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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뭐라꼬예?] 완전봉헌법을 어긴 사울의 변명
또다시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한 사울왕
지금의 이집트 동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치려고 하는 아말렉족의 군사들을 목전에 둔 사울은 사제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말았는데, 그 일은 하느님을 거스르는 일이었습니다. 일찍이 하느님께서 사제 아론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말이지요.
“속인은 너희에게 가까이 와서는 안 된다. 너희는 성소를 위한 임무와 제단을 위한 임무를 수행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격분이 내리지 않게 하여라. 이제 나는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너희 형제 레위인들을 가려낸다. 그들은 만남의 천막 일을 하도록 너희에게 내린 선물이며, 주님에게 바쳐진 이들이다. 너와 네 아들들은 제단과 휘장 안의 모든 일과 관련하여 사제직을 수행하고, 그곳에서 일을 해야 한다. 나는 너희의 사제직을 선물로 준다. 가까이 오는 속인은 죽게 될 것이다.”(민수 18,4-7)
사울은 대사제 사무엘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직접 하느님께 번제물을 바침으로써 속인으로서 하느님의 성소를 더럽히는 잘못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사울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내치시고 당신 마음에 드는 다른 영도자를 찾으셨다는 악담 섞인 예언(?)을 사무엘로부터 듣게 된 것이지요.
임금이 된 지 오래지 않아 하느님의 눈 밖에 난 사울이지만 하느님의 도우심까지 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사방에 있는 모든 원수들, 곧 모압과 암몬의 자손들과 에돔과 초바의 임금들과 필리스티아인들,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수많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는 아말렉과 싸우면서 또 하느님을 거역하는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그 잘못은 사무엘이 전해준 다음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직접적인 거역이었습니다.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한 짓, 곧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올라오는 길을 막았던 그 일 때문에 나는 그들을 벌하겠다. 그러니 너는 이제 가서 사정없이 아말렉을 치고, 그들에게 딸린 것을 완전히 없애 버려라. 남자와 여자, 아이와 젖먹이, 소 떼와 양 떼, 낙타와 나귀를 다 죽여야 한다.”(1사무 15,2-3)
완전봉헌법(完全奉獻法)
사울이 한 행동은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었습니다. 즉 히브리말로 소위 ‘하렘’이라고 하는 ‘완전봉헌법’의 위반이었습니다. (참고로 이슬람 무슬림에게 금지된 음식은 ‘하람’, 허용된 음식은 ‘할랄’이라고 합니다.) 완전봉헌법이란 일찍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헤스본 임금 시혼을 쳐부술 때 한 말에서 그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에 우리(모세를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는 시혼의 모든 성읍을 점령하고, 남자,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성읍 주민들을 모조리 전멸시켜, 생존자를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신명 2,34) 여기서 ‘전멸시키다’라는 동사는 히브리 동사 ‘하람’의 사역형으로 ‘완전 봉헌물로 바치다’는 뜻을 지니는데, 이 ‘하람’이란 단어에서 ‘완전봉헌물을 바침’을 뜻하는 명사형 ‘하렘’이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하렘은 전쟁 중에 생겨날 수 있는 포로나 노획물을 이스라엘 군대의 수장이신 하느님께서 차지하시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신명기 13장에서는 완전봉헌법을 하느님의 명령으로 분명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그 완전 봉헌물 가운데에서 아무것도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주님께서 당신의 진노를 푸시고 너희를 가엾이 여기시며, 너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희를 가여워하시며 너희를 번성하게 해 주실 것이다.”(18절)
임금님은 변명을 그만두십시오!사울과 군사들은 완전봉헌법에 관한 하느님의 말씀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말렉 임금 ‘아각’을 제외한 나머지 군사들은 완전히 없애버렸지만, 양과 소와 같은 기름진 짐승 가운데에서 새끼 양들을 비롯한 다른 좋은 것들은 남겨두었던 것이지요. 즉 그들은 그 좋은 것들을 아깝게 여겨 자신들의 몫으로 살려두고, 쓸모없고 값없는 것들만 없애 버렸던 것입니다. 이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사울을 임금으로 삼은 것을 후회한다. 그는 나를 따르지 않고 돌아섰으며 내 말을 이해하지 않았다.”(1사무 15,11)
그런데도 사울은 이튿날 사무엘을 만나자 자신은 하느님의 말씀을 이행하였다고 자찬하였습니다. 이에 사무엘이 그의 잘못을 꾸짖자 그는 변명하기를, 군사들이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양 떼와 소 떼 가운데에서도 가장 좋은 것을 아껴 두었던 것이고, 그 밖의 것은 완전히 없애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사무엘이 말하였습니다. “그만두십시오.” 이는 사무엘이 예언자로서 임금에게 목숨을 내놓고 한 말이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말씀, 소위 ‘완전봉헌법’을 어긴 사울에게 어떻게 하여 양 울음소리와 소 울음소리가 들리는지를 물어보았는데, 그에 대해 사울이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려고 가장 좋은 것을 아껴 두었다고 하니까 ‘그만두라’라고 쏘아붙인 것입니다.
