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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神勒寺) 신륵사에는 구룡루(九龍樓)라는 건물이 있는데 이는 신륵사를 짓게 된 동기와 관련된 건물이다. 구룡루(九龍樓)는 나옹선사가 아홉 마리의 용에게 항복을 받고 그들을 제도하기 위해 지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처음 이 절을 지은 원효대사의 꿈에 하얀 노인이 나타나 절터로 연못을 가리켜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라고 하였으나 잘 되지 않았다. 7일 기도를 마치자 9마리의 용이 승천하고서야 절을 짓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아홉 마리의 용을 제압하고 지은 절이기에 신륵사(神勒寺)라는 절 이름이 생긴 것. 륵(勒)자가 '제압할 륵'자인데 용을 제압하고 지은 절이란 의미이다.
구룡루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지었다고 전해진다. 조선 성종3년엔 세종대왕의 원찰(願刹, 죽은 이의 명복을 빌던 법당)이 됐다. 이어 1376년엔 나옹 스님이 입적했다. 빼어난 경관에 눈이 휘둥그레진 관광객들은 ‘청산은 나를 보고~’라는 귀에 익숙한 시를 나옹 스님이 지었다는 걸 알고는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신륵사는 200여 칸(기둥과 기둥 사이가 1칸)에 달해 그 규모가 웅장하다. 각종 문화재로 가득한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보제존자 석종(보물 제228호)은 나옹의 사리를 모신 종 모양의 부도이다. 바로 앞의 보제존자 석등(보물 제231호)은 나옹의 부도를 밝히기 위해 세워졌다. 이 밖에도 신륵사엔 고려시대 유일의 전탑(塼塔, 벽돌로 쌓은 탑)인 다층전탑과 보제존자 석종비, 대장각기비, 조사당 등 보물급 문화재들이 수두룩하다. |
신륵사를 둘러 싸고 있는 산이 봉황의 꼬리를 닮았다 하여 봉미산(鳳尾山)이라 부른다. 이쁜 숙녀만 찍을라 캉이 웬 시꺼먼 남정네 몇이 곱사리 끼었노? 우리나라에 있는 전탑 중 최북단에 있다는 신륵사 전탑 카메라멘의 뒤를 따르다 보면 이런 사진도 찍게 된다. 그런데 이 親舊 두 분 다 人生을 達觀하고 머리 허연 神仙이 되었네!!!
나오는 길에 여주 도자기 축제장에도 들러 여러 작품도 둘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