사면 응달에 몇몇 음식점을 비롯한 인가가 있었다. 마을회관도 있는 정식 행정구역이었다.
그간 봄날이 무르익으면서 곳곳에선 몸살을 앓을 만큼 화사한 꽃 잔치가 펼쳐졌다. 도심에서는 개나리와 목련에 이어 벚꽃이 꽃구름으로 일어났다 스러졌다. 시골 밭둑에서는 매화로 시작해서 자두나 배꽃이 피었다가 사그라졌다. 근교 산자락에선 생강나무와 진달래에 이어 산도화가 피었다 지는 무렵이었다. 자연은 부산하던 꽃 잔치를 끝내고 숨을 고르면서 연두색 잎이 돋는 중이었다.
낯선 골목에 접어든 이방인을 반겨 준 것은 것은 노랗게 피어난 들꽃이었다. 고개에서 내려서는 길섶을 비롯한 감나무 과수원 언저리는 온통 애기똥풀 꽃 세상이었다. 내가 동창회와 예식장 걸음을 하지 않고 시골길로 나선 보람을 바로 이 재미렷다. 시청 앞 광광이나 명곡 교차로에는 사람이 심어 가꾼 튤립과 팬지가 피어있다만 그런 봄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천연 그대로의 들꽃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 지천으로 핀 애기똥풀 꽃에 홀렸다. 겨우내 꽁꽁 언 땅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화려한 꽃 대궐이었다. 노랗게 피어난 꽃은 애기똥풀만이 아니었다. 납죽 엎드려 피어난 민들레도 있었다. 어지선가 홀씨가 날아와 절로 자란 갓도 꽃을 피웠다. 채소로 가꾸어 못다 뽑아먹은 유채도 꽃을 피웠다. 애기똥풀만으로도 눈이 어지러운데 민들레에다 갓과 유채까지 피어 현란했다.
나는 경전선 복선 철길 위로 난 도로를 건넜다. 용암으로 가는 길이 새로 뚫리고 있었다. 중앙천변을 따라 동읍까지 이러지는 길이었다. 나는 남해고속도로가 지나는 지하도를 건너 산자락으로 들었다. 감나무과수원과 인접한 산기슭은 세 개 암자가 나란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절간 길가에는 연등이 걸려 있었다. 한 암자에선 재를 올리는 비구의 낭랑한 독경소리가 울러 퍼졌다.
산기슭에 앉자 쉬고 있을 즈음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영문학을 연구한다고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일요일에도 책과 씨름하는 친구였다. 늦은 나이지만 박사과정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었다. 내가 지금 어느 산자락 들머리 있으니 산나물을 장만하면 해거름에 보자고 했다. 나는 통화를 끝내고 산에 들었다. 두릅 순은 쇠었고 여기저기 흩어져 자라는 취나물을 뜯었다. 원추리도 보였다.
산 속에는 나 혼자인줄 알았는데 한 사람 더 있었다. 그도 나처럼 산나물을 채집하고 있었다. 내야 처음이지만 아마 그는 해마다 들리는 사림인 모양이었다. 내가 먼저 인기척을 보이면서 반갑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와 나는 엇갈려 스쳐 지났다. 바깥에서 본 지형과는 다른 산세였다. 깊은 골짝에는 오래전 산사태를 방지하려고 여러 곳에 축대를 쌓아 두었다. 맑은 석간수가 흘렀다.
산중에서 드문 머위도 뜯었다. 송전탑을 세우면서 난 길로 나와 취나물을 골랐다. 바쁘게 뜯나보니 검불이 함께 섞어 있었다. 솔잎과 가랑잎을 털어 내었다. 성묫길로 난 희미한 길 따라 내려가니 용전마을이었다. 용강에서 용암을 지나 용전에 닿았다. 근처는 용잠 용정 용산마을이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구룡산에 올랐고 가까이 팔룡산도 있다. 약속대로 지인에게 산나물을 안겨주었다. 11.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