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소설)
첫사랑 값, 미완성
주요섭 지음|정정호 책임편집|주요섭 소설 전집 4|153×224×15mm|440쪽
38,000원|ISBN 979-11-308-2077-4 04810|2023.7.25
■ 도서 소개
시대의 풍정과 전망을 리얼하게 그려낸 큰 작가 주요섭의 중단편소설
주요섭의 소설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주요섭 소설 전집』(정정호 책임편집)을 푸른사상에서 간행했다. 한국 문학사에서 세계시민으로서의 시대적 풍정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준 주요섭 소설의 진면목을 이 전집에서 만날 수 있다. 제4권에는 「첫사랑 값」 「미완성」를 비롯해 1925년부터 타계 후 1987년까지 발표된 중편소설 4편을 수록했다.
■ 작가 소개
주요섭 (朱耀燮, 1902~1972)
소설가. 호는 여심(餘心). 평양 출신. 시인 주요한(朱耀翰)의 아우이다. 평양에서 성장하였다. 평양의 숭덕소학교, 중국 쑤저우 안세이중학, 상하이 후장대학 부속중학교를 거쳐 후장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하였다. 미국으로 유학하여 스탠퍼드대학원에서 교육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중국의 베이징 푸렌대학, 경희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국제PEN 한국본부 회장을 역임했다. 1921년 단편소설 「이미 떠난 어린 벗」 「치운 밤」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인력거꾼」 「사랑손님과 어머니」 등 39편의 단편소설, 「첫사랑 값」 「미완성」 등 4편의 중편소설, 『구름을 잡으려고』와 『길』(1953) 등 4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영문 중편소설 「김유신(Kim Yu-Shin)」(1947), 영문 장편소설 『흰 수탉의 숲(The Forest of the White Cock)』(1962)도 남겼다.
■ 엮은이 소개
정정호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및 같은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석·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미국 위스콘신(밀워키)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영어영문학 회장, 한국비평이론학회장, 국제비교문학회(ICLA)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대표 저서로 『영미문학비평론』 『비교세계문학론』 『문학의 타작』 등이 있으며, 역서로 『현대문학이론』 『사랑의 철학 : P. B. 셸리의 시와 시론』 등이 있다. 현재 문학비평가, 국제PEN 한국본부 번역원장,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 목차
▪책머리에
첫사랑 값
쎌스 껄
미완성
떠름한 로맨스
▪작품 해설
▪주요섭 연보
▪작품 연보
■ '책머리에' 중에서
2022년은 소설가 여심(餘心) 주요섭(朱耀燮, 1902~1972) 탄생 120주기이고 서거 50주기였다.
주요섭은 1920년 1월 3일 『매일신보』에 처녀작 단편소설 「이미 떠난 어린 벗」 발표를 시작으로 1972년 타계할 때까지 50여 년간 단편소설 39여 편, 중편소설 6편, 그리고 장편소설 6편을 써냈다. 주요섭은 1934년부터 9년간 베이징의 푸런(輔仁)대학에서 영문학 교수, 1953년부터 1967년까지 14년간 경희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한 것 외에도 수많은 사회활동을 하였기에 전업작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가 발표한 작품 수를 볼 때 결코 적게 쓴 과작(寡作)의 작가는 아니었다. (중략)
주요섭은 흔히 말하는 ‘위대한’ 작가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필수적인’ 작가이다. 적어도 1910년 한일 강제 병합 이후 해방공간과 6·25 전쟁을 겪은 그의 소설들은 한반도의 경제·문화·정치의 양상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 영국 작가 조지 오웰, 중국 작가 루쉰, 러시아의 톨스토이도 각 국가의 ‘필수적인 작가’들이다. 주요섭은 평양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고 중국 상하이에서 7년, 베이징에서 9년, 미국에서 최소 2년 반, 일본에서 수년간, 그 후 주로 서울에서 살았다. 20세기 초중반 기준으로 볼 때 소설가 주요섭은 한국 문학사 최초의 세계시민이었으며, 전 지구적 안목을 가지고 국제적 주제를 다룬 한국 문학에서 보기 드문 작가였다.
그동안 주요섭 소설들은 단편소설 위주로 소개되고 논의되었다. 지금까지 출간된 십수 종의 작품집들을 보면 주로 「인력거꾼」, 「사랑손님과 어머니」 등의 단편소설 위주로 중복 출판을 이어왔다. 중편소설 「미완성」과 「첫사랑 값」, 장편소설 『구름을 찾으려고』와 『길』은 출판되었다. 그러나 상당수의 단편들과 중편, 장편들은 거의 출판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주요섭의 소설 문학에 대한 전체적인 논의와 조망은 불가능하다. 편자는 수년 전 이러한 주요섭 소설 문학에 편향된 시각과 몰이해를 일부나마 교정하기 위해 주요섭 장편소설 4편을 모두 신문과 문예지에 연재되었던 원문과 일일이 대조하여 출간한 바 있다.
