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모리현 하치노헤1 - 하치노헤시 번화가에서 예쁜 기모노를 보고 신라 신사로 가다!
7월 9일 아침에 혼슈 최북단의 도시 아오모리 靑森(청삼) 를 떠나는데 신아오모리역 으로
가서는 도호쿠 신칸센 新幹線 はやて 을 타고 모리오카 盛岡 로 갈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역내에서 관광안내 포스터 를 보니 멋진 갑옷 그림에 “八戶 の国宝”라 적혀있고
또 하치노헤(八戶 팔호) 에서 개최되는 3사 대제와 엔부리 마쓰리 사진이 보이네요?
해서 마음이 확 동하는게 신아오모리 역에서 모리오카로 가려고 끊었던 표를 캔슬 하고는
여기 모리오카역 에서 바로 하치노헤 (八戶) 로 가는 도큐(특급) 기차에 오릅니다.
나는 석달간에 걸쳐 꼼꼼한 여행계획서 를 작성하는지라 도중에 여행지를 바꾸는 일은
거의 없는데 이번에는 기차 좌석이 없어 하코다테 고료가쿠와 도야코 호수등 3번째네요?
9시 29분에 출발한 기차는 천천히 달리는지라 창밖에 주황색 모자를 쓴
유치원 아이 들이 야외 학습 을 가는 즐거운 장면을 구경합니다.
또 삼나무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노헤지역 에서는 동쪽 바닷가 마을에서
열리는 노오가마 축제 포스터를 보는데 참 성대하게 하는가 봅니다?
그러고는 11시 넘어 하치노헤(八戶 팔호) 역에 내리니 역에 하치노헤 엔부리 마쓰리
포스터와 일본의 백대 성에 속한다는.....“네성”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그 옆에는 금메달 을 목에건 요리사며 상인풍의 사람들이 보이는데
그 사진에 제목 마저 “금메달급 감동”을 준다나요?
"금(金)" 이라는 말에 문득 떠오르는 장면 이 있으니....
"경복왕이 무쑤노쿠니에서 금" 을 채취해 조정에 진상했던 사실이라!
743년 11월 5일 쇼무천황(일왕)이 나라 동대사 절 에 엄청난 크기의 청동 대불 을 지을때
황금 900냥 을 대불 도색용으로 바친 자는 백제계 후손 인 경복(慶福)왕 입니다.
그는 의자왕의 동생(아들?) 이자 백제 부흥군에 의해 왕에 추대되었던 풍왕 의 동생인
선광(善光) 의 증손자 로 오사카 북동쪽에 히라가타 枚方(매방)시를 건설한 백제인 입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금이 생산되지 않았는데...... 백제인 채굴 기술자들은 멀리
여기 무쓰 陸奧(육오) 지방의 아오모리 에서 드디어 사금 을 채취했던 것입니다.
한국의 삼국사기 보다 400여년 빠른 720년에 간행된 일본서기 에는 663년 백제부흥운동
실패 후에 망명해온 백제인 400여명을 오미국 간자키군 (오사카 일대) 에
거주하도록 했으며 또 백제인 2000여 명에게 3년간 관식(官食) 을 급여했다고 나옵니다.
선광(禪廣) 은 지토천황(일왕)으로 부터 “구다라노 고니키시 百濟王”라는 성씨(姓氏)
를 하사받고는 망명한 백제인들을 이끌고 히라가타 枚方(매방) 시를 건설합니다.
선광의 손자인 양우(良虞) 의 셋째 아들 경복 이 육오수(陸奧守) 라는 관직을 맡고 있을
때에 "아오모리에서 채취한 금" 을 일본 왕실에 헌납 해 두각을 나타냈던 것입니다.
백제 무령왕의 10세손 야마토노 오토츠구(和乙継) 의 딸인 다카노노니이가사 (高野新笠)
는 고닌 천황(光仁天皇 일왕) 의 부인으로 "간무 천황(桓武天皇) 의 어머니" 입니다.
그녀는 며느리를 고를때 역시 백제계 도래인 인 저 의자왕의 아들인 선광의 후손 인....
“구다라노 고니키시 百濟王”씨 가문에서 맞아들이니 아키히토 일왕 이 언급한바 있습니다.
역 코인로까 에 배낭을 넣는데 여긴 열쇠가 아니라 종이 번호표가 나오므로 카메라로
찍어 간직하고는 밖으로 나오는데 기이한 사진이 있으니.....
신라 고분 처럼 가자하라 유적 조몬인 무덤에서 나온 合掌土偶(합장토우) 라고 하네요?
그러고는 시내로 가는 버스 를 타려는데 마침 제복을 입은 여직원이 퇴근하기로.....
하치노헤성 으로 가는 길을 물으니 버스 노선도 까지 꺼내주며 친절하게 일러줍니다.
12시 20분 버스를 타고 25분을 가서 十三日町 정류소 에 내려서 성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장자산 신라 신사" 와 하치노헤 번주였던 난부가 묘지 로 가는 길을 묻습니다.
할머니도 잘 모르는지 우리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인근 가게로 들어가 주인에게
물어보고는 이 길을 따라 가다가 네거리에서 좌회전해서 10분만 걸으면 된답니다.
일본 사람이라고 100% 다는 아니지만.... 대개는 아주 친절했는데 MB 독도 방문 과
천황사과 운운 발언 이래 한류가 꺼진 후에는 가끔 불친절한 사람도 보입니다.
