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이채율
작천정 그 여자 외
늦가을 계곡물 위로 여자가 일렁이네
바람이 나를 보쌈해
신불산 골짜기에다 유기하고 갔을 때
설핏한 그믐 달빛 아래 그녀를 만났네
자박자박
물소리 같은
눈개승마 서걱대는 말투는
첩첩산중 비탈진 강원도 억양
여수 광양 어디쯤
남편은 날 일 하러 가고
시간제 아르바이트하며 고양이와 사는
아기단풍 자지러지게 핏물 들 때
그녀도 나도 백설물 같은 아이를 잃었지
창백한 산빛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듯
가을바람 채 치는 소리로 물으면
밤새 몸부림 친 단풍물 소리로 답하는
억새 우거진 간월재 위로 비구름 울고 가는데
어린 것 울음 한 자락 허공에 걸어놓고
작천정 그 여자
참방참방 물이 되어 흘러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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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추*
지붕 덧대기는
얼추 한나절 넘어서 마무리다
눈썹 같은
차양 하나 이어붙인 허공의 끝자락
그것은 그늘의 선한 덧셈
한 뼘 넓어진 이마에서 모시나비가 팔랑거린다
비행운은 공중이 낸 처마
땡볕 아래
썬 캡 쓴 사람들이 지나가고
낡은 의자가 턱을 괴고
꽃냄새 흰 그늘 아래 앉는다
오래전
내 안에 추녀를 단 사람이 있었다
떨기나무 아래서 우린 무슨 말을 했던가
처마를 내는 건
슬쩍 나를 내어주는 일
그 선량함에 한 치 계절을 얹는 일
수레국화며 우동단자 피어나는
담벼락 아래 길게 늘어선 화단은
시간의 오랜 까추
그는 돌아오지 않는데
왜 나는 또 심심한 공중에 마음을 매다는 걸까
노란눈썹멧새가 그늘 한 장 물고 날아간다
* 처마의 경주 토박이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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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율(본명:이정애)|2016년 <울산문학> 등단. 2024년 투데이신문 직장인 신춘문예 당선 2024년 울주이바구 공모전 당선. 울산시문학상 작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