이번에는 단편소설 39편 전부와 중편소설 4편 전부를 가능한 한 원문 대조 과정을 거쳐 출판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명실공히 주요섭 소설 세계의 전모가 드러날 수 있게 된다. 뒤늦었지만 이제 일반 독자들은 물론 연구자들도 주요섭 문학에 대한 새로운 그리고 총체적인 접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추천의 글
주요섭은 진폭이 큰 작가이다. 이 ‘큰 작가’를 대표작의 울타리에서 풀어주어야 한다. 이는 문학을 다루는 이들의 책무이다. 주요섭은 「사랑손님과 어머니」라는 대표작의 울타리에 갇혀 있다. 「인력거꾼」 「살인」 등 단편도 대표작의 또 다른 울타리이다. 작가를 대표작의 울타리에서 풀어주기 위해서는 ‘전집’을 기획해야 한다. 전집은 어느 작가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의욕과 문학적 사명을 반영한다. 현실여건을 넘어서는 출판의 사명감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번에 내는 중단편소설들은 작가 주요섭을 전체적으로 다루는 계기가 될 것이다.
‘큰 작가’는 한두 마디로 규정되기를 스스로 거부한다. 주요섭은 지극한 섬세성과 광대한 전망을 동시에 포괄하는 작가 정신을 실천한 작가이다. 전체성에 대한 욕구 그 자체가 소설의 본령이다. 주요섭은 단편을 통해 인간 심성을 섬세하게 드러냈고, 『첫사랑 값』 『셀스 껄』 『미완성』 『떠름한 로맨스』 등 중편소설을 통해서는 시대의 풍정과 전망을 리얼하게 그려냈다. 이 전집이 주요섭 이해와 연구의 바탕이 될 것은 물론, 작가의 소설사적 위상을 드높이는 도약대가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우한용(소설가, 서울대 명예교수)
■ 작품 세계
주요섭은 전 생애를 통해 6편의 중편소설을 발표했다. 소설가가 중편소설을 택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단편소설에서 작가는 짧은 지면에서 단일한 효과로 극대화하고자 한다. 주요섭은 50년간의 작가 생활 중에 39편의 단편소설을 창작했다. 반면에 장편소설에서 작가는 충분한 지면을 통해 중심 플롯뿐 아니라 몇 개의 부수적인 플롯을 전개하면서 이야기를 다양하고 역동적으로 이끌고자 한다. 주요섭은 모두 4편의 장편소설을 써냈다(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학무국의 검열로 연재 중단된 1편과 베이징 푸런대학 교수 시절 영문으로 써놓았으나 압수당해서 분실된 영문 장편소설 1편은 논외로 한다). 장편소설은 시간의 길이와 등장인물의 수 등에서 단편소설과는 확연히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다. 중편소설의 위상은 당연히 그 중간 위치에 서게 된다. (중략)
주요섭의 중편소설을 시기별로 점검해보자. 그의 첫 중편소설은 1925년 발표한 「첫사랑 값」(1부)이다. 이것을 쓰고 일시 중단했다가 1927년에 「첫사랑 값」(2부)을 계속 썼다. 그러나 결국 이 중편소설은 미완의 상태로 남았다. 아니면 작가가 의도적으로 결말을 열어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두 번째 중편소설은 1933년 『신가정』 5월호부터 11월호까지 연재된 「쎌스 껄」이다. 주요섭은 『신동아』의 주간 시절부터 여덟 개나 되는 가명과 필명을 사용하였다(『신동아』 같은 호에서 글을 두 편 이상 쓸 필요가 생길 때 같은 이름을 사용할 수 없으니 자연스레 다른 이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쎌스 껄」은 ‘호외생(號外生)’이란 필명으로 발표되었다. 이 중편소설은 그동안 『신가정』 속에 85년 이상 잠자고 있었으나 이번 『주요섭 소설 전집』에서 처음으로 선보이게 되었다. 주요섭의 세 번째 중편소설은 1936년 9월부터 시작하여 1937년 6월 말까지 연재한 「미완성」이다. 이 중편소설이 가장 소설미학적으로 완성된 대표작이다. 주요섭의 네 번째 중편소설 「떠름한 로맨스」는 그의 사후 15년이나 지난 후에 발표되어 1987년 『현대문학』 4월호에 처음 소개되었다. 그 후 어떤 단행본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으나 이번 중단편전집을 통해 오늘날 일반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하게 되었다.
