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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 중에 김선달이라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실제로 있었던 사람인지 누가 가공해 낸 인물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대동강 물 팔아먹은 희대의 사기꾼 봉이 김선달이 하면 아마도 기억이 나실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 이름 앞에는 첨지(僉知)초시(初試)생원(生員)같은 별칭이 붙었는데 선달(先達)이라는 별호는 사기꾼이거나 건달 같은 칭호가 아니라 그 시대의 엄연한 벼슬 이름 이였으니 김선달이라는 위인은 분명 양반이 틀림없었겠지요. 아무튼 간에 그 유명한 김선달이 한양의 어느 거리를 걷고 있는데 이양반도 어제 밤 과음(過淫)을 한 탓인지 뱃속이 부글부글 끓더니 연발 방귀가 나오는 것이 예사롭지가 안습니다. 집에까지 가려면 한참을 가야 하는데 하필이면 양반님들만 사는 동네의 골목이고 보니 딱히 대문을 열고 들어가 실례를 하기에도 선뜻 내키지가 안습니다. “허허 이거 잘못하다간 길바닥에서 대변을 봐야 되겠구먼 이를 어찌한다...” 천하에 김선달이도 오만상을 찌푸리며 걱정이 태산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랫배에서는 용트림에 자즌방구가 벼락 치듯 하니 급기야 김선달이도 이겨내지 못하고 두 손으로 배를 움켜잡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의 솟을대문 앞에서 고함을 지릅니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누구신데 남의 집 대문을 이렇게 두드리십니까?” 대문 안에서 가냘픈 계집종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 아주 급한 볼일이 있어 그러하니 빨리 문 좀 열어다오” 그러자 계집종은 대문을 빼꼼히 열고 김선달의 행색을 아래위로 처다 보더니 “무슨 일 이신데요?” 하고 묻습니다. 김선달은 만면에 상냥한 웃음을 지으며 “이보게 내가 지금 배가 아파서 그러니 잠깐만 뒷간에 가서 볼일 좀 볼 수가 없을까?‘ 하고 염치고 체면이고 다 집어던지고 통 사정으로 매달리니 계집종은 여타 부타 대답도 없이 다시금 대문을 닫으려고만 합니다. “아니 이보게 그냥 대문을 닫으면 어쩌란 말인가? 제발 사람 좀 살려주게 한시가 급하니 잠깐만 실례 좀 하세“ 김선달은 닫으려는 대문에 매달려 몸을 비비꼬며 계집종에게 사정사정 하는데 마침이때 안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여인이 그 광경을 보고 “ 심심아 밖에 무슨 일이 있느냐?”합니다. “예. 웬 남자분이 배가 아프다며 뒷간을 빌려달라고 합니다.” “배가 아프다고? 그럼 약방으로 가보시라고 여쭈어라” 일분일초가 급한 판국에 약방으로 가보라니 한양 인심 고약 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이리 야박 할 줄이야. 어쨌든 주인이 까달 스럽게 나오니 김선달은 한껏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내 배앓이는 약방보다 뒷간에 가야 낫는다고 여쭈어라.” 하고 말하니 이를 중간에서 계집종이 말을 받아 전합니다. “ 뒷간에서 고칠수있는 병이라고? 그럼 뒷간이 곧 약방이니 약값으로 닷 냥을 내라고 여쭈어라.” 그 말을 듣자 천하의 김선달이도 기가 막혔습니다. 뒷간 한번 빌려주고 선달의 세끼밥값과 술값에 해당되는 돈을 달라고 하니 도무지 이놈의 집이 양반네 집인지 돈만 아는 저자거리의 장똘뱅이네 집인지 감(感)이 잡히지 안했지만. 그러나 어찌합니까. “다섯 냥은 너무 비싸니 한 냥만 받으시라고 여쭈어라.” 하인 아이가 말을 전하자 다시 답이 왔습니다. “싫으면 그만 두시라고 여쭈어라.” 결국 흥정은 이루어지지 않고 김선달은 꼼짝없이 다섯 냥을 내고 쏜살같이 뒷간으로 뛰어가서 시원하게 일을 보았지요. “아이고 이제 살 것 같구나.....” 막혔던 하수구가 뚫려 나가듯이 배변을 하고나니 김선달은 뒷간 사용료로 낸 닷 냥이 더없이 아까운 생각이 굴뚝같습니다. 세상에 딱한 사정이 있으면 낮 모르는 이도 사연을 듣고는 밥을 사주고 노자를 주는 것이 양반네가 해야 할 법도이거늘 그것도 양반네 마님이라는 위인이 이따위 수작으로 돈을 우려내니 생각 할수록 괘씸하고 괘씸했습니다. “좋다. 