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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슐라이어마허는, 국가 종교인 기독교를 말살해야만 한다는 부정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종교를 멸시하는 교양인들"을, 국가 종교를 유일하고 참된 종교라고 신봉하던 기독교인들 특히 종교를 국가의 법이나 교리화하여 강요하던(부패, 비리, 교만으로 타락한) 교계의 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이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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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라이어마허 (Friedrich Daniel Ernst Schleiermacher)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이며 철학자이다.
출생: 1768년 11월 21일, 폴란드 브로츠와프
사망: 1834년 2월 12일, 독일 베를린
학력: 할레 비텐베르크 마르틴 루터 대학교
▶ 임마누엘 칸트, 플라톤,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 등에게 영향을 받았고,
빌헬름 딜타이,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루돌프 불트만, 폴 틸리히 등에게 영향을 끼쳤다.
1. 슐라이어마허는 <인간을 “주체”로 생각>한 <최초의 신학자>이다. 여기서 주체 (subjectum)은 모든 것을 지탱하는 근원을 뜻한다.
2. '주체'로서의 인간은 모든 삶과 사유의 중심이면서, 모든 것은 바로 그 자신에 의해 이끌어져야 한다. 따라서 주체로서 인간에게 종교란 외부의 어떤 힘에 굴복하거나 순복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3. 이 점에서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는 교리를 중요시하는 정통주의와 결별한다. 이로써 그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가 된다.
4. 슐라이어마허는 당시의 철학적 사상을 수용한다. 스피노자의 범신론적 사유를 요약하는 '자연과 함께 하는 하나님' (deus sive natura, 데우스 시베 나투라)를 그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5. 따라서 그는 ‘신’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우주’에 대해 말한다. 또한 그는 ‘세계정신’, ‘인간성’, ‘역사발전’과 같은 당시의 정신사의 보편 기반을 확보하고 있던 개념들을 수용한다.
6. 슐라이어마허는 단지 시대의 아들만은 아니었다. 그는 당시의 개념들과 정신사 작업들을 수용하면서도 그들이 무엇을 오해하고 있는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이로써 슐라이어마허에게서 시작되는 근대신학은, 근대정신을 수용, 비판하는 신학이다.
■[종교론]
슐라이어마허는 종교는 바로 절대자에 대한 절대 의존적 감정으로 표현했다.
1. 종교론에서의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은 계몽주의 신학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계시가 아니라 인간성 (Menschheit)에 기반을 두고 있다.
2. 그의 종교론에 의하면, 종교란 우주에 대한 직관과 감정이다. 여기서 우주는 '부단한 힘과 작용 속의 우주'를 일컫는 말로, 한계도 없고 멈추지도 않는 절대적인 힘위 흐름이며, 인간은 우주의 힘과 작용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3. 이러한 종교에서, 자유의지는 당연히 무의미하며 도덕이나 형이상학과 같이 인간의 감각과 이성, 자유의지를 전제로 하는 것과도 무관하다.
4. 슐라이어마허는 그리스도를 하나님(神)이 아니라, 신의식 (Gottesbewußtsein)을 가진 완전한 인간으로 규정하고, 그리스도가 신의식의 능력으로 중보자 (Mittler)가 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5. 또한 그는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을 불완전한 '인간성 (Menschheit)'을 일깨우는 사역이라고 규정함으로서,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속죄를 제외시켰다.
6. 이러한 슐라이어마허의 기독론은 '역사적 예수 연구'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이면서, 그리스도에 대한 판단의 기준을 인간의 '이성'에서 '인간성'으로 옮겨놓은 특징을 잘 보여준다.
7. 그는 종교론에서 성경이 특별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종교에 대한 단순한 기록이면서, 인간성의 산물이고, 시대를 반영한 단순한 기록에 불과한 것이라고 정리한다.
8. 따라서 종교를 인간의 종교 체험과 감정으로 생각하였으며, 기독교의 전통 교리와 신앙고백 (Creeds)를 절대시하지 않았다.
9. 신학보다 인간의 종교 체험과 감정을 더 우선시한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은 근대 자유주의 신학의 주요 특징중 하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