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방문을 놓고, 엘리옷 A 코언 존스홉킨스대 국제문제대학원 석좌교수는 20일 애틀랜틱 몬슬리에 “바이든 대통령이 키이우 방문이라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행보를 취함으로써, 푸틴의 복부에 강하게 한 방 먹였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또 “바이든의 키이우ㆍ뱌르사바 방문은 ‘누가 진짜 유럽을 이끄는지’를 상기시켜줬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바이든 방문이 겨냥한 최종 대상은 푸틴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국무부 고문을 했던 코언 교수는 ‘바이든은 푸틴의 마지막 희망을 파괴했다’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푸틴은 개전 초에 우크라이나가 맥없이 무너질 것이라는 많은 호언장담을 했지만, 이제 그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자신의 의지가 바이든보다 강하다’는 것이었다”고 진단했다. 그런데, 바이든이 키이우를 방문해,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노(no),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바이든은 이번 방문을 통해, 장기화된 무기 지원에 대한 미국 내 증대하는 신(新)고립주의 성향과 모호한 입장의 유럽인들을 단속하고, 우크라이나인 국민의 자신감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코언은 “궁극적인 청중은 푸틴이었다며, “러시아는 바이든의 방문에 대해 사전 통보를 받았고, 아마 ‘이걸 훼방하려고 했다간 압도적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는 협박도 받았을 것”이라며 “푸틴같이 힘에 집착하는 지도자에게 바이든의 사전 통보와 방문은 복부를 강타당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제 러시아인들은 은밀하게 또는 공개적으로 “왜 우리는 바이든 방문을 막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인데, 그 대답은 “우리[러시아]가 (미국의 협박이) 두려웠기 때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만이 과시할 수 있는 ‘전략적 상징’ 드러내
코언 교수는 “이전에 서방의 여러 지도자가 키이우를 방문했지만, 자유 진영의 지도자인 미국 대통령이 키이우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라고 평가했다. 바이든은 이번 방문에서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ㆍ주권ㆍ영토 보존을 위해서 흔들림 없는 지원을 약속하며 “기간이 얼마가 되든(as long as it takes) 용감한 우크라이나 국민이 러시아 침공에 맞서서 자기 나라를 지킬 수 있도록 확실히 돕겠다”고 밝혔다. 그는 “베를린 장벽에 선 케네디와 레이건, 중절모를 쓰고 시가를 입에 문 처칠, 또 국방색 셔츠를 입고 ‘망명 교통수단이 아니라, 탄약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젤렌스키처럼 상징은 중요하다”며 “바이든은 키이우 방문을 통해, 가장 중요한 전략적 행보를 취했다”고 주장했다.
◇ 자신이 일으킨 전쟁터에도 못 가는 푸틴과 대조적
코언 교수는 “자신의 시그니처 같은 공군 조종사 선글래스를 쓰고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햇살 좋은 키이우 시내를 걷는 미국 대통령과 자신이 시작한 전쟁터를 방문하지도 못하는 러시아 대통령, 사람들과 어울려 악수하고 포옹하고 등을 두드려주는 미국 대통령과 심복과도 거리를 두고 일반인으로 가장한 배우들에 둘러싸인 푸틴을 비교해 보라”며, “앞으로 크렘린에서 나올 어떤 호전적인 말도 러시아에도 공개된 이 대조적 이미지를 바꿀 수는 없다”고 했다.
20일 수시로 러시아군의 폭격이 받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성 미카엘 성당 광장을 걷는 바이든(사진 위)과, 대조적으로 아직 한번도 자신이 일으킨 전쟁터를 방문한 적이 없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AFP 연합뉴스© 제공: 조선일보
◇연로한 미 대통령의 방문 “패러다임 바뀌었다” 통보
미국의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인 앤 애플바움도 바이든의 키이우 방문은 “시간은 결국 자기 편이라고 믿었던 푸틴의 심리적 전쟁에도 타격을 가했다”고 평했다. 푸틴은 장기적으로 러시아가 유리하다는 심리전을 폈다. 서방 방위산업체들의 생산 속도는 전장 수요를 맞추지 못하고 있고, 유럽 내에서도 장기화되면 새 현실을 받아들이고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푸틴은 유럽은 분열되고 약하고 교란하기 쉬어, 결국 사람ㆍ무기ㆍ시간 모두 러시아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애플바움은 “연로한(80세) 미국 대통령이 개인적 위험을 무릅쓰고 전례 없이 미군도 없는 전쟁 지역을 기꺼이 방문하고 미국 정부가 이런 노력을 한다는 것은, 결코 시간이 러시아 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시에 그의 방문은 서방의 국방장관들, 군수산업체들을 포함한 모든 이에게 ‘패러다임이 바뀌고, 이야기가 바뀌었다’고 통보하고, “낡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한편, 워싱턴포스트는 “바이든의 키이우ㆍ바르샤바 방문은 누가 유럽을 일으키는지 다시 일깨워준다”고 보도했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피터 노이먼 안보학 교수는 “늘 그랬듯이, 진짜 사안이 중요할 때에는 미국이 페이스(pace)를 정한다”며 “유럽 지도자들에겐 스스로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겸허하게 깨닫는 한 해”라고 말했다. 그는 “수많은 컨퍼런스와 씽크탱크가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논의했지만, 유럽은 미국이 이끌 때에만 하나로 뭉쳐서 행동할 수 있다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