이놈의 여편네 버르장머리를 이번 기회에 확 뜯어고쳐 주어야 겠구먼” 김선달은 지그시 눈을 감고 골똘히 생각하더니 빙그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리하여 김선달이 뒷간에 들어 간지도 근 한식경이 지났건만 어언 일인지 김선달은 나올 생각조차 하지를 안습니다. “심심아 뒷간에 들어간 손님은 나왔느냐?‘ 안주인은 은근히 걱정이 되어 종년을 다구 칩니다. “글세. 무얼 하는지 도통 나올 생각을 하지 아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출타했던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 되었는데 외간 남자가 바지를 까 내리고 뒷간에 앉자있는 광경이라도 본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혹시라도 어수룩한 저양반이 허튼소리라도 잘못하면 그일 수습이 여간 아님을 아는 안주인은 종년을 재촉해 김선달이를 빨리 나오라고 안달이 났습니다. “그럼 빨리 좀 볼일을 보고 나오라고 빨랑 여쭈어라.” 종년 아이가 뒷간 문 앞에 와서 다급한 목소리로 김선달에게 고합니다. “손님. 빨리 좀 나오시랍니다.‘ 김선달은 담배쌈지를 꺼내어 짧은 곰방대에 연초를 꾹꾹 눌러 담으며 “나는 한번 용변을 보려면 하루 종일 걸린다고 마님께 여쭈어라.” 안주인이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새하얗게 변합니다. “하루 종일 변을 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하더냐? 어서 빨리 일을 마치고 냉큼 나오시라고 전해라” 김선달은 그 말을 받아 더욱 여유를 부립니다. “그렇게 재촉하면 나오던 똥도 다시 들어가서 시간만 더 걸릴 뿐이니 알아서 하시라고 전하거라.” 이쯤 되자 안주인은 이제 자기가 똥줄이탈 지경이어서 안절부절 하게 되었습니다. 이리 사정이 급박 해지자. 안주인은 종년을 불러 받은 돈을 던져주며 “냉큼 가서 받은 돈을 돌려 줄 테니 어서 나오라고 전해라.” 종년 아이가 앵무새처럼 안주인의 말을 전합니다. 그런데 김선달은 왈 “돈 필요 없다고 여쭈어라” 이렇게 전하니 급해진 안주인 왈. “다섯 냥에 두 냥을 더 얹어 줄 테니 빨리 나오라고 전해라” “돈 필요 없다는데도 자꾸 귀찮게 하면 더 길어질 뿐이라고 여쭈어라” 허허허... 이제는 주객(主客)이 완전히 전도된 셈이 되었습니다 그려. “저 능구렁이 같은 남자가 뒷간에 앉아서 똥을 누며 똥배짱을 부리는구나.” “받은 것에 두 배를 줄 테니 어서 나오라고 전해라 이제 나도 지쳤으니 빨리 나와서 갈 길을 가라고 하거라.“ 김선달은 안주인의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면서 끝까지 약을 올립니다. “그렇게는 안 되고 안주인께서 적선 하는 셈치고 열 냥만 더 주면 이집에서 나갈 것이라고 여쭈어라.” 안주인은 저 엉큼한 영감탱이가 무슨 명목으로 무슨 일을 또 저지를까 심히 조바심이 나서 냉큼 수무 냥을 뒷간 문 앞에 던지며 빨리 나가주기를 발을 구르며 성화를 부립니다. 그제서야 김선달은 “아직 일도 다 보지 못했는데. 쫒아 내다니 에이. 한양인심 고약하구먼.” 하며 묵직해진 엽전 꾸러미를 허리춤에 달고 팔자걸음으로 에험 에험 헛기침을 해대며 걸어가더라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그래서 그 이후로 똥배짱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들 하는데 이 이야기도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라고 하니 세상속 이야기들이 아리 송송 할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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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시 김선달~~ 그정도 배짱이있었으니 대동강물을 팔아먹었죠^^잘 읽고갑니다.
아 ~~~ 하
그렇구먼유 잘봤슈.....
음 ~ 봉이 김선달..... 똥 하고 관련이 많군요.... 똥배짱에..... 똥 누러갈때 마음 나올때마음 틀린다는 말도있잖아요 ... ㅋㅋㅋㅋㅋㅋ
ㅎㅎ 역쉬...봉이 김선달님이군.ㅋㅋㅋㅋㅋㅋㅋ 배짱중에 똥배짱이 최고지..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