사무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하느님께서 사울에게 하셨던 당부를 다시 강조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임금님을 내보내시면서 이런 분부를 하셨습니다. “가서 저 아말렉 죄인들을 완전히 없애 버려라. 그들을 전멸시킬 때까지 그들과 싸워라.” 그런데 어찌하여 임금님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전리품에 덤벼들어, 주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셨습니까?”(1사무 15,18-19) 예언자 사무엘의 질책을 들은 사울은 뉘우치기는커녕 변명을 반복합니다. “저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가라고 하신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아말렉 임금 아각은 사로잡고 그 밖의 아말렉 사람들은 완전히 없애 버렸습니다. 다만 군사들이 완전히 없애 버려야 했던 전리품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양과 소만 끌고 왔습니다. 그것은 길갈에서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습니다.”(1사무 15,20-21)
이렇듯 사울은 자신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고, 뉘우칠 마음 자체가 없었던 못난 왕이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다음 왕이 될 다윗과는 큰 차이를 보인 것이지요. 하느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을 결코 내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완전봉헌물에 대한 사울의 태도와 관련하여, 예수님께서 사람이 하는 마음이 없는 말의 대표적인 것으로 꼽으신 ‘코르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코르반’이라는 말은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예수님 시대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좋은 물건을 보고 탐내는 사람에게 ‘딴 마음을 품지 말라’는 뜻으로 ‘코르반’이라고 말하곤 했다는데,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질책하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중에도 부모나 친지가 형편이 어려워져 도움을 청하러 찾아오는데도 ‘코르반’이라는 말로 (하느님께 바칠 것이라는 구실로) 도와줄 수 없다며 거절을 포장하는 이들이 있다면서 지적하신 것이지요.
‘내가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저것들은 다 ‘하느님께 바쳐드릴 것’이니 너희들에게 줄 것이 없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이런 속마음으로 ‘코르반’을 외치면서 실상은 그 물건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대로 사용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마음은 “전쟁의 전리품을 완전히 봉헌하지 않은 것은 하느님께 제물로 바칠 생각이었다.”라고 변명하는 사울의 마음을 닮아있는 듯합니다.
내 자신의 뜻을 하느님의 뜻인 양 잘 포장하면서 사람들을 속이는 행동은 참으로 위선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칫 하느님을 이용해서 나의 욕심을 채우는 잘못을 범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입술과 마음이 서로 다르지 않게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하느님 뭐라꼬예?] 사울이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 되다
사무엘이 사울을 임금으로 세우다
사실 사무엘은 사울이 자신을 찾아오리라는 것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울이 오기 하루 전에 하느님께서 내리신 놀라운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내일 이맘때에 벤야민 땅에서 온 사람을 너에게 보낼 터이니,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워라. 그가 내 백성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구해 낼 것이다. 나는 내 백성이 고생하는 것을 보았고, 그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1사무 9,16) 사울을 보는 순간, “내가 너에게 말한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그가 내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 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사무엘은 “당신이 사흘 전에 잃어버린 암나귀들은 이미 찾았으니, 더 이상 그 일로 마음을 쓰지 마시오.” 