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온라인수업에서 선생님말씀을 듣고 한참이나 늦은 4월 후기를 올려봅니다
언제부터인가 늘 머리가 아팠다.
항상 머리가 띵했고, 머리 전체가 지끈지끈했다.
관자놀이 부분이 쪼일 듯이 욱신욱신거릴 때도 많았다.
머릿속은 복닥복닥, 알 수도 없고 기억되지도 않은 많은 일들과 생각들이 들어왔다가 나가고,
들어온 것 중 일부는 머리에 남아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했다.
눈도 아파서 심할 때는 눈앞이 뿌옇게 보일 때도 있었다.
뿌옇게 보이는 것이 안경 탓인가 생각되어 안경도수를 올리기 시작했고, 수시로 안경을 닦기도 했다.
안개 낀 세상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긴 시간 동안 그렇게 살아서 머리가 아픈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러려니 했다.
요즘은 머리 아픈 것이 많이 좋아져서 예전처럼 아프지는 않다.
그렇지만 머리 아픔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원인을 알게 되면, 앞으로는 맑은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머리 아픈 것을 형태장에 세웠다.
형태장에 선 나의 대역은 머리에서 바로 명치로 손을 갖다 댔다.
그러더니 머리가 숙여지고 허리가 앞으로 꺾여졌다. 머리가 왜 아픈지 바로 알아차려졌다.
선생님께서 위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 하시면서,
위장은 음식을 받아들여서 소장으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고 하셨다.
이를 삶으로 연결한다면, 어떤 상황이나 내용을 잘 받아들이고 녹여서 삶의 자원으로 가져가는 것이라 하셨다.
그러면서 ‘무엇이 그렇게 소화가 안되셨어요? 받아들여지지 않으셨어요?’라고 물으셨다.
나는 삶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 첫번째가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언니와 차별하고, 남동생과 차별한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언니라서, 동생은 남동생이라서 엄마에게 특별한데, 나는 늘 개밥에 도토리 같이 느껴졌다.
언니와 싸워도 언니에게 대든다고 야단치고,
동생과 싸우면 누나가 그렇게 속이 좁아서 어떻게 하냐고 나만 혼냈다.(나만 혼낸다고 느꼈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외롭고 쓸쓸하고 슬펐다.
또 엄마는 내가 하고 싶어하던 것들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치원도 조르고 졸라서, 3일이나 밥 안먹고 이불쓰고 드러누워 있다가,
결국에는 아버지가 보내주라고 하셔서 가게 되었다.
언니는 당연히 간 유치원을 나는 투쟁을 해야 겨우 갈 수 있었다.
이유는 ‘동생들이 줄줄이 있는데, 동생들은 어쩌고 왜 너만 다 하려고 하냐’셨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책 팔러 다니는 아저씨가 동네에 왔다.
너무 책을 갖고 싶었던 나는, 엄마에게 책파는 아저씨에 대해서 이야기도 했는데 제대로 듣지 않으시는 듯했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을 알아차린 아저씨가 몇 달 동안 공들여 우리집을 찾아왔고,
엄마는 마지못해 사주셨다, ‘동생들이 많으니까 동생들도 볼 수 있겠다.’고 하시면서.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엄마는 사람의 마음도 모르고, 돈돈 거리는 무식한 엄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별나고 까다로운 아버지의 입맛도 제대로 맞추지 못해서 아버지를 늘 화나게 만들고,
화난 아버지 때문에 집안이 살얼음판이 되게 하고,
그래서 우리 모두가 불안해 하는 것도 다 엄마가 현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엄마를 판단평가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사랑을 더이상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엄마를 못 본 척하기 시작했다.
못 본 척하니 안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안볼 수가 없었다. 보지 않아도 다 들렸기 때문이다.
안보고 싶은데 다 들리니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
엄마가 힘들게 사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안쓰러우면서도,
엄마가 자초한 일이니 어쩔 수 없다 싶다가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무기력해졌다.
형태장에서 엄마는 너무 위태위태하게 중심도 잡지 못하고 나에게 오시는데,
나는 눈감은 채 손을 귀에 갖다대고 있었다.
그렇게 엄마는 나를 사랑하셨는데,
엄마가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하셨는데, 나는 사랑이 없다고 눈 감고 있었다.
엄마가 고생고생하며 힘들게 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 눈감았다.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서 귀를 열어둔 채 엄마의 운명을 판단평가하며 도망가서 숨어 있었다.
선생님께서 ‘눈뜬 자녀는 부모의 삶을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한다고,
눈뜬 자녀는 그래서 잘 산다고’ 하시면서 박이호선생님을 예로 들어주셨다.
이제까지 눈감고 살았던 자녀에서 벗어나 지금부터라도 눈뜬 자녀로 살아보고 싶다.
“어머니, 당신은 크시고 저는 작습니다.
어머니가 살아오신 긴 세월 동안
저에게 주신 모든 축복, 고맙고 감사합니다.
제가 행복하게 사는 것은
모두 어머니의 축복과 사랑 덕분입니다.
제가 행복하게 잘 사는 것으로
어머니 당신 사랑에 보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