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회표 노인 요양원,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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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파란 눈의 수녀가 한국 땅을 밟았다. 버스 한 번 타고 가는데도 군인들이 몇 번씩이나 검문하던 시대였다. 외국인 수녀는 목포의 한 의원에 머물며 아픈 사람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병든 사람에게는 약을, 배고픈 사람에게는 음식을 주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수녀는 병들고 아픈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남은 생을 인간답게 살다가 하느님 품으로 갈 수 있도록 이들의 친구가 되고 엄마가 된다.
지난 2월 6일 강원도 춘천 성 골롬반의 집. 노인 요양시설에 신기하게도 활기가 넘쳤다.
“마리아, 내 이름이 뭐라고 했죠?” 누워 있는 어르신에게 노라 와이즈만(성 골롬반의 집 원장, 아일랜드 출신) 수녀가 묻자 “뭐긴 뭐야, 뚱뚱이 수녀지!”라는 대답이 날아온다. 노인의 말에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그럼 이쪽은 누구예요?” 노라 수녀가 옆에 있던 체칠리아 수녀를 가리키자 노인은 “여기는 키다리 수녀! 뚱뚱이 수녀랑 키다리 수녀는 맨날 같이 다녀”라고 무뚝뚝한 얼굴로 대답한다. 어르신은 말을 걸어도 잘 대답하지 않고 눈앞에 지나가도 쳐다보지 않는 것 같지만 ‘다 지켜보고 있다’는 게 수녀의 말이다.
치매나 중풍 등 노인 질환을 앓는 이들이 사는 이곳은 1980년대부터 한국에서 호스피스 활동을 했던 와이즈만 수녀의 손길이 곳곳에 묻어 있다.
“치매가 있는 어르신들과는 정상적인 대화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죠. 그렇다고 이분들을 그대로 내버려둬서는 안 돼요. 자신만의 세계에서 무척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거든요.”
노라 수녀는 틈날 때마다 어르신들을 찾아가 기분은 어떤지, 오늘 밥은 맛있었는지 등 사소한 소재로 이야기를 잇는다.
죽음을 앞둔 이가 편안하게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정신적·물리적 도움을 주는 호스피스는 환자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방법이다. 노인 질환으로 성 골롬반의 집에 들어오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임종을 맞는다.
성 골롬반의 집에는 온종일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원장 수녀부터 큰 소리로 인사하고 자주 웃고 농담을 한다. 아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인데도 유쾌한 분위기가 흐를 수 있는 이유다.
이곳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지혜경(플로라, 춘천교구 애막골본당)씨는 “수녀님들이 모범을 보이시니 우리도 어르신들에게 더 다정하게 대하고 살뜰하게 보살피게 된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온종일 어르신들의 빨래며 식사를 챙기기 위해 몸집보다 큰 수레를 끌고 다니면서도 얼굴에는 기쁨이 넘친다.
와이즈만 수녀와 함께 성 골롬반의 집을 지키는 체칠리아 마크 마 혼 수녀는 한국에 온 지 50년이 넘었다. 말수가 적은 체칠리아 수녀는 어르신들을 만날 때도 조용히 손을 잡고 어루만진다. 새하얀 얼굴에 파란 눈동자가 차가운 인상을 풍기지만 노인들은 체칠리아 수녀의 손을 좀처럼 놓지 않는다. 손을 통해 수녀의 따뜻함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체칠리아 수녀가 든든한 맏언니라면 와이즈만 수녀는 활달한 막냇동생으로 성 골롬반의 집을 책임진다.
두 수녀는 2004년 춘천에 성 골롬반의 집이 생기면서부터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 호스피스 방문을 다닐 때 인연이 된 한 독지가가 부지를 기증해 그 위에 3층짜리 시설을 세워 어르신들을 받았다. 현재 어르신 98명이 수녀들과 함께 지낸다. 이곳에서 노인들과 살을 부대끼며 산 지도 10년. 와이즈만 수녀는 치매 환자가 점점 증가하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했다.
“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에 비해서 지금은 의료 시스템이 무척 발전했죠.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영적인 치료가 부족한 것이 아쉬워요. 환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위로하면서 생명의 의미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곳이 드물죠.”
그는 환자들을 만날 때 종교 이야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다. 한국에 처음 왔을 당시에도 큰 병원을 돌아다니며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명함을 주며 아픈 사람들과 대화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와이즈만 수녀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는 세례로까지 이어졌다. 지금도 그때 방문했던 환자나 가족들과 연락하며 지낸다. 그동안 환자의 ‘병’에만 집중하는 의사들을 보다가 ‘사람’을 먼저 보는 수녀들의 방식에 아픈 사람들은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두 수녀는 떠나는 사람과 남는 가족 모두 좋은 기억을 가지고 가도록 노력한다.
“어르신들이 마지막 날까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대화를 하려고 노력해요. 남은 가족들도 부모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질 수 있도록 이곳에서 있었던 재밌는 일이나 어르신들이 기억이 돌아왔을 때 했던 말들을 자세하게 전해드리죠. 아픈 사람이 있으면 가족들의 마음도 황폐해져요.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영적 도움을 주는 것이 저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글·사진=김유리 기자 3D3Dlucia@pbc.co.kr">3Dlucia@pbc.co.kr">3Dlucia@pbc.co.kr">lucia@pbc.co.kr
성 골롬반 외방선교수녀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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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2월 1일 아일랜드 존 블로익 신부와 메리 패트릭 수녀에 의해 창설된 성 골롬반 외방선교수녀회(이하 골롬반수녀회)는 고향인 아일랜드를 떠나 유럽 지역의 선교에 평생을 바친 골롬반 성인<사진>의 정신을 따르고 있다.
골롬반수녀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그리고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세상 어디든 간다는 사명으로 중국을 비롯 홍콩, 칠레, 페루 등지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전 세계 11개 나라에 200여 명의 수녀가 파견돼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는 1955년 진출했으며 당시 가장 시급했던 의료 분야에서 간호사와 의사로 일하면서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재건하는 데 힘썼다.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이 좋아지면서 현재는 호스피스, 이주민, 매춘 여성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15년 2월 현재 아일랜드 수녀 6명과 한국 수녀 5명이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인 회원은 총 2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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