하면서 “이제 이스라엘의 모든 기대가 당신과 당신의 집안에 걸려있소.”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에 사울은 “저는 이스라엘의 지파 가운데에서도 가장 보잘 것 없는데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시오.” 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서른 명가량의 손님들이 모여 있는 산당으로 데리고 가서 윗자리에 앉힌 다음 식사를 대접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주님께서 당신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그분의 소유인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습니다.”라고 하면서 앞으로 있을 일과 표징들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미츠파’로 불러 하느님 앞에 모아놓고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내시고 여러 나라의 손에서 그들을 구해내신 하느님의 업적에 대해 언급한 다음, “온갖 재앙과 재난에서 여러분을 구해 주신 하느님을 그토록 배척하고 안 되겠다며 임금을 세워달라는 여러분은 이제 지파와 씨족별로 하느님 앞에 나서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가까이 오자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 먼저 벤야민 지파를 뽑으시고 이어 씨족별로 모인 그들 가운데에서 키스의 아들 사울을 뽑으셨습니다. 사무엘이 “하느님께서 뽑으신 이가 이 사람이다. 온 백성 가운데 이만한 인물은 없다.” 하면서 사울을 내세우자 온 백성은 “임금님 만세!” 하며 환호를 올렸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뽑아 왕으로 세우고 난 다음 백성에게 왕이 가지게 될 권한을 설명하고, 그것을 책에 적어 하느님 앞에 두었습니다. 사울이 기브아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갈 때, 하느님께서 마음을 움직여주신 용사들이 그를 따라나섰습니다. 왕으로 뽑힌 사울에게 예물을 바치기는 고사하고 그를 업신여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암몬 사람들을 무찌르다
그때 암몬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던 요르단강 오른쪽의 땅인 ‘야베스 길앗’을 포위하였습니다. 야베스 사람들은 암몬족을 이끌던 ‘나하스’에게 그들을 섬기겠다며 조약을 맺자고 했지만, 나하스는 “너희의 오른쪽 눈을 모두 후벼내어 온 이스라엘에 대한 모욕으로 내어놓는다면 너희와 계약을 맺을 수 있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에 급해진 야베스 사람들은 남서쪽으로 80km쯤 떨어진 ‘기브아’ 사람들에게 전령을 보냈고, 이어 사울도 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 펼쳐지는 이야기를 사무엘기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하느님의 영이 사울에게 들이닥치니, 그의 분노가 무섭게 타올랐다. 사울은 겨릿소 한 쌍을 끌어다가 여러 토막을 내고, 그것을 전령들 편에 이스라엘의 온 영토로 보내면서, ‘누구든지 사울과 사무엘을 따라나서지 않는 자의 소는 이 꼴이 될 것이다.’ 하고 전하게 하였다. 주님에 대한 두려움이 백성을 사로잡자 그들은 하나같이 따라나섰다.”(1사무 11,6-7)
그렇게 모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다지파 사람 3만을 포함하여 33만이었습니다. 사울의 군사들은 세 부대로 나누어 암몬군을 무찔렀고 살아남은 암몬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사울이 승리하자 사람들이 사울이 임금이 될 때 업신여겼던 사람들을 죽음으로 벌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오늘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구원을 이루어주신 날이니 아무도 죽임을 당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면서 ‘길갈’로 가서 왕정을 새롭게 다지자고 권고하였습니다. 이에 온 백성은 길갈로 가서 사울을 임금으로 세우고 하느님께 친교의 제물을 바쳤습니다.
사무엘의 경고와 하느님의 보증
이제 판관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한 사무엘은 백성에게 하느님의 업적을 이야기하면서 임금을 세워 주길 요구한 그들에게 경고했습니다.
