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8월16일(월)맑음
삭발목욕일이다. 아침 공양 시간에 영담 주지스님이 스리랑카에서 온 세 분 스님들을 소개한다. 한국에서 머물 수 있는 영주권을 얻게 해주겠다고 한다. 영담스님은 쌍계사 주지를 맡고 있으면서 부천 석왕사 소임도 겸한다. 부천에서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불사를 벌이고 있다. 스리랑카와 미얀마에서 온 외국인노동자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다.
세계-내-존재자에 이름 붙이기 이전은 어떤가?
세계를 언어화하기 이전은 어떤가?
聲前一句는 어떤가?
본래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에서 어떻게 해서 ‘나’라는 관념이 산출되고 지속하게 되었는가?
왜 우리는 없지 않고 ‘있는가’?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유투브에서 경주동국대학교 티베트 대장경 역경원 티베트어를 들은 지 일주일 되었다. 계속 공부해야겠다.
<여유 족한 어느 여름 오후>
햇볕이 따가운 여름 오후 숲에서 매미가 운다. 공간 가득 매미 울음바다. 일체가 생생 작용 중. 이 ‘살아있음’의 진실에 경외한다. 뜨락을 거닐며 한발 한발 옮긴다. 사람도 없고 시공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것도 아닌 듯 가득하다. 새소리가 허공을 쫀다. 하늘 푸름이 탱글탱글하다. 신비로운 은혜 가득하다.
2021년8월17일(화)흐림
아침 공양 후 다각실에서 차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 후배들이 수행의 길을 가는 데 참고하라고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었다.
청산리,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1868~1943) 장군 유해 봉환식 중계를 유투브로 보다. 이역만리에서 서거하신 지 78년 만의 귀국이다. 역사학자 이. 에이치. 카는 말했다. “산 자가 죽은 자를 되살리고, 죽은 자가 산 자를 지배한다.” 죽은 자가 산 자를 부르니, 산 자는 죽은 자에게 답해야 한다. 민족을 위하여 목숨 바친 장군의 생명을 어떻게 해야 다시 살려낼 것인가? 이것이 문제이다. 대중을 대신하여 죽은 고양이를 살려내야 한다. 어떻게? 이것이 '南泉斬猫남전참묘'라는 공안이다. 남전선사가 고양이를 베려고 하는 데, 어떻게 해야 고양이를 살릴 수 있는가? 대중은 묵묵부답이니 결국 고양이는 남전스님의 칼에 죽었다. 대중이 죽은 고양이를 땅에 묻었는데, 죽은 고양이가 대중을 머리에 이고 돌아온다. 고양이는 자신을 죽임으로써 대중의 慧命, 지혜의 생명을 살린다. 마치 인간의 죄를 대속한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같은 사건이다. 자아를 죽이고 우주적 대 생명을 살라.
2021년8월18일(수)맑음
새벽 정진 말미에 입승스님이 하안거 해제 죽비를 쳤다. 한 철 정진 성만하셨습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서로 덕담을 건네면서 한 철 동안 깔고 앉았던 방석의 외피를 벗겨 모은다. 지전스님들은 방석 피를 한 데 거두어, 씻고 풀을 먹여 말릴 것이다. 아침 공양하고 유나 宗性스님과 강주 大覺스님 모시고 천은사로 바람 쐬러 가다. 호수가에 지어진 深源庵심원암(암주 丹霞스님)에 들러 차 한잔하다. 천은사 뒷길로 올라가 극락암을 둘러보니 암주는 외출 중이다. 제일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견성암(암주 宗古스님)을 찾다. 암주스님이 차를 주시면서 수행시절 이야기를 해주신다. 견성암은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암자 터로서 안대가 편안하고 오래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을 자리라, 천은사 주변 암자 가운데서 제일 좋은 것 같다.
*종고스님께 들은 이야기: 20대 젊은 수행자 시절에 도가 높은 늙은 보살이 경주에 산다고 해서 혜수스님과 함께 찾아갔다. 재가 보살이 도가 높으면 얼마 높길래 스님들을 우습게 보는가? 따지고 싶어 찾아갔다. 혜수스님이 이끄는 대로 꼬불꼬불 동네 마을 길을 따라가 그 보살 할미 댁에 도착했는데, 할미는 그 당시 95세의 나이로 돋보기를 쓰지 않고 바느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단아한 체구에 눈빛이 형형해 보였다. 종고스님이 묻기를 “스님들 가운데 성철스님이 최고인데, 할머니 보기엔 어떻소?” 하니 대뜸 “성철 아이는 문자법사야.” 하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재차 묻기를 “경봉스님은 어떻소?” “그 아이는 마음자리를 좀 알지.” 이러는 게 아닌가? 이 노 보살이 천하의 선지식을 어린애 취급을 하며 손안에서 가지고 노는 태도이다. 뭐라고 한마디 쏘아부쳐 기를 꺾어 놓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지만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가 그 보살을 감싸고 있었다. 혜수스님이 보살에게 따지듯 묻기를 “보살, 당신은 누구요?” 찰나의 머뭇거림도 없이 “바느질하는 늙은 여자요!” 그 말에 두 스님이 모두 망연해져서 인사드리고 물러났다. 돌아오는 길에 혜수스님이 말하길 “내가 저 보살을 볼 때마다 어찌해 보려했지만 한 번도 틈을 보이지 않는다.” 종고스님은 다시 보살을 찾아보고 싶었지만, 도반이었던 혜수스님이 돌연 입적한 까닭에 가는 길을 몰라 다시는 그 보살을 만날 수 없었다.
