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박홍재 시인
경북 포항시 기계에서 태어나다
2008년 《나래시조》신인상 등단
나래시조시인협회원, 산림문학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오늘의시조시인회원
한국문인협회원, 부산문인협회원.
부산시조시인협회 부회장
부산시조문학회(볍씨) 회장 역임
<예감> 동인 활동
부산시조작품상 수상
시조집 『말랑한 고집』
『바람의 여백』(2022년 세종우수도서 선정)
『핑계에도 거리가 있다』
국내 명소 기행 포토 에세이 『길과 풍경』 발간
KBS 1 우리말 겨루기 2회 출연 및
KBS 2 영상 앨범 산 '아프리카의 성산 킬리만자로 편' 출연
e mail taeyaa-park@hanmail.net
시인의 말
서두르지 않으면서 천천히 걸으리라
뜻 세워 가는 길에 여유롭게 살펴 가며
빈손에 무거운 짐도 필요하면 짊어지리
2025년 여름
박홍재
핑계에도 거리가 있다
할머님 밭농사는
육신 갉아 먹는 좀비
날마다 허리 아파 앉으면서 아야! 아야!
일하지 마시라 해도 눈만 뜨면 밭에 간다
평생 하던 일 관두면
뭐 하고 살아가노
동무와 화투도 치고 쇠고기도 사 묵야지
손주들 연필 한자리 사줄 돈도 벌어야제
할매 일손 못 막는다
핑계에도 거리가 있다
손주들 모여 앉아 머리를 맞대봐도
뾰쪽한 대책이 없네, 할머니 곁 안 지키면
오늘도 아픈 허리
복대를 두르고서
호미를 지팡인 양 밭머리 들어서면
어디서 나온 힘인지 아들 손주 따돌린다
첫 물 뜨다
밤하늘 별빛 달빛 이슬방울 품어 안은
동네 우물 첫 손님은 흰 수건 엄마였다
드므에 첫물을 붓던
시원하던 그소리
어둠을 걷어 내고 새벽을 열던 그곳
이고오며 찰방찰방 그려 놓은 담장 아래
어머니 발걸음 자국
물맛 보러 고향 간다
볼트와 너트
잘못된 것 한두 번씩 뒤집어 기름 치듯
붙박이로 한 곳에만 눌러앉아 있다 보면
무료한 자신의 몸짓 잊고 살기 마련이다
헐거운 너와 내가 스패너에 몸을 맡겨
맞물려 잇닿은 길 것 디디어 닿는 거기
흔들려 다시 조인 하루 앙다물기 마련이다
울진 대왕송
결기를 곧추세운 붉은 빛 소나무들
소광리 길목 길목 천년 사지 받들었다
기꺼이 나라를 위해 차렷 자세 바르다
외통수 잘못 생각 저지른 행동 앞에
가지가 잘려 나가 한쪽이 기운 상처
용틀임 싹틔울 꿈을 다짐하는 저 기상
우주를 받들려는 저 몸짓 활갯짓에
용기와 박수 소리 메아리로 울리면서
능선에 하늘빛 모아 우뚝하게 서 있다
한번은 움츠려도 이제는 꿋꿋하리
사연을 되짚으면 새움이 돋을 테지
쭉 뻗은 대왕 금강송 가당찮게 자라리
반곡지 데칼코마니
아침 이슬 받아먹고 부푸는 버드나무
물풀을 헹궈 놓고 산빛까지 끌어당겨
잎들이 여무는 동안 능청능청 그물 짠다
점 찍은 복사꽃잎 구름이 목말 타고
연초록 버들가지 끌어당겨 껴안으니
못물에 치맛자락만 차렵 들게 펼친다
이제는 고향 기계 쪽으로 돌아누우리라
-박홍재 제3시조집에 부침
이승하(시인, 중앙대 교수)
박홍재 시인은 경북 영일군 기계면에서 태어난 촌놈이다. 영일군이 1995년 1월 1일부로 포항시에 포함되면서 고향의 지명이 포항시 북부 기계면이 되었지만 촌놈이라는 딱지는 떨어지지 않았다. 해설자가 처음부터 시인이 촌놈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나 역시 경북 의성군 안계면에서
태어난 촌놈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내가 너덧 살 때 김천으로 이사를 가 정착함으로써 내 본적지가 김천시 성내동 201-1번지가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촌놈이라는 딱지를 떼어버리지 못한 것과 비슷하다. 신경림 시인이 일찍이 「파장」이란 시에서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
다"고 하지 않았던가. 박홍재 제3시조집의 해설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말씀드리기 송구하지만, 기계초등학교, 기계중학교, 대구공고를 나온 것이 일단 마음에 들었고,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와 중어중문학과를 나온 것이 더욱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해설자는 고등학교 때 퇴학 당해 대입검정고시를 쳐 간신히 대학에 들어갔기에 '못난 놈'을 보면 동류의식을 느낀다. 그렇다, 박 시인이 촌님이어서 촌놈인 내가 해설을 쓰지 않으면 누가 쓰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일단 제일 앞머리에 있는 시조부터 보도록 하자.
냉혹한 가슴 푸는
한풀이 들러리로
채움이 다 닳도록
내뱉는 순간까지
스스로 상처 보듬어
속내를 꺼낸다
_「빈 병」 전문
이 시조에서 가장 중요한 낱말은 '스스로'라는 부사다. 세파에 시달리거나 풍랑에 휩쓸려 목숨이 경각에 다다랐을 때 자신을 구해주는 것은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스스로 상처를 보듬어 속내를 꺼낸다는 것은 시작詩作 행위와도 관련지어 볼 수 있다. 공고를 나왔으니 대학을 공대
로 정해 진학하는 것이 통례일 텐데 박홍재는 자신의 과거지사를 어떻게든 풀어내야 했고, 그 방법이 방통대에 가서 문학을 공부하는 것이었다. 특히 3장 6구에 매료되어 시조를 쓰기로 했다. 2008년에 등단해 7년이 되는 해에 세번째 시조집을 준비하고 있으니 부지런히 시조의 밭을 일궈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살아가면서 보니 나 혼자만 고생한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은 참 각박하지만 그래도 성실과 양심을 미덕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이 이나마 굴러가고 있는 것은 정치가가 정치를 잘해서가 아니라 장삼이사들이 부지런히 자신의 직분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가 받은 상처는 그 아이를 좌절케 할까 이를 악물고 일어나게 할까. 세파는 험하고 때로는 폭풍우도 불어닥친다. 손 시린 배달 소년은 수선공을 보고 인생살이의 방법을 배우기도 한다.
첫댓글 서정화 시인님! 저의 시조집 잘 만져서 꾸며 주셨네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시집 발간을 거듭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