“자, 여러분이 요구하여 뽑은 임금이 여기 있소.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임금을 세워 주셨소. 만일 여러분이 주님을 경외하여 그분을 섬기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의 명령을 거역하지 않으면, 여러분뿐 아니라 여러분을 다스리는 임금도 주 여러분의 하느님을 따르게 될 것이오. 그러나 여러분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주님의 명령을 거역하면, 주님의 손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임금을 치실 것이오.”(1사무 12,13-15)
사무엘은 백성이 임금을 요구한 일이 하느님 보시기에 얼마나 큰 악인지를 알게 될 것이라며 “밀을 거두는 때인 지금 내가 하느님께 간청하여 천둥과 비를 내리시게 하겠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무엘이 그렇게 하느님께 간청하자 천둥과 비가 내렸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무엘 예언자의 말을 보증해 주신 것이지요. 하느님과 사무엘을 경외하게 된 백성이 사무엘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신 종들을 위해서 주 당신의 하느님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해주십시오. 사실 우리는 이미 저지른 모든 죄에다 임금을 요구하는 악까지 저질렀습니다.”(1사무 12,19) 백성의 참회하는 마음과 간청을 들은 사무엘이 말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여러분이 이 모든 악을 저질렀지만, 이제부터라도 주님을 따르지 않고 돌아서는 일 없이,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시오. 여러분에게 이익도 구원도 주지 못하는 헛된 것들을 따르려고 돌아서지 마시오. … 만일 여러분이 여전히 악행을 일삼는다면, 여러분도 여러분의 임금도 모두 쫓겨날 것이오.”(1사무 12,20-25)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면서도 하느님을 충심으로 섬기지 않고 악을 행하면 임금을 비롯한 모든 이가 쫓겨날 것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살면서 많은 잘못을 저질렀을지라도 이제부터 회심하고 전심전력하여 하느님을 따르면 된다는 말씀에 힘을 내게 됩니다.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내 자신의 욕구와 욕망에만 더 관심을 기울이는 나의 삶을 반성합니다. 아무런 이익도 구원도 주지 못하는 헛된 것들을 따르려고 돌아서지 말라는 예언자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눈 밖에 난 사울왕
사울의 아들 ‘요나탄’이 ‘게바’에 있던 필리스티아인들의 수비대를 치자, 그 소식을 들은 3천의 병거, 6천의 기마 등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필리스티아 군사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미크마스’에 진을 치자, 그에 비해 훨씬 적은 수의 군사를 보유한 사울이 ‘길갈’에서 군사를 소집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오기로 한 날에 오지를 않자 겁에 질린 군사들이 흩어지기 시작하였고, 이에 다급해진 사울이 (사제가 바쳐야 할) 번제물을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사무엘이 그렇게 행동한 사울을 꾸짖었습니다. “임금님은 어리석은 일을 하셨고, 주 임금님의 하느님께서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않으셨습니다. … 주님께서는 당신 마음에 드시는 사람을 찾으시어, 당신 백성을 다스릴 영도자로 임명하셨습니다.”(1사무 13,13-14) 하느님께서 당신에 대한 공경을 소홀히 한 사울 임금을 내치신 것입니다.
[하느님 뭐라꼬예?] 사무엘과 사울의 만남
하느님 궤의 이전과 멈춘 재앙
필리스티아인들의 지역에서 재앙을 불러오던 하느님의 궤가 ‘벳 세메스’ 지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벳 세메스 사람들은 하느님의 궤를 환영했지만 그 궤를 직접 본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또 재앙을 내리신 듯했습니다. 무려 5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던 것입니다. 애도하던 벳 세메스 사람들은 의논하였습니다. “이렇게 거룩하신 하느님이신 주님 앞에 누가 감히 나설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분을 어디로 보내어 우리에게서 떠나시게 할까?”(1사무 6,20)
그들은 (베들레헴에서 북서쪽 10km쪽에 있는) ‘키르얏 여아림’ 주민들에게 심부름꾼을 보내어 ‘필리스티아인들이 주님의 궤를 돌려보냈으니 내려와 모시고 올라가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이에 하느님의 궤를 모시고 올라간 키르얏 여아림 사람들은 그 궤를 언덕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옮기고서, 그의 아들 엘아자르를 성별하여 그 궤를 돌보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궤는 그곳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회심
어느덧 2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스라엘 온 집안이 필리스티아인들의 위협 앞에서 하느님을 향해 탄식을 하자 판관으로 일하던 사무엘이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 돌아오려거든, 여러분 가운데에서 낯선 신들과 아스타롯을 치워 버리시오. 여러분의 마음을 주님께만 두고 그분만을 섬기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빼내어 주실 것이오.”(1사무 7,3) 사무엘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즉시 바알과 이스타리옷을 치워버리고 하느님만을 섬겼습니다. 그들의 회심을 본 사무엘은 백성을 미츠파로 모이게 했고 그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단식하며 자신들이 주님께 죄를 지었음을 고백했습니다.