2021년8월19일(목)맑음
아침 예불 장소가 금당에서 팔상전으로 바뀌었다. 팔상전에서 예불 드리고 금당으로 올라가 정진하다. 아침 공양 후 본사 주지스님 방에서 차담 시간을 갖다. 유나스님과 입승스님, 서기스님이 참석하다. 주지스님은 커피를 내려주시면서 어릴 때 고산스님을 모시고 살았던 이야기, 30살이 되던 때까지 목침 위에서 고산스님의 회초리를 맞았던 일을 회상하신다. 이어서 부천 석왕사에서 포교 시작했던 이야기를 할 때 열정이 묻어난다. 고산스님은 입적하셨지만 살아생전에 하셨던 것처럼 해제하는 대중에게 보시금을 하사하신다. 내 방으로 돌아와 이불과 방석, 배게 피를 빨아서 말리다.
예도tv에서 열반에 대한 법문을 듣고 감동하다. 로전문화원장 능혜스님이 점심공양을 청해서 유나스님과 함께 공양 받다.
<快雨遊戲 쾌우유희>
오후 5시경 소나기가 쏟아진다. 장쾌한 비, 快雨쾌우가 나를 보라! 는 듯 내리친다. 영주당 섬돌에서 내려와 팔상전으로 올라가, 전각의 사방을 돌며 비 님의 유희를 감상한다. 멀리 백운산 머리에 내려앉은 하늘은 연무에 쌓여있고 그 위로는 검은 구름이 엉어리져 엉기었다. 앞산 덕봉엔 안개가 피어올라 팔백 살 먹은 노인이 허연 수염을 쓰다듬어 올리듯 하얗게 위로 솟구친다. 팔상전 처마 끝에는 어느새 옥 주렴 같은 빗줄기가 걸린 것이 황제가 쓴 면류관이 눈앞에 흔들리는 듯. 하늘 가운데 천둥이 울어 번개가 번쩍 번쩍! 너희가 無常의 도리를 아느냐며 귀를 때린다. 우르릉 쾅쾅! 하늘 주전자에서 빗물이 수풀 위로 쏴쏴 쏟아지니 초목들이 팔을 뻗어 뛰어오른다. 나뭇가지는 휘청휘청 둥치는 흔들흔들 뿌리는 들썩들썩. 덩달아 작은 새, 큰 새, 날개 펼 사이 없이 화들짝 놀라 엎어질 듯 날아간다. 빗방울이 마당에 깔린 자갈 위로 떨어져 장렬하게 부서지며 玉碎옥쇄한다. 빗방울 파편이 좌르르 흩어지니 밥솥에서 난 김인 듯 소르르 사라진다. 천지 사방이 비-소리로 가득하니, 여름날 소낙비 오케스트라가 이것인가? 처마 끝에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 섬돌을 굴러떨어지는 소리, 마당에 뒹구는 소리, 봉숭아 잎에 떨어지는 소리, 소나무에 걸리는 소리, 지붕 기와에 부딪는 소리, 파초잎에 미끌어지는 소리, 뭇소리가 어울려 대자연 교향곡이 연주된다. 雨煙우연, 비안개에 싸인 풍경은 심해를 노닐다가 방금 수면으로 몸을 솟구쳐 올라온 혹등고래다. 허연 숨을 푹푹 솟구쳐 올리며 거대한 몸을 굼실굼실 유유히 헤엄쳐 눈앞에 나타났다, 홀연 시야에서 사라진다. 한여름 저문 날에 벌어진 쾌연했던 소나기의 향연도 颯然삽연(바람처럼)이 끝난다. 거짓말같이 시작되었다가 거짓말처럼 끝난다. 자연현상도 그러하듯 인생도 그러하리라. 빗물에 젖어 번들거리는 파초 앞에 쪼그리고 앉아 비-명상에 젖었다가 활연히 깨어난다. 모든 것은 오직 한 번뿐, 두 번 다시는 없다. 一時에 一切일체로 一切일체를 산다. 비는 끝났다. 천지는 적막에 휩싸인다. 그것으로 그만이다. 밖으로 뻗어가는 마음-손을 모으고 입을 닫으면 침묵의 빈터가 열린다. 빈터엔 텅-빔의 향기로 가득하고, 거기 누구도 엿볼 수 없는 존재의 빛이 고요히 빛난다.
첫댓글 성철스님 >> 떠오르는 이미지 !
용맹정진 ..삼천배..아비라기도 능엄신주..
화두.. 몽중일여 ?
백련암 호랑이가 사는곳 .. .. 누더기 .솔잎.책...
성철스님 방편은 그분의 인연 방편일뿐..!!
스ㅡ피드 융합 시대에 맞는 인연 방편은 >> ?
어떻게 스마트하게 깨침의 세계를 펼칠 것인가?
전통과 속도 스마트함을 어떻게 << 융합 >> 할것인가?
마음의 호숫가에 머물며 돌 하나 던져봅니다 ..^^
마 하 반 야 바 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