주요섭의 4편의 중편소설의 주제는 특이하게도 모두 ‘사랑’이다. 그의 사랑 이야기는 단편소설로 다루면 너무 짧고 장편소설로 쓰면 길어서 지루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설가 주요섭은 적당한 시공간을 사용하여 그만의 네 가지 서로 다른 사랑 이야기의 소설적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독자들이 주요섭의 중편소설에서 단편이나 장편에서 얻을 수 없는 어떤 느낌과 향기를 얻기를 바란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주요섭의 중편소설 4편도 그의 39편의 단편소설과 4편의 장편소설과의 관계 속에서 맥락과 의미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요섭의 중편소설도 그의 단편소설들과 장편소설들처럼 사랑이란 대주제와 리얼리즘의 서사 기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 출판사 리뷰
한국 문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소설가 주요섭(1902~1972)의 작품을 묶어 정정호 교수가 『주요섭 소설 전집』으로 엮었다. 1920년 『대한매일신문』에 실린 단편소설 「이미 떠난 어린 벗」부터 주요섭이 타계한 뒤 1973년에 발표된 단편소설 「여수」까지의 단편소설 39편이 1~3권에 수록되었고, 중편소설 4편은 4권에 실렸다. 한국전쟁과 해방공간 등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쳐오며 시대적 풍정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준 주요섭 소설 세계의 진면목을 이 전집을 통해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주요섭 작가는 소설뿐 아니라 산문과 시 창작, 영문학 교수, 번역가, 언론인 등 다방면으로 재능을 보였다. 평양에서 태어나 중국, 미국, 일본, 서울 등지에서 활동했던 그는 20세기 초중반 기준에서 한국 문학사 최초의 세계시민이자 전 지구적 안목을 가지고 국제적 주제를 다루어 한국 문단에서는 보기 드문 작가였다. 「인력거꾼」, 「사랑손님과 어머니 외」 등의 단편소설은 잘 알려 있지만, 우리 학계와 문단에서 소설가로서 충분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전집에서는 단편소설 39편 전부와 중편소설 4편 전부를 가능한 한 원문 대조 과정을 거쳐 내놓는다.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과 서사를 갖춘 주요섭 작가를 이 전집에서 조명함으로써 주요섭에 대한 논의가 한층 폭넓게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제4권 『첫사랑 값, 미완성 외』에는 1925년부터 주요섭 작가가 타계한 후 1987년까지 발표된 중편소설 4편이 실렸다. 일제강점기에 이룰 수 없는 중국 소녀와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첫사랑 값」, 잘못된 결혼을 끝내고 새 삶을 시작하는 한 직업여성의 이야기인 「쎌스 껄」, 필생의 명작을 끝내지 못한 한 가난한 화가의 사랑과 죽음을 그린 「미완성」, 동아시아의 대격변의 시대를 넘어 어색하게 이루어진 늦사랑을 담은 「떠름한 로맨스」이다. ‘사랑’이라는 중심 주제가 4편의 중편소설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로 변주되고 있다.
■ 작품 속으로
나는 단념하여야 한다. 나는 민족을 위해서는 독신생활지라도 하기를 사양치 안튼 내가 안인가? 그런데 지금 이 은 무엇인가. 죠고만 게집애 하나에게 밋쳐서 공부도 학실히 못하는 이 은 무엇인가? 나는 대쟝부가 되여야 한다.
더욱이 N은 외국 녀자가 안인가? 련애에는 국경이 업다고 물론 그럴 것이다. 그러나 현금의 죠선 쳥년은 비상한 시기에 쳐하야 잇다. 비상한 시기에 쳐한 쳥년은 비상한 일을 하지 안으면 안이 된다. 목숨도 희생할 가 잇거든 하물며 사랑! 아! 그러나 가슴은 압흐다. 이것은 내 목숨갓치 귀한 내 첫사랑이 안인가! 그러나 용감하여라. 대장부답게 단념해버려라. 아직 넘우 늣지 안타. 이 모양으로 지나가다가 넘우 느져지면 그 는 후회하여도 쓸데가 업는 것이다. 지금이 단념할 일다. (「첫사랑 값」, 43쪽)
소나무와 구름 핀 하늘과 쑥밭과 딱딱거리며 날아다니는 메뚜기 ― 이런 모든 것이 새로운 아름다움, 새로운 뜻을 가지고 영순이의 마음을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주는 것이었다.
도랑도랑 흘러내리는 작은 시내가 얼마나 더 아름답게 보이고, 얼마나 더 신비스럽게 보이는가! 그녀는 그 시내 옆에 앉았다. 도랑도랑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금시 사람의 목소리로 변했다.
“아, 아름다움 인생이 어찌하여 아름다움을 못 찾고 헤매고 있읍니까? 그건 눈을 뜨고도 장님이 되었기 때문이요, 귀를 가지고도 귀머거리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산속 도랑물이 어쩌면 그이처럼 이런 말을 하면서 흘러내릴까?
“참된 화가는 참된 시인(詩人)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고 시내는 또 말하는 것이었다. 영순이는 시냇물을 말끄러미 들여다봤다. 이 물 흐르는 소리가 어쩌면 그이 목소리와 꼭 같고 또 그이가 하던 말을 신통히도 그대로 옮기고 있을까?
(「미완성」, 2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