하느님께서 필리스티아인들을 치시다
필리스티아인들의 통치자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미츠파에 모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치러 올라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두려움에 떨며 사무엘에게 말하였습니다.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해 주시도록, 주 우리 하느님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주십시오.”(1사무 7,8) 그들의 청을 들은 사무엘은 어린 양 한 마리를 하느님께 번제물로 바치며 간절히 부르짖었고, 이러한 사무엘의 기도에 하느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사무엘이 아직 번제물을 바치고 있을 때, 싸우러 올라온 필리스티아인들 위에 하느님께서 큰 천둥소리를 울리시어 혼란에 빠진 그들을 치신 것입니다.
필리스티아인들이 물러가자 사무엘은 돌을 하나 가져다가 미츠파와 센 사이에 세우고 ‘주님께서 여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며 그 돌의 이름을 ‘에벤 에제르’라 했습니다. 이렇게 패배한 필리스티아인들은 이제 이스라엘 영토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판관 사무엘이 살아 있는 동안에 하느님의 손이 그들을 억누르셨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일찍이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빼앗겼던 이스라엘의 많은 성읍들이 이스라엘에 되돌아왔고, 이스라엘은 아모리족과도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전쟁의 위험에서 하느님께 탄식을 올린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자의 말에 즉시 우상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들의 회심을 행동으로 드러내었던 것입니다. “네가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려거든 네 안에서 우상과 악습을 몰아내야 한다. 너의 마음을 나에게만 두고 나만을 섬겨라. 그러면 내가 너를 악의 힘에서 빼내어 줄 것이다.”라는 하느님의 말씀이 들리는 듯합니다. 회심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드러냅시다!
이스라엘 백성이 임금을 요구하다
나이가 많이 든 사무엘은 자신의 아들인 ‘요엘’과 ‘아비야’를 이스라엘의 판관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무엘의 길을 따라 걷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뇌물을 받고 판결을 내리며 사리사욕을 채우기까지 하자 이스라엘 원로들이 사무엘을 찾아가 청하였습니다. “어르신께서는 이미 나이가 많으시고 아드님들은 당신의 길을 따라 걷지 않고 있으니, 이제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우리에게 세워 주십시오.”(1사무 8,5) 사무엘은 자신들을 통치할 임금을 정해달라는 그들의 말을 듣고 언짢아 하느님께 기도하였더니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백성이 너에게 하는 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은 사실 너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배척하여, 더 이상 나를 자기네 임금으로 삼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이집트에서 데리고 온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를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런 짓을 저질러 왔는데, 그 모든 짓을 너한테도 그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그들의 말을 들어 주어라. 그러나 엄히 경고하여 그들을 다스릴 임금의 권한이 어떠한 것인지 그들에게 알려 주어라.”(1사무 8,7-9)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다스릴 임금의 권한이오. 그는 여러분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병거와 말 다루는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오. … 그는 여러분의 가장 좋은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을 빼앗아 자기 신하들에게 주고 … 여러분의 남종과 여종과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 그리고 여러분의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오. 여러분의 양 떼에서도 십일조를 거두어 갈 것이며, 여러분마저 그들 종이 될 것이오. 그제야 여러분은 스스로 뽑은 임금 때문에 울부짖겠지만, 그때에 주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오.”(1사무 8,11-18)
사무엘이 이렇게 왕정의 폐단에 대해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은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상관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임금이 꼭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도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임금이 우리를 통치하고 우리 앞에 나서서 전쟁을 이끌 수 있게 될 것입니다.”(1사무 8,19-20) 사무엘이 백성의 말을 듣고 하느님께 아뢰자, 하느님은 백성의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임금을 모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이제 자신을 통치할 왕을 세워 달라 요구하면서 그 왕이 자신들을 어떻게 취급해도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무조건 임금을 세워달라고 떼를 쓰는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는 전능하신 하느님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공허한 외침으로 들립니다. 하느님을 모른척하고서는 우리가 하는 어떠한 일도 열매를 맺을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을 찾아오다
벤야민 지파에 ‘키스’라는 힘센 용사에게 ‘사울’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잘 생기고 키가 무척 큰 사나이였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종을 하나 데리고 나가 암나귀들을 찾아보라’라는 말을 들은 사울은 길을 나섰습니다. 여러 곳에서 암나귀를 찾아보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던 사울이 이제 걱정하실 아버지를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려 하자, 사울의 종은 ‘이 성읍에 존경받는 하느님의 종이 한 분 계시니 그분에게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일러 달라고 하자’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사울이 선지자 사무엘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울이 자신을 찾아오리라는 것을 사무엘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들의 만남을 이끄신 것이지요.
