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교와 기독교 차원의 문제
그 다음, 마지막으로 세 번째, 유태교와 기독교 차원의 문제: 유태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솔로몬에서처럼 지배계급의 종교였고, 기독교는 예수, 마리아, 베드로, 사도 바울에서처럼 피지배계급의 종교였다. 유태교는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부유한 자, 힘 있는 자, 지배하는 자의 미덕을 옹호하고, 기독교는 그것에 반발하여 가난한 자, 힘 없는 자, 지배당하는 자의 미덕을 옹호한다. 예수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부유한 자, 힘 있는 자, 지배하는 자는 사악하고 천당에 못가고, 가난한 자, 힘 없는 자, 지배당하는 자는 한없이 착하고 천당에 가게 된다. 이 유태교와 기독교, 지배계급의 인사들과 피지배계급의 인사들의 싸움은 ‘부자가 천당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도 더 어렵다’는 말과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는 말에서 그 무엇보다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예수의 죽음은 그를 밀고한 사람들이 유태교의 대 제사장과 장로들이었듯이, 유태교와 기독교의 싸움에서, 그 지배계급의 가치관을 모조리 부인한 신성모독자로서의 그것이지, 속죄양으로서의 그것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유태인들은 예수의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기독교의 교리 자체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탄생을 메시아의 탄생으로 받아들이며, 그 출생의 근거를 구약에서 찾아낸다. 즉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받은 유태민족의 타락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예수에 의한 대리통치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유태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이, 졸지에, 박탈되고,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친정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이 싸움은 유태교도와 기독교도들의 싸움이며,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들 간의 권력 투쟁의 싸움이다. 이러한 권력 투쟁에서 패배를 한 것은 예수이며, 그의 죄목은 신성모독과 대중선동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권력 투쟁에서의 패배를 못보게 하고, 그의 죽음을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하고 죽어갔다는 대사기극이야 말로 기독교적 본능의 걸작품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의 기독교 창시의 역사성은 후세의 기독교인들이 자기들의 종교적 신념과 그 이념에 따라서 제 멋대로 조작해낸 하찮은 픽션에 불과하다.
----반경환, [하강의 깊이]({행복의 깊이 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