이른바 일본의 보통 사람 들이 한국에 대해 등을 돌리고 혐한 분위기 가 높아진 탓이지만
그래도 일본인 대부분은 가던 길을 반대로 가면서 까지 안내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백화점이 있는 네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여 도로를 따라 걷는데 가게에 기모노 가
걸려 있고..... 젊은 여성들이 기모노를 입고 있는 예쁜 모습을 구경합니다.
"기모노(着物 착물)" 는 원래 소맷부리가 넓은 예복인 오소데 안에 입던
통소매 속옷 고소데 였다는데 나중에는 겉옷 으로 입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비단에 솜을 두어 만든 길이가 긴 옷을 나가기 라 하고....
소맷부리가 좁은 옷은 아직도 고소데 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일본 옷의 특성은 의복을 겹쳐서 입는데 정식으로는 짧은 주반(속옷) 에 고시마키와
긴 주반을 속옷으로 입고 그 위에 나가기 를 입어야 하는데 속옷이 생략되기도 합니다.
새하얀 화장에 화려한 머리장식 그리고 불편해 보이는 높은 게다(下馱) 를 신고
종종걸음 으로 걸어가는 기모노 차림 의 일본 여성들은 아름답습니다.
기모노는 3천만원이 들 정도로 비싸니 왕실의 결혼식, 게이샤나 가부키 등에서만 전통적
명맥이 유지되고 일반인들은 격식을 차려야 할때 "간소화된 기모노" 를 입는 정도라!
기모노는 혼자 입기가 매우 어려울 정도로 입는 절차가 복잡 하고도
까다로울 뿐 아니라...... 그 명칭 또한 생소한 것이 많습니다.
일본 고분 문화의 기누하카마라 는 상· 하의는 기마민족의 복식 형태에서
유래하니 한반도 삼국 시대의 복식에서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헤이안 시대 궁중여성들의 주니히토에 라는 의례복식은 가사네이로매(重色目)
라고 해서..... 칼라와 소매 끝 및 치마단의 색채조합 을 중시했습니다.
가사네이로매 는 사계절에 피어나는 꽃과 나무 등의 자연과 풍물 이름을 따서 의복
안팎의 색을 표현한 것으로... 이질감과 색채 가 융합하여 만들어진 문화라고 합니다.
무사시대가 되면서 남자는 근검을 강조하는 가마쿠라식 기모노 를 입었으며 여성들도
헤이안 시대에 내의인 고소데 를 겉옷으로 착용하면서 기모노의 원형 이 됩니다.
에도시대 후기 부(富) 에 의해 가치 기준이 바뀌면서 여성들은 교토 귀족사회 의
다채롭고 화려한 유행 대신에 단형화와 개개 색상 이 심화된 에도풍 을 입게 됩니다.
사람들은 일본 고유의 기모노를 잘 간수했다가 어머니가 딸에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주는데, 기모노를 입을때는 양말과 신발을 신지 않고....
나무로 만든 굽이 높은 나막신 게타 나 목면 또는 가죽으로 만든 굽이 낮은 샌들 조리 를
신으며... 엄지 발가락과 둘째 발가락 사이가 갈라진 면 버선 다비 를 안에 신습니다.
허리에 감아 등에 보따리 처럼 묶고 다니는 "오비" 는 일본이 유일한데 얼핏 보기에는
쓸모 없을 것 같지만 작달만한 일본인의 체구를 상하로 나누는 악센트 구실을 해줍니다.
오비 는 허리띠를 몇겹씩 감아 뒤쪽으로 매듭지은 복식으로 뒤쪽에 감아 배면미(背面美)
를 연출한 것은 사람을 볼 때 뒤를 바라보는 경향 이 강하다는 데서 나왔다고 합니다.
또 오비 의 위치를 허리 위로 올림으로써 상반신에 비해 아랫도리가 길게 보이며
오비의 넓은 띠로 몸을 감쌈으로써 위하수가 줄고 혈압상승을 막는답니다.
그럼 조선의 한복에서 저고리를 짧게 하고 치마를 올려 입는 것 과 같은 이치일러나?
그 외에 기모노 와 비슷한 옷으로 보이는 "유카타(浴衣)" 는....
여름 축제 때나 목욕후에 입는 간편하고 가벼운 목면 옷 입니다.
일본 복식을 착용할 때 기모노 는 내적 아름다움 을 표현하는 것이니.....
기모노에 어울리는 태도와 움직임에 삶과 자연에 대한 감성이 요구됩니다.
자연과 그 분위기를 반영하는 일본 복식의 색채 선택은 일본인들이
계절의 변화 에 어떻게 조화하려 했는지 짐작하게 해 줍니다.
기모노 는 몸에 착용된 후에야 그 진정한 형태를 논하는 것이 가능하니.... 착용자가
그 형태를 스스로 창조할 수 있다는 것으로 특히 직선적인 아름다움 을 강조합니다.
길가에 어느집 벽에 일본에서는 참으로 보기 드문 그래비티 를 보고는......
다음 길목에서 "장자산 신라신사" 가 400미터 우측에 있다는 표지판을 봅니다.
그러고는 좀 더 걸어 왼쪽에 고분 같은게 보이는데 특이하게도
고분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어 놓은 이유를 알수가 없네?
조금 더 걸으니 가파른 언덕이 나오는데 100여미터를 더 걸으니...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엄청 가파르고 높은 계단 이 나타납니다.
계단을 오르노라니 좌우 양 옆으로 곧은 삼나무 등 나무들이 울창한데 땀을 흘리며
오르니 도리이 가 보이고 다시 산길이 나타나는데 여기 왠 新羅(신라) 신사 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