[하느님 뭐라꼬예?] 하느님의 계약궤와 그분의 현존
하느님의 궤를 빼앗기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필리스티아인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약 4천 명이나 되는 군사를 잃고 말았습니다. 남은 군사들이 진영으로 돌아오자 이스라엘의 원로들은 ‘하느님께서 어찌하여 오늘 우리들을 치셨을까?’ 하며, 하느님의 도움을 구하는 마음으로 실로에서 하느님의 계약궤를 전쟁터로 모시고 왔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느님께서 틀림없이 그들 가운데 함께 하시어 원수들 손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시리라 희망했던 것이지요.
하느님의 궤가 이스라엘 진영에 도착하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땅이 뒤흔들릴 정도로 큰 함성을 올렸습니다. 그 소리에 놀란 필리스티아인들은 자초지종을 듣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 진영에 신이 도착했다.’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는 망했다! 이런 일은 일찍이 없었는데. 우리는 망했다! 누가 저 강력한 신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겠는가? 저 신은 광야에서 갖가지 재앙으로 이집트인들을 친 신이 아니냐!”(1사무 4,7-8)
필리스티아인들은 이스라엘의 신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구해내셨는가 하는 소문을 주변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이제 자신들도 파멸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음의 말로써 서로 사기를 북돋우고 용기를 내었습니다. “그러니 필리스티아인들아,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히브리인들이 너희를 섬긴 것처럼 너희가 그들을 섬기지 않으려거든, 사나이답게 싸워라.”(1사무 4,9)
필리스티아인들은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야 한다는 굳은 각오’로 싸우러 나갔고, 이에 이스라엘은 또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하느님의 궤를 모셔왔지만 기대했던 하느님의 도우심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팔레스티아인들의 대살육에 삼만이나 되는 보병을 잃고 말았고 그토록 소중한 하느님의 궤까지 적의 손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계약궤를 돌보던 엘리의 두 아들도 죽었는데, 그 모든 소식을 전해 들은 엘리 사제마저 앉아 있던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엘리의 며느리로서 마침 해산 중이었던) 사제 피느하스의 아내는 ‘하느님의 궤를 빼앗긴 이스라엘에 이제 영광은 떠나고 말았다’라고 하면서 아들을 ‘영광이 없다’ ‘불명예’란 뜻으로 ‘이카봇’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하느님의 궤를 빼앗기고 시아버지와 남편마저 잃은 여인의 아픔을 아들의 이름에 남겨놓았던 것이지요.
“주님께서 어찌하여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앞에서 우리를 치셨을까?” 이스라엘의 원로들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지켜주시지 않으심에 궁금해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되새겨보면서 자신들을 더 돌아보기보다 바로 하느님의 궤를 모시고 왔습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계약궤를 모시고 오면 하느님께서 자신들과 함께하시면서 지켜주시리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하느님의 현존은 결코 그들의 인간적인 계산이나 계획과 소망에 따라 자동적 혹은 무조건적으로 결과를 이루어 내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하느님의 현존은 오로지 하느님의 자유와 은혜에 달린 것임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자신을 돌아보는 자세로 은총을 청하며 그분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겨 드리는 일이겠습니다!
하느님의 궤가 필리스타인들을 벌하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승리의 전리물인 하느님의 궤를 자신들이 섬기던 ‘다곤’의 신전으로 가져다가 다곤의 신상 곁에다 놓아두었습니다. 다곤 신이라면 이스라엘인들의 신을 꼼짝 못 하게 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지요. 그런데 다음날 보니 다곤 상이 땅에 얼굴을 박고 계약궤 앞에 쓰러져 있는 것 아닙니까! 이에 그들은 다곤을 일으켜 세워 놓았습니다. 하지만 다음날도 다곤이 쓰러져있었고, 심지어 그다음 날에는 머리와 두 손이 잘린 채 몸통만 남아있었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이 종기로 쓰러져 갔던 것입니다.
급기야 그들은 계약궤를 다른 곳으로 옮겨 놓았지만 그래도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계약궤를 가져다 놓은 성읍에 매우 큰 소동이 일어나고, 종기가 사람들 몸에 솟아났으며, 또 다른 성읍에서도 사람들이 죽어가거나 몸에 종기가 나는 소동이 반복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계약궤를 옮겨간 다른 곳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그들(필리스티아인들의 통치자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 옮겨 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하는가?”(1사무 5,10) 그러면서 그들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제자리로 돌려보내어 자신들이 죽음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하느님의 궤가 돌아오다
그렇게 하느님의 궤가 필리스티아인들의 지역에 머무른 지 7개월, 필리스티아인들은 사제들과 점쟁이들을 불러놓고 어떻게 하면 그 궤를 제자리로 돌려보낼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에 대한 그들의 대답이 이러합니다. “이스라엘 하느님의 궤를 돌려보내려면, 그냥 보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그 하느님에게 보상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병이 나을 것이고, 그가 왜 여러분에게서 손을 거두지 않는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1사무 6,3)
필리스티아인들의 방문을 받은 사제들과 점쟁이들은 필리스티아인들의 통치자들의 수에 해당하는 종기와 쥐 모양의 금덩어리 5개를 만들어 계약궤와 함께 보상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신 하느님의 업적을 잘 알고 있는 듯 덧붙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왜 여러분은 파라오와 이집트인들처럼 고집을 부리려 합니까? 그가 이집트인들을 거칠게 다룬 다음에야, 이집트인들이 이스라엘을 떠나가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이제 새 수레 하나를 마련하여, 멍에를 메어 본 적이 없는 어미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그 수레에 묶고, 새끼들은 어미에게서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십시오. 그런 다음, 주님의 궤를 가져다가 그 수레에 싣고, 그에게 보상 제물로 바칠, 금으로 만든 물건들을 상자에 담아 그 곁에 놓으십시오. 그렇게 그것을 떠나보내고 나서 지켜보십시오.”(1사무 6,6-8)
무슨 말일까요? 그들은 만일 수레가 이스라엘인들이 머물고 있는 ‘벳 세메스’로 올라가면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자신들에게 재앙을 내린 것으로, 그렇지 않고 제 새끼들이 있는 제 고장으로 돌아가면 우연하게 재앙이 닥친 것으로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멍에를 메어 본 적이 없는 소들이 모르는 길을 따라갈 확률은 엄청 낮으니 어려운 확률이 현실이 되면 하느님의 손길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사람들이 그대로 하였더니 소들은 곧장 베 세메스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뒤를 필리스티아인들의 통치자가 따라갔습니다. 벳 세메스 사람들은 레위인들의 손을 빌려 하느님의 궤를 큰 바위 위에 내려놓게 한 다음 수레를 부수어 장작으로 삼아 하느님께 소들을 번제물로 바쳤습니다. 필리스티아인들의 다섯 통치자들은 이를 보고 돌아갔습니다.
돌아온 하느님의 궤가 재앙을 내리다
벳 세메스 사람들은 계약궤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맞이하였고 번제물도 바쳤습니다. 그런데 이 벳 세메스 사람들에게 재앙이 내렸습니다.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닥친 것이지요. 왜일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벳 세메스 사람들이 주님의 궤를 보았기 때문에 그들을 치셨다. 그 백성 가운데에서 일흔 명과 오만 명을 치신 것이다.”(1사무 6,19) 일찍이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됩니다.
- “나는 내가 자비를 베풀려는 이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을 베풀려는 이에게 동정을 베푼다. 그러나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탈출 33,20)
- “성막을 옮겨 갈 때에 레위인들이 그것을 거두어 내려야 하고, 성막을 칠 때에도 레위인들이 그것을 세워야 한다. 속인이 다가왔다가는 죽을 것이다.”(민수 1,51)
즉 하느님께서는 사제들과 레위인들에게 당신을 섬기는 직분을 맡기시면서 분명히 말씀하신 것이지요. 만일 속인들이 계약궤 가까이 오면 죽음을 당하게 될 것임을요!
사제직을 수행한다는 일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가를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라’ 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신자들의 성화를 위해 하느님을 좀 더 가까이 섬기도록 제정된 사제직분에 맞갖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에 감사하며 사제직에 최선을 다하기